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장구보유서 大學章句補遺序
옛적에 성인이 사람을 가르친 법에는 강령이 있고 조목이 있었다. 공자(孔子)가 이를 강구하여 밝혀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증자(曾子)가 이를 이어받아 세상에 전하였으니, 그 연원의 유래를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서경(書經)》〈우서(虞書)〉에 “능히 큰 덕을 밝혀 구족을 친히 하시니 구족이 화목하게 되고, 백성을 고루 밝게 하시니 백성들이 덕을 밝히게 되었으며, 만방을 화합하여 고르게 하시니 백성들이 변하여 화평하게 되었다.〔克明俊德, 以親九族, 九族旣睦, 平章百姓, 百姓昭明, 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라고 하고, 또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야 그 중도를 잡을 수 있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였으니, 《대학》 한 편의 뜻이 여기에서 근본한 것이다.
‘극명준덕(克明俊德)’부터 ‘여민오변(黎民於變)’까지는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의 지극함이고, ‘유정유일(惟精惟一)’은 명명덕(明明德)의 일이며, ‘윤집궐중(允執厥中)’은 명명덕이 지선(至善)에 그치는 것인데, 신민이 지선에 그치는 것도 여기에서 말미암는다. 팔조목(八條目)으로 말해 보면, ‘극명준덕’은 수신(修身) 이상의 일이고, ‘친구족(親九族)’은 제가(齊家)의 일이고, ‘평장백성(平章百姓)’부터 ‘협화만방(協和萬邦)’은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의 일이다. 팔조목 중의 정심(正心) 두 글자는 실제로 〈우서〉에서 온 것이니, 격물(格物)ㆍ치지(致知)ㆍ성의(誠意)ㆍ정심(正心)은 유정유일을 이른다. 전후 성인이 심성을 다해 가르침을 세운 규모가 부절(符節)처럼 합치되고 해와 별처럼 밝아서 의심스러운 점이 없으니, 공자가 요순(堯舜)의 도를 조술(祖述)하고 증자(曾子)가 전한 바가 실제로 여기에서 근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진(秦)나라의 분서(焚書)를 겪은 뒤에 성인은 멀어지고 말씀은 인멸된 지 1000여 년이 되었다. 다행히 하늘이 우리 유학(儒學)을 없애지 않았으므로 정자(程子)ㆍ주자(朱子) 등 몇몇 군자가 세상에 나와서 비로소 이 편을 드러내어 잘못된 부분을 개정하고 깊은 뜻을 밝히니, 한 편 안에 강령과 조목이 분명하게 되었다. 이에 배우는 자들은 힘쓸 바를 알고 다스리는 자는 근본으로 삼을 바를 알게 되었으니, 우리 유학에 기여한 공이 매우 크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성현(聖賢)의 경전(經傳)에 문장이 단절되거나 결락된 곳이 없지 않아 뜻이 완전하지 못한데도 학자들이 전서(全書)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니, 이것이 참으로 천고의 유감이다.
주자가 그 결어(結語) 한 구를 보고 그것이 격물치지의 뜻임을 알았으나, 그 글을 찾아내지 못하여 마침내 정자의 뜻으로 보충하였으니, 처음 배울 때 궁리하는 요체를 발명한 것이 또한 매우 밝게 구비되었다. 그러나 나는 《대학》을 읽다가 이 부분에 이르면 매번 본문을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탄식하곤 하였다.
근년에 중국의 대유(大儒)가 그 빠진 문장을 《대학》 속에서 찾아내어 장구를 개정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 본을 구하여 보고자 하였지만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감히 나의 억견(臆見)으로 경문(經文) 중의 두 절을 취하여 격물치지장의 글로 삼았다. 그러고 나서 반복해서 음미해 본 결과 말이 충분하고 뜻이 분명하여 경문에 흠결이 없으면서 전(傳)의 뜻도 보충이 되었고, 또 위아래 문장의 뜻과도 맥락이 통하였다. 비록 회암(晦庵 주희(朱熹))이 다시 살아나더라도 혹 여기에서 취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또 살펴보건대 청송(聽訟) 한 절이 지금은 전(傳) 3장의 뒤에 있는데, 글 뜻이 연결되지 않아서 의심할 만한 점이 있다. 그래서 정자가 정한 편차에 따라 경문의 아래에 놓고서 그 뜻을 상세히 음미해 보니, 《중용》 마지막 장의 “《시경》에 ‘나는 밝은 덕이 음성과 얼굴빛을 대단찮게 여기는 것을 생각한다.’라고 하였는데, 공자가 ‘음성과 얼굴빛은 백성을 교화하는 데는 말단적인 방법이다.’라고 하였다.”라는 구절과 “《시경》에 ‘나아가서 신명을 감격시키는 때에 말이 없어, 이에 다투는 이가 없도다.’라고 하였다. 군자는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이 권면되고, 노여워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형벌보다 두려워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의 뜻과 부합되었다.
이것은 성인이 근본을 바르게 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핵심적인 도이다. 그러므로 증자(曾子)가 경문의 장 말미에서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밝힌 것이니, 정자가 여기에 대해서 어찌 본 바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어리석고 고루한 자의 좁은 소견을 어찌 감히 옳다고 고집하면서 선유(先儒)가 이르지 못한 뜻을 터득했다고 하겠는가. 그저 얕은 견해를 기록하여 후대의 군자에게 질정을 구할 뿐이다.
가정(嘉靖) 기유년(1549, 명종4) 10월 갑자에 여강(驪江) 이언적은 삼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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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 : 이언적이 59세이던 1549년(명종4)에 유배지인 평안도 강계(江界)에서 저술한 책이다.
[주2] 주자가 …… 보충하였으니 : 주희가 《대학장구》 전(傳) 5장의 ‘차위지지지야(此謂知之至也)’를 설명하면서, 이 앞에 격물치지의 뜻을 해석한 문장이 있었는데 그 글이 결락되었으며, 이 구는 그 글의 맺음말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정자(程子)의 뜻을 취하여 보충하였다고 하였다.
[주3] 감히 …… 삼았다 : 이언적은 《대학장구》 경(經) 1장의 “그칠 데를 안 뒤에 정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는다.〔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라는 문장과 “물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종시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則近道矣.〕”라는 문장 을 뒤로 옮겨서 격물치지를 해석한 전(傳) 4장으로 삼고, “이것을 일러 앎이 지극하다고 하는 것이다.〔此謂知之至也〕”라는 문장으로 두 절(節)의 뜻을 맺도록 하였다.
[주4] 청송(聽訟) 한 절 : 《대학장구》 전 4장에 “공자가 말하기를 ‘송사를 다스리는 것은 내가 남들과 같겠지만 나는 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다. 실정(實情)이 없는 사람이 거짓말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子曰:聽訟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라고 하였는데, 이언적은 이것을 경 1장의 마지막 부분으로 옮겨 놓았다.[
주5] 정자가 …… 놓고서 : 정호(程顥)와 정이(程頤)는 모두 《대학》의 편차를 개정한 바 있는데, 이 부분에서는 정호의 설을 가리킨다. 《程氏經說 卷6》
大學章句補遺序
古昔聖人敎人之法。有綱有目。孔子講而明之。以授其徒。曾子述之。以傳于世。其淵源所自。亦可考矣。虞書曰。克明俊德。以親九族。九族旣睦。平章百姓。百姓昭明。協和萬邦。黎民於變時雍。又曰。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允執厥中。大學一篇之旨。蓋本於此。其曰明俊德以至於黎民於變者。明德新民之至也。其曰惟精惟一者。明明德之事也。其曰允執厥中者。
明明德之止於至善。而新民之止於至善亦由於此也。以八條目言之。明俊德者。脩身以上之事也。親九族者。齊家之事也。平章百姓以至於協和萬邦者。治國平天下之事也。八條目中正心二字。實自虞書中來。其曰格致誠正。精一之謂也。前後聖人盡性立敎之規。合如符節。炳如日星。無可疑者。可見孔子祖述堯舜之道。而曾子之所傳實源於此也。秦火之餘。聖遠言湮。千有餘載。幸而天未喪斯文。程朱數君子出。而乃始表章此篇。更定錯誤。發揮微蘊。一篇之中。綱條粲然。於是。爲學者知所務。而爲治者知所本。其有功於斯道也大矣。獨恨聖經賢傳之文。不能無斷缺。辭義未完。學者不得見全書。此眞千古遺憾。朱子得其結語一句。知其爲釋格物致知之義。而未得其文。遂取程子之意以補之。其所以發明始學窮理之要。亦甚明備。然愚嘗讀至於此。每嘆本文之未得見。近歲。聞中朝有大儒得其闕文於篇中。更著章句。欲得見之而不可得。乃敢以臆見。取經文中二節。以爲格物致知章之文。旣而反覆參玩。辭足義明。無欠於經文而有補於傳義。又與上下文義。脈絡貫通。雖晦庵復起。亦或有取於斯矣。又按聽訟一節。今在傳三章之後。文義不屬。有可疑者。乃依程子所定。置於經文之下。詳味其義。與中庸卒章予懷明德。不大聲以色。子曰。聲色之於以化民末也。奏假無言。時靡有爭。不賞而民勸。不怒而民威於鈇鉞之意合。此蓋聖人端本化民之要道也。故曾子於經文章末。引孔子之言以明之。程子於此。豈無所見乎。然愚陋管窺。何敢執以爲是而有得於先儒所未到之意。聊記淺見。以求正於後之君子云爾。嘉靖己酉冬十月甲子。驪江李彥迪。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