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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암릉 잔치, 봄 날의 남도에서 다시 한계를 느끼다.
1. 일자 : 2013. 3. 30 (토)
2. 장소 : 덕룡산(433m), 주작산(429m)
3. 행로 및 시간
[소석문(04:50, 동봉 3km) -> 이정표(06:16, 동봉 0.86km) -> (일출) -> 동봉(06:40, 420m) -> 서봉(07:03) -> 수양마을 갈림(07:22) -> (연하선경) -> 수양마을 갈림(08:01) -> 첨봉 삼거리(08:18, 작정소령 2.61km) -> 암괴지대(08:40) -> 덕룡봉(08:51, 475m) -> 작전소령(09:11) -> (중식 -09:32) -> 주작산 삼거리(09:41) -> 주작산(10:26) -> 주작산 삼거리(11:16) -> 구멍바위(11:32) -> (관악사) -> 727봉(12:30, 오소재 4km) -> 관악사 임도(12:50) -> 이정표(13:16, 오소재 3km) -> 이정표(14:08, 오소재 1.6km) -> (길 순해짐) -> 오소재(14:40)]
4. 동행 : 홀로, 28인승산악클럽
< 덕룡-주작산 산행을 준비하여 >
‘땅끝기맥 13km, 하늘의4신(神) 중 남쪽 하늘의 신 주작(朱雀). 소석문재 90분, 동봉 30분, 서봉 60봉, 437봉 90봉, (덕룡봉)작전소령/주작산 갈림 60분, 427봉 90분, 401봉 60분, 오소재.’언제인지는 몰라도 덕룡-주작산 산행을 준비하며 써 둔 글의 일부이다. 산세와 갈 길의 대강을 비망을 위해 갈무리 해 둔 것인데 오늘에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두 줄 남짓의 정보로도 많은 것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일단 가야 하는 길은 한반도 땅끝을 향한다. 주작이라 함은 봉황인데 그 이름 만으로도 산세가 무척 험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소석문재에서 주작산을 오르지 않고 오소재로 하산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8시간이다. 주작산을 왕복한다고 가정하면 산악회 홈페이지에서 제시하는 17.5km, 11시간이 허언이 아닐 것이다. ‘무박 11시간의 암릉 산행’,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국 산의 평균고도는 482m라 한다(아시아 평균은 960m). 이 기준으로 볼 때 오늘 오를 두 산은 최고 높이가 평균 이하다. 그럼에도 산꾼들에게는 로망 중 하나인 명산 종주 코스이다. 산은 높이로만 그 명성을 따질 것이 아니며. 낮은 산이 한 가닥 한다는 것은 그만큼 풍광이 좋고 길이 험하다는 반증이다.
계절이 애매하다. 봄의 화신을 느끼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그래도 산행일자가 보름 이상 남았지만 일찌감치 예약을 한다. 그 만큼 먼 산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지난 2009년 봄 같은 들머리를 통해 오른 두륜산의 추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이다.
산행일자가 임박해 오자 이곳 저곳에서 정보를 끌어 모은다. ‘강진과 해남의 경계. 동백, 진달래, 모란으로 이어지는 꽃들의 계주. 주작의 암릉은 공룡능선, 덕룡의 평원은 세석평전과 닮음.’새로운 키워드들이 쏟아진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 좋다는 암릉 위의 진달래의 향연을 목도할 수 있을 터인데, 내 조급한 심성은 이를 기다리지 못한다.
< 희망사항 >
‘전라도, 땅이 기름지고 서남쪽이 바다에 임해 물산이 풍부하다. 풍속이 노래와 계집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기며 (이하 생략)’. 만물이 생동하는 이 계절에는 전라도 라는 말만 들어도 흥겨운 남도 가락이 떠오른다. 오는 봄을 좀더 일찍 맞으려 남도로 떠난다. 오랜만에 떠나는 무박 장거리 산행이다. 무박이라는 낯선 시간보다는 봉황과 용을 닮은, 그래서 친숙해질 수 없는 공간이 더 부담으로 다가온다. 스산한 찬 기운과 채 스러지지 않은 어둠 속에서 길을 나설 것이다. 싸늘한 새벽 공기를 뚫고 아득한 암릉의 공포와 씨름하며 걷는 길, 그 어딘가에서 맞을 장엄한 일출을 희망해 본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목격할 수 있다면 아무도 산에서 보는 최고의 조망일 것이다.
400미터 대의 산 두 곳을 넘는데 11시간이라, 게다가 산악회에서는 서울 도착시간을 평소보다 늦은 토요일 밤 10시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다수의 집객’이라는 평소의 목표도 버린 체 산행의 위험을 미리 알리고 있다. 속된말로 괜히 신청했다가 민폐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산 길 자체도 길고 험하고, 차 길도 멀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래도 나는 산으로 간다. Just do it!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었다. 의미 있는 생각을 가능케 하는 여러 방법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관찰하기와 형상화라 한다. 사람은 보지 못한 것을 머릿속으로든 화폭으로든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법이다. 관찰은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기능 이외에 어떤 것을 보게 만드는 기능도 있으니 등산을 통해 생각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하면 내가 등산에 이토록 빠져드는 것은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여러 상황을 관찰하고 이를 형상화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남도의 낮지만 험한 산행을 준비하며 풍경과 길, 소요시간 등을 추정하고 상상을 통한 형상화를 시도해 본다. 등산은 오감을 통한 적극적 관찰의 종합 판이라 했다. 실제 산행을 하며 오감을 통해 느낀 실제와의 비교가 기대된다.
(여기까지는 산행 전 준비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해남 가는 길에 >
북한이 드디어 전쟁상태를 선포했다.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 끝 모를 위기를 조장하더니, 최근 실시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계기로 특유의 광기를 토해내고 있다. 이 좁은 나라에서 숨거나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내색은 못 해도 솔직히 두렵다. 북의 여러 작태들을 보면서 자해공갈을 하며 행패를 부리는 조직 폭력배가 떠오른다. 이런 조폭에게는 강력한 공권력이 해결책이듯이 이번만큼은 우리의 힘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단, 스스로 망할 것을 각오하고 극단적 방법으로 도발해 오는 것이 걱정될 따름이다. ‘전시상황’에서 집을 떠나 먼 곳으로 길을 나서도 되나 하는 걱정이 마음 속 한구석을 무겁게 누른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모자랄 잠을 보충하려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뒤척이다 배낭을 멘다. 11시 사당역, 토요일 저녁의 활기참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국민은 참 무던한 사람들이다. 언론의 보도만으로 본다면 식료품 사재기를 하고 국외로 탈출해야 정상인데 인구 1000만이 넘는 이 도시 어느 곳에서도 전쟁의 공포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 없어 보여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나처럼 무거운 짐이 얹혀져 있을 것이다. 묵묵히 일상에 매진하는 모두가 고맙게 느껴진다.
11시 30분, 버스에 오른다. 복정과 신갈에서 일행 몇 명을 더 태운 후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남으로 길을 재촉한다. 모처럼 버스에서 숙면을 취했다. 휴게소에 내리는 것도 잊은 체 잠에 취했다. 4시 반경 눈을 뜬다. 이미 버스를 해남을 지나고 있었다. 대장이 길 안내를 한다. 요약하면 9시 작전소령 통과를 못하면 두륜산 코스는 포기해야 하며 3시 오소재, 4시 대흥사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 긴 암릉 코스를 지나 두륜산까지의 종주가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난 일단 주작산 왕복 후 오소재까지만 가기로 마음을 정리한다.
< 소석문에서 서봉 >
짙은 땅거미, 새벽어스름 번지는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 소석문에 섰다. 밤 외로움이 그리움으로 변하고 이내 칠 흙 같은 어둠이 찾아 든다. 긴 오름 길에 들어섰다. 초반부터 거친 숨결이 길 위에 뚝뚝 떨어진다. 서두른다고 어둠이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조급해진다.
길은 험한 바위 길인데, 랜턴을
집에 두고 왔다. 짐을 챙기며 무언가 잊은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것이 하필 ‘눈’이란 말인가! 곁불을
쬐듯 다른 이들의 빛에 기대어 조심스레 길을 이어간다. 5시간을 차 안에 있다가 바로 맞는 된비알은
체 10분만에 ‘내가 왜 이 짓을 하나’하는 후회가 들게 하였다. ‘해가
6시 15분경 뜰 터이니 6시가 지나면 사위
분간이 가능할 것이다’라는 생각만이 위안이 되어 주었다. 일행들은
무서운 속도로 바위 길을 헤쳐간다. 남자 두 분과 여자 한 분이 일행인 산꾼들 뒤를 따른다다. 내가 랜턴이 없는 것을 알고는 중간에 끼워 준다. 여자 분이 몹시
힘겨워하여 걸음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러 상황이 내게는 전화위복이다. 맹인과 같은 상태에서 속도까지 빠르면 따라 잡을 수 없으니 말이다. 아무리 깊은 어둠이라도 새벽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기다리고만 있지는 말자. 한걸음이라도 전진하여 아침을 맞자. 그리고
고대 아침을 맞더라도 결코 지난밤의 어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밤의 어둠이 있어 지금 이 아침이
더욱 찬란하기 때문이다.
6시간
지난다. 남쪽 하늘에 달이 떠 있다. 여명이 서서히 밝아
온다. 멀리 강진만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에서 불빛들이
새어 나온다. 길은 여전히 험한 바위 길이지만 최소한 보이지 않는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동봉이 0.86km 남았고 소석문에서 1.57km를 왔다는 이정을 지난다. 1시간 30분을 걸었는데 체 1.6km를 오지 못했다니, 갈 길이 걱정이다. 6시 20분이
지나자 주위가 완연히 밝아졌다. 드디어 고대하던 아침이 온 것이다.
< 어둠을 비춰주는 달이 있는 풍경 / 강진만에서의 일출 >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 일지 모른다. 어둠 속에서 내 눈이 되어 주신 고마운 분들과 가벼운 인사를 한다. 고마운 분들이다.
6시 40분, 동봉에 도착했다.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 올랐다. 때마침 바다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있다. 비록 수평선에서 오르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화려한 일출의 장관을 감상하기에 충분히 멋진 풍광이다. ‘바다에서 떠오른 해를 산에서 봤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산행은 가치 있는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짧지 않은 시간 등산을 했지만 제대로 떠오르는 일출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는데 오늘 드디어 새로운 장을 쓰게 되었다.
싸늘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한참이나 동봉주변을 서성이며 찬란한 아침이 열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어둠이 걷히자, 주작산의 본색이 드러났다. 사방이 뾰족한 암봉이다. 사위를 둘러 보는 눈에 들어온 지나온 길도
가야 할 길도 모두 만만치 않다. 일단 동봉을 내려선다. 잠시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을 험로다. 봉우리 하나를 건너 와 반대편을 보니 새벽 내 눈이 되어 주신 분들이
조심스레 길을 내려 오고 있다. 서남쪽 하늘에는 해가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 모습이 선명하다. 그 황홀한 황금빛 기운에 취해 연신 카메라를 누른다.
< 동봉의 자태 / 강진만과 황금빛 태양 >
대개의 산은 대칭이다. 내려온 만큼 다시 기어 올라야 한다. 서봉으로 향하는 길, 바위 봉우리를 기어 오른다.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길을 이어간다. 동봉이 점점 멀어질 무렵 긴 암릉 오르막이 이어졌다. 그 끝에는 서봉이 있었다. 일단 암릉구간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왠지 모를 포근함을 안겨주었다. 서늘한 아침공기와 티 없는 주변의 빛이 너무 좋다. 지난 여름 지리산 종주 시 반야봉에서 본 아침에 비견되는 황홀경이 이어진다. 내려다 보는 덕룡봉으로 향하는 길은 갈대가 있는 평온한 길이라 희망감에 발에 힘이 솟는다.
< 서봉에서 지나 온 길과 가야 할 길을 배경으로 >
< 서봉에서 주작산 >
길가에 진달래가 하나 둘 보인다. 아직 만개 수준은 아니지만 성질 급한 놈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겨울에 끝자락에서 화사한 분홍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달래를 참 고마운 존재이다. 가야 할 길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마치 지리산의 ‘연하선경’과도 같은 두 산 봉우리 사이로 평탄한 고원이 도처에 존재한다. 산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연이어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일출이 만들어 놓은 황금빛 기운이 사그라지고 옅은 연무가 바다에서 올라온다. 흔치 않은 풍경을 여럿 경험한다. 새벽을 달려온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 진달래가 여는 봄 / 암릉 원경 >
암봉과 고원이 반복되며 길이 이어졌다. 수양마을 갈림을 지난다 (7:22). 동봉 전 유리 원료를 가공하는 공장지대 이후 두 번째 맞는 인공의 흔적이다. 서쪽 바다와 맞닿은 강진의 풍경이 동쪽 해남의 풍경보다 볼거리도 많고 훨씬 다이나믹하다. 바닷가 들녘에서 봄의 푸르름이 느껴진다.
한동안 평탄한 길을 걷다가 또 바위 길을 탄다. 철제 발 받침과 긴 로프로 대변되는 험로를 내려왔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당시 현장에서는 공포감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반대편에서 하산 하는 일행을 바라보는 눈에 긴장감이 돈다. 주작산 서봉에서 덕룡봉 가는 길은 내가 경험한 최고로 변화무쌍한 길이다. 천 길 낭떠러지가 있는가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억새가 넘실대는 평원이 나타난다. 자연의 경이를 몸소 느낀다.
< 바위 절벽과 평원이 있는 풍경 >
억새평원 걷다 돌아보는 눈에는 어김없이 암릉이 보인다. 어차피 두륜산으로 갈 것이 아니므로 천천히 자연을 즐기며 걷기로 한다. 평원을 지나 뾰족한 암릉을 향한다. 반복되는 오르내림에 체력 소모가 극심하다. 눈이 황홀하지 않았다면 견디기 쉽지 않은 길을 3시간 가까이 걷고 있다.
< 수양마을/작전소령 갈림 / 돌아본 동봉과 서봉 >
8시가 막 지난다. 서봉에서 1시간 만에 1.2km를 왔다. 갈림에 선다. 좌측은 수양마을 길, 우측은 난농장 길이다. 작전소령이라 하면 쉬울 것을 길이 헷갈린다. 지도를 꺼내어 보고 우측 길로 들어선다. 긴 평원이 이어진다. 돌아보는 눈에는 아침햇살을 등에 진 산들이 검게 변해가고 있다. 길가에 야생화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현호색 일색이더니 곳곳에서 제비꽃, 붓꽃, 양지꽃 등이 목격된다. 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깨닫는다. 남도는 봄은 빠르게 온다.
8시 50분 무렵 오늘 오르는 코스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덕룡봉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사방에 막힌 곳이 없다. 멀리 억새밭 넘어 오소재로 이어지는 암릉구간과 두륜산의 정상부가 선명하다. (산행을 끝나고 ‘과연 주작산의 정상은 어디지’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을 쉽게 찾지 못했다. 나름대로의 판단으로는 동봉과 서봉은 암릉 위에 위치해 풍광은 그만이나 높이가 받쳐주지 않고, 주작산 정상이라 칭하는 곳은 주 능선에서 벗어나 있는데다가 육산이고 높이도 그리 높지 않아 정상의 풍모와는 거리가 멀고, 아마도 이곳 덕룡봉이 여러모로 주작의 정수리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덕룡봉에서 바라보는 오소재 방면의 풍광은 일품이다. 억새밭과 암봉 그리고 저 멀리 두륜의 정수리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쉽게 잊혀지지 않을 명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멀리 그러나 우람하게 보이는 두륜산의 풍모가 일품이다.
< 주작산의 억새 평원과 바위 지대 풍경 >
발 밑으로 작전소령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새벽 어둠을 뚫고 힘겹게 달려온 4시간 30분의 대한 보상은 달콤했다. 양란 재배지가 있는 도로 가 양지 바른 곳에 털썩 주저앉아 도시락을 편다. 평소에 익숙한 빵과 김밥에 아닌 정식 도시락이다. 산에서의 행복이란 별 것이 아니다. 좋은 풍광보고 잠시 쉼을 취하며 길가에 앉아 소박한 음식에 감동하는 것 자체가 행복인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길을 찾아 나선다. 주작산으로 가는 길의 거리 표시가 제 각각이다. 덕룡봉에서는 2km, 작전소령에서는 2.35km, 작은 비탈을 올라 주작산/두륜산 갈림에서는 1.68km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두륜산 갈림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두륜산 방향으로 간다. 잠시 망설인다. 주작산으로 방향을 튼다. 좌측으로 능선이 완만한 산봉우리가 주작산인가 보다. 다시 내려갔다 올라야 하는 귀찮은 형세이나 일단 발을 들여 놓으면 후퇴란 없는 법 걸음을 재촉한다. 도로 길로 내려왔다. 부근에 자연휴양림이 있나 보다. 새로 지은 깨끗한 숙소가 눈에 들어온다. 주작산으로 향하는 본격 오름 길을 오른다. 다행히 길지 않은 비탈을 올라서자 길은 예상했던 대로 완만한 능선이다. 산 길 자체는 평범하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주작산과 능선과 가야 할 오소재 암릉의 전모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작전소령에서 주작산을 왕복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1시간 40분이었다. 길 자체는 평범했으나 그래도 체력소모는 만만치 않았나 보다. 다시 두륜산 갈림에 도착하니 피곤함이 몰려 들었다.
< 주작산에서 오소재 >
주작산 정상은 많은 의문을 낳는다. 주 능선 상에 있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풍광이 좋은 것도 아니고, 단지 바다가 조금 더 가깝게 보인다는 것이 유일한 특이점인데 그것만으로도 정상의 타이틀을 단 것이 신기하다. 혹 내가 모르는 지질학적 특징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오늘 산행코스는 세 부분으로 대변되는데, 소석문에서 덕룡봉이 첫째이고, 작전소령에서 주작산 왕복이 두번째이고, 마지막이 오소재로 향하는 암릉이다. 이제 두개의 산을 넘었고 이제 마지막 코스를 향해 나아간다. 왠지 오소재 암릉 길은 지나온 길보다 험난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11시 16분 오소재로 향하는 두륜산 갈림에 다시 섰다. 초반부터 바위 길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6시간 30분의 장정에서 체력이 많이 소모된 것을 차치하더라도 걸음이 자꾸 늦어지는 것을 보면 암릉 자체의 난이도가 상당하다. 아니, 점점 길을 나아 갈수록, ‘아! 이 길은 분명 설악의 공룡능선보다 험하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오소재까지 최소한 크고 작은 10개의 암릉을 오르내려야 했다. 공룡은 길은 험해도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으나 이곳 산 길은 그저 최소한의 밧줄과 쇠 발 받침이 있을 뿐이었다. 봉우리 하나를 올라선 후에 가야 할 봉우리를 바라보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길을 걸으며 잔인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경험이 드문데, 지금 걷고 있는 길은 무자비 그 자체이다. 어느 산꾼의 산행일기에서 ‘관악사가 내려다 뵐 때는 그만 여기서 산행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 작전소령에서 오소재 가는 길에 맞이한 암봉들 >
암릉 초입 고사목이 있는 곳을 지날 때만해도 갈 만 하다고 보았는데 이후 계속되는 밧줄의 오르내림은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들었다. 몸이 피곤해지면 판단력도 흐려지는지 우회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바위 틈으로 난 길만 눈에 들어와 사서 배낭까지 벗고 낑낑대며 고생을 하며 탈출하고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고,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무심코 뒤따라 가다 길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되돌아 내려오다 직벽에 밧줄이 매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힘이 쭉 빠졌다.
감당하기 버거운 고난의 연속이다. 그래도 몸은 힘들어도 눈에 들어오는 주변의 풍경만은 최고 수준이었다. 의문이 드는 것은 이 좋은 봉우리들이 한결같이 무명봉이라는 것이다. 지역 산꾼들이나 지자체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지역 명소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다.
11시 50분경 관악사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이제 어려움이 잦아 들겠구나 하고 기대했으나, 이곳에서 427봉까지의 길이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든 코스였다. 중간 들머리 출발 1시간 15분만에 427봉에 닿았는데 이곳에서 오소재까지의 거리가 4km 남았음을 알고는 망연자실했다. 가야 할 길의 사정도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427봉 정상에서 오찬을 즐기는 경상도 분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 것을 제외하고는 산 길 내내 혼자였다. 멋진 풍광을 보고도 내 모습을 사진을 담을 수 없어 아쉬웠다.
12시 30분과 1시 16분 탈출로가 있는 삼거리를 지났는데 오소재까지의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평소 산 길을 걸으며 계단 길을 싫어했는데 오늘은 계단의 존재가 내가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구나 하는 믿음의 증거로 작용되었다.
1시 37분, 커다란 나무에 여러 산악회에서 매달아 놓은 리본이 유독 많은 곳을 지나고 나서부터 길이 조금씩 순해졌다. 그래봐야 이전보다 조금 덜 하다는 것이지 여전히 험한 길이다. 다행인 것은 서쪽으로 바다가 훨씬 가까워졌다는 것인데, 연무가 걷히고 훤히 속살을 드러낸 바닷가 마을이 한없이 풍요로워 보였다. 바다 건너 완도의 풍광도 확실했다.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이 험한 길에도 오아시스 같은 색다른 풍광이 있으니 말이다.
정상 일대에 작은 억새밭이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배낭을 멀리에 베고 눕는다. 지나온 427봉 주변으로 눈 길이 간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저기서 여기로 오늘 길도 만만치 않는 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을 붙인 것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쉼 없이 걷기만 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꽤 많이 걸었겠지 하고 잔뜩 기대를 하며 이정표를 확인하면 고작 200-300미터 전진했을 뿐임을 알고는 힘이 빠졌다. 당초 작전소령에서 오소재까지의 길은 6km, 3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잘못된 생각이었고 돌아와 기록을 보니 3시간 30분이 맞았다) 오소재가 1.6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는 순간 이미 3시간이 지나고 있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행인 것은 남은 길의 사정이 평범해지고 있다는 것과, 오전에 빛이 되어 주신 어르신과 조우했다는 것이다. 그분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대간 종주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 남을 길을 걸어 오소재로 무사히 하산 할 수 있었다.
오소재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계단을 지날 때 산악회 버스를 확인하고는 이 길 고난이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 완도가 보이는 바다 풍경 / 오소재에서 >
< 에필로그 >
길고 험한 산 길을 걷는 내내, 세상이 그리고 내 삶이 참 빠르게 변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부쩍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사는 ‘새옹지마’와 같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는 것은 부질 없는 것이다. 오늘 산 길도 그러했다. 초반 멋진 일출과 암릉을 보며 흥분하고 억새 평원을 걸으며 ‘뭐 이런 길을 그리 힘들다고 호들갑을 떠나’하고 우쭐하기도 했는데, 결국 오소재로 향한 긴 바위 길에서 거의 KO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오소재에서 살아났다. 일상의 삶에서도 산에서도 늘 허둥지둥 헤매는 나를 발견하고는 씁쓸한 기분마저 들었다.
산 길을 걷는 내내 여러 잡생각에 사로잡혔다. 작은 일에 새 가슴이 되어 가는 나를 보면 그냥 내가 변한 것이려니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쩌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전까지는 보려 하지 않은 것들이 보이는 것뿐이라는,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되었을 뿐이라는 그런 생각 말이다. 변했었건 변하지 않았었건 그 둘 모두는 똑같은 나, 내 자신일 것이다.
변화 많은 환경에 잠시 우울한 길로 빠졌다. 오늘 산행은 흔치 않은 경험을 내게 안겨 주었다. 반나절이 조금 넘은 시간에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계절이 완연히 본이다.‘가을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오고, 봄은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솟구친다는 말이 있다.’ 남녘의 봄을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도 오늘도 인간의 두 다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눈으로 확인했다. 60cm도 되지 않는 내 작은 보폭으로 저 험한 봉우리를 멀리 밀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