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문예바다 신인상 수상 작가들 |
나는 달에 살고 있다 외 1편
김부회
상처를 낸 운석이 상처 난 채로 존재하는 여기는 달
나와 내 그림자만 사는 아주 심심한
교활한 변호사가 알선한 달의 토지에는
풀이 자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지구보다 더 춥거나 더운 것은
아마, 태양으로 한 발자국쯤 앞서 있거나
뒤에 있거나
그만큼의 이격이란
지은 죄에 대한 일종의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아주 조금 축소한 타협과 같은 것
잔여 형기刑期의 견고한 날짜들이 리아스식 해안처럼 침식하고 있어
귀환이 몇 달 남지 않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는
한 발자국 다가가면 두 발자국 달아날 것 같은
이상한 달의 중력
아침마다 축 늘어진 나를 엄지와 검지에 고무줄처럼 걸고
창살 밖으로
쏘아 버리고 싶은데
푸른빛 감도는
저 담장 너머로 말이야
출소하자마자 입소할 것 같은 예감이 나를 부르네
풀이 없다는 것만 빼곤 그래도
살 만한 곳이지, 여기
― Note
때때로 나는 내가 사는 이곳이 달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몇 천 년 전 운석이 땅에 부딪힌 채로 존재하는 곳,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이 변화의 진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있는 세계는 감옥 속 어딘가 독방에 앉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내 자리, 활동반경이 비좁아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 나는 또다시 달을 동경한다. 달에서 달을 동경하는 것은 달은 더 이상 달이 아닐 때의 경우다. 어디로 가든, 여전히 나는 달을 동경할 것이며, 그럴수록 달은 멀어질 것이다. 우리의 중력은 과학으로 풀 수 없는 정신적 공식을 머리에 두고 사는지도 모른다. 현실과 비현실의 이중적 양립이 결국 꿈속의 나를 만든다. 그래! 달이 몰락하고 있다. 나처럼.
탁란托卵의 문장, 그 치명적 오류에 대한 독백
김부회
가갸거겨 하던 날부터
꽁무니 뒤로 하얗게 밀려 나오는 허물
편백나무 속, 검은 심 끝에서 수음의 냄새가 난다
남의 둥지에서
남의 알을 옆으로 밀어내다 묻은 얼룩
부적절한 관념의 행간들을 불살라 버리고 갠지스강을 건넌다
그 강어귀, 마을엔
죽음만 기다렸던 껍질들이 모여 산다
바닥을 기던 무릎과 모서리 닳은 관절의 껍질들, 지금도
거죽만 팔랑거리는 오체투지의 기도소리는 둥둥
되돌아오지 않는, 찢긴 북소릴 흉내 내며
옷걸이에 걸려 있다
변명을 깎아 낼수록
몽당연필의 꼭대기에 부풀어 오른 몽당蒙堂*
노스님 없는 그 자리, 먼지 폴폴 날리며
연필심의 게으른 증거들만 수북이 쌓여 있는 탁란托卵의 계절
남의 둥지에 제 새끼를 낳고 기다리는 뻐꾸기,
그 울음처럼 지친 나름의 고해성사들이 흩어져 가는 9호선 종점,
사람의 눈보다 짐승의 눈이 더 그리운
무가지無價紙 속, 어제라는 껍질은 서늘하게 식어 있다
누군가 의도한 문명의 낯선 경계에서
쌍시옷을 입에 달고
사라진 유리 구두 한 짝을 찾는 문장의 치명적 오류는
by myself
뼈다귀를 감싼 알몸의 소리는
연필과 연필심 그 지루한 사실혼 관계를 부정하고 싶은
덜, 혹은 더 깎아 내야 할
검은 내 색깔이었다 어디든, 무엇이든
내 삶의, 짙은 길이 되어야 하므로
*선사에서 감사 등으로 오래 근무하였거나 퇴직한 승려가 편히 쉬는 집. ‘먼지’의 방언
― Note
인도의 갠지스 강변엔 죽음을 준비하는 장소가 있다. 수명을 다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하루만 지나면 옆방의 누가, 옆집의 누가 죽어도 일상으로 생각하는 곳. 살아 있을 때 오체투지도 하고, 관성과 관념과 철학과 이종의 언어에 몰두해 사람처럼 살다, 갠지스 강어귀에 도달하면 이내, 그 모든 삶의 연륜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우리는 껍질인가? 아니면 본래 껍질이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다. 의식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어쩌면 진리라는 것은 내가 감내해야 할 위증의 변명인지도 모른다. 당신도, 나도, 위증을 하며 산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위증. 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범죄 행위에 대한 위증. 오늘 아침 뉴스처럼 30분만 지나면 옛날이야기가 되고 마는 나를 찾을 필요가 있을지? 숙제다.
김부회 | 2011년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2015년 『모던포엠』 평론, 『문예바다』 시 당선. 시집 『시, 답지 않은 소리』 『러시안 룰렛』, 평론집 『시는 물이다』 외 공저 다수. 중봉문학대상, 문학세계문학상(평론) 등 수상. 문예바다 편집부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