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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어소식(御消息)
(『대정장』 제83권 258쪽 상)
來函詳悉。我之所言,但能少蒙領解,而增强往生之志,則無所忌憚,縱雖多次,亦欲致書。
보내온 편지를 잘 살펴 보았다. 내가 한 말이 비록 조금이나마 이해되어 왕생의 뜻을 더욱 굳게 할 수만 있다면, 여러 차례라 하더라도 거리낌 없이 회답하고자 한다.
誠然,雖思無論何人,不顧此身之賤、此心之愚,皆乘彌陀願力,行於決定往生之道。然而人心多種,唯一味追求夢幻浮世之樂境,皆不慮後世之人也。雖有懼後世而勤修之人,然而其心爲種種之行所動,不能一向修一行之人。亦有不論何行,初修之時即起深慕之心,雖聞何種道理,猶不改本來執心之人。又有今日雖起難得之信而一向專修,然而明日捨棄之人。
진실로, 비록 누구든지 이 몸의 비천함과 이 마음의 어리석음을 돌아보지 않고 모두 아미타불의 원력에 올라타 결정코 왕생하는 길을 걷고자 여기지만, 사람의 마음은 여러 가지여서, 몽환과 같이 덧없는 현세의 즐거움만을 좇고 뒷날의 일을 헤아리지 않는 이들이 있다. 또 비록 뒷날을 두려워하여 부지런히 수행하는 이가 있으나, 그 마음이 갖가지 행법에 흔들려 한결같이 한 가지 행만을 닦지 못한다. 또 어떤 이는 어떤 행법이든 처음 닦을 때 곧바로 깊이 흠모하는 마음을 일으켜, 어떤 이치를 듣더라도 본래의 집착한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또 오늘은 모처럼 믿음을 일으켜 한결같이 전수(一向專修)하지만, 내일이면 이를 포기하는 이도 있다.
世相如是。誠然,入淨土之一門而專於念佛一行之人稀少,此我心之歎而人所不知。依法不依人,此世少有。雖我之所勸,以拙劣故,所說之教亦被棄置,不禁憂悲。是故唯有發願速生淨土,證涅槃之後,急還娑婆世界,以神通方便,不論有緣無緣、讚歎毀謗,悉皆迎彼於極樂淨土,此方堪慰自心。今見來函,頗合我志,甚覺欣喜。
……
세상의 모습이 이와 같다. 진실로, 정토 한 문으로 들어가 오로지 염불 한 행만을 닦는 이는 드물다. 이는 나의 마음속 탄식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법을 따르며 사람을 따르지 않는 이는 이 세상에 드물다. 비록 내가 권하였으나, 스스로가 졸렬한 탓으로 내가 말한 가르침 또한 버려지는 것을 보고, 근심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오직 속히 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여 열반을 증득한 뒤 급히 사바세계로 돌아와, 신통과 방편으로 인연이 있든 없든, 찬탄하든 비방하든 가리지 않고 모두 다 극락정토로 영접해야 비로소 내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 지금 보내온 편지가 내 뜻과 자못 부합함을 보니, 매우 기쁘게 여긴다.
……
前書已曾辨別聖道、淨土之二門,並詳明應入淨土一門之理,今述淨土門之行相。
앞선 편지에서 이미 성도와 정토 두 문을 분별하였으며, 마땅히 정토 한 문으로 들어가야 할 이치를 자세히 밝혔으니, 이제 정토문의 행상을 서술하고자 한다.
願生淨土之人有安心、起行,而應心行相應。其心者,《觀無量壽經》釋言:“若有衆生,願生彼國者,發三種心,即便往生。何等爲三?一者至誠心,二者深心,三者迴向發願心。具三心者,必生彼國。”
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는 사람에게는 안심과 기행이 있는데, 마땅히 마음과 행이 서로 상응해야 한다. 그 마음이란, 『관무량수경』에서 해석하기를, “만약 어떤 중생이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발원한다면, 세 가지 마음을 일으키면 곧바로 왕생한다. 무엇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지성심, 둘째는 심심, 셋째는 회향발원심이다. 이 세 가지 마음을 갖춘 이는 반드시 저 나라에 왕생한다.”라고 하였다.
善導和尙釋此“三心”云:“一者至誠心,‘至’者真,‘誠’者實。欲明一切衆生,身口意業所修解行,必須真實心中作;不得外現賢善精進之相,內懷虛假。不簡內外明暗,皆須真實,故名至誠心。”
此釋之意者,所謂至誠心者,即是真實之心也。言真實者,身之所行,口之所言,心之所思,皆應具真實心也,亦即無內虛外飾之心。
선도 화상이 이 ‘삼심’을 해석하기를, “첫째는 지성심이다. ‘지(至)’는 진이요, ‘성(誠)’은 실이다. 이는 모든 중생이 신·구·의 삼업으로 닦는 해와 행(解行)이 반드시 진실한 마음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하며, 겉으로는 어질고 선하며 정진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속으로는 거짓을 품어서는 안 됨을 밝히려는 것이다. 안과 밖, 사람이 있든 없든 가리지 않고 모두 진실해야 하므로, 이를 지성심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이 해석의 뜻은, 지성심이 곧 진실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진실하다는 말은 몸으로 행하는 바와 입으로 말하는 바와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가 모두 진실한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속으로 거짓을 품고 겉으로 꾸미는 마음이 없음을 말한다.
此心者,厭無常之浮世,而欲行真實道之人衆所應深深用心者也。不論我人,皆執著夢幻之浮世,不易舍棄。雖僅有舍棄名聞利養,以此爲難得稀有,然反而又以此爲名聞。
이 마음이란, 무상한 세상을 싫어하여 진실한 도(道)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깊고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나와 남을 막론하고 모두가 몽환과 같이 헛된 이 세상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비록 명문(名聞)과 이양(利養)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이를 어렵고 드문 일로 여기지만, 도리어 그것을 다시 명문으로 삼고 만다.
世間之事,亦有極力粉飾,淺見之人不知其內心而以爲珍貴之人。有離都城不遠之處,築小庵居住之人,應當靜心修行,然而其次則爲本尊、道場之莊嚴,或籬內如何整建、如何立木等費心,唯執心於欲令人見聞讚歎之事,專務於不使人有絲毫譏謗之事,此外無所用心,既不乘托彌陀本願,亦無往生之願,又不念佛,此即是欠缺至誠心,而不得往生之心性也。
세간의 일 가운데에도, 겉을 한껏 보기 좋게 꾸며, 견문이 얕은 사람들이 그 속마음을 알지 못한 채 귀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 도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암자를 짓고 거처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마음을 고요히 하여 수행에 힘써야 할 터인데, 본존과 도량을 장엄하는 일이나, 혹은 울타리 안을 어떻게 정비할지, 나무를 어떻게 심을지 따위에만 마음을 쓰는 등, 오직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듣고 찬탄하게 하려는 일에만 마음을 두고, 남에게 조금이라도 헐뜯는 말을 듣지 않으려는 일에만 힘쓸 뿐, 그 밖의 일에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다. 아미타불의 본원에 승탁하지도 않고, 왕생의 발원도 없으며, 염불도 하지 않으니, 이는 곧 지성심이 결여된 마음이요, 왕생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然不可因如是之言,而一味不介意世人眼目,不顧慮他人譏謗。但,雖因時因地,爲避世人譏嫌而顧慮人目,亦不可唯此是慮,而不顧及成爲障礙往生之事。
그러나 이와 같은 말로 인해 한결같이 세상 사람들의 눈길을 전혀 개의하지 않고, 다른 이의 비방을 전혀 돌아보지 않아서는 안 된다. 다만, 때와 장소에 따라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남의 눈을 살피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오로지 그것만을 염려하여 왕생에 장애가 되는 일을 돌아보지 않아서는 또한 안 된다.
就此至誠心,有四句之不同:一、外相貴內心不貴;二、外相內心皆不貴;三、外相不貴內心貴;四、外相內心皆可貴。此四人中,前二人是所嫌之欠缺至誠心之人,此名爲虛假之人;後二人是具至誠心之人,此名爲真實之行者。是故總而言之,只要內心起真實之心,則外相之好惡可無妨。凡厭離穢土、欣求極樂,皆不可介意人目,唯應起真實之心,此名至誠心。
이 지성심에는 네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겉모습은 귀하나 속마음은 귀하지 않은 경우, 둘째, 겉모습과 속마음이 모두 귀하지 않은 경우, 셋째, 겉모습은 귀하지 않으나 속마음은 귀한 경우, 넷째, 겉모습과 속마음이 모두 귀한 경우이다. 이 네 부류 가운데 앞의 두 부류는 사람들이 꺼리는 지성심이 결여된 사람으로, 이를 거짓된 사람이라 한다. 뒤의 두 부류 사람은 지성심을 갖춘 사람으로, 이를 진실한 행자라 한다. 그러므로 총괄하여 말하면, 마음속으로 진실한 마음을 일으키기만 하면, 겉모습의 좋고 나쁨은 무방하다. 무릇 예토를 염리하고 극락을 흔구함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눈을 개의하지 말고 오직 진실한 마음을 일으켜야 하니, 이것을 지성심이라 한다.
二者“深心”。善導和尙釋云:“此有二種:一者決定深信,自身是具足煩惱之罪惡生死凡夫,善根薄少,曠劫以來常流轉三界,無出離之緣。二者信彼阿彌陀佛以四十八願攝取衆生,亦即稱念名號,下至十聲一聲,乘彼願力,定得往生,乃至一念無有疑心,故名深心。又,深心者,決定建立自心,順教修行,永除疑錯,不爲一切別解、別行、異學、異見、異執之所退失傾動也。”
此釋之意者,始信我身,後信佛願也。
둘째는 “심심(深心)”이다. 선도화상께서 해석하시기를,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신이 번뇌를 구족한 죄악생사범부로서 선근이 미약하고, 광겁 이래로 항상 삼계를 유전하여 벗어날 기연이 없음을 결정코 깊이 믿는 것이다. 둘째는 저 아미타불께서 사십팔원으로 중생을 섭취하심을 믿는 것이다. 이는 곧 아래로 열 번이나 한 번에 이르기까지 명호를 칭념하면 그 원력에 올라타 반드시 왕생함에 내지 한 생각의 의심도 없으니, 이를 심심이라 한다. 또 심심이란, 결정코 왕생이 확정되었음을 믿는 신심을 세워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고, 영원히 의혹과 그릇됨을 제거하여, 일체의 별해·별행·이학·이견·이집에 의해 물러나거나 흔들리지 않음을 말한다.”
이 해석의 뜻은, 먼저 내 몸을 믿고, 뒤에 부처님의 서원을 믿는다는 것이다.
然,爲決定後之信故,舉出最初之信也。其故者,若不舉出最初之信,而單舉後之信,則多有願生淨土之人,雖稱念本願名號,然而心起貪欲、瞋恚等煩惱,身亦造十惡、破戒等罪惡故,而妄輕自身,反疑本願,以爲“本願之十聲一聲得往生者,非煩惱凡夫,乃是不起妄念、不造罪業之殊勝者;如我輩之一念十念,未必能往生”。因此,善導和尙鑒及未來衆生留有此疑,而舉出此二種信心,以解釋“如我等未斷煩惱,亦造罪業之凡夫,深信彌陀本願而念佛者,乃至一聲,決定往生”之旨,此釋特爲銘刻在心。
그러나 이는 뒤의 믿음을 결정짓기 위한 까닭으로 먼저 처음의 믿음을 든 것이다. 그 이유는, 만약 처음의 믿음을 들지 않고 뒤의 믿음만을 말한다면, 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는 이들 가운데, 비록 본원명호를 칭념하더라도 마음에 탐욕과 성냄 등의 번뇌가 일어나고, 몸으로도 십악과 파계 등의 죄업을 짓는 까닭에, 스스로를 가볍게 여겨 오히려 본원을 의심하여 “본원의 열 번이나 한 번에 이르기까지 염불하면 왕생한다는 사람은 번뇌를 지닌 범부가 아니라, 망념을 일으키지 않고 죄업을 짓지 않는 뛰어난 사람일 것이다. 우리와 같은 자가 한 번 혹은 열 번 염불한다고 해서 반드시 왕생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여기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도화상께서는 미래 중생들이 이러한 의심을 품을 것을 헤아려, 이 두 가지 신심을 들어 “우리와 같이 번뇌를 끊지 못하고 또한 죄업을 짓는 범부라 하더라도, 아미타불의 본원을 깊이 믿고 염불하는 자는 내지 한 번 염불하여도 반드시 왕생한다.”는 뜻을 해석한 것이니, 이 해석을 특별히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誠然,若無如是之釋者,我等以爲往生不定而有不安。是故不知此釋之人,皆言“自心惡故,不得往生”等語。如是之疑是不能往生之心故,唯不顧心之善惡,不論罪之輕重,心願往生,口稱南無阿彌陀佛,以聲之故,作決定往生之想,依此決定之心,即往生之業決定。
진실로, 만약 이와 같은 해석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왕생이 결정되지 않았다고 여겨 불안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해석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내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왕생할 수 없다.” 등과 같은 말을 한다. 이와 같은 의심은 곧 왕생할 수 없는 마음인 까닭에, 오직 마음의 선악을 돌아보지 말고, 죄의 경중을 따지지 말며, 마음으로는 왕생을 발원하고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을 칭념하여, 그 소리에 의하여 결정코 왕생한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이 결정된 마음에 의지하여 곧 왕생의 업이 결정된다.
如是知故無疑;若思不定即不定,若思一定即一定。是故,總而言之,深信之心即是“稱念南無阿彌陀佛者,以其佛願力,不論任何罪咎,一定來迎”,深憑而無少疑心。
이와 같이 알면 의심이 없다. 만약 결정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곧 결정되지 않은 것이 되고, 반드시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면 곧 반드시 결정된 것이 된다. 그런 까닭에 총괄하여 말하면, 깊이 믿는 마음이란 곧 “나무아미타불을 칭념하는 자는 그 부처님의 원력에 힘입어 어떠한 죄과가 있더라도 반드시 영접하러 오신다.”는 것을 깊이 의지하여 조금도 의심이 없는 것이다.
又言“不爲別解、別行所傾動”者,不可因別解別行之人所言而舍念佛、疑往生也。別解之人者,天台、法相等八宗之學者是也;別行之人者,真言、止觀等一切行者是也。此皆是聖道門之解行,與淨土門之解行有別,故名別解別行也。
또 “별해(別解)와 별행(別行)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별해와 별행의 사람들이 하는 말로 인해 염불을 버리고 왕생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별해의 사람이란 천태(天台)·법상(法相) 등 팔종(八宗)의 학자들을 말하며, 별행의 사람이란 진언(真言)·지관(止觀) 등의 모든 수행자를 말한다. 이들은 모두 성도문의 해와 행으로서, 정토문의 해와 행과는 서로 다르므로, 이를 별해·별행이라 부른 것이다.
不爲別解別行之人所言而傾動之理,善導和尙雖有詳細解釋,其文甚廣,不及具引。取意而言:縱使佛來放光舒舌而言“煩惱罪惡凡夫之念佛一定往生者,虛妄之事,不可相信”,亦不可因此而起一念疑心。何以故?一切諸佛悉皆同心引導衆生,亦即阿彌陀佛發願言:“若我成佛,十方衆生,願生我國,稱我名號,下至十聲一聲,乘我願力,若不生者,不取正覺。”其願成就,今已成佛。因此,釋迦如來出興於此世界,爲衆生故,宣說彌陀本願。又,六方恒河沙數諸佛,各出廣長舌相,遍覆三千世界,現無虛妄相,讚歎釋迦佛所說之彌陀本願,勸一切衆生言:“稱念彌陀名號者,定得往生!此決定無疑,一切衆生,皆當信之,以此證誠。”
如是一切諸佛,一佛不漏,或立願說明,或證誠其說——一切凡夫,念佛決定往生之旨。一切諸佛既然同心勸導,則此外若有任何之佛來言“念佛不得往生”,亦不驚動。佛尙如是,況聲聞、緣覺乎!何況凡夫乎!
如是領解,一度聽聞念佛往生之法門,發起信心之後,則雖何人何言,亦永遠不可有懷疑之心,此名深心也。
별해·별행의 사람들이 하는 말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이치에 대해, 선도화상께서 비록 자세히 해석하셨으나 그 문장이 매우 길어 여기에서 모두 인용하지는 못한다. 뜻을 취하여 말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부처님께서 오셔서 광명을 놓고 혀를 내밀며 “번뇌를 지닌 죄악범부가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말은 허망한 일이니 믿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한 생각의 의심이라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왜 그러한가?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 한 마음으로 중생을 인도하시니, 곧 아미타불께서 발원하시기를,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의 중생이 나의 나라에 왕생하기를 발원하여 내 명호를 부르되, 아래로 열 번이나 한 번에 이르기까지 내 원력에 올라탔음에도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라고 하셨는데, 그 원은 이미 성취되어 지금은 부처가 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석가여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중생을 위하여 아미타불의 본원을 설하시기 위함이다. 또한 육방의 항하사수 모든 부처님께서 각각 광장설상(廣長舌相)을 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시며 허망함이 없는 상(相)을 나타내시어, 석가불께서 설하신 아미타불의 본원을 찬탄하시며 일체 중생에게 권하시기를,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념하는 자는 반드시 왕생한다! 이는 결정코 의심이 없다. 모든 중생은 마땅히 이를 믿어야 하며, 이것으로써 그 진실함을 증명한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께서 한 분도 빠짐없이, 일체 범부가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뜻을 혹은 서원을 세워 설명하시거나, 혹은 그 말씀을 증명하셨다.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한 마음으로 권도하셨으니, 이밖에 만약 어떤 부처님이 와서 “염불로는 왕생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놀라 흔들리지 않는다. 부처님조차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성문과 연각이겠는가! 하물며 범부이겠는가!
이와 같이 이해하여, 한 번이라도 염불왕생의 법문을 듣고 신심을 일으킨 뒤에는, 비록 어떤 사람이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영원히 의심하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심심(深心)이라 한다.
三“迴向發願心”者,善導和尙釋云:“過去及以今生,身口意業,所修世出世善根,及隨喜他一切凡聖身口意業所修世出世善根,以此自他所修善根,悉皆真實深信心中迴向願生彼國,故名迴向發願心也。又,迴向發願心者,必須決定真實心中迴向,作得生想,此心深信,由若金剛,不爲一切異見、異學、別解、別行人等之所動亂破壞。”
此釋之意者,先就自身,前世及此世身口意所造功德,悉皆迴向極樂願往生也。次,不止自身功德,他人所造功德,佛菩薩所造功德,亦隨喜悉作自己功德,皆迴向極樂願往生也。
셋째는 “회향발원심(迴向發願心)”이다. 선도화상께서 해석하시기를, “과거 및 금생에 신·구·의 삼업으로 닦은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근과, 또한 일체 범부와 성인이 신·구·의 삼업으로 닦은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근을 수희한 것까지, 이와 같이 자기와 타인이 닦은 모든 선근을 모두 진실하고 깊이 믿는 마음 가운데서 회향하여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므로, 이를 회향발원심이라 한다. 또 회향발원심이란 반드시 결정된 진실한 마음 가운데서 회향하여 이미 왕생하였다는 생각을 지어야 한다. 이 마음은 깊이 믿어 금강과 같아 일체의 이견·이학·별해·별행 등의 사람들에 의해 흔들리거나 파괴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셨다.
이 해석의 뜻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면, 전생과 금생에 신·구·의 삼업으로 지은 공덕을 모두 다 극락에 회향하여 왕생을 발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공덕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지은 공덕과 불보살이 지은 공덕까지도 모두 수희하여 자신의 공덕으로 삼고, 이를 모두 극락에 회향하여 왕생을 발원하는 것이다.
一切不論自身,不論他人,祈此世之果報,或後世欲生極樂以外之淨土,或欲生彌勒菩薩之兜率淨土,或欲生人間、天上等,不作如是或彼或此之迴向,唯一向迴向願生極樂也。若知此理以前,有祈此世,或有迴向其他世界之功德,悉皆取回,爲往生極樂而迴向也。
자기의 선근이든 타인의 선근이든, 이 세상의 과보를 구하거나, 혹은 내세에 극락 이외의 다른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거나, 혹은 미륵보살의 도솔천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거나, 혹은 인간이나 천상 등에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이와 같이 이곳이든 저곳이든 따로 회향하지 말고, 오직 한결같이 극락에 왕생하기를 회향하고 발원해야 한다. 만일 이 이치를 알기 이전에 현세의 과보를 구하였거나, 혹은 다른 세계로 회향한 공덕이 있다면, 모두 거두어 극락왕생을 위하여 다시 회향해야 한다.
然不可因一切善根皆迴向極樂、歸入念佛而一向念佛之人,更造集其他功德以作迴向。唯以前所作功德,或此後逢緣遇境所作之念佛以外善事,悉皆爲往生之業而迴向也。
그러나 모든 선근을 다 극락에 회향하고 염불로 돌아와 한결같이 염불하는 사람이라 해서, 다시 다른 공덕을 일부러 더 지어 그것을 회향하려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전에 이미 지은 공덕이나, 이후 인연과 경계를 만나 염불 이외에 행하게 된 선행을 모두 왕생의 업으로 삼아 회향할 뿐이다.
言“此心由若金剛,不爲別解別行之人所破壞”者,如前所言,不因別解之人所言而作或彼或此之迴向之意也。金剛石是不被破壞之物,故取喩以明此心不被破壞,猶如金剛。此名迴向發願心也。
“이 마음은 금강과 같아 별해·별행의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별해의 사람들이 하는 말로 인해 저곳이나 이곳으로 따로 회향하려는 뜻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강석은 파괴되지 않는 물건이므로, 이를 비유로 이 마음이 파괴되지 않음을 금강과 같다고 밝힌 것이다. 이것을 회향발원심이라 한다.
三心相狀,大致言之。“具此三心,必得生也;若少一心,即不得生”,善導和尙所釋,是故願生極樂之人,必應具此三心也。
然,如是之言,雖似各別而誇大,若知其意,則容易具足之心也。總之,三心者,真實心深憑彌陀誓願而願往生也。雖有深淺之別,無有不能發起此心之人。
然,此三心者,亦有三心之名尙且不能知,而自然具足得往生;亦有詳細研究,反而欠缺之人。就此亦有四句之不同。此雖如是,知此三心而自覺三心具足者,亦覺其心堅强;若覺三心不具者,應勵其心,必使具足。
삼심의 모습에 대하여는 대략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마음을 갖추면 반드시 왕생하고, 한 마음이라도 부족하면 왕생하지 못한다.”고 선도화상께서 해석하셨다. 그러므로 극락에 왕생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삼심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각각 따로이면서 과장된 듯 보이지만, 그 뜻을 알면 쉽게 갖출 수 있는 마음이다. 요컨대 삼심이란, 진실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서원을 깊이 의지하여 왕생을 발원하는 것이다. 비록 깊고 얕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 마음을 일으키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삼심은, 삼심이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면서도 자연스레 갖추어 왕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세히 연구하고도 도리어 갖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도 또한 네 구절의 차이가 있다. 비록 그러하나, 이 삼심을 알고 스스로 삼심이 갖추어졌음을 자각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더욱 견고해짐을 느낄 것이요, 삼심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을 힘써 닦아 반드시 갖추도록 해야 한다.

첫댓글 일향전칭(一向專稱)일향전념(一向專念)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念佛真好)
1.지성심이 곧 진실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2.심심은 흔들리지 않음을 말한다.
3.회향발원심은”이미 왕생하였다는
생각을 지어야 한다
법을 따르며 사람을 따르지 않는
이는 이 세상에 드물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어소식이 대성인이 문하신도에게 보내는 편지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일향전념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수승한 법문에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수승한법문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