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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 인간 | |
신앙문교리 | 사은불공 | 사요 |
수행문교리 | 삼학 | 팔조 |
대소유무의 이치에 따라 시비이해를 건설해 나간다. 대에서 본 시비이해, 소에서 본 시비이해, 유무에서 본 시비이해가 다 다르다. 우주만유를 통해서 내 마음작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밝혀주신 것이 삼학수행이다
사요나 팔조는 인간을 주체로 한 성격이 같다.
쉽게 생각하지 말라!
후천개벽시대는 인간중심의 세계이므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신앙적으로는 사요로, 수행적으로는 팔조로 살라는 것이다.
법신불의 진리가 외적으로 위력을 나타나고 내적으로는 내재되어 있다. 인간으로 내재된 것을 성품이라고 한다. 모두 다 가지고 있다. 법신불의 진리를 그대로 갊아 있다. 우주가 갖고 있는 근본자리와 내가 가지고 있는 성품자리가 하나이다. 일원상 진리장에서는 우주만유의 본원, 제불제성의 심인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성품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대종사님께서 “성정즉무선무악(性 靜卽 無善無惡), 성동즉능선능악(性 動卽 能善能惡)”*이라고 성리품에서 말씀하셨다. 성품이 정하면 선도 없고 악도 없다. 그런데 성품이 가만히 정해 있지 않다. 꿈도 없이 잠잘 때나 정해 있고, 아니면 계속 동해 있다. 동하면 능히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다. 성품에 대한 것을 분명하게 정의해주신 대목이다. 맹자는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인데, 성선설, 성악설을 한마디로 정의해 주신 것이다.
능선이라는 것은 잘 발현되는 것, 순리로 발현되는 것이고, 능악이란 역리로 발현된다.
사람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이미지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따라 마음이 선하게도 악하게도 나타난다.
순리로 발현되는, 능히 선하도록 나타나게 하는 교리가 진행사조이고, 반대로 악하게 나타나게 하는 교리가 사연사조이다.
팔조는 인간중심, 인간마음중심의 교리이다. 반대로 삼학은 법신불의 속성따라 건립된 교리이다.
사은도 법신불의 위력에 따라 건립된 교리인데 반해 사요는 철저하게 인간중심의 불공 교리이다.
교리의 성격을 확실하게 감잡아야 한다.
진행사조 | 신분의성 | 우리 마음속에서 확산시켜나가야 한다. 적극적인 권장사항, 삼학수행을 진행하고 추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
사연사조 | 불신탐욕나우 | 없애고 제거해야 한다. 제거해가야 하고, 사연사조가 남아있으면 삼학수행을 안되게 만든다. |
진행사조가 완전히 확대되어 100이 되면, 사연사조는 제로가 된다.
반대로 사연사조가 100이면 진행사조는 제로가 된다.
진행사조는 적극적인 권장사항이고, 삼학수행을 진행하고 추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연사조를 제거해가야 하고, 사연사조가 남아있으면 삼학수행을 안되게 만든다.
춘추백가시대에는 성선설, 성악설 논란이 뜨거웠다. 사형제도는 성악설에 근거되어 만들어진 제도이다.
성품자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사상에 따라서 인간생활의 제도가 달라진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보면, 올가미가 천장에서부터 내려와 있고, 의자가 놓여있다. 사형장입구에 미르나무가 있는데 통곡의 나무라고 한다. 사형장 안에도 미르나무가 또 있다. 똑같이 심었는데, 안의 미르나무는 작다. 그 속에는 살기가 넘치기 때문에 나무도 크지 못한 것이다. 섬뜩한 느낌이 든다. 교무들이 법락과 법복을 입고 성주를 외우는데 저절로 큰 소리로 하게 되더라. 서울교구주최로 천도재를 2차례 지냈다.
팔조를 통해서 우리들의 악한 마음으로 나타나는 면을 줄여가는 공부를 한다.
*성리품 2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성품이 정한즉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동한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나니라.]
제1절 진행 사조(進行四條)
1. 신(信)
신이라 함은 믿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原動力)이니라.
-신은 정(定)과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정해지지 않으면 둥둥 뜬다.
마음이 오락가락할 때가 있다. 마음이 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녁에 기도 108배를 하는데, 기도하면서 염원을 하는데, 일심으로 하는데 어떤 때는 자기도 모르게 생각이 교차되기도 한다. 믿어져서 마음이 정해지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
신분검사를 할 때, 신심, 공심은 꾸어서라도 20점 만점을 주라고 한다. 20점을 치고 앞으로 채울 폭 잡으라는 것이다. 신심, 공심이 없으면 수도생활에 밑바탕이 흔들리는 것이다.
신심하면 사대불이신심*이 떠오른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신심공심과는 다르다. 공부길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삼학으로 수행하면 반드시 성불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말한다. 삼학으로 수행하면 확실하게 법신불을 내 것 삼고, 이전등기를 낼 수 있다는 믿음이 확실한 것이다.
이 믿음은 신심, 공심과는 다르다. 이 믿음만 확실하면 전무출신 하지 말라고 쫓아내도 나가지 않지만, 확실하지 않으면 있으라고 붙잡아도 걸어 나간다.
팔조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이 믿음이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 신에서 결정된다.
부산에 갔다 왔는데, 경북대학교 동창을 만났다. 부산교구장할 때 신문인터뷰를 보고 연락해서 동문회를 나갔는데, 그 친구 말로는 우리 동기중에서는 제일 출세한 사람이 나라고 한다. 나는 원불교를 만나서 출세한 사람이다. 이 길을 선택해서 이 공부를 하면서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확실한 신이 섰는가, 안 섰는가에 따라 자기 인생에 대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삼학수행을 하면 반드시 법신불과 같은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인격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바로 신이라고 한다.
* 대산1집 수신강요1 28. 사대불이신심(四大不二信心)
1.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고. 2.스승과 내가 하나가 되고. 3.법과 내가 하나가 되고.
4.회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하나니라.
이상 네 가지를 다 갖춘 분은 이 회상의 온통 주인공이 될 것이요, 부분을 갖춘 분은 조각 주인공이 될 것이요, 하나도 갖추지 못한 분은 이 회상에 잠깐 다녀간 손님밖에 못될 것이니라.
2. 분(忿)
지금까지 교단에서 분을 분발심으로 말했는데, 이 분은 성낼 분이다. 성을 낸다는 것은 진심을 낸다는 것이다.
“용장한 전진심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권면하고 촉진하는 원동력”
용장한 전진심인데 성낼 분(忿)이 잘못 되었으니 고쳐야 한다는 말도 나왔었다.
성낼 분이 맞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성을 내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공부가 안되나’하는 마음을 내야 한다. 이 마음을 내는 것과 내지 않는 것은 굉장히 차이가 난다.
언제 대산종사님께서 “야~ OO는 공부길을 잡았냐.” 하고 물어보셨다. 그 말을 듣고 머리가 쭈빗거렸다.
공부길이 중요하다. 믿고 공부하더라도, 작심삼일이라고 하다 보면 어떤 경계에 당해서 나태해지고 해이해질 수 있다. 육신이 계속 나중에 하자고 잡는다.
내가 운동은 하지만, 생산적인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옆에 사는 교무님이 계속 말한다. 생산적인 운동은 하루에 30분씩 정원 풀매는 것이라고 한다. 내 숙소앞에 10평되는 정원이 있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다. 내가 해야 한다. 와서 식사를 하고 설거지 다 해주고 가더라도 싱크대안의 음식찌꺼기 청소와 쓰레기 버리는 것도 다 내가 해야 한다. 자기 살림은 자기가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분발을 해서 풀을 뜯어야 하는데, 얼마 전에 구들초를 두 박스 구해서 며칠 놔두다가 심었다. 결국 주인이 하게 된다. 자기 주인 마음을 챙기는 것이 성낼 분, 분발이다. 이 분을 자기 내면으로 내는 것은 분발이지만, 밖으로 표출하면 진심이 된다.
비록 신을 통해 공부길의 확신을 가지고 간다 하더라도, 경계 속에서 마음이 해태해질 수 있는데, 자기 스스로 분을 내는 것이다.
신을 바탕해서 자기 공부길에 대한 분을 내게 되면 결과적으로 용장한 전진심이 나오게 된다.
3. 의(疑)
“의라 함은 일과 이치에 모르는 것을 발견하여 알고자 함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원동력이니라.”
신을 내서 분, 용장한 전진심으로 공부하다 보면 의가 필요하다. 공부길에 대한 대조, 내가 맞게 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내는 것이다.
공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어느 교당에 사는 남자교무에게 가보니, 아침좌선을 하는데, 단전에 막대기를 대고 하더라.
의공부를 잘못해서 엉뚱한 길, 삿된 길로 빠지는 사람이 많다. 고종사촌이 수련원 원장이 되었다고 왔다. 내가 보니 아직도 세속습관이 찌들어 있었다. 진리의 소식을 조금 알았다고 해도 실천이 없으면 안 다.
이치를 아는 것은 문득 안다. 습기를 녹여내는 것은 천천히 간다. 돈오점수라고 한다. 점점 닦아가야 한다. 점점 닦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방법이 의공부이다. 내가 가는 이 공부길이 맞는지 점검해야 하고, 스승으로부터 점검받아야 한다. 구전심수의 지도법이 필요하다.
여기의 의는 의두와는 다르다. 공부길에 대한 의심이 바로 의이다.
신: 공부길에 대한 믿음 / 분: 내면의 냉철한 자신성찰 / 의: 공부길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 / 성: 삼학을 추진하는 정성
4. 성(誠) :간단 없는 마음
공부길에 대한 믿음, 자기성찰, 의심이 확실히 되었을 때, 맞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필요한 것이 정성이다. 삼학수행의 마지막 추진이 정성이다.
신은 믿고, 분은 자신성찰하고, 의는 다시 점검하고 마지막에 대 정성을 들여 삼학을 추진하는 것이다. 마음공부하면서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대단히 중요하다.
공부를 해가면서 마지막 중요한 관건이 정성을 얼마나 들이느냐이다. 여기에 따라 공부의 진척이 결전된다.
이 진행사조를 반복수행해야 한다.
한번 신내고, 한번 분내고, 한번 의내고, 한번 성내는 순서이다.
상근기는 한번 신분의성을 돌려서 끝낼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신분의성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이를 회전수행이라 한다.
지금 신, 믿음에 대한 공부를 하면 분의성이 따라 붙어야 하고, 분에 대해 공부하면 신의성이 따라 붙어야 하고, 의에 대한 공부를 하면 신분성이 따라붙어야 하고, 성에 대한 공부를 하면 신분의가 따라 붙어야 한다. 이렇게 계속 반복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회전이라는 말은 돌린다는 것이다.
중하근기는 신분의성공부를 계속 회전을 해서, 반복수행해서 삼학의 추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산종사님*이 원광에 “삼학회전공부”라는 글을 발표하셨다. 신분의성을 돌리는 것이나 삼학을 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신수양을 주체를 해서 공부할 때가 있다.
내가 졸업을 하고 산업부 원예원 주무를 할 때, 서원관에 있는 마사토(마사토는 입자가 굵어 배수가 잘되고 세균도 거의 없어 싹을 틔울 때, 토질 개량을 할 때 많이 사용하는 흙)를 경운기에 실어주고, 경운기는 돌아서 산업부로 오고, 나는 성탑뒤로 걸어간다. 가까우니 내가 빨리 간다. 경운기가 도착할 때까지 선을 한다. 경운기가 오면 흙을 내려주고, 다시 서원관까지 가면 또 선을 하고 있다가 경운기가 오면 다시 흙을 실어준다. 그렇게 하니 재미있더라. 이때는 수양을 주체로 해서 연구와 취사가 따라오게 한 것이다.
삼학은 병진수행을 해야 하는데, 정신수양은 사람의 그릇을 만드는 공부이다. 법기, 법을 담는 그릇은 정신수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수양이 되지 않은 사람이 연구가 터지면 일 나는 것이다. 자기가 아는 알음알이를 담을 수 있는 마음의 힘, 마음의 그릇이 만들어져야 한다. 만들어진 다음에 지혜가 밝아져야 한다. 만들어지지 않고 지혜만 밝아지면 오히려 부작용이 난다.
입학하면서 출가 동기 감상담을 할 때, 졸업하기 전에 견성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박수를 많이 받은 사람이 있었다. 4학년 2학기때 고시공부를 하는데 견성이 안 되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용을 쓰고, 연구에 몰두해서 한 소식을 얻었다. 그 얻은 소식을 그릇에 담지 못하고 다 퍼낸다. 부작용이 났다.
삼학수행의 첫 단계는 정신수양을 통해서 법기를 만드는 것이다. 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수양이 주체가 되어 연구와 취사가 따라오게 하는 것이 삼학의 회전공부이다.
그릇도 만들어지고 선도 되면, 연구를 주체로 하여 수양과 취사가 따라오게 해야 한다.
이때도 재미가 있다. 교리가 탁탁 와 닿고, 연결이 딱딱 되고, 말씀하시면 자기의 지혜와 딱 맞고, 한 대목을 연구하다 보면 , 자기도 모르게 딱 알아지는 게 있다. 그렇게 알아지면 신통한 생각이 들고, ‘아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한번 밝아지는 때가 있어야 한다. 그때를 놓치면 끝까지 못하는 것이다. 해타원 신기원교무가 반찬을 잘 하는데 요즘 자기가 알음알이를 한 것을 계속 문자를 보낸다. 나는 감정해주고 반찬 잘 얻어먹는다. 며칠 전에는 오도송을 지어서 보냈다. 요즘 성리강의를 하고 있는데, 원로원에서 어느 어른이 찾아와서 성리를 설해달라고 하더란다. 엉겁결에 훈련에서 한 이야기를 했더니 잘 받들었다고 하면서 가셨다고 한다. 연구가 주체가 될 때는 수양과 취사가 따라붙게 해야 한다.
취사가 주체가 될 때, 수양과 연구가 따라붙게 해서 삼학을 회전시켜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런 공부를 꼭 해나가야 한다.
진행사조 회전공부, 반복공부를 해야 한다.
* 다산 김근수 종사(多山 金勤修 宗師)는 전남 영광군 묘량면 삼학리에서 평범한 농부였던 부친 金宗信 선생과 모친 李宗業華 여사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다산 종사가 태어난 서기 1922년 6월 9일, 이때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국토와 주권을 강탈당하여 농토를 빼앗기고 우리말과 글자까지도 사용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핍박에 견디다 못한 동포들은 부모 형제와 친척들과 헤어져 고향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만주나 일본으로 떠나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어려서 천성이 순진하고 매사에 어린아이답지 않게 근엄하고 총명했던 다산 종사는 7세 때 서당훈장이 「花」자를 가지고 시를 지으라고 명하자 「月出東嶺 四方滿花」(달이 동쪽 산마루에 솟으니 사방에 꽃이 만발하다.)라는 글을 지어 다른 연장자들을 물리치고 장원의 영광을 안았다. 서당 학동들은 풍습에 따라 다산 종사를 지게에 태우고 동내 골목을 돌아 집에서 잔치를 벌였다. 9세 무렵에는 한학의 기본인 四書를 독파하여 인근에서 칭찬이 자자하였으며 이때 동네 또래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다산 종사가 진리에 눈을 뜨게 된 것은 8세 무렵 모친이 밖에 나가며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을 닭들이 쪼아먹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을 받들고 닭을 지키면서였다. 우두머리격인 장닭이 꼬꼬댁거리면 곡식이 널린 멍석 가를 배회하던 닭들이 멍석으로 몰려들고, 또 다산 종사가 긴 장대를 휘저으면 장닭의 꼬꼬댁거리는 소리에 일시에 달아나는 광경을 보고 「저 닭들은 자기들끼리 어떻게 서로 뜻을 통하고 사는가?」「사람과 닭은 어떻게 다른가?」등의 의심이 떠올랐다. 이 무렵의 이런 의심들은 이후 다산 종사가 우주와 인생에 대한 이치를 공부하는 큰 바탕이 되었고, 뒤에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모든 중생을 구원해야겠다는 큰 서원을 세우고 출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소년기에 접어든 다산 종사는 12세에 묘량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5세에 수료하였다. 이때 독립운동을 하다가 사망한 사촌형 金芳洙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민족의 슬픈 현실을 깨닫게 되어 가슴에는 민족애와 함께 항일의식이 싹트게 되었다.
묘량학교를 졸업하자 희망을 잃고 사는 지역주민들에게 미래를 심어주기 위해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산지개간사업과 저축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6세 때에 일제 당국으로부터 지원병 통지서가 나오고, 일제의 탄압은 이제 조상으로부터 핏줄로 이어진 姓마저 말살하려 들자 지원병을 거부하고 만주에 건너가 사촌형이 몸담았던 독립단에 가담하였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다산 종사는 해방이 되던 해에 귀국하였고, 해방 후에는 청진․목포 등지에서 전재동포구호사업을 벌였으며 법성포 용현국민학교에서 교편생활을 1년 하였다.
다산 종사의 원불교와의 인연은 부모가 영광 신흥교당의 독실한 교도로서 자녀들을 전무출신 시키기 위해 교당에 데리고 다니면서부터였다. 부모들은 다산 종사가 9세 되던 해 신홍교당에 오신 대종사에게 인사를 시켰다. 12세 때에는 八山 金光旋 大奉道의 안내로 다시 신흥교당에 오신 대종사를 뵈옵고 전무출신 뜻을 말씀드렸으나 바로 출가하지 못했다.
이후 원기 30년(1945) 4월 12일 亨山 金洪喆 宗師의 연원으로 입교한 다산 종사는 4년 후인 원기 34년 4월 입교연원인 형산 종사를 출가 연원으로 전무출신하였고 바로 영산(영산성지) 서기로 발령되어 교역의 첫발을 디뎠다,
이후 삼창공사 내무․총무부 주사․중앙총부 예감보․동산선원 교무․중앙선원교감․중앙총부 총무부장․교무부장․순교감․교정원장을 역임하였다.
특히 다산 종사는 원기 58년 3월 교정원장으로 피임되어 9년 8개월을 연임하며, 교단의 행정을 현대화하는데 큰 공적을 남겼다.
원기 58년은 8년여 동안 준비한 개교반백주년기념대회를 치르고 난 후여서 중앙총부나 지방교당은 결속된 힘이 풀어져 있었다. 이때 교정원장에 피임되어 교역자나 교도들에게 큰 대회를 치르고 난 공백을 메워 주고 교단적인 어려운 고비를 슬기롭게 넘기기 위하여 전 교단적으로 신앙심 고취운동과 공부풍토 진작의 교화정책을 폈다.
또한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사오십년 결실인 개교반백년대회를 마치고, 사오백년 결복기를 위하여 법치교단을 이루고 교단 행정을 현대화하기 위해 교헌개정․법규정비뿐 아니라 비능률적인 제도들을 개선했다.
원기 60년 4월에는 원불교 개교 60주년기념 서울대법회를 문화체육관에서 열었다. 이 법회는 교도 6천여 명이 참석한 교단 최초의 서울대집회로 원불교를 서울지역에 크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원기 62년 3월에는 법위를 양성화하며 교단 최초로 생존자인 법사 15명을 탄생시켜 공부하는 교단의 면모를 널리 드러냈다. 11월에는 교단창립 2대 2회말 기념총회를 원만히 치름으로써 2대 2회말 결산작업을 마무리하였다.
또 원기 62년에는 교구제를 실시하여 지방의 교당 관리의 효율화로 교단행정의 능률화를 꾀했고, 원기 63년 3월에는 국제부를 신설하여 국제화시대의 해외교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도 하였다. 원기 56년 3월 수위단원에 피선되었으며 원기 67년 11월부터 敎領으로서 재가․출가교도들의 수행풍토조성에 심혈을 다하고 있다.
교단 창립 1대 내에 출가하여 새회상에 귀의한 이래 피나는 수행정진으로 교단에 법풍을 진작해온 다산 종사.
원기 73년 9월 제124회 수위단회에서는 2대말 성업의 결산기를 맞아 그 공덕을 기리며 대봉도의 법훈을 서훈키로 결의하였으며, 원기 76년 3월 제11회 수위단회에서는 소태산 대종사 탄생100주년 성업봉찬 기념대회를 맞아 법위를 출가위로 사정하고 宗師의 법훈을 서훈키로 결의했다.
제2절 사연 사조(捨捐四條) : 제거해야 할 내용들
진행사조는 우리마음에서 취해야 할 것들, 사연사조는 있으면 공부에 마장, 마군이 되는 것이다.
1. 불신(不信)
“신의 반대로 믿지 아니함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결정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
공부길(삼학수행)에 대한 확신을 못하는 것.
삼학수행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서 수행공부를 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
대종사님께서 내주신 이 공부길로 성불제중의 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불신병이다.
지도자가 불신병에 걸리면 그 조직과 단체가 가야될 방향이 정해지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
신이 100%가 되면 불신은 아주 없다. 반대로 불신이 꽉 차면 신이 없다. 그래서 수행공부에 가장 큰 마장이 된다. 두 번째가 탐욕이다.
2. 탐욕(貪慾)
“모든 일을 상도에 벗어나서 과히 취함”
탐욕은 욕심이다. 물질, 권력 등에 대한 욕심이다. 탐욕이 가득 차면 마음에 빈틈이 없다. 공부하자는 것은 결국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탐욕이 가득차면 비울 틈이 없다.
욕심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는 빈틈이 없어서 다른 마음을 수용을 못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수용하는 사람은 마음이 비워진 것이다.
나이 들면 말하기는 1분, 듣기는 2분, 기다리기는 3분하라고 한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못 참고 다 해버리면 다른 사람의 피드백이 수용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어떻게 보면 탐욕이 가득한 욕심의 화신이다.
탐욕을 없애자는 것은 마음을 비우자는 것이다. 비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채우는 것이 함께 가야 한다. 채우면 비우고 비웠으면 채워야 한다.
욕심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난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족함을 아는 것이 행복이다.”
뉴스를 보니 삼성전자의 수익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영업이익이 9조라는데도 떨어졌다는 것이다. 9조라는 돈이 얼마나 많은 돈인데도 떨어졌다고 뉴스에 나온다. 삼성전자라는 곳은 많이 벌어야 국가적인 이익이다. 그렇지만 개인에게는 많이 번다고 계속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은 족함을 알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만족한 상태가 행복이다. 욕심에는 한이 없다. 한없는 욕심을 잠재워서 우리 마음에서 걷어내야 한다.
탐욕을 제거해서 마음을 비우는 공부를 하자.
며칠 전에 노인기초연금을 신청하는 공문이 왔다. 부산교구장할 때 연금을 들어줬는데, 총부에서 교역자들은 연금을 넣지 말라는 공문이 와서 취소했었다. 4~5년 후에 다시 들어가라고 하니까, 나이가 많아서 국민연금 가입할 수 없다고 해서 돈 한 푼도 없다. 이번에 노인기초연금 신청하라는 공문이 왔길래 생각하다가 동사무소 가서 여러 가지 서류를 챙겨서 신청했다. 그러면 8만원 나온다고 하더라. 8만원이라도 받으려고 신청했다.
욕심을 가지고 행복을 구하면 구해지지 않는다.
3. 나(懶)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하기 싫어함”
공부길에 대한 나태
공부길에 대해 나태심이 나면 사는 것 자체가 재미가 없다. 공부길에 대한 재미가 나면 사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진다.
가끔 친척을 만나면 나보고 뭔 재미로 사냐고 묻는다. 내가 사는 재미를 그분들이 어떻게 알겄어.
생활자체가 재미가 없으면 공부길에 대한 나태심이 났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루 하루 삶 자체가 재미있다면 나태를 극복한 것이다.
세상 사는 사람들의 재미와 우리가 사는 재미가 종류가 다르다.
세상사는 사람들의 재미는 그 나름대로 재미있다. 교정원 원장할 때 어느 부서에서 밥해먹고 자고 오는 데를 데리고 갔다. 밥 해먹을 여러 가지 도구들을 다 사 두었다. 캠핑가서 그렇게 밥해먹는 것이 손에 익었다. 세상사람들은 그런 것을 재미로 안다.
그런데 공부인이 아는 재미는 공부길에 대한 재미이다. 이것이 없으면 나태하다고 해야 한다.
한 번 공부길에 대한 나태해지면 계속 나태해진다. 그러면 공부와 멀어진다.
4. 우(愚)
“대소 유무와 시비 이해를 전연 알지 못하고 자행 자지함”
세상 살아가는 데 가장 대책 없는 사람이 있다. 무식하면서 용기 있는 사람!
무식하면 차라리 용기가 없으면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전혀 모르면서 용기는 있으니 일마다 저지른다.
자기가 어리석은 줄을 알면 어리석은데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만 어리석은 줄 모르면 어리석음에 떨어져서 거기에 안주하고 산다.
지혜있는 사람이 되려면 간단하다. 자기가 어리석은 줄 알면 된다. 어리석은 줄 알기만 하면 거기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통해서 지혜가 갖춰지는 것이다.
직무수행(단장, 주무, 회장, 교무 등)할 때 직무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맡은 직무를 모르는 것이 ‘우’이다. 엉뚱한 직무수행을 하여 일을 저지르게 된다.
# 사은과 삼학은 법신불 일원상 진리(진리의 속성)에 근거한 교리
사요와 팔조는 인성(사람의 속성)에 근거한 교리
팔조는 사람의 속성을 두 가지로 나눠서 진행사조는 추진해 나가고 사연사조는 없애가도록 밝혀주셨다.
팔조의 진행이 없으면 삼학의 수행이 되지 않는다. 팔조의 보조를 받아야 제대로 삼학 수행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