<산문>
이룰 수 없는 꿈
2126 이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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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추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람들마다 좋은 추억, 나쁜 추억, 아쉬운 추억 등이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추억에 대해 물어보면 다들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 기분 좋았던 추억들이 있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나에게는 내 삶에서 가장 아쉽고 후회되는 추억이 하나 있다.
그 추억은 바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1때 까지 경험했던 축구부 시절의 추억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아주 즐겁게 축구를 하곤 했다. 친구들과 같이 공을 차고 놀면 시간가는 줄 몰랐던 그런 순수한 나였기에 그 당시에 축구는 나한테 지금의 스마트폰보다 더 귀중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년마다 있는 초등학교 구례 지역 풋살대회가 있는데 처음으로 거기에 참가해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 풋살대회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승 1패로 떨어졌지만 처음으로 축구라는 활동에서 가장 진지하게 임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깨달았다. “축구는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축구만 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런데 여름방학 때 나에게 최고의 기회가 찾아왔다. 구례북초에 축구부를 이끌고 계셨던 감독님께서 나를 알아봐주셨던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너무 기뻤지만 한번 더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과연 축구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러면서 3일을 생각해봤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이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구례북초에 전학을 가게 됬고, 5학년 2학기 때부터 정식적인 구례북초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가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들을 만나며 나는 새학교에 적응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축구부는 정말 힘들었다. 아침운동과 오후운동을 하는데 1주일은 정말 재미있게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운동할 때 한번 실수를 하거나 잘못한 행동을 하면 욕을 엄청나게 먹고, 늦거나 참석을 안한다면 감독님께서 굉장히 심한 말들과 초등학생이 듣기 어려운 말들을 하셨다. 5학년 때 그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축구부는 화목하다.’ 라는 개념이 박혀있었을 때였다. 그 개념이 확실히 깨지면서 한동안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5학년 시절은 끔찍했고, 한심했다.
6학년 때는 좀 더 다른 마음으로 다가간 것 같다. “이왕 이렇게 된거 열심히 해보자!!” 라는 마인드였기 때문에 연습에 열심히 참여하고 감독님 말씀도 잘 듣고 동생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모든 활동에 성실히 임했다. 그러다 보니까 감독님께서는 우리를 믿고 청소년 대표로 나를 뽑으셔서 중국에 한국 대표로 시합을 나갈 수 있게 보내주시기도 하였다. 정말 그 때의 기분은 대박이었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축구선수가 되려고 마음먹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박지성의 자서전이였다. ‘멈추지 않는 도전’ 이라는 박지성의 자서전을 읽고, ‘나도 될 수 있겠구나...’ 라는 마인드를 가지게 됬다. 그렇게 열심히 한 덕분에 드디어 그 노력의 성과가 결실을 맺었다.
스카우트였다. 전국대회에서 구례북초가 항상 처참히 패배만 가지게 되고 승리는 없었지만 스카우터들은 나를 지켜본 것이다. 나의 플레이를 보고 관심있어하는 스카우터들이 있던 것이다. 순천매산중학교에서 나를 지켜봤고, 북초감독님과 매산중 감독님께서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끝에 나와 또 한명의 친구를 데려가기로 하였다. 이제 나의 선택만이 달려있었다. 그 순간 생각나는 게 있었다. 매산중은 원래 전남에서도 1,2위를 다투는 그런 학교고 전국대회에서도 어느팀에게 꿀리지 않는 그런 전력을 가지고 있는 팀이었다. 나는 그 상황에 또 “축구가 이렇게 쉽게쉽게 되는 것인가?” 라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굳게 다짐하였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를 순천매산중학교로 가게 되었다.
원래 다른 지역에서 오는 축구부 학생들은 10월이나 11월달에 미리 지역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숙소생활을 하게 된다. 구례북초친구들이 너무 그리웠지만 나의 꿈을 위해서라면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순천매산중학교 숙소에 발을 디딛는 순간 또 한번의 충격을 받았다. 내가 북초등학교 축구부에 처음 간 그 느낌보다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숙소 안은 굉장히 아늑하고 넓었지만 다른 축구부원들의 마음은 넓지 않았다. 다 경쟁의식 때문에 째려보는 눈빛들, 선배들의 따스한 시선 등이 매우 부담스러웠고, 모든 사람들이 다 무서웠다. 구례에서 와서 무시하는 학생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일주일을 경험해보니까 굉장히 편해졌다. 조언을 해주는 선배들,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숙소생활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연습이였다. 저녁연습은 정말 지옥같이 힘들었다. 엄청나게 힘들게 운동을 하면서 감독님과 코치님들의 거친 언어를 함께 들으니 정말 지옥 같았다. 당장이라도 발 뻗고 눕고 싶었다. 축구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하지만 2달을 버텨 본 결과 적응이 됐고, 새로운 친구도 엄청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2학기가 끝나고 축구부는 항상 겨울에는 동계훈련을 가게 된다. 그 동계훈련에서 아마 대부분 포지션이 정해진다고 보면 된다. 나는 벌써부터 기대 됐다. 선배들은 대회에 나가지만 1학년들은 연습상대를 정하고 맞춰보면서 포지션이 뽑아지는 그런 활동을 한다. 하지만 정말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나버렸다. 갑작스런 무릎부상으로 그 기간에는 축구를 못할 것 같았다. 다른 얘들은 포지션을 잡아갈 아주 중요한 시기에 나는 구경만 하는 것이다. 앞길이 캄캄했다. 갑자기 이런 부상을 얻게 되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고 점점 축구선수의 꿈이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그 중요한 시기를 버려버리고 말았다. 더 안타까운 건 내 무릎이 치료가 다 되고 나서 다시 경기를 뛰려고 할 때는 감각을 찾지도 못하겠고, 포지션을 안 맞춰봐서 내가 뛸 자리가 없는 것이었다. 정말 화가 났지만 내 자신에게 많이 실망했다. 겨우 이정도 였나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 그 때 생각했다. ‘축구는 지금 이 상태로는 가망이 없겠다. 그만하자.’ 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와서 보면 정말 잘 생각했던 것 같으면서도 진짜 많이 아
쉽고 후회가 된다.
결국 나는 축구를 그만두게 되었고 축구선수라는 꿈을 눈앞에서 지워버리고 말았다. 한동안 나는 축구를 그만두고 방황하게 되었고, 두달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정말 나는 멍청이 인 것 같다. 가끔 나의 친구들이 이렇게 물어본다.
“다시 초등학교 때로 돌아간다면 축구할 거야?”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무조건 해야지.”
지금은 이렇게 정신 차리고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다음 생애에는 무조건 운동으로 갈 것이다. 다들 이런 일이 생각하기도 싫은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다르다. 이 아쉬운 것을 나는 평생 기억하고 저장할 것이다. 나로써는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고 누구도 이런 경험을 할 순 없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 아쉬운 추억을 아주 인상적이게 생각하고 화나거나 짜증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나의 생각은 아쉽거나 화나거나 짜증나는 일들도 다 알고 보면 정말 도움이 되고 하나의 멋진 추억이 되는 것 같다. 추억은 정말 좋은 것이다.
첫댓글 멋지다
멋지다
ㅎㅎ,,,,추천 누르고 갑니다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