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의 노동과 이파리의 환희
글이 쓰여지지 않는 시각엔 병원으로 가시오, 중환자실. 임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오. 그가 최후의 숨을 내쉴 때 일생 동안 찾아다니던 가장 중요한 말을 발음하려고 손짓을 하며 입을 움직이려고 애쓰는 표정의 그 흔적을 보게 될 것이오. 그러나 그의 자리에는 오직 경련만이 있을 것이오. 텅 빈 하얀 철(鐵)의 침대 위에 끝내 발음하지 못한 그 유언들이 떠돌고 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그들은 시인의 성대를 필요로 할 것이오.
글이 써지지 않는 시각엔 술꾼들이 모두들 떠나고 만 폐점(閉店)의 선술집으로 가시오. 술잔에는 아직 몇 방울의 술이 남아있을 것이고, 빈 의자에는 아직 그들이 다 말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맴돌고 있을 것이오. 다 마셔버리지 못한 고독(孤獨)과 젓가락을 끝내 잡지 못한 환희(歡喜)가 한 웅쿰씩 빠져나간 머리카락 같은 침묵(沈黙)으로 얼켜 있을 것이오. 그것들을 주워야 하오. 그것들을 하나의 문법(文法)으로 조립(組立)해야 할 것이오.
글이 쓰여지지 않는 시각엔 고아원으로 가시오. 애들은 춤을 배우기도 하고, 미끄럼틀에서 웃음을 연습하고 있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한결같이 그들은 고향(故鄕)이라는 말, 아버지라는 말, 어머니라는 말, 누나와 동생이라는 말, 그러한 말들 앞에서는 실어증(失語症)에 걸려 있을 것이오. 당신은 쓸 수 있을 것이오. 변변치 않아도 시인(詩人)의 언어는 고향의 말이 될 수 있을 것이오.
그래도 글이 쓰여지지 않거든, 거리로 나가시오, 5월에는 가로수(街路樹)마다 신록(新綠)이 피어나고 있을 것이오. 손가락질을 하듯이 돋아나는 푸른 순들을 보시오. 수직(垂直)으로 꼿꼿이 올라가는 파란 수액(樹液)들이, 어디에서 그 많은 힘을 가지고 오는가를. 뿌리의 노동(勞動)과 이파리의 환희(歡喜). 그렇소. 당신의 언어도 뿌리와 이파리를 가져야 하오, 글이 쓰여지지 않는 시각(時刻)엔 5월의 가로수를 향해 걸어가시오.
이 어령, 『문학사상』. 197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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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태준
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 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冊’답다.
冊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冊이다. 冊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冊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을 위한 세기(世紀)는 벌써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이미 그렇거든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 冊에 있어서랴! 冊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물질 이상인 것이 冊이다. 한 표정 고운 소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처럼 매력은 가지가지다. 신간란(新刊欄)에서 새로 뽑을 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하고 상냥스러우랴! 고서점에서 먼지를 털고 겨드랑 땀내 같은 것을 풍기는 것들은 자못 미망인다운 함축미인 것이다. 서점에서는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 페이지를 읽어보는 맛, 전차길이 멀수록 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가끔 冊을 빌리러 오는 친구가 있다. 나는 저윽* 질투를 느낀다. 흔히는 첫 한두 페이지밖에는 읽지 못하고 둔 冊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속삭여 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버리러 가기 때문이다. 가면 여러 날 뒤에, 나는 아주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 그는 한껏 피로해져서 초라해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친구는 고맙다는 말만으로 물러가지 않고 그를 평가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에 그 冊에 대하여 전혀 흥미를 잃어버리는 수가 많다.
빌려나간 冊은 영원히 ‘노라’*가 되어 버리는 것도 있다.
이러는 나도 남의 冊을 가끔 빌려온다. 약속한 기간을 넘긴 것도 몇 권 있다. 그러기에 冊은 빌리는 사람도 도적이요 빌려주는 사람도 도적이란 서적 윤리가 따로 있는 것이다. 일생에 천 권을 빌려보고 999권을 돌려보내고 죽는다면 그는 최우등의 성적이다. 그러나 남은 한 권 때문에 도적은 도적이다. 冊을 남에게 빌려만 주고 저는 남의 것을 한 권도 빌리지 않기란 천권에서 999권을 돌려보내기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빌리는 자나 빌려주는 자나 冊에 있어서는 다 도적됨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冊은 역시 빌려야 한다. 진리와 예술을 감금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冊은 물질 이상이다. 영양(令孃)*이나 귀부인을 초대한 듯 결코 땀이나 때가 묻은 손을 대어서는 실례다. 冊은 세수는 할 줄 모르는 미인이다.
冊에만은 나는 봉건적인 여성관이다. 너무 건강해선 무거워 안 된다. 가볍고 얄팍하고 뚜껑도 예전 능화지(菱花紙)*처럼 부드러워 한 손에 말아 쥐고 누워서도 읽기 좋기를 탐낸다. 그러나 덮어 놓으면 떠들리거나 구김살이 잡히지 않고 이내 고요히 제 태(態)로 돌아가는 인종(忍從)이 있기를 바란다고 할까.
*갖다: 가져다가
*저윽: 적이, 어지간한 정도로
*노라 :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의 여주인공, 아내를 인형으로 알고 있는 남편에 대한 실망으로 가출함.
*영양(令孃) : 윗사람의 딸
*능화지(菱花紙): 마름꽃의 무늬가 있는 종이.
1) 제목을 적어보시오
2) 자신의 생애 중 최초로 책을 접했던 때, 그리고 그때의 감정을 떠올려 적어보시오.
3) 자신이 최초로 글을 썼었던 때를 떠올려 기록해보시오.
4)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책에 대해 기록해보시오.
5) 지금 자신이 가장 아끼는 책에 대해 기록해보시오.
6)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의 제목을 써보시오.
7) ‘冊’이 보여주는, 시각적 효과에 대해 3줄 정도로 써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