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길에 대한 깨우침〔宦喩〕
벼슬을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또한 쉬운 것도 아니다. 그 자연스러운 형세를 따라 하는 것이어서, 벼슬을 구하나 얻지 못하는 것도 명이고 구하지 않았으나 얻게 되는 것 또한 명이다.
성인 중에는 중니(仲尼 공자)보다 더한 성인이 없지만 수레를 타고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70명의 군주에게 등용되기를 구하였으나 현군을 만나지 못하였다. 현인 중에는 맹가(孟軻)나 순경(荀卿)보다 더한 현인이 없지만 인의(仁義)의 말이 제(齊)나라ㆍ양(梁)나라 군주에게 팔리지 않았고 참소를 피해 초(楚)나라로 달아났다가 벼슬에서 물러나 난릉(蘭陵)에서 죽었다. 충신 중에는 굴평(屈平)보다 더한 충신이 없지만 끝내 강에 투신하여 죽었고, 지혜로운 사람 중에는 조조(鼂錯)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지만 직접 요형(腰刑)을 당하였으며, 재주 있는 사람 중에는 가의(賈誼)나 동중서(董仲舒)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지만 배척당해 등용되지 못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벼슬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이윤(伊尹)은 유신씨(有莘氏)의 잉신(媵臣)이었고, 부열(傅說)은 판축을 쌓는 일꾼이었으며, 태공(太公)은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를 하는 늙은이였다. 백리해(百里奚)는 진(秦)나라의 장사꾼이었고, 영척(甯戚)은 소를 먹이는 천인이었다. 범수(范睢)와 채택(蔡澤)은 다른 나라의 망명객이었고 전천추(田千秋)는 어리석은 한 노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한 번 만났지만 말이 뜻에 맞아 계책을 따라 주었고 한마디 말을 듣고서 발탁하여 경상(卿相)으로 삼았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벼슬을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니, 구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것이다.
천명을 아는 사람은 발탁에 누락되어 버려져도 원망하지 않고 곤궁하고 간고한 상황에 처해도 근심하지 않아, 단사표음(簞食瓢飮)으로 도를 즐기는 생활에 마음을 편안히 하여 천사만종(千駟萬鍾)에도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인(仁)이 아니면 거하지 않고 의(義)가 아니면 받지 않으며 몸을 수양하고 독실히 공부하여 천명을 기다릴 뿐이다.
반면 천명을 모르는 자는 뇌물을 주어 권세 있고 총애 받는 신하들에게 달려가 아첨하고 모의하여 장소(章疏)를 올려 나아가는 발판으로 삼고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윗사람에게 아첨하고 기이한 기술과 나쁜 술책으로 윗사람의 마음을 흔들며 온갖 생각을 짜내어 반드시 자기의 재주를 판다. 요행히 벼슬을 얻으면 모두 말하기를 “재주 있는 것이 권세 있는 것만 못하고 임금에게 직간하는 것이 의중을 순순히 따르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한다. 그 얻는 방법을 너무도 알지 못하니 역시 운명인 것이다.
대체로 신하가 임금을 얻는 것은 첩이 남편을 따르는 것과 같다. 용모가 아름답고 행동거지가 단아하여 지적당할 만한 결점이 없는데도 남편에게 사랑을 얻지 못하고 천한 성품을 지닌 보통 사람이 도리어 총애를 받으며, 빼어난 지혜와 발군의 재주를 지니고서 행실에 흠결이 없는데도 세상에 등용되지 못하고 잗달고 어리석은 사람이 도리어 대우를 받으니, 어찌 이것이 운명이 아니겠는가. 역시 자연스러운 형세인 것이다.
지금 한 마디 정도 되는 나뭇가지를 꺾되 길이를 같게 하고 무게를 동등하게 하여 시내에 임해 던진다고 치면, 어떤 것은 물에 자연스럽게 떠내려가 걸리는 것 없이 큰 강에 이르고, 어떤 것은 중도에 이르러 장애를 받고, 또 어떤 것은 몇 걸음 가다가 장애를 받고, 어떤 것은 물굽이와 여울에서 빙빙 돌다가 바위에 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벼슬길의 어려움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명에 달린 것이다.
[주1] 벼슬길에 대한 깨우침 : 벼슬길에 대하여 운명론을 전개한 글이다. 능력이 있어도 등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천한 신분에서도 발탁되는 경우가 있다. 발탁되지 않아도 원망하지 말고 인의(仁義)를 따르며 독실히 공부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주2] 인의(仁義)의 …… 않았고 : 맹자는 자사(子思)의 제자에게 학문을 배워 도가 통달된 뒤에 제나라 선왕(宣王)과 양나라 혜왕(惠王)에게 가서 인의를 설파하며 섬기고자 하였으나 그 군주들은 맹자의 말이 당시의 사회 실정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등용하지 않았다. 그때 나눈 대화가 《맹자》에 실려 있다. 《史記 卷74 孟子荀卿列傳》
[주3] 참소를 …… 죽었다 : 순자(荀子)가 제(齊)나라에 살다가 참소를 피해 초(楚)나라로 갔는데, 초나라의 재상 춘신군(春信君)이 그를 난릉 영(蘭陵令)으로 삼았다. 그 후 춘신군이 죽자 순자도 벼슬을 그만두고 그곳에서 살다가 죽었다. 《史記 卷74 孟子荀卿列傳》 이 구절은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서 온 것이다.
[주4] 지혜로운 …… 당하였으며 : 조조(鼂錯)는 한 문제(漢文帝) 때의 학자로 복생(伏生)을 사사하고 둔전책(屯田策) 등 각종 정책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특히 재변(才辯)이 뛰어나서 지낭으로 일컬어지기도 했었으나, 그가 경제(景帝) 때에 이르러 강성해진 제후들을 억제하기 위하여 그들의 봉지(封地)를 삭감하려 하다가, 오(吳)ㆍ초(楚) 등 칠국(七國)이 이에 반란을 일으키자, 마침내 그 반란의 원인 제공자라는 이유로 참형(斬刑)을 당하였다. 《漢書 卷49 鼂錯傳》
[주5] 재주 …… 못하였다 : 가의(賈誼)는 20세에 한 문제(漢文帝)의 부름을 받아 박사(博士)가 되고 1년 안에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이르러 정삭(正朔)을 고치고 예악(禮樂)을 일으키기를 청하였으나, 주발(周勃)ㆍ관영(灌嬰) 등의 참소를 당하여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었다가 뒤에 양 회왕(梁懷王)의 태부로 나갔는데, 울분을 못 이겨 33세에 죽었다. 《漢書 卷48 賈誼傳》 동중서(董仲舒)는 한 무제(漢武帝) 때의 대학자로 유학을 한나라 정교(政敎)의 중심축으로 삼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무제 때 현량 대책(賢良對策)에서 천인 감응(天人感應)의 설(說)을 요지로 삼아 세 번 올린 대책은 천인 삼책(天人三策)이라 일컬어졌다. 처음에 강도(江都)의 정승이 되었다가 공손홍(公孫弘)의 미움을 받아 교서왕(膠西王)의 정승으로 좌천되었고, 나중에는 벼슬을 그만두고 저술에 힘썼다. 《漢書 卷56 董仲舒傳》
[주6] 이윤(伊尹)은 유신씨(有莘氏)의 잉신(媵臣)이었고 : 《사기(史記)》 권3 〈은본기(殷本紀)〉에 “이윤은 이름이 아형(阿衡)이다. 아형이 탕왕을 뵈려고 하였으나 길이 없자 마침내 유신씨(有莘氏)의 잉신이 되어 솥과 도마를 지고 가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탕왕에게 유세하여 왕도 정치에 이르게 하였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도 관련 내용이 보이는데, 맹자는 《사기》의 내용을 부인하고 유신(有莘)의 들에서 밭을 가는 이윤을 탕왕이 폐백을 가지고 가서 초빙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주7] 부열(傅說)은 …… 일꾼이었으며 : 판축(版築)은 흙을 다져서 성벽이나 제방을 쌓는 일을 말하는데, 부열이 은(殷)나라 고종(高宗)에게 재상으로 발탁되기 전에 부암(傅巖)의 들판에 몸을 숨기고 판축의 일을 했던 유명한 고사가 전한다. 《書經 商書 說命下》 《孟子 告子下》
[주8] 태공(太公)은 …… 늙은이였다 :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서기 전에 점을 쳤더니 “잡을 것은 범도 곰도 아니고 왕패(王霸)를 보좌할 인물이다.”라는 괘(卦)가 나왔는데, 드디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에서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을 만나 수레에 태우고 함께 돌아왔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32 齊太公世家》
[주9] 백리해(百里奚)는 진(秦)나라의 장사꾼이었고 : 백리해는 춘추 시대 우(虞)나라의 대부로 진(晉)나라가 우나라를 격멸할 때 포로가 되었다가 초나라 땅 완(宛)으로 도망갔다. 초나라 교외에 사는 사람이 그를 잡으니,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그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는 양가죽 다섯 장으로 그의 몸값을 치르고 데려와서 정승으로 삼았는데, 그가 목공을 도운 지 7년 만에 목공이 제후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史記 卷5 秦本紀》 《孟子 萬章上》
[주10] 영척(甯戚)은 …… 천인이었다 : 춘추 시대 위(衛)나라 영척이 미천했을 때, 제 환공(齊桓公)에게 등용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제나라에 들어가 남의 소를 먹이면서 제 환공의 행차를 바라보고는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하자, 환공이 그 노랫소리를 듣고 그를 현자(賢者)로 여겨 등용하였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남산은 빛나고, 백석은 깨끗하도다. 태어나서 서로 선양하던 요순 시대를 못 만나, 짧은 베 홑옷은 겨우 정강이만 가릴 뿐인데, 이른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소를 먹이노니, 긴 밤이 지루해라 언제나 아침이 올런고.〔南山矸, 白石爛. 生不逢堯與舜禪, 短布單衣適至骭. 從昏飯牛薄夜半, 長夜漫漫何時旦.〕” 《呂氏春秋 擧難》 《風雅翼 卷9》
[주11] 범수(范睢)와 …… 망명객이었고 : 위(魏)나라 범수가 수가(須賈)를 수행하여 제(齊)나라로 갔는데, 제 양왕(齊襄王)이 범수가 변설(辨說)에 능하다는 말을 듣고 금 10근(斤)과 우주(牛酒)를 하사하였으나 범수는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수가는 자신보다 범수가 더 인정받는 것에 화가 나서 범수가 제나라와 내통했다고 모함하였고, 범수는 태형을 받아 갈비뼈와 이가 부러진 채 거적에 싸여 변소에 버려져 있다가 간신히 구출되어 진(秦)나라로 도망쳤다. 채택(蔡澤)은 전국 시대 연(燕)나라 사람으로 변설에 능하였다. 조(趙)나라, 한(韓)나라, 위(魏)나라를 다니며 유세하였으나 모두 중용되지 못하다가, 진(秦)나라에 들어갔을 때 당시 재상인 범수가 그를 알아보고 자신의 후임으로 소왕(昭王)에게 추천하여 객경(客卿), 승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史記 卷79 范睢蔡澤列傳》
[주12] 전천추(田千秋)는 …… 노인이었다 : 한 무제(漢武帝) 때 여태자(戾太子)가 강충(江充)의 모함으로 무고옥(巫蠱獄)에 연루되자 군사를 동원하여 강충을 잡아 치죄하였는데 무제는 태자가 반란한 것으로 알고 반란자를 잡아 죽이게 하였다. 여태자는 벗어날 길이 없자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뒤에 고조의 능 참봉 전천추가 급변을 올려 태자의 원왕(寃枉)을 송변(訟辨)하니 무제는 크게 깨닫고 전천추를 대홍려(大鴻臚)로 삼았다. 또 전천추가 신선술을 말하는 방사(方士)의 파척(罷斥)을 주달하자 무제는 그대로 따랐다. 이에 대해 《한서》에서 “전천추는 다른 재능과 학술이 없고 또 조정에 큰 공로가 없었지만 한마디 말로 깨우치게 하여 열흘이나 한 달 만에 재상과 봉후가 되었으니 세상에 일찍이 없던 일이다.〔千秋無他材能術學, 又無伐閱功勞, 特以一言寤意, 旬月取宰相封侯, 世未嘗有也.〕”라고 하였다. 《漢書 卷66 田千秋傳》
[주13] 단사표음(簞食瓢飮) : 가난한 생활을 말한다. 공자가 이르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시골구석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그 걱정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변치 않는구나.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14] 천사만종(千駟萬鍾) : 많은 녹(祿)을 뜻한다. 말 네 마리가 사(駟)가 되니 말이 4000마리이고, 6석(石) 4두(斗)가 1종(鍾)이니 6만 4000석이 된다.
宦喩
宦非難也。亦非易也。因其勢之自然而爲之者也。其求而不得者命也。不求而得之者亦命也。聖莫聖於仲尼而轍環天下。干七十君而不遇。賢莫賢於孟軻,筍卿而仁義之言。不售於齊,梁之君。逃讒于楚而廢死蘭陵。忠莫忠於屈平而卒沈於江。智莫智於鼂錯而親遭腰刑。才莫才於賈,董而擯斥不用。由是觀之。宦非易也。求而不可得也。伊尹。有莘氏之媵臣也。傅說。版築之夫也。太公。渭濱之釣叟也。百里奚。秦之販商也。甯戚。飯牛之賤人也。范睢,蔡澤。異國之亡命也。田千秋。倥倥一老叟也。一見而言合計從。一言而起取卿相。由是觀之。宦非難也。不求而得之也。知命之人。遺佚廢棄而不怨。窮餓艱苦而不憂。簟食瓢飮。足以安其樂。而千駟萬鍾。不以動其心。非仁不居。非義不受。修身篤學。以待天命而已。其不知命者。苞苴賄賂。趨赴權倖。謀奏章疏。以爲進階。巧言令色。以媚乎上。奇技淫巧。以蕩乎心。千思百慮。必售已術。幸而得之則皆曰。有才不如有勢。犯顏不如順志。殊不知其得之者亦命也。大抵臣之得君。如妾之從夫。夫以容貌之美。擧止之雅。無疵纇之可指者不得於夫。而中人賤品。反被寵愛。高世之智。拔萃之才。行無玷缺者不用於世。而猥瑣闒茸。反承遭遇。豈非命乎。亦其勢之自然也。今有折一寸之枝。長短齊而輕重等。臨澗而投之。則或有順流無礙而達于河者。或有半途而礙者。或有數步而礙者。或有回翔灣瀨。依粘巖石而不動者。然則宦道之難易。非人之所得爲也。天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