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현재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과거 국방부 청사에는
일본군 24사단 사령부가 있었으며
전쟁기념관 자리는
‘보병영’으로 표시가 돼 있습니다.
용산 주한미군기지 전체가
거대한 일본군영이었습니다.
_ 오른쪽에는
지도에서 경계를 표시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지역이 공동묘지(共同墓地)라고
써 있습니다.
_ 지금의 이태원동, 한남동 일대의
산 전체가 일부 논밭을 제외하고는
거대한 공동묘지산이었습니다.
이 지역이 집단무덤이 된 것은
조선중기때부터로 전해집니다.
_ 애오개 ,서소문, 와현(용산구 한강로),
새남터(이촌동 이근)등의 사형장에서
수습된 시신이나
선산이 없는 빈궁한 백성들은
4대문 밖인 이태원을
공동묘지로 사용했습니다.
※ 이태원의 삼성가 대저택 수리시
출토된 유골의 형태에서 추측컨대
흙구덩이를 파서 시체를 뭍은
흙무덤인 토광묘로
사자에게 관도 해줄수 없는 빈자들의
흙무덤이 많았을 것입니다.
_ 일제시대때도 옥사한 유관순열사의
시신도 이 곳에 뭍혔다가
망우리로 이전되었다고 합니다.
_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는
이태원일대에 군 시설화를 위해
일제에 의해 대규모 유골이전사업으로
미아리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물론 그 때 안 옮겨진 유골도
많이 있어 부근 개발시에 유골의
출토가 많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