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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자서전적 소설 [가면의 고백]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글 첫부분에서는 복잡 미묘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시마 유키오의 불안정한 욕망들(동성애를 포암한)을 어린 시절의 여린 감수성으로 표현하다가, 소노코라는 이성의 여인과의 만남을 그리게 됩니다. 그러나 미시마 유키오와 소노코와의 야릇한 사랑은 남들처럼 그 흔한 연인의 관계로 발전되지 못하고 소노코를 다른 사람의 아내로 보내고 맙니다. 그러다가 글 후반부에는, 미시마 유키오는 그런 소노코를 그리워하며, 유부녀인 소노코와 만남 초기의 열정을 되살리려 노력해 보지만, 그렇지 못한 채로 그녀의 주위에 맴돌게 된다는 식으로 다소 난해한 내용입니다.
사실 미시마 유키오는 이성의 여성과 결혼하여 자녀까지 둔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그런 그가 동성애자라 불리게 된 것은 [가면의 고백]이라는 자서전적 소설 영향이 크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가면의 고백 소설 안에서의 미시마 유키오는 동성애자로 치면, 여성적인면을 가집니다. 병약했던 자신보다 튼튼한, 아름다운 몸매의 동성의 남자 아이를 동경하는 조금 이상한 측면으로의 시선을 가진 남자 아이로 자신을 그려냅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의 미시마 유키오의 동성애 성향은 그 반대입니다.
말하자면 결혼하고 유명세까지 얻은 미시마 유키오는 훗날 자신의 책에서 묘사한 것처럼 한 남자를 사귀게 되는데, 자신보다 어린, 즉 20년이나 나이 차이가나는, 동성애자로 치면 자신이 남성적인 측면을 소유한 동성애자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러한 미시마 유키오의 동성 애인이라 의심을 받은 모리타 마사카쓰는 와세다 대학 학생으로, 1970년 11월 25일 미시마 유키오와 함께 할복 자살에 동행하게 됩니다. (모리타 마사카쓰는 미시마 유키오를 추앙하고 흠모했던, 일명 '다테노카이(방패)'회원의 일원이었습니다.)
자. 그럼 위에서 밝혀낸 사실을 가지고 그의 진면목을 유추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같은 동성의 남자아이의 육체를 동경했던 미시마 유키오는 커서 정상적으로 결혼을 해 아이까지 낳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유명해지고, 그의 작가로서의 명성이 오르게 되자, 그는 자신의 글에서 탐미적으로 묘사되었던 부분 그대로를 현실 안에다 옮겨 놓습니다. 마치 의도적으로 현실에 그러한 탐미적인 성향을 실현해내 듯이 말입니다.
[가면의 고백]이란 소설 안에 어릴적 동성애적 성향을 나타냈다고 하나, 그것은 엄현한 소설 속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때의 묘사는 미시마 유키오가 병약했던, 자신 스스로가 20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까지 생각했던 시기의 어린 생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시절 그것을, 동성애자들의 성적 표현을, 현실에다 실현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단지 가공할만한 이 모두는, 그가 만들어 냈던 생각이었다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리하여 하나의 가정을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가면의 고백]안에 묘사된 <성 세바스티아누스>란 그림을 현실서에 흉내내었던 것처럼 거의 20살이나 차이가나는 모리타 마사카쓰를 곁에 둔 것은 그의 치밀한 계획일지 모른다는 가정입니다. 이는 할복자살하기 위해 근육질의 몸을 가꾸었다는 설처럼, 그의 현실에서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는 그가 쓴 글들과 톱니바퀴 맞아떨어지게 하려는 듯이 순전한 그의 의도였는지 모릅니다.
그의 치밀한 성격은 이미 그 시대 때 평론가들에 의해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법학도 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글들은 하나같이 논리적이고 치밀하다고 말입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병약했지만, 학창시절 줄곧 우등생이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의 영재였습니다. 또한 동경대학교 법학과,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할 정도로의 능력있던 인재였습니다.
천재적인 글을 썼지만, 지능 또한 천재적이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 미시마 유키오는 실제 동성애자가 아니었다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니다. 그의 동성애 성향은 어렸을 적 병약했을 때의, 일종의 육체적 열등감에 의한, 이상향에 불과 했다는 것입니다. 건강했던 동기 또래 아이들을 동경했던, 그저 감수성 풍부한 섬세한 어린 아이의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짜 동성애자 였다면, 이성과 결혼할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진짜 동성애자였다면, 결혼하여 부인까지두고 자식까지 낳았으니, 정확한 표현으로 치자면 양성애자라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한 측면으로 생각하자면, 할복 자살을 동행한 와세다 대학 학생 모리타 마사카쓰는 미시마 유키오의 치밀한 연극에 동참한 희생양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를 숭배한 댓가로 말입니다.
실제로 그 시절에도 미시마 유키오가 어린 모리타 마사카쓰를 사귀었다는 의심의 눈총은 보냈으나, 성적표현의 동성애를 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합니다. 즉, 어림 짐작으로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보다 어린 대학생 모리타 마사카쓰를 애인으로 곁에두고 있다는 소문만이 무성했다합니다.
자신보다 생각이 짧은 이는, 그런 이의 머리 위에 군림하기 딱 좋습니다. 한마디로 어리숙한 자들은 똑똑한 자의 생각대로 조종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그 시절 미시마 유키오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큼 명성이 높은, 일본인으로서는 감히 그런 그의 결정에 토를 달고 반항하지 못할 위치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명 '다테노카이(방패)' 회원이었던 모리타 마사카쓰와 미시마 유키오>
[가면의 고백] 본문 안에는 '오미'라는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미시마 유키오는 이런 동성의 동기생인 오미를 흠모하는 글을 서정적인 감수성으로 표출해 냅니다. 그렇지만 소설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미시마 유키오와 오미라는 인물은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습니다. 그저 미시마 유키오의 생각뿐입니다.
오미에 대한 미시마 유키오의 동성애적 성향은 다음과 같이 묘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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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나는 오미를 사랑했다.
이런 조잡한 말이 허용된다면,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느낀 사랑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맹백히 육체적인 욕망과 하나로 이어진 사랑이었다.
나는 여름, 아니 초여름이라도 빨리 와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의 벗은 몸을 볼 기회를 그 계절이 가져다줄 것이다. 나아가 나는 좀더 낯부끄러운 욕망을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커다란 것'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두 개의 장갑이 내 기억의 전화(電話)에서 혼선을 일으킨다. 이 가죽 장갑과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 행사 때 끼는 흰 장갑, 둘 중의 어느 하나는 기억의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의 거짓일 것이다. 그의 험상궃은 얼굴에는 가죽 장갑 쪽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또한 그의 험상궃은 얼굴에는 오히려 흰 장갑 쪽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험상궃은 얼굴이라 해도 그것은 그저 흔해빠진 청년의 얼굴이 아직 어린 소년들 틈에 달랑 혼자 섞여 있는 인상에 지나지 않았다. 체격은 물론 뛰어났지만 키는 우리 중 가장 큰 학생보다도 한참 작았다. 단지 해군사관의 군복 비슷한 우리 학교의 딱딱한 교복은 아직 다 크지 않은 소년의 몸으로는 멋지게 입어낼 수 없었는데, 오미만이 자신의 교복에 충실한 중량감과 일종의 육감을 그 안에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감색 교복 위로 그것이라고 뚜렷이 짐작할 수 있는 어깨며 가슴팍의 근육을 질투와 사랑이 엉긴 시선으로 쳐다본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터였다.
그의 얼굴에는 뭔지 모를 어두운 우월감 같은 것이 늘 떠돌았다. 그것은 아마도 상처 입을수록 더욱더 타오르는 종류의 것이었다. 낙제, 추방...... 그런 비운이 그에게는 좌절한 의욕의 상징처럼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어떤 의욕? 나는 막연히 그의 '악한'영혼이 부추기는 의욕이 분명코 있으리라 상상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음모는 자신조차도 아직 알지 못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얼굴은 둥근 편이었다. 거무스름한 뺨에는 불손한 광대뼈가 솟았고 잘생기고 두툼한, 너무 높지 않은 코 밑에 깔끔하게 실로 마감한 듯한 입술과 늠름한 턱이 자리잡은 그 얼굴에서는 온몸에 넘실거리는 피의 흐름이 느껴졌다. 거기 있는 것은 한 벌의 야만스러운 영혼의 의상이었다. 어느 누가 그에게서 '내면'을 기대할 것인가. 그에게 기대할 것은 우리가 먼 과거에 놓아두고 온 알 수 없는 완전성의 모형뿐이었다.
한번은 그가 무슨 변덕이 났는지 내가 우리 나이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구경하러 온 적이 있었다. 나는 대충 애매한 미소로 그 책을 감춰버렸다. 수치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서적 따위에 흥미를 갖는 것. 그러다가 어떤 어설픈 구석을 내보이는 것. 그가 자신의 무의식적인 완전성을 싫어하게 되는 것. 그런 갖가지 예측이 나로서는 괴로웠기 때문이다. 이 어부가 이오니아의 교향 땅을 잊어버릴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수업중에도, 운동장에서도 끊임없이 그의 모습을 훔쳐보는 동안 나는 그의 완전무결한 환영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기억 속에 있는 그의 영상에서 어떤 결점도 발견해내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소설풍의 서술에 불가결한 인물의 어떤 특징, 사랑받을 만한 버릇, 인물을 생생히 보여주는 몇몇 결점들, 그런 것을 기억 속의 오미에게서는 하나도 찾아낼 수 없다. 대신 나는 다른 무수히 많은 것을 찾아냈다. 그것은 거기에 있는 무한한 다양성과 미묘한 뉘앙스였다. 즉 나는 그에게서 이런 것들을 찾아냈다. 생명력의 완전함에 대한 정의를, 그의 눈썹을, 그의 이마를, 그의 눈을, 그의 코를, 그의 귀를, 그의 볼을, 그의 광대뼈를, 그의 입술을, 그의 턱을, 그의 목울대를, 그의 목구멍을, 그의 혈색을, 그의 피부색을, 그의 힘을, 그의 가슴을, 그의 손을, 그 밖의 무수한 것들을.
그것을 바탕으로 도태가 이루어지고 일련의 기호체계가 완성되었다. 내가 지적인 인간을 사랑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그의 탓이었다. 내가 안경을 쓴 동성에게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은 그의 탓이었다. 내가 힘과 흘러넘치는 피의 인상과 무지와 거친 손놀림과 건방진 말투와 어떠한 이지에도 파먹힌 구성이 없는 육체에 갖춰진 야만스러운 슬픔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탓이었다.
-----그런데 이 발직한 기호는 내게 처음부터 윤리적인 불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무릇 육체의 충동만큼 윤리적인 것은 없다. 이지를 통한 이해가 혼입되기 시작하면 나의 욕망은 당장 시들었다. 상대에게서 발견되는 아주 조금의 이지조차도 내게는 이성의 가치 판단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사랑과 같은 상호적인 작용에서는 상대에 대한 요구가 그대로 나 자신에 대한 요구가 되기 때문에, 상대의 무지를 원하는 마음은 일시적이나마 나의 절대적인 '이성에의 모반'을 요구했다. 그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까지고 이지의 침범을 당하지 않은 육체의 소유자, 즉 불량배, 잠수부, 병사, 어부 등을 그들과 어떤 말도 나누지 않도록 조심해가면서 열렬한 냉담으로 멀리서 찬찬히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열대 야만의 땅이 내가 살기에 적합한 나라였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야만의 땅이 푹푹 찌는 듯한 치열한 여름에 대한 동경이 한참 어릴 때부터 내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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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휘황찬란한 어휘들로 가득한,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깊은 호수의 잔물결을 지그시 바라다보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은 후에는 뭘 읽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한치의 앞도 내려다 볼 수 없는 깊은 호수를 가늠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글 안에는 병약했던 어린 미시마 유키오가 야만성으로 가득한 '오미'의 육체를 탐미하는 묘사로 가득합니다. 인물에 대한 묘사 안에다가 심리적 철학적 요소를 가미해 놓다니 정말이지 너무나 심오할 따름입니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어떻게 이런 묵직한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한편으로 저는 이 글을 읽고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저 단단한 체구의 '오미'라는 인물은 분명 미시마와 다르게 태평양 전쟁에 참여했을 텐데 과연 전쟁터에서 살아남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윗 글 안에는 미시마 유키오의 지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어려운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20대 초반의 미시마 유키오는 이때에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 빠져있었다 합니다.
이런 미시마 유키오의 지적인 수준을 알 수 있게 하는 문장들은 특히 이 [가면의 고백]란 소설 안에서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다음 편에는 [가면의 고백]안에 나오는 미시마 유키오의 지적 수준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또 어떤 책들을 읽고 이 글을 쓰게 되었나 말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