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선생(尤菴先生)을 천장(遷葬)할 때의 제문
숭정 후 병자년 10월 30일(계축)에 문인 권상하는 삼가 변변찮은 제수를 갖추어 문정공 우암 선생의 영전에 삼가 고합니다.
아, 기사년의 화를 말하자면 마음이 찢어지려는데, 위태로운 목숨을 구차히 연장하여 오늘을 보게 되었습니다. 증직하고 시호도 내렸으니 남은 유감이 없고, 은혜의 물결 널리 미치니 사림들의 감동이 솟구칩니다. 그러나 흉도들은 아직도 목을 보전하고서 묵은 참언讒言을 제멋대로 떠들어 대는데, 게다가 집정자執政者가 공평을 잃음으로써, 억강부약의 도리가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쇠인 줄 알면서 금이라 한 것이 많고, 혹은 향초가 띠풀로 변화한 것도 있습니다. 장차 군자의 도가 희미하여 흉함에 이르리니 누가 성심으로 대중을 불러 힘을 합하겠습니까. 아, 세도世道의 성쇠와 사문斯文의 드러나고 묻히는 것이 모두 하늘에 달려 있어 사람이 어찌할 수 없단 말입니까. 선생의 성덕과 대업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높이고 친애할 줄을 모르고 간혹 도리어 해치는 자만 있으며, 세상에는 또 선생의 도를 계승 발휘시킬 대인군자가 없으니, 그렇다면 선생의 도가 끝내 묻히고 말 것이란 말입니까.
아니면 후세의 요부堯夫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소자는 불초한 사람으로 남달리 알아주심을 입었으니, 남쪽 길에서 훈계해 주신 말씀은 난쟁이에게 구정九鼎처럼 무거운 짐이었는데, 문하의 어진 벗들을 잃고부터는 외로이 의지할 곳 없는 것이 더욱 슬픕니다. 더구나 질병은 떠나지 않고 벗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기에, 그 당시 명하신 모든 일들을 모두 천연시킴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를 반성해 보면 불만스러움도 많거니와 새로운 것은 어둡고 옛것은 거칠어지기만 한데, 괴롭게도 세월은 자꾸 흘러만 가서 어느덧 수염과 귀밑머리가 희어졌으니, 참으로 어느 날 갑자기 죽기라도 하여 옛날에 교육하시던 뜻을 저버릴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늘 몸을 어루만지면서 슬퍼하고 부끄러워하며, 혹은 꿈자리에서 경악하기도 합니다. 이제 천장을 하기 위해 재차 영구를 뵈오니, 선생의 의용이 엄연하여 곁에서 직접 시중드는 느낌이 듭니다. 좋은 날을 유치할 수 없어 갓과 신을 도로 매장하노니, 태산이 무너지는 아픔 더욱 간절하여 하수 같은 눈물을 쏟을 뿐입니다. 이 아득한 우주 안에서 이 몸은 누구를 의지한단 말입니까. 삼가 생각건대, 선생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묵묵히 도와주시리다. 아, 슬픕니다. 흠향하소서.
尤菴先生遷葬時祭文
維崇禎後丙子十月甲申朔三十日癸丑。門人權尙夏謹以菲薄之奠。敬告于文正公尤菴先生靈几之前曰。嗚呼。己巳之禍。欲言心裂。危喘苟延。獲覩今日。崇終隱卒。靡有餘憾。恩波渙淪。士林聳感。然而群兇尙保首領。舊譖猶肆啄舌。重以秉勻之失平。而致扶抑之乖剌。蓋多認鐵而爲金。又或化荃而成茅。將迷復而底兇。孰有厲於孚號。嗚呼。世道之升降。斯文之顯晦。莫不由彼蒼。而人莫能容爲耶。以先生盛德大業。人莫知尊親。而或反有害之者。世又無大人君子承繼而發揮者。然則先生之道。終於堙晦而已耶。抑有待於後世之堯夫耶。小子無似。辱知最殊。若夫南路之提誨。有如僬僥之九鼎。自失庭下之賢友。益恫孤孑之靡憑。況復疾病沈淹。朋儔散處。凡當日之所命。皆未免乎遷就。諒內省而多疚。繄新昧而舊荒。苦歲月之侵尋。奄鬚鬢之繁霜。誠恐一朝溘然。以終負疇昔之敎育。恒撫躬而悲慙。或寢驚而夢愕。今玆遷奉。再覿靈柩。函丈儼然。若趨座右。吉日不留。冠履還閟。益切山頹之痛。但注河傾之淚。茫茫宇宙。此生何依。伏惟先生。尙有以哀憐而默祐之也。嗚呼哀哉尙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