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논단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질서>
1. 창비 2022년 여름호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대담 <전쟁은 모두의 패배이다>가 실렸다. 참석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푸틴의 과잉적 행동에서 발생했다기 보다는 ‘탈냉전 세계질서 주도권을 위한 패권 전쟁’이라고 성격을 규정짓는다. “이번 전쟁은 탈냉전기 계속된 미·러 갈등,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패권전략인 나토 확대와 탈소비에트 지역통합 프로젝트 사이의 충돌이 배경입니다.” 소련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 이후, 평화 구축의 기회가 왔음에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군사적 동맹에만 강화하고, 적대 세력에 대한 압박에만 몰두했던 서구권의 태도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그럼에도 러시아 침공은 쉽게 이해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정세에 대한 합리적 판단보다는 비이성적 결단을 가져오는 충동적 행위가 국제 사회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이런 배경에는 최근 확대되고 있는, 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군사주의’의 득세와 갈등 해결을 위한 타협의 능력이 점차 고갈되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2010년대 이후 급격하여 보수화되고 있는 러시아의 국내적 배경도 전쟁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다. 2020년 개정된 러시아 헌법에는 ‘신’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결혼을 여성과 남성의 결합으로 정의하고, 러시아는 소련의 계승자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한다.
3.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져온 국제질서의 변화는 한반도의 위기를 더욱 경색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그동안 추진해오던 ‘균형외교론’에서 ‘동맹강화론’으로 급격하게 전환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데, 이번 윤석열 미국 방문을 통해서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비록 러시아의 침공이 윤리적으로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지만, 한국의 현실적 이익을 위해서는 러시아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에서 러시아에 대한 지나친 적대시는 우리의 선택지를 줄이는 위험한 결정일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러시아가 한국과 교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전통적으로 러시아는 유럽에서 압박이 심해지면 동북아로 눈을 돌려왔습니다. (.....) 미국과 강한 동맹관계에 있는 일본과의 관계는 이미 파탄났고,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장기적으로 근심거리가 될 수 있어 한국과의 협력을 더 확대하고 싶을 겁니다.”
4. 현재의 상황은 2022년 여름보다도 더욱 악화되고 있다. 각국은 외교적으로 과장된 수사를 사용하면서 상대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며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증가된 긴장은 사소한 충돌에 의해서도 위험한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확산시키고, 국제 사회는 협상의 가능성보다는 ‘힘을 통한 방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는 전쟁을 ‘국가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 또한 영향을 준다. 전쟁의 최우선 목표가 국가를 보호한다는 생각은 전쟁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가져온다는 비극에는 무감각하게 만들 수 있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도 이런 비극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으며 영토 회복에 대한 민족주의적 열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순간,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죽음이 발생할 것인가는 명약관화이다. 하지만, 더 큰 비극은 희생의 결과에도 누구도 완전한 승리를 확정짓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5.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한반도의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이번과 같이 국가 간의 총력적인 전쟁은 서로의 막대한 희생을 초래하면서 지루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반도와 같이 각국의 이해가 최대로 결집되어 있는 지역에서의 완전한 승리는 서로가 쉽지 않은 일이다. 전쟁은 결국 수많은 희생을 통한 현 상태의 유지라는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 뿐이다. 과거 서독의 수상 슈미트는 “100시간 동안 협상에서 아무 성과가 없더라도, 1분간 총을 쏘는 것보다는 낫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이나 러시아, 중국과의 협상을 퍼주기 외교나 굴욕외교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득세하는 분위기가 가져올 위험성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든 ‘전쟁’은 ‘협상’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전쟁의 위협이 커지고 있는 지금, 국민들은 현재 정권의 위험한 결정을 압박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국가의 보호라는 개념을 넘어선, 국민들의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 "너는 누구 편이냐?"를 대놓고 들이대는 정권에 대한 실망감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갈라치기가 점점 더 힘을 얻는다. 평화로 가는 길찾기가 살얼음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