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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역사적 발전과 브랜드의 정신
- 하이엔드 브랜드 중 에르메스, 샤넬을 중심으로 -
작성자명: 3401 김서령
사람들은 상대의 패션을 통해서 그 사람의 성격을 예상하기도 하고 직업을 유추하기도 한다. 또한 패션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며 장소에 따라 요구되는 패션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렇듯 패션은 우리의 삶에 자연스레 녹아있다. 그런 패션 제품을 만들고 패션쇼에 내세우며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는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역사를 조사함으로써 브랜드의 정신, 역사적 발전을 알고 진로인 패션에 대해 깊이 탐구해 보기 위해서 이러한 주제를 선택했다.
하이엔드 브랜드의 역사를 알아봄으로써 패션의 역사적 발전과 과거의 패션 흐름, 그 흐름에 따른 각 브랜드의 패션의 변화과정과 브랜드의 정신을 알아보며 패션 브랜드로서의 방향성과 패션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다.
각각의 다른 하이엔드 브랜드의 역사를 알아봄으로써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패션의 흐름과 각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을 알 수 있다.
에르메스, 샤넬의 역사를 통해 해당 브랜드의 역사적 발전과 패션의 변화 과정, 해당 브랜드의 정신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알 수 있다.
2023년 6월 3일-6월 6일 <패션의 탄생> 도서 및 자료조사
에르메스의 역사
에르메스는 티에리 에르메스가 설립한 브랜드로 처음에는 안장과 마차 부속품 등 말과 마차에 쓰이는 마구용품을 제작하여 공급하였다.(당시에는 자동차가 발명되기 한참 전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파리는 말과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음) 오를레앙 공작의 낙마 사고로 인해 에르메스 마구가 유명해졌고 프랑스에서 명성을 쌓았다.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뛰어난 장인으로 인정받은 에르메스는 전 세계 왕실과 귀족들에 세 마구용품을 납품하였다. 에르메스의 에밀 모리스는 미국에서 캐딜락에 달린 지퍼를 보고 자동차를 제외한 지퍼의 모든 특허권을 독점으로 구매하여 프랑스 최초로 공급하였다.
에밀 모리스는 자동차 브랜드인 부가티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지퍼가 달린 자동차 여행용 백인 최초의 에르메스 백 ‘볼리드’가 탄생시켰다. 볼리드 백의 특징은 정면에 타원형의 가죽이 덧붙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 가죽은 여행용 가방이라는 목적에 맞게 이름표 역할을 하였다.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확인한 에밀 모리스는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마구용품에서 여행과 생활용품으로 주요 품목을 바꾸었다.(가방, 벨트, 장갑, 의복, 손목시계, 자동차소품 등) 하지만 새롭게 바뀌어가는 흐름인 공장의 대량 생산에 굴복하지 않고 여전히 장인의 정신이 담긴 전통적인 수작업과 소량 생산 주의를 고집하였다. 특히 가죽제품 제작 시 초창기 안장을 꿰던 독특한 박음질법인 새들 스티칭을 고수하였으며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꿰매어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내던 방식은 에르메스의 가치를 높였다. 소량 생산과 좋은 품질은 희소성을 얻었고 성공적으로 고급화에 성공했다.
여행 소품으로 주요 상품을 변화시켰지만 에르메스의 전통과 역사를 지켜나가고자 만든 ‘필레 드 셀’은 가죽 스트랩에 말 재갈 모양의 실버장식을 단 에르메스 정통 오리지널 팔찌이다. 시계라인에 경우 공식적인 첫 시계인 ‘에르모토’(슬라이드 방식의 가죽 덮개가 시계판을 덮으면서 시계를 여닿는 방식)와 골퍼들에게 유명했던 벨트 시계 등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유명한 스카프라인은 승마용 블라우스에 쓰이던 실크를 소재로 하여 만들어졌으며 에르메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제 박람회에서 첫 실크 스카프인 ‘카레’를 론칭하였다. (첫 론칭한 스카프의 이름은 ‘주 데 옴니버스 에데 담 블랑시’로 이는 ‘모두를 위한 게임과 하얀 옷의 숙녀’라는 뜻으로, 에밀 모리스의 서재에 있던 보드게임의 이름이었다. 이 스카프는 가로 세로 90cm의 정사각형 모양인데 이 때문에 에르메스 스카프라인은 불어로 정사각형을 뜻하는 ‘카레’로 불린다.) 에르메스의 ‘샤이 당크르’는 로베르 뒤마가 부둣가의 쇠사슬과 닻을 통해 디자인한 것으로 팔찌를 비롯한 에르메스의 다양한 제품에 적용되어 현재 에르메스의 클래식한 아이콘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원래 사용하던 크림색종이박스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그를 대신하여 당시 프랑스에서 이름도 없고 천하게 여겨지던 오렌지색 박스를 선택하였다. 이는 에르메스 제품에서 중요한 천연가죽의 질감을 보여주는 듯했고 현재 오렌지색 박스는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시그니처가 되었다. 그 이후 에르메스에는 로고가 필요했고 에르메스의 시초인 말과 마차를 이용한 로고가 만들어졌다.
에르메스의 두 번째 핸드백인 ‘프티 삭 오트’는 영화배우인 그레이스 캘리의 우연한 스타 마케팅 효과로 ‘캘리 백’이라고 불리며 유명해졌다. 하지만 수작업과 소량 생산으로 인해 침체기를 겪었다. 이를 루이 뒤마가 에르메스의 소비자층을 확장하며 브랜드를 이끌었다. 또한 실용적이지 않던 캘리 백을 대신하여 영화배우 제인 버킨의 아이디어를 통해 실용적인 목적의 ‘버킨 백’이 탄생했다. ‘버킨 백’은 가죽 장인 학교 3년, 수련기간 2년에 걸쳐 실력을 기른 장인이 상위 10%의 가죽을 받아 가죽 품질검사 후 18시간에 걸쳐 가방 하나를 제작한다. 그 이후 고유번호를 표시하고 고객이 수선을 요구하면 그 가방을 제작한 장인이 직접 수선을 한다.(고유번호에 적힌 날짜와 장소를 확인하고 그 해에 보급된 똑같은 가죽을 이용해 수선한다.) 완벽한 상태유지를 위한 까다로운 절차는 버킨 백의 가격이 몇천만 원을 오가는 이유 중 하나이다. 버킨 백 탄생 이후 명품 산업이 글로벌 비즈니스로 활발해지면서 높은 매출을 기록했고 장 폴 고티에를 영입하여 에르메스의 시그니쳐인 스카프를 이용한 의복과 전통을 살린 에르메스 특유의 질 좋은 오렌지색 가죽의 의복을 선보였다.
에르메스는 여전히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수작업을 이어나가고 있고 창업주의 직계후손이 경영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제품을 끝까지 책임지는 리퍼브 서비스를 이어나가는 브랜드는 에르메스 하나이다. 에르메스는 독특하게 마케팅 부서가 존재하지 않으며 유명인들의 지지를 극단적으로 거부한다. 샤넬이나 루이뷔통 같은 명품 브랜드에는 특정 앰버서더가 존재하지만 에르메스는 엠버서더를 가지고 있지 않다.
샤넬의 역사
샤넬은 가브리엘 샤넬이 설립한 브랜드로 처음에는 모자를 판매하는 부티크였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고아원에서 자란 샤넬은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이어갔다. (우리가 아는 ‘코코 샤넬’이라는 이름은 샤넬이 즐겨 부르던 노래 <코코리코> 때문에 카바레 손님들이 그녀를 코코라고 불렀다. 하지만 샤넬은 그 이름을 싫어했다.) 샤넬은 부유층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그녀는 부유층 남성(에티엔 발장)의 정부가 되어 사교파티에 나가 상류층의 삶을 체험했다. 당시 패션은 상류층에 의해 만들어졌다. 상류층 부인이 입는 옷이 패션 트렌드가 되었고 많은 정부들이 그들의 패션을 따라 입으며 그들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샤넬은 그런 패션 트렌드를 거부했다.
샤넬의 패션 감각은 샤넬이 직접 만든 모자로 인해 이목을 끌었다. 샤넬은 카펠의 후원으로 샤넬 모드라는 모자 부티크를 열었다. 당시 유행하던 모자는 꽃과 레이스, 진주 등의 장식이 많은 화려한 것들이었지만 샤넬의 모자는 최소한의 장식만 달린 매우 심플한 디자인의 모자였다. 샤넬의 색다른 모자는 빠른 속도로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심지어 유명한 여배우인 가브리엘 오르지아가 샤넬모자의 열성 팬이 되면서 샤넬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패션의 선두주자는 폴 푸아레였다. 그는 20세기 초 상류층 여성들을 위한 이국적이고 화려한 의상으로 큰 명성을 얻었고 그의 디자인은 여성의 몸매를 강조하고 화려한 장식이 달린 사치스러운 드레스였다.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까지 착용해야 했었기에 상당히 불편하고 움직임에 제한이 많았다. 값비싼 원단과 장식 때문에 가격 또한 초고가였다. 샤넬은 그런 패션을 거부하고 실용적이고 활동적인 드레스를 만들었다. 그 당시 샤넬이 이용한 원단은 남성의 운동복이나 속옷에 사용되는 값싼 저지 소재였다. 또한 스커트의 길이를 대폭 줄이고 코르셋도 과감히 없앤 샤넬의 드레스는 오트 쿠튀르계의 혁신이었다.(오트 쿠튀르란 유러에서 시작된 고급 맞춤복라인을 말한다.) 특히 1920년대 ‘가르손느 룩’으로 발전한 저지 드레스는 마른 몸의 소년처럼 납작한 가슴과 루즈하게 떨어지는 허리라인을 가진 원피스로 짧은 머리와 잘 어울려 당대 모든 여성들이 이 유행을 따랐다. 이 원피스는 여성들을 억압했던 관습을 벗어던지는 것과 같았다. (당시 떠오르던 여권 신장 운동과 맞아떨어지면서 1910년대 네 서 1920년대의 트렌드를 장악했다.)
샤넬의 검은색 드레스인 ‘리틀 블랙 드레스’는 검은색 포드 자동차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당시 검은색은 죽음을 애도하는 용도의 색상으로 장례식을 제외한 곳에서는 입지 않았지만 샤넬은 오로지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드레스를 최초로 내보였다. 검은색을 일상복으로 입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는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세련되고 고상한 느낌을 주는 이 검정 드레스에 매혹되었다. 이후 샤넬은 샤넬 스타일의 정점을 찍는 ‘샤넬 슈트’를 만들었다. 이 슈트는 깃이 없는 카디건 재킷에 무릎길이의 스커트를 매치한 것으로 심플함과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남성복 재킷라인에서 따온 일자로 떨어지는 넉넉한 실루엣은 활동성이 좋아 매우 실용적이었다. 여기에 샤넬 특유의 인조 진주목걸이와 작은 모자가 코디되면서 완벽한 샤넬룩이 완성되었다. 1920년대, 1930년대는 이런 샤넬룩이 장악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샤넬은 패션계를 잠시 은퇴하였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기에 샤넬은 나치의 장교와 사랑에 빠지고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에 매국노라는 악명을 뒤집어쓴 채 스위스로 떠났다. 샤넬이 떠난 사이 파리의 패션계는 신진 디자이너들(크리스천 디올, 발렌시아가 등)이 유행을 이끌었다. 이에 샤넬은 스위스 망명을 정리하고 파리로 돌아가기 위해 컴백 컬랙션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다시 유행하던 몸매를 강조한 뉴룩에 빠진 사람들이 샤넬의 슈트를 거부했지만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장되고 실용적인 패션을 찾으며 샤넬은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런 샤넬 슈트는 현재까지도 계속 사랑받고 있으며 고급스러운 트위드 소재의 재킷과 스커트는 여전히 우아한 아이템의 대표이다.
샤넬 슈트와 어울리는 구두인 ‘슬링 백 펌프스’는 당시 유행하던 높은 굽인 스틸레토힐 대신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낮은 굽의 구두이다. (두 가지 배색으로 심플하고 편리함이 장점인 구두이다.) 이어 ‘샤넬 2.55백’은 손잡이만 있고 어깨끈이 없었던 당시의 가방에 끈을 단 실용적인 백이다. 퀼팅 처리한 가방에 체인을 달아 만들었다. 이렇게 저지 드레스, 샤넬 슈트, 2.55백 등 샤넬의 시그니처 제품들은 여성을 자유롭고 편하게 하고자 만들어졌다.
샤넬은 남성복 패션 라인이 없으며 여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또한 고풍스러운 디자인과 격식 있는 디자인이 특징이며 중년에게 큰 메리트가 있지만 젊은 층에서는 올드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젊은 층은 미우미우, 생 로랑, 셀린느 등 젊은 이미지의 명품 선호) 하지만 현재 패션쇼에서 기발한 백이나 화려한 의상을 내보이며 세련되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에르메스는 마구 용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에서 시작하여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여행 상품으로 주력 상품을 바꾸었으며 이후에는 가방, 스카프 등 다양한 패션 상품을 제작하였다. 브랜드 설립 초창기부터 고수하던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품(캘리 백, 버킨 백, 카레 등)을 수작업으로 제작하여 하이엔드 브랜드 중에서도 명품으로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의 상품을 끝까지 책임지며 고유번호를 통해 최고의 품질로 수선 가능하다.
샤넬은 모자 부티크에서 시작하여 당시 몸매를 강조하던 패션이자 불편하고 답답했던 패션을 거부하고 여성을 위한 자신만의 심플하고 실용적인 패션상품(모자, 샤넬 슈트, 2.55백 등)을 제작하였다. 샤넬 스타일에서 소재를 다양히 사용하여 고풍스럽고 격식 있는 느낌을 강조하여 현재는 여성복이자 격식 있는 브랜드로 샤넬을 떠올린다. 또한 과거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샤넬 스타일은 하나의 패션이 되었다.
해당 브랜드가 세워지고 만들어진 제품의 역사를 알아봄으로써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브랜드 정신은 투철한 장인 정신과 제품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방향성은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 에르메스의 독립적이고 철저한 명품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샤넬이 추구하는 브랜드 정신은 패션의 혁명과, 여성을 위한 실용적인 패션이라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방향성은 고풍스럽고 격식 있는 디자인에서 새롭고 창의적이며 기발한 디자인을 겸비하고자 도전한다고 생각한다.
해당 브랜드의 정신과 예측한 방향성을 통해 브랜드의 마케팅전략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현재 에르메스는 독특한 마케팅 방식으로 다른 하이엔드 브랜드와는 다르게 브랜드 앰버서더를 두고 있지 않다. 타 브랜드와 다르게 유명인의 지지를 받지 않는다는 점은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에르메스의 이름표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느껴져 더욱 가치 있게 보인다. 이러한 점은 브랜드의 장인 정신과 상품의 희소성이 바탕으로 깔려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에르메스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현재 샤넬은 격식 있는 여성복의 브랜드라는 느낌이 강하며 40~50대의 중년에게 큰 메리트가 있지만 젊은 층에게는 올드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앰버서더로서 제니, 김고은, 민지, 지드래곤, 마고 로비,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 젊은 층을 앰버서더로 두며 젊은 층의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또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패션 상품을 꾸준히 선보이며 세련되었다는 평도 많다. 이런 마케팅은 정해진 브랜드 이미지를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