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
청소년을 사랑한 돈 보스코 성인의 살레시오회
청소년에 대한 성인의 사랑·숨결 살아 숨쉬다...
고(故)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다.
이웃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고,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 줄 수 있다.
내어주는 삶,
이 신부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태석 신부가 한국에서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까지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 있을까?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제일 큰 계명 ‘사랑’,
살레시오회 창설자 돈 보스코 성인이
청소년을 위한 수도회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번 ‘전통영성의 샘을 찾아서’에서는
살레시오회가 시작된 이탈리아 토리노를 소개한다.
★돈 보스코의 청소년 사랑이 만든 결실
살레시오회
한국교회에서 사랑받는 수도회 중 한 곳이 살레시오회다.
전라도 광주에 살레시오학교를 운영하며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 교육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해 왔다.
2년 전 선종한 이태석 신부가 남긴 발자취는
전국에 ‘살레시오회’와 수도회의 정신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살레시오회는 청소년들의 스승이요 아버지인
성 요한 보스코(1815∼1888)에 의해
설립된 수도회다.
1841년 토리노 교구 사제로 서품을 받은 요한 보스코는
가장 먼저 소년원에 수감된 소년죄수를 찾아갔다.
당시 이탈리아는 국가통일운동과 산업화로 인해 수많은 가정들이 해체됐다.
그런 사회 환경 속에서 불우한 청소년들은 그대로 방치되고 말았다.
아무도 관심도 없던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냈고,
뜨거운 마음으로 감싸 안았던 사람이 요한 보스코 성인이다.
요한 보스코는 청소년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며 보람을 느꼈다.
그는 청소년들 속으로 들어갔다.
가난하고 불우한 청소년들을 교육시키며,
‘오라토리오’라는 기숙사를 세워 청소년들의 의식주를 마련해 줬다.
그는 복음적 가치관 안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직업교육을 마련했다.
청소년들이 사회인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돈 보스코 주변에는 순식간에 많은 청소년들이 모여들었다.
성인이 수도회를 설립할 뜻을 밝히자 기꺼이 참여했다.
1859년 열일곱 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살레시오회를 설립했고,
10년 후인 1869년 교황 비오9세에 의해 정식 승인을 받았다.
돈 보스코는 온유의 성인,
애덕의 박사로 불리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1564∼1622)성인이 지녔던 온유한 마음이
청소년 영혼구원 사업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수도회 이름을 ‘살레시오회’로 정했다.
수도회는 네 가지의 사도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첫 번째는 청소년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복음적 가치에서 교육하고자 하는 교육 사도직이며,
두 번째는 기숙사와 쉼터 등 청소년들을 돌보고 선도하는 사회복지 사도직이다.
또한 청소년수련원, 문화원 등
청소년 재교육을 위한 사회교육 사도직과
소년원, 교도소 등 불우 청소년을 돌보는 교정 사도직을 활동하고 있다.
살레시오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교육 사업을 통해 복음적 가치를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예방교육’은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깨우치고,
종교적 사랑으로 감화하는 교육이다.
자선이라는 덕목으로 청소년 스스로가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이념이다.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가정’이라고 강조하는 살레시오회의 예방교육은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는 한국 교육환경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 청소년의 스승이요, 아버지로 불리는 살레시오회 창설자 돈 보스코 성인.
그의 유해는 토리노 살레시오회 수도원 성당에 모셔져 있다.
▲ 청소년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 살레시오회는 사도직으로서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다.
수도회가 운영하는 학교는 그 지역에서 좋은 학교로 인정받고 있다.
▲ 돈 보스코 선종 후,
살레시오회는
제자들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의자에 앉혀놓았다고 한다.
★돈보스코의 숨결이 남은 토리노
토리노는 제노바 북서쪽 포강 연변에 있는 교통의 요지다.
켈트인들이 기원전에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면서
토리노의 오랜 역사가 시작된다.
로마의 식민도시로 성장했던 토리노는
11세기 이후
사보이 왕가에 속하면서 이탈리아 역사의 중심이 됐다.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추진했던 사보이 왕가는 이곳을 중심지로 삼았다.
1861년부터 약 3년간은 왕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수도가 로마로 옮겨갔지만 토리노는 여전히 중요한 도시다.
공업도시로서 자동차는 물론 금속, 화학공업, 항공기 등의 기계공업 등이 발달돼 있다.
돈 보스코는 공업도시의 중심지인 토리노에 살레시오회를 설립했다.
그곳에는 창설자 돈 보스코의 숨결이 여전히 남아있다.
성인 선종 전 2년 동안 사용했던 제단을 비롯해
사제복 등이
잘 보관돼 있어 마치 그를 만나는 듯하다.
또한 보스코가 생활했던 방과 선종했던 방 등이 온전히 보존돼 있다.
침대와 책상, 액자까지도 모두 성인이 사용했던 그대로다.
심지어 몸이 쇠약해진 성인이 물을 마실 수조차 없게 되자
입술에 축였던 물도 남아있다.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청소년에 대한 성인의 사랑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카테드라 디 보나노테’에서도 사랑의 흔적이 느껴진다.
돈 보스코는 매일 저녁 카테드라 디 보나노테에 올라가
꿈이나 그날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나누며 청소년과 인사를 했다.
하루를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싶어 했던 그의 마음이 전해졌다.
성인은 특별히 성모신심이 깊었다.
수도원 옆에 위치한 마리아 바실리카를 지으면서도
성모 마리아께 많은 기도를 했다.
덕분에 자금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시작한 성당을
아름답고 거룩한 건축물로 완공할 수 있었다.
성당 안에는 돈 보스코의 유해가 보존돼 있다.
단, 두개골은 베개 내부에 있으며,
유해 중 얼굴 부분은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성당에는 또 돈 보스코의 제자 성 도미니코 사비오와
살레시오수녀회 창설자 성 마리아 마자렐로 유해도 모셔져 있다.
토리노에는 살레시오회 외에도
예수의 수의인 성의가 모셔져 있는 산 조반니 바티스타 대성당이 유명하다.
▲ 산 조반니 바티스타 대성당에 보존돼 있는 성의를 촬영한 사진.
현재 성당에서는 진품 대신 모조품을 전시하고 있다.
▲ 토리노 살레시오회 수도원 옆에 위치한 대성당.
그곳에는 살레시오회 소속 성인들의 모습이 조각상으로 남겨져 있다.
▲ 토리노에는 드물게 남아있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된
산 조반니 바티스타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