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멀리 우암산 정상이 불그레 물들기 시작한다. 하루의 문이 화려하게 열리고 있다. 차츰 어둠 속에서 유영하던 마음이 문을 열고 나선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몇 번의 시험을 거칠까. 우리는 학교에 입학하고 회사에 들어갈 때만 거치는 것이 시험이라고 여기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살이 자체를 시험의 점철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있어 첫 시험은 어떤 시험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될 때가 첫 경쟁이 아니었을까. 그 후로 초등학교 입학에서부터 직장에 취업할 때까지 무수히 많은 시험을 거치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 겪은 수도 없이 많았던 시험 중에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있었던 시험은 중학교 입학시험이었다. 시골 촌뜨기가 읍내에 있는 여학교로 시험을 치러 갔다. 추위가 매섭던 12월 초였다. 시험 전날 예비 소집이 있었다. 수험표를 받기 위하여 이십여 리 길을 걸어 학교로 갔다. 매섭게 볼을 때리는 찬 바람이 불었지만 춥지 않았다. 시험이라는 공포보다는 읍내에 간다는 생각에 벅찬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내가 중학교 시험을 볼 때만 해도 산골에서 딸을 중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퍽 힘든 일이었다. 남아선호 사상이 심했던 당시는 아들도 중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집이 많았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사실 난 중학교를 입학한다는 것보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와 설득으로 시험만 한번 보기로 했다. 그때 집안의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아 합격을 해도 입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처음 읍내 여학교를 방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늘을 날 것처럼 좋았다. 겨울의 찬 바람이 달리는 운동장에 서니 손도 시리고 발도 시렸지만, 수험표를 받아 들고는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다. 꼭 이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즘 부모님들은 집으로 가시고 우리는 여학교 건너에 있는 낯선 하숙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 시험을 치러 간 일곱 명이 방 하나에서 묵었다. 수험표를 받고 하숙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시험을 본다는 것도 잊고 수학여행을 온 것처럼 밤새 떠들며 깔깔댔다. 아직도 얼른 자라고 채근하던 하숙집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시험 첫날 교과목 이론 시험이 끝났다. 다음 날은 체육 실기 시험이 남아 있지만 우리는 학교 앞 문방구로 달려갔다. 우리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우린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사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풍선껌을 한 통씩 샀다. 하숙집으로 돌아와 서로 더 크게 풍선을 불기 위해 각각 껌 다섯 개를 모두 씹었다. 손톱만 하게 불었다가 점점 크게 불어 펑 터진 껌이 얼굴을 덮어 서로 쳐다보며 깔깔깔 웃곤 했다. 껌 덩어리는 아기 주먹만 했고 우린 다음 날 다시 씹으려고 하숙방 벽에 차례로 붙여 놓고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밥상을 들고 들어오신 아주머니의 호통에 혼비백산했다. 입학과 시험을 대비해서 새로 도배한 벽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아주머니는 우리가 수험생이라는 것도 잊고 꾸중했다.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대충 먹고 아주머니의 눈을 피하여 얼른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시험 보는 날 아침부터 아주머니께 꾸중을 들었지만 집을 나선 우리는 호호 깔깔 자지러지게 웃었다.
밖은 밤새 하얀 눈이 내려, 온 세상을 덮었다. 문밖엔 동화 속 같은 세상이 펼쳐졌고 좋은 일이 저절로 생길 것 같았다. 쌓인 눈이 운동화의 운두를 덮었고 검정 고무신은 눈 속에 푹 묻힐 정도였다. 하얀 눈이 덮인 운동장에서 체육 실기 시험을 봤다. 시험이 시작된 운동장의 열기는 쌓인 눈을 녹일 정도로 후끈하고 살벌했다. 눈이 쌓이고 찬 바람이 볼을 에는 운동장에서 운동화를 벗고 눈이 녹아 질퍽한 운동장을 철퍽철퍽 양말 발로 달리는 친구도 있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이었으면 그랬을까. 팔 굽혀 펴기를 하다가 만점을 받지 못했다고 눈 위에 엎어진 채로 울던 친구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처음으로 통과해야 하는 시험을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끝냈다. 시험이 끝나고 눈이 쌓인 고개를 넘어 집으로 향했다. 서둘러야 어둡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기에 뛰기도 하고 미끄럼을 타기도 하며 집으로 왔다.
인생의 첫 선발 시험에는 무난히 합격했다. 입학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웠던 집안 사정에도 부모님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딸을 응원하며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때 보이지 않는 행운을 받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치러진 시험에선 한 번의 실패도 없이 합격하여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이젠 마지막 남은 인생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남은 생을 누구보다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다가 그때의 마지막 시험에도 행복하게 합격이 되고 싶을 뿐이다. ‘백세시대’라는 가요의 가사처럼 150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알아서 가고 싶은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죽음을 시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만 누구보다 건강하게 잘 살다가 가고 싶다. ‘생거진천(生居鎭川)과 사후용인(死居龍仁)’이라는 말처럼 내 죽음에 오류가 없기를 기도할 뿐이다. 이제 남은 단 한 번의 마지막 시험을 잘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아름다운 노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