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 2022년 10월 01일 토요일
◯산행코스: 법흥2리마을회관-863봉[법흥산성표지판]-825봉[전망대표지판]-771m봉-무릉치-716m봉-740m봉-692m봉-761m봉[전망바위]-753m봉-739.9m[삼각점]-708m봉-686m봉-761m봉-696m봉-682m봉-592m봉[묘]-560m봉-498m봉[우회]-안부(탈출)
◇ 주천면:조선 성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은 주천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 나온다. 「주천석, 주천현 남쪽 길가에 있으니 그 형상은 반 깨어진 술통과 같다. 세상에 전해 오는 말로는 이 돌술통은 예전에는 서천에 있었는데 그곳에 있을 때는 술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현의 아전이 술을 마시려고 그곳까지 가는 것이 싫어서 현안으로 옮겨 놓기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옮기는데 갑자기 우레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 술샘이 세 개로 나누어졌는데 한 개는 못에 잠기고 한 개는 지금 남아있는 주천샘이고 다른 하나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위의 기록에 따르면 이 세 조각 중 하나는 이곳에 남게 되었는데 당시의 문장가였던 강희맹, 성임 등이 시름 지어 찬양한 글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고 하며 이와는 다른 유래로 아래와 같은 설도 있다. 주천리의 망산 밑에 있는 술샘에 끊임없이 술이 솟아 나왔는데 양반이 가면 청주가 나오고 상놈이 가면 탁주가 나와 이 샘을 주천 또는 술샘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본래 이 고장은 고구려 때부터 주연현(酒淵縣)이라 하였을 만큼 술과 관련된 이름이 많은데 이곳의 주천면 주천리 주천강 등이 모두 여기서 비롯된
▲아침재의 수준점
▲날머리 아침치에 회원들을 내려놓고 나는 법흥2리 마을회관으로 이동한다.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 92-1(무릉법흥로1062),
▲무릉도원면 응어터입구 버스정류장이있는 법흥2리마을회관 앞에 하차하여 산행이 시작된다.
▲법흥리 마을회관의 도로 따라 얼음골 펜션 간판 뒤 우측 시멘트임도 따라간다.
▲올라가야할 법흥산성을 올려다 본다.
▲법흥천 철교를 건너 얼음골 펜션입구 좌측 계곡 길로 간다.
▲실개천을 건너임도 따라 능선으로 올라간다.
▲법흥천을 뒤돌아본다.
▲화전민터를 지나 구임도 따라 희미한 등로를
따라간다.
▲희미한 족적 따라 무작정 오른다.
▲계곡을 끼고 희미한 등로로 가파르게 올라간다.
▲묘지를 지나 가파르게 오른다.
▲조금 오르니 사정없이 깎아지른 오르막이다.
▲흔적이 뚜렷하여 계속 올라간다. 여림재는 우측을 가르키고 적벽이라 내려갈 수도 없고 앱을 보니 맥길에 가까워지고 있다. 잘못 올라가도 가야할 거리를 줄이는 것이니 손해 볼 것도 없을 것 같아 그냥 힘를 쓰며 올라간다.
▲가파른 등로를 오르는데 두 남자분이 도토리를 줍고 있다. 여림치가 어디냐고 물으니 자기들은 모른단다.
▲한참동안 비지땀을 쏟으며 희미한 족적을 찾아 기어오르는 양옆으로 계곡의 바닥은 저 밑에 깔려있다. 계곡으로 내려가 타고 오르기엔 이미 늦어 버렸고 무식하게 기고 기어서 오르니 하늘이 보인다.
▲아주 가파르게 급경사를 한참을 치고 올라가니 여림치와 731m봉을 지나 바로 법흥산성이란 팻말이 서있는 오늘의 가장 높은 첫 봉인 837.1m봉에 닿은 것이다. 하나의 봉우리를 오르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법흥2리 마을회관에서 10시 5분에 시작하여 이곳까지 1시간 넘게 걸려 아침부터 개고생하며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법흥산성(法興山城)863m :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산1-1번지에 있는 산성이다. 백덕산(白德山, 1,350m) 정상에서 남쪽으로 5.7km 정도 뻗어 내린 능선의 해발고도 829m 고지를 중심으로 구축된 포곡식 산성(包谷式山城)으로 성벽이 거의 파괴된 상태이다. 흙으로 쌓아 올린 토성(土城)으로 남동-북서 방향으로 축조되었으며, 성의 전면(全面)이 평창을 향해 있는데 이는 영월군 북면 공기리의 공기산성(恭基山城), 수주면 도원리의 도원산성(桃源山城)과 동일한 형태이다.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광대평마을의 광대평교를 건너 우측 개울을 가로지르면 산성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가 보이고, 입구에서 약 1.7km 올라가면 무너진 성벽이 보인다. 성안(城內)과 법흥산성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새터(新基洞)에서 무릉골로 약 2 km정도를 올라가면 평평한 분지에 쌓은 옛 성터와 샘이 있는데 한 때는 여섯 가구의 화전민(火田民)이 이 곳에서 살았으므로 성안이라고 불렀다. 법흥리에 있으므로 법흥산성(法興山城)이라고 부르는데 백덕산(白德山,1,350.1m) 자락인 829고지를 중심으로 축조되었다. 평창을 바라보면서 축성되었는데 성안에는 우물과 석곽, 기와, 숫막새 등이 있으며 수십년전에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화전민이 고서(古書)가 담긴 큰 함을 발견했는데 불에 태워 버렸다고 한다. 이 성은 후삼국시대에 치악산 석남사에 근거지를 둔 양길(梁吉)의 부하인 궁예(弓裔)가 891년(진성여왕 4)에 주천과 영월, 평창, 진부, 강릉 등을 공격할 때 쌓았다고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잡목봉에 발자취 하나 남기고, 법흥리 광대평으로 내려가는 우측 길은 모두 버리고 좌측 선답자의 시그널 따라 좌측으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틀어 잔돌을 덮고 있는 미끄러운 돌길 내리막길에 잡목을 꺾어가며 흔적을 남기며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안부로 내려가서 직진 잡목 능선으로 올라간다.
▲바위지대를 좌측으로 우회하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