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율법과 복음에 대하여/ † 율법은 천사의 손을 통해서 모세에게 나타나셨고, 그러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오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승천하신 후 성령을 교회 위에 부어 주시고 교회가 예수를 변호하게 하셨다. 예수를 변호하시는 성령이 교회에 역사하셔서 그 말씀을 증거하게 하신다. 곧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진리와 영광과 생명을 증거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하는 일은 예수를 변호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는 오직 유일하게 하나의 진리가 와 있다. 진리의 출발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10:30)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는다. 하나님과 하나이신 분이 진리이다. 설령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을지라도 그는 하나님과 하나일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만이 하나이시며 진리가 되신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율법이 와 있었다. 예수께서 오신 지는 이천 년밖에 안 되지만 율법은 삼천오백 년 전에 왔다. 율법은 예수보다 천오백 년 전에 먼저 왔다.
갈3:19절에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율법이 온 것은 약속하신 이, 곧 하나님 아들이 오실 때까지만 있을 것인데,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이다. 곧 여호와의 사자,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나타났던 여호와의 사자로 말미암은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요한복음 1장 18절과 6장 46절에도 하나님을 아무도 보지 못하고 오직 아들만 보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율법은 하늘의 천사의 중보를 통해서 온 것으로 아들이 올 때까지만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들이 하늘에서 와서 하늘로 가신 줄로 착각한다.
그러나 예수는 아버지 품속에서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가 부활하셔서 하늘로 들어가셨다.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는 보좌가 아직 비어 있었다. 보좌는 여호와의 이름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율법이 먼저 하늘에서 온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서 율법을 받은 것이다.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천사였다(행7:30-35). 하나님은 모세에게 천사를 통해 나타나셨다. 바로 율법은 천사의 손을 빌려서 임한 것으로, 이는 아들이 오실 때까지만 계신 것이다.
이렇게 율법이 온 것과 진리가 온 것은 전혀 길이 다르다. 요1: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했는데 모세에게 나타났던 자는 천사였다.
행7:30-35절에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다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더라 …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자로 보내셨으니” 라고 말한다.
또한 53절에도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셨다. 모세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본 것은 여호와의 사자인 것이다. 곧 율법은 천사의 손을 통해서 모세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오셨다. 진리는 아버지의 품속에서 나왔다(요1:18)고 말한다. 그러므로 율법을 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율법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천사를 통해서 전해졌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말씀을 육성으로 듣는 것과 전화기로 듣는 것의 차이에 비교할 수 있다. 전화로 들려오는 소리는 기계음에 불과하다. 모세의 입으로 전해진 말씀이나 천사가 전해 준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모세와 천사의 음성이다. 발람의 나귀가 하나님처럼 말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귀의 목소리였다.
하나님이 나귀에게 소리를 내게 하신 것이다. 모세나 천사는 하나님과 하나가 아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았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모세나 천사가 들려준 율법이 진리가 아닌 것은 기계나 전화처럼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옮겨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하나이기 때문에 진리이시다. 진리는 영광이므로 하나님과 교통(친교)이 가능하지만 율법은 그렇지 않다. 율법은 생명의 법이 아니고 사망의 법이다. 죄를 사망의 법이라고 하지 않고 율법을 사망의 법이라고 한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죄를 강화시키는 법이다.
죄값은 사망이고(롬6:23), 사망의 법은 율법이다. 아담의 죄로 인해 인류는 이미 영이 죽었고, 그 후로 범하는 죄들은 그 위에 덧씌운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숨 끊어진 사람을 꽁꽁 묶고 다시 발로 밟는 것과 같을 뿐 죽은 사람을 더 죽게 할 수는 없다.
인류는 죄가 더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의 죄값으로 죽었다. 그것을 율법이 밝혀 내었고 인류는 율법의 정죄를 받았으니 죽음만 남았다. 그래서 율법을 사망의 법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율법의 잣대로 죄를 정하시고 그에 따라 형벌하시니 아무도 율법의 정죄를 피할 수 없다.
율법에 따르면 세상은 죄로 인해 멸망한다. 율법은 사망의 법이요 죄의 법이요 저주의 법이므로, 알면 알수록 저주를 받고 죄인이고 죽는 길밖에 없다. 율법은 범죄에 대해서 용서를 받거나 죄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롬8:2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망의 법인 율법에서 성령으로 해방되었다는 말이다. 율법은 성령이 없는 법이다. 율법은 종의 법, 사망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은 성령의 법이다.
성령은 율법 아래 계실 수 없는데, 율법은 천사에 의해 예수의 오실 길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인류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뜻을 가지고 오셨다. 우리가 자유한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이다. 율법은 몽학선생에 의해 바깥에서 훈련하지만, 복음은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인도하신다.
율법의 교훈은 머리로 듣고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지만, 성령은 우리 심령, 곧 영을 움직여 행동이 변화되게 하신다. 율법은 우리에게 명령하지만 성령은 우리 안에서 인격 자체를 변화시키신다. 은혜(은총)를 입은 사람은 성령으로 율법이 자기 안에서 이루어지게 한다.
육신으로는 율법의 요구를 응할 수 없지만 성령으로는 할 수 있다. 율법의 요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인데 육신의 생각 때문에 순종할 수 없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람은 능히 이것을 행할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 성령의 도우심은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의 피는 과거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은 현재 죄의 생활에서 구원을 받기 위함이고, 성령은 미래의 죄의 유혹에서 구원하신다. 율법에는 생명이 없다. 율법은 잘 지키면 유지되지만, 거기서 한 가지만 범해도 죽는 것이다. 율법의 용무는 사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알게 한다. 그러므로 은혜에는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진리의 말씀은 오직 예수에게서만 볼 수 있다. 예수 밖에서는 진리를 볼 수 없다. 또한 예수를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므로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예수를 알 수 없다.
태초에 계신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요, 예수는 진리요, 성령은 진리를 증거하기는 영이시다. 그분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다고 했고, 세례자 요한은 예수를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 했다. 이는 예수가 속죄 제물이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곧 예수는 죄를 담당하시는 분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에 대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절대로 예수를 알 수가 없고, 성령은 오셔서 예수만을 증거하신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으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오직 성령이 증거하실 때만 비로소 예수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성령으로만 진리를 알게 되고, 영광을 알게 되고, 생명을 보게 된다. 인간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성령의 감동과 감화로 하나님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수양이나 고행이 아니라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주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혜사라고 말씀하셨다. 보혜사는 진리를 변호하고 증거하시는 분이시다. 곧 진리의 영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진리를 성령이 오셔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라고 하셨고,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10:29-30; 14:28). 사람은 예수를 봄으로써 아버지를 보고, 예수를 앎으로써 아버지를 알 수 있는데, 예수를 아는 일도 성령이 우리의 심령에 오셔서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셔야 한다.
복음은 예수를 알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알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한다. 성령의 후원을 받으면 진리의 영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진리의 사람이 된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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