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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14장은 예배 때의 문란한 일들에 대한 것입니다.1)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2)
첫째, 예배 때에 여자가 수건을 쓰지 아니하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3)
둘째, 성찬 때에 문란하게 행한 일들에 대한 것입니다.4)
셋째, 12~14장은 영적인 은사들에 대한 것입니다.5)
11장 2~16절은 “예배를 인도하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내용입니다.6)
파울이 전수한 것들을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굳게 붙잡는 것 때문에 그가 그들을 칭찬하였습니다(고전 11:2).
1. 예배 때에 여자가 수건을 쓰지 아니하는 문제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12절에 “그러나 너희가 알기 내가 바라니, 모든 남자의 그 머리는 크리스트시나 여자의 머리는 그 남자나, 그 크리스트의 머리는 곧 그 하나님이시라(the head of Christ is God).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남자가 머리에 가지면 그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나. 벗은 머리에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여자는 그녀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니, 이는 그녀의 머리가 깎음을 받은(were shaved) 것과 똑같음이라. 이는 만일 여자가 베일을 쓰지 아니한다면 그녀는 또한 머리털을 깎으라 그러나 그 깎았기나 면도하였기가 부끄러우면 그녀는 베일을 쓸 것이라.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인 남자는 그 머리를 베일을 쓰게 빚지지 않음이라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the woman is the glory of man). 이는 남자가 여자에서이지 않고, 오히려 여자가 남자에서이기 때문이니. 이는 남자가 여자 때문에 창조되지 아니하였고 여자가 남자 때문임이라. 이 때문에 여자는 그 머리 위에 가지게 권위를 빚지니 천사들 때문이라. 그렇지만 주 안에서 여자도 남자 없이 아니고 남자도 여자 없이 아니니. 이는 그 여자가 그 남자에서 같이 이렇게 그 남자도 그 여자를 통해서나,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서임이라(are from God).”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남자의 그 머리는 크리스트시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 크리스트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1:3).
고대 문헌들에서 “머리”(케팔레)는 “권위”로 이해됩니다.7) “머리”는 “우두머리”, “출처”, “지배”, “근원”을 의미합니다(사 7:8~9). 파울은 창조 기사에 근거하여 남자와 여자의 관계와 질서를 말합니다.8)
“머리”의 두 주요 의미는 ‘근원’이나 ‘권위’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9) 비록 “머리”의 정확한 의미에 서로 일치를 보이지 않을 수 있을지라도 이 단락의 전반적인 진의는 명백합니다.10)
구약에서 “머리”라는 말(로쉬)은 “통치자”, “지도자”를 뜻하는데, 우선성의 개념과 연결된 권위의 개념입니다(고전 11:3).11)
“머리”는 전통적으로 위계를 가리키며, 권위적 머리를 뜻하는 것으로, 머리로서의 남자는 여자에 대해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머리”는 ‘지위’에 있어서 우월한 사람이나 통치자에게 적용됩니다. “머리”는 다른 누군가에 대한 권위나 우월의 의미로 쓰인 말입니다.12)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남자가 머리에 가지면 그 머리를 부끄럽게 하나, 벗은 머리에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여자는 그녀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니, 이는 그녀의 머리가 깎음을 받은(were shaved)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인의 풍속에 의하면 종이나 여자는 두건을 썼습니다.13) 여자는 밖에 나갈 때 면사포로 얼굴을 가려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으며 머리를 내놓은 채 밖에 나온 여자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자로 간주하였고 그녀의 남편에게는 그녀를 내쫓을 의무가 있었습니다.14)
당시에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아니하는 것은 수치로 여겨졌던 일입니다. 관습을 벗어남으로써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아니하였고, 문제는 벗은 머리에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이었습니다(고전 11:5).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인 남자는 그 머리를 베일을 쓰게 빚지지 않으나 그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the woman is the glory of man).
남자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만물을 정복할 직분을 받았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은 남자를 영화롭게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권세 아래 있다는 표로 머리에 베일을 써야 합니다.15)
이유는 남자가 여자에서이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에서이기 때문이니 남자가 여자 때문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 때문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남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된 것입니다.
여자는 머리에 가지게 권위를 빚지니 천사들 때문입니다(고전 11:10). 천사들은 인류가 창조될 때에 보았으므로 여자의 지위를 알고 있습니다. 천사들도 창조의 위계질서를 알고 있으니 여자는 머리에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주 안에 여자도 남자 없이 아니고 남자도 여자 없이 아니니. 이는 그 여자가 그 남자에서 같이 이렇게 그 남자도 그 여자를 통해서나,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서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11:11~12).
파울은 인권으로는 남녀가 주 안에 동등임을 지적합니다.16) 여자가 남자 없이 있지 아니하고, 남자도 여자 없이 있지 아니합니다. 여자가 남자에서 나온 것처럼 남자도 여자를 통하여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자든 여자든 모두 다 하나님에서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서 비롯하며(originate) 하나님에서 오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의 시작과 근원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3~15절에 “너희 자신 안에 판단할 것이라 여자가 덮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적당하냐? 남성이 긴 머리털을 가진다면 불명예임을 자연이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만일 여자가 가지면(have long hair) 그것이 그녀에게 영광이냐, 그 머리털은 덮개를 위하여 그녀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당시에 남성이 긴 머리털을 가진다면 그 남성은 남창을 뜻하였습니다. 남성이 긴 머리털을 가진다면 명예롭지 못한 것임을 자연이 가르칩니다.
그러나 여자가 긴 머리털을 가진다면 그것이 그녀에게 영광이 됩니다. 그 머리털은 덮개를 위하여 그녀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6절에 “어떤 자가 다투기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면 우리가 이런 관습을 가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교회도 그러한지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2. 성찬 때에 문란하게 행한 일들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1) 그들이 교회 안에 함께 되는 때에 분열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7~19절에 “이것을 명하는 내가 칭찬하지 않으니, 유익한 것 안으로 아닌 보다 나쁜 것 안으로 너희가 함께 되기 때문이라. 교회 안에 함께 되는 때에 분열이 있는 것을 내가 듣고 부분을 믿음이니. 이는 또한 당파(faction)들을 너희 안에 있어야 함이니, 인가된 자들이 너희 안에 분명하게 되기 위해서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장 17~34절은 ‘주(主)의 만찬에서의 분열’에 관한 것입니다.17)
그들이 교회로서 함께 오는 때에 파울은 그들에게 분열이 있음을 듣고 어떤 부분을 파울이 믿습니다(in part I believe it).
파울은 편지의 첫머리에 그들 안에 분열이 있지 아니할 것을 권고하며 그들이 같은 정신과 의견 안에 완전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고전 1:10). 이는 그가 그들 안에 분열들이 듣기 때문입니다(고전 11:18).
그러나 파울은 그 듣는 것을 다 믿지 아니하고 어떤 부분을 믿습니다. 우리는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지 아니하고 안 믿지도 아니하여야 합니다.
파울은 그들 가운데(among) 당파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니 이는 인가된 자들이 그들 안에 분명하게 되기 위해서라고 말하였습니다. 당파들이 있을 때는 인가되지 아니한 자들이 드러나고 분명하게 됩니다.
2) 파울은 그들에게 참된 주의 만찬이 없음을 지적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0~22절에 “너희의 함께 되는(come) 때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을 식사하기가 있지 아니하니. 이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만찬을 그 먹기 안에 앞질러서 처리하고 이 사람은(one) 굶주리는데 이 사람은(another) 술 취함이라. 이는 집들을 너희가 식사하기와 마시기 안으로 가지지 아니함이냐, 혹은 하나님의 교회를 경멸하고 가지지 아니하는 자들을 모욕을 주느냐, 무엇을 내가 너희에게 말할 것이냐 내가 칭찬할(praise) 것이냐, 이것을(In) 내가 칭찬하지 아니하노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
함께 되는 때에 주의 만찬을 식사하기가 있지 아니하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만찬이 아니라 단순히 식사하는 것에 불과하였습니다(고전 11:20).
이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만찬을 그 먹는 때에 앞질러 처리하고 한 사람은 굶주리나 다른 사람은 술 취함입니다(고전 11:21).
당시 교회에서 만찬과 주의 만찬을 따로 구분하지 아니하고 하였는데, 앞질러서 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늦어서 굶주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위가 낮아 육체노동을 하던 사람들은 일하다가 늦게 올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왔을 때 가진 자들은 이미 먹고 마셔서 술 취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만찬은 될 수 있겠으나 주의 만찬은 될 수 없습니다.
식사와 함께 주의 만찬을 행하는 이와 같은 풍습이 폐단을 가져왔기에 후에 카르타고(Carthage) 공의회는 이와 같은 풍습을 폐지합니다.18)
가난한 자는 집에서 가져올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부자는 과식한 것은 결국 불공평한 결과를 연출하고 분열이 생기고 당파들이 갈리게 하였고, 이런 좌석에서 주의 만찬을 거행할 수 있지 아니한 것입니다.19)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의 몸인 크리스트의 몸에 참여하겠습니까? 교회는 크리스트의 몸이며 빈부귀천의 구분 없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고전 11:22).20) 그들이 이런 식으로 식사한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경멸하는 것이었고, 먹을 것을 가지지 아니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3) 파울은 주께 받아들인 것을 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절에 “주께 받아들인 바를 너희에 넘겨주니,”라고 하였습니다.
파울은 계시로 성찬에 대한 주의 교훈을 직접 받았습니다.21)
예수님께서 넘겨지신 밤에 그가 빵을 취하셨고. 그가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나의 몸이니 나의 기념 안으로 이것을 행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고전 11:24).
저녁 식사를 하셨기 이후에 같은 방식으로 또한 그 잔을 말씀하셨기를 “이 잔은 나의 피로 새로운 언약이니 나의 기념으로 이것을 행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고전 11:25).
우리가 이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실 때는 주의 돌아가심을 선포합니다.
파울은 주의 만찬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소개하여 줍니다.22)
빵을 떼고 쪼갠다는 행위는 식사를 같이한다는 의미입니다(마 14:19). 특별히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을 가리킵니다(마 26:26).
예수님께서는 빵을 취하여 감사하셨고 쪼개셨고 주셨고 말씀하시기를 “나의 몸이라 나의 기념 안으로 행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룩 22:19).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예수님의 명령과 같이 그대로 실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빵을 쪼개는 일에 굳게 계속한 것입니다(룩 22:19, 행 2:42). 이 성찬이 고린도 교회에서는 교회를 경멸하는 행위로 변질한 것입니다. 성찬은 주께서 오실 때까지 주의 돌아가심을 선포합니다(고전 11:26).
4) 적합하지 않게 주의 떡을 먹거나 잔을 마시면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7~32절에 “적합하지 않게 빵을 먹고 잔을 마시면 그는 주의 몸과 피의 죄가 있을 것이나(shall be guilty). 사람이 그 자신을 검사하고 그 빵에서 그가 먹고 그 잔에서 마셔야 하니. 몸을 분별하지 아니하며 먹고 마신다면 자신에게 심판을 먹고 마심이라. 그러므로 너희 안에 약한 자들과 병든 자들이 많고, 충분한 자들이 자나. 우리 자신을 우리가 분별하였으면 우리가 판단함을 받지 아니할 것이나. 우리가 판단함을 받는 때에 주께 의해 징벌함을 받으니, 우리가 그 세상과 함께 유죄 선고함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성찬식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고 체험하는 은혜의 수단이 됩니다. 빵이 찢기듯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예수 크리스트의 살이 찢기셨습니다. 붉은 포도주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흘리신 붉은 피를 볼 수 있게 합니다. 성찬을 통하여 예수 크리스트의 고난을 더욱 생생히 기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빈부로 나뉘어서 그렇게 음식을 먹고 잔을 마신 행위는 적합하지 않게 빵을 먹거나 포도주잔을 마신 행위입니다.
적합하지 않게 빵을 먹거나 잔을 마시면 주의 몸과 피의 죄가 있으나. 자신을 검사하고 빵에서 먹고 잔에서 마셔야만 합니다(고전 11:27~28). 그가 그 몸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그 자신에게 심판을 먹고 마심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 약한 자들과 병든 자들이 많고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주께서 징벌하시는 이유는 훈련하시고 교육하시고 교정하시는 것이며 그 목적은 그 세상과 함께 유죄 선고함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5) 함께 되는 우리는 서로 기다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3~34절에 “함께 되는 너희는 서로에게 기다려라. 만일 어떤 사람이 굶주리면, 그가 집 안에 먹게 하라, 너희가 심판 안으로(for) 함께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그 남은 것들을 내가 오는 때에 내가 지시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33절과 27절에서 “먹는다”라는 말은 대칭 병행됩니다(고전 11:33).23)
27절의 “죄가 있는”과 34절의 “심판”은 병행됩니다(고전 11:34).24)
만일 호화로운 식사를 원한다면 집에 가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만일 주의 만찬에 왔다면 모두 참석할 때까지 먹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 모임이 진정으로 이루어졌을 때만 함께 먹을 수 있으며 그때 비로소 육적·영적으로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25)
1)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서울: 영음사, 1981), 11.
2)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1.
3)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1.
4)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1.
5)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1.
6) Kenneth E.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김귀탁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446.
7) Craig L. Blomberg & Jennifer Foutz Markly, 『신약성경 석의방법』, 류호영 옮김 (도서출판 대서, 2012), 284.
8) 목회와 신학 편집부, “고전 11장: 성만찬 음식과 신자의 자유”, 『고린도전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HOW 주석 40 (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2007), 167.
9) Craig L. Blomberg, 『고린도전서』, NIV 적용주석, 채천석 역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12), 239.
10) Blomberg, 『고린도전서』, NIV 적용주석, 240.
11) Andrew T.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42, 배용덕 옮김 (서울: 솔로몬, 2006), 244.
12) David E.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BECNT 성경주석, 조호영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674.
13)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62.
14) Joachim Jeremias,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한국신학연구소번역실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8), 450-451.
15)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63.
16)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64.
17)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697.
18)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67.
19)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67.
20) Robert Banks, 『바울의 공동체 사상』, 장동수 옮김 (서울: 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2007), 69.
21)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67.
22)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68.
23)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78.
24)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88.
25)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