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명당인 전미지지(全美之地)는 없다.''명당자리는 묘 하나 쓰면 다른 곳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남의 명당자리를 뺏으면 자리의 기가 빠진다.' 풍수지리에서 전설처럼 전해오는 명언(名言)이다.
막연한 명당에 대한 욕심을 경계하는 이야기로 믿고 싶다.
서울 강남 강남구청역 바로 옆에 있는 오피스빌딩 파로스타워(Pharos Tower)이다.
주로 외국인 기업들이 다투어 입주하고 있는 잘 나가는 인기 최고의 명당 빌딩으로 명성이 높다.
원래부터 명당은 아니었다. 입주하는 업체마다 부도가 나거나 망해 나간 흉당으로 악명이 높았다.
참으로 ‘팔자’가 거세기로 소문난 땅이었다.
신흥 개발지역 강남 금싸라기 땅에 1983년에 영동백화점이 들어선다.
영동학원 이사장이었던 김형목씨가 지하 2층, 지상 8층에 연면적 4359평 규모로 지은 영동백화점이다.
이 백화점은 문을 연 뒤 강남의 신흥백화점으로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80년대 후반부터 강남지역 일대에 그랜드백화점, 현대백화점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아버지를 대신해 백화점 경영을 맡았던 김택씨는 여배우와의 마약복용, 경마 승부조작 혐의 등으로
연이어 구속되면서 ‘방탕한 재벌2세’라는 세인들의 눈총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집으로 들이닥친 강도들에게 인질로 붙잡혔던 불운을 겪기도 했다.
결국 영동백화점은 93년 1월 문을 닫았다.신세계 백화점이 위탁경영에 나섰다.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한다.
1994년 당시 급성장 중이던 신흥기업 나산그룹이 영동백화점을 인수해 나산백화점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나산백화점으로 다시 선보인 이곳은 특유의 ‘가격파괴’ 전략으로 유통업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농수산물과 생활필수품 등을 특정시간대에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하는 전략은 당시 유통업계에 돌풍이었다.
여성복 ‘조이너스’로 기틀을 잡은 나산그룹은 서울 및 수도권 지역 곳곳에 백화점을 만들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하지만 백화점의 인기는 이내 시들해졌고 위기에 빠진 나산측은 97년 이곳을 ‘나산 홈플레이스’로 재개관했다.
국내 최초의 홈인테리어·가정용품 전문점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IMF 사태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98년 당시 지하철 7호선 공사과정에서 지하 주차장 곳곳에 균열이 발생되자 강남구는 이곳을 ‘재난위험시설물’로
지정, 입주자퇴거 및 건물사용제한 조치를 내렸다.
지난 95년 붕괴된 삼풍백화점과 같이 대들보가 없는 ‘무량판’구조로 지어졌던 것이다.
당시 그룹은 핵심 계열사의 부도로 파국에 처해진 상태였다. 결국 백화점 건물은 99년 경매물건으로 넘겨졌다.
건물 근처에는 노점상들이 몰려 장사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뒤 입주 상인들은 건물 균열의 원인이 지하철 공사과정에 있다며
지하철 시공사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나산백화점으로 다시 문을 열고 재기를 시도했다.
1998년 건물지하 기둥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견돼 폐쇄 조치가 된 후 이곳은 10여년 동안 강남 한복판의 흉물로 방치돼 왔다.
지하철 7호선이 이 중심지역으로 지난다.
그 역세권에는 SK허브, 동양패러곤 등의 주상복합시설이 들어선다.
수원과 청량리를 이어주는 분당선도 이곳을 통과하면서 이 지역의 변모를 가속화시켰다.
옛 영동백화점이 있던그 자리에는 20층 높이의 최신의 오피스빌딩 ‘POBA 강남타워’가 2011년 9월 들어섰다.
POBA 강남타워에는 GE, 퀄컴, 랄프 로렌 등 외국회사들이 다수 입주해 그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이 건물 남쪽 정문이다. 그 정문 왼쪽에는 옛 흉당을 명당으로 가꾸어달라고 기원하는 비(碑)가 있다.
S건설은 20층짜리 첨단 오피스 건물을 짓기로 계획을 세우고 공사를 시작했다. 대규모 투자개발사업임을 감안해 풍수 전문가의
조언을 받기도 했다. 우선 백화점 철거 공사 중 붕괴사고가 발생해 사람이 다치자 지하에서 파낸 암석으로 토지신을 위로하는
‘위지령비’를 만들어 빌딩 정문 왼쪽에 세운 것이다.
위 지 령 비
THE MONUMENT FOR THE GOD OF THIS LAND
삼가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고하니 지령이시여
부디 하해와 같은 은덕을 베풀어 주소서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우리 인간은 땅의 정기(精氣)를 받아 태어나고
또 땅의 무한한 베풂을 받아 생활하며 인생의
결실을 이룹니다 고로 효를 다해 부모를 섬기듯
지령께서 근심이 없도록 삼가고 또 삼가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지령에게 심려를 끼침을 알면서도 사업을
번창시키고 인간이 보다 행복하기위해 이곳에 거소(居所)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맹세컨데 이터의 지령과 꽃하나
풀하나에 감사한 마음을 잊지않고서 터를 깨끗이
가꾸어 지기가 회복되는데 섬김을 다했습니다
지령이시여! 부디 이터에 둥지를 튼 회사와
인간을 어여삐 여기시고 아름다운 복을 내려주소서
2011년 9월 30일
이 건물 동쪽 후문으로 들어가는 계단 왼쪽에는 사자 두마리가 단단히 보초를 서고 있다.
과거 음기가 강한 사찰이 주변에 있었다고 판단해 양기가 센 사자석상을 빌딩 후문에 한 쌍 배치하기도 했다.
음양의 기가 조화를 이루도록 배려한 것이다.
강남개발 이전의 학동은 논과 밭이었다.강남개발로 주택과 대형빌딩이 들어서면서 큰 변화를 맞는다.
그 금싸리기 땅은 풍수지리상 운이 맞지 않았나 보다.들어서는 기업마다 부도가 나고 망해 나갔다.
여기에 대형빌딩을 지으면서 몹시 성난 지령(地靈)을 위로하고 못난 인간으로서 지령의 자애를 빌었다.
그리고 음기(陰氣)가 드센 땅을 고르게 만들기 위한 비보(裨補) 방안을 동원했다.여기에 사자가 등장한다.
사자는 풍수아이템 가운데서도 기운이 강하다. 음기운을 다스리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양기운의 사자다.
그래도 못미더워 부부사랑이 강해 암수 한 쌍의 사자를 건물 입구에 보초 세워 풍수비보를 했다.
그 인간의 염원이 하늘에 이른 듯,암수 한 쌍의 사자가의 보초 탓인지 이곳은 흉당의 악명을 씻고
강남 번화가에서 또하나의 명품 건물로 우뚝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