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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마태 5장 13-16절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전에는
이 세상이 얼마나 썩었고,
얼마나 어두운가를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으로 조금씩 다가가면서
이 세상이 얼마나 영적으로 썩어 냄새나는 곳인가,
또 얼마나 캄캄하고 어두운 곳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눈에 그렇다면
예수님의 눈에는 오죽하겠습니까?
캄캄한 세상을 앞에 놓고,
또 썩어 냄새나는 세상을 앞에 놓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
여기에 너희라는 말은 굉장한 강조형입니다.
너희만이 세상의 소금이야,
너희만이 세상의 빛이야.
아무리 세상이 썩고 어두워도
나는 너희만을 믿어.
왜냐하면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나는 너희들만 믿어. 하는 의미가
이 말씀 안에 들어 있습니다.
도대체 이 너희가는 누구입니까?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열두 제자들이
우선적으로 해당이 되겠지요.
그리고 그 제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오늘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펴고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듣는 우리 모두가
너희에 해당 되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기대를 갖고
너희만이 세상의 소금이야,
너희만이 세상의 빛이야.라고 말씀하시는 대상인
열두 명의 제자들이란
세상적으로 볼 때
얼마나 초라한 사람들입니까?
배운 게 있습니까?
가진 것이 있습니까?
기댈 데가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놓고
마치 이 세상의 내일이
그들의 어깨에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나은 점이 많습니다.
배우기도 많이 배우고,
그 당시 제자들의 믿음 보다
우리의 믿음이 훨씬 더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캄캄하고
썩어 냄새나는 세상이라고 하는 괴물 앞에
우리 자신을 놓고 보면
얼마나 초라해 보입니까?
얼마나 작아 보입니까?
무슨 빛을 발할 수 있으며,
무슨 소금 노릇을 할 것 같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조용히 내려다보시면서
나는 너희만 믿어.
왜냐하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야.
너희만이 세상의 빛이야.
너희마저 없다면
이 세상은 소망이 없어.
절망이야. 하는 말씀을 하고 계시니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고,
한편으로는 주님의 우리를 너무 잘 봐 주심에 대해서
감격도 하고 긍지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팔복을 가지고
먼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의 성품이
어떠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애통하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되고,
마음이 청결해야 되고 화평케 해야 되고
마지막에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작은 예수로서의 성품을
가져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너희들이 이와 같은 성품을 가진
나의 제자가 되면
이 세상에서 너희만이 소금이요,
너희만이 빛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이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마 팔복의 요건을
우리가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오늘 말씀이 실제로
우리 하고 관계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소금을 잘 아시지요?
소금은 짠 맛이 특징입니다.
그 짠 맛 때문에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그 당시
지중해 연안만 해도
온도가 꽤 높은 지역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냉장고도 없던 시절,
식품을 오래 보관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금만 넣어 놓으면
적어도 한두 달은
신선하게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이 하늘의 태양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소금이다. 하는 말을 할 정도로
소금을 무척 아끼고
귀히 여겼다고 합니다.
썩지 않게 하는 이 방부제의 특성은
마치 예수님을 잘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끼치는
감화와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 세계에 들어가서
가만히 있어만 줘도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마치 짠 맛이 들어가서
고기나 음식물에 신선도를 유지하여
썩지 않도록 하듯이
우리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우리를 통해서 내비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때문에
다른 사람이 좋은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어딘가 다른 데가 있어.
나도 좀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네.
하는 감동을 받습니다.
어떤 면에는 소극적이긴 하지만
조용히 다른 사람에게 짠 맛을 내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 안에 이런 사람이 한두 명만 있어도
그 가정에는 절대 사고나지 않습니다.
직장 안에서 이렇게 맛을 가진 사람
얼마만 있으면
그 직장은 영적으로 어두워지지 않습니다.
더 나빠지지 않습니다.
빛은 무엇입니까?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그 가운데 있는 것을 환하게 드러내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빛은 그 특성상
굉장히 직선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어두움 앞에서
머뭇거리는 빛을 우리는 본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는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 자신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열려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대신 그 빛 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사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의 빛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양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예수님의 달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8절, 9절에
참 소중한 말씀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너희가 누구입니까?
예수 믿는 우리 모두입니다.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를 빛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빛인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진실한 모습을 보고,
우리의 의로운 행동을 보고
세상이 우리를 빛으로 본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 모두가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십니다.
물론 자신이 볼 때
내가 무슨 소금이냐 빛이냐,
냄새만 안 나도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크게 보시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가 빛과 소금이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확인했으면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우리가 소금의 역할을 할까,
빛의 역할을 할까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도덕적 우위를 지키는 일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도덕적인 우위라는 말이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다 이해하실 것입니다.
선악을 앞에 놓고
이것은 선이다. 저것은 악이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을 일컬어서
도덕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과 악을 놓고
선을 선택하고 선을 추구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보면
도덕성이 건전하다.고 이렇게 칭찬합니다.
그러나 선인지 악인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흐리멍텅하게 잘못된 것을 선택해서
따라가는 사람을 보면
도덕성이 낮다고 말하기도 하고
도덕성이 실종된 사람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들에 비해서
도덕적 표준이 높아야 합니다.
도덕적인 우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빛이니, 소금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복음을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그 자체가 부패를 막는 소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그 자체가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
가장 짠 맛을 낼 수 있습니까?
전도할 때입니다.
우리가 언제 강한 빛을
불신자들의 세계에 비칠 수 있습니까?
예수 믿으라고 말할 때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전도는
소금을 많이 만들어 내는 생산 작업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 믿게 했다면
그 사람이 소금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하면
그 사람이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이 땅에는 소금은 많아 지고
빛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것 만큼 대단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세 번째로 우리는 자연보호에 앞장 설 수 있어야
소금이고 빛이 될 수 있습니다.
21세기에 인류의 존립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 무엇이냐면
바로 환경오염이라고 합니다.
인류가 멸종하느냐 살아 남느냐를
좌우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적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무서운 요인이
환경오염이라고 합니다.
40년전만 해도
누가 생수를 마신다고 하면,
웃기네. 수도물이 어때서 생수 마시냐?
돈이 남아서 감당을 못하나 보지? 하고 욕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생수를 마시는 것이 상식이 아닙니까?
생수를 안 마시는 사람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져서
저러면 큰일 날 텐데 하지 않습니까?
세상이 얼마나 변해 버렸습니까?
40년 전에 남의 이야기 같이 들리는 것들이
오늘날 지금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더 잘 먹고 더 많이 즐기기 위해
자연을 함부로 파괴한 결과,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날씨는 어떻게 변할 줄 알 수 없는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그리하여 세계 곳곳에
끔찍한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생태계는 혼란에 빠져서
1년에 몇 백 종씩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자연파괴를
예사로 하는 나라가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만큼
후손의 내일을 걱정하지 아니하는
무감각한 백성이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 하나 잘 살다 가면
그만이라는 식인 것 같습니다.
과수원 얘기 들으셨죠?
벌이 자꾸 없어집니다.
나비가 자꾸 사라집니다.
그러니 열매가 안 맺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니면서
벌이나 나비처럼 수정을 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나비와 벌을 다 죽여 놓고
사람이 벌이나 나비처럼 다니면서 수정을 합니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야생 동물, 바다 고기는 점점 씨가 말라갑니다.
하천은 썩어 가고
지하수마저 오염이 되어 먹을 수가 없고,
심지어 먹을 수 없는 그 물 자체도
점점 양이 줄어서
나중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끔찍한 상황을 우리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세계 약 200개 국가 중에
물부족 국가의 하나로
한국이 꼽힌다는 것 여러분 아시죠?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는 파괴되어 가는 자연 앞에
심각한 고민을 안고 씨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 하셔서
우리에게 남겨 주시고 하사하신
이 아름다운 자연 동산,
이 하나 밖에 없는 지구를 놓고
우리가 이것을 살리기 위해, 보존하기 위해서,
우리 자손에게 아름다운 땅을 물려주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연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지금 성경을 쓰신다면
이 말을 반드시 첨가하실 것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셋째는 자연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틀림없이 삽입할 것 같습니다.
자연을 사랑합시다.
한 포기의 풀도 사랑하는 눈으로 봅시다.
별 것 아닌 잡목이라도
마치 자녀를 쓰다듬듯이
쓰다듬어 주면서 사랑합시다.
조그마한 다람쥐 한 마리라도
내 자식을 보듯이 아끼고 소중히 여깁시다.
자연을 사랑해야 이 자연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이 자연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아니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 가지를 여러분에게 말씀 드렸습니다.
도덕적 우위를 유지하는데
빛과 소금이 되자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빛과 소금이 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보호에 앞장서는 자로서
빛과 소금이 되자고 했습니다.
우리 신분은 감출 수가 없어요.
주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저 이태리나 지중해 연안에 여행을 가보면
높은 언덕, 높은 산 위에
아름다운 도시들이
자주 눈에 띱니다.
멀리서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밤에는 더 휘황찬란합니다.
숨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 자신을 숨기고
가만 있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항상 노출되기 마련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 자신을 이렇게 감추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노출성을
최대한 이용해야 합니다.
좋아, 어디 가도 우리 자신을 숨길 수가 없다면
빛으로서 살자. 소금으로서 살자.
그러면 굉장한 파급효과를
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이 세상 사람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놀라운 일들이
우리 앞에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를 예수 안에서 볼러 주시고,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우리를 세워주신것 감사하오며,
썩어가는 세상에
'소금'이 되게 해 주신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도 기도합니다.
사실 우리는 지나간 날을 돌이켜 보면
'소금'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빛'답게 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세상 앞에
좀더 고매하게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소금'과 '빛'으로서, 이 세상을 바꾸어 놓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거룩한 백성되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