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일암에서
정 명 수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해변이나 계곡 또는 야외수영장을 찾아 나선 때에 관광과 피서를 겸한 일정으로 남해를 바라다보고 있는 향일암을 찾아간 것은 몇 해 전 여름이었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여수에 당도하니 늦은 오후다. 역전에서 택시를 잡아 시내 중심가를 거쳐 돌산대교를 지나 구불구불한 이차 선 해안 도로를 따라갔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상큼한 해풍 내음이 물씬 풍기고 민박가옥들이 바닷가 산허리에 산재해 있다.
도로변 인근에는 해수욕장이 보이는데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택시기사는 이곳이 방죽포 해수욕장이라고 한다. 택시를 탄 지 10여 분이 지나 금오산주차장에 당도했다.
주차장 주변에는 수십 채의 모텔과 민박가옥이 즐비하고 싱싱한 횟집과 맛이 향긋한 독특한 갓김치를 파는 상인들로 가득하다.
이곳의 갓김치는 그 맛이 좋기로 전국에 소문 난 지 오래다. 탁 트인 산등성이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니 매표소가 보이고 표를 구하여 향일암으로 향했다.
향일암 입구 일주문에 이르니 좌대석에 용 모양이 새겨져 있고 현판에는 금오산 향일암이라고 쓰여 있었다. 계단 길을 따라 오르니 왼쪽에 향일암에 이바지한 분들의 공적비가 즐비하게 서 있고 그 주변 일대가 풍란재배단지라는 푯말이 관광객들의 주위를 환기해 준다.
원래 풍란은 고고한 자태를 지니고 바위와 나무에 뿌리를 내려 자생하는 희귀식물이다. 해풍이 불고 토질이 비옥하여 이곳에 자생하는 것일까.
주변의 나무들을 살펴보니 우람한 동백나무가 대부분이고 간혹 소나무도 눈에 띄었으나 볼품이 없다.
계단 길을 따라서 올라 큰 바위 사이로 난 비좁은 통로에 들어서니 대여섯 채의 아담한 암자가 반갑게 맞아준다. 드디어 향일암에 당도한 것이다. 해 질 무렵에 찾아간 향일암은 금오산 비탈진 산허리의 기암절벽 위에 자리하고 저 멀리에서 바라다본 탁 트인 남해는 더 넓은 세계로 나오라는 듯 나를 유혹한다. 푸른 바다 위에 이름 모를 섬들이 두둥실 떠 있어 풍광을 자랑하고 저녁 해가 서산으로 기울면 노을에 취할 것만 같다.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깔려있어 가슴 시린 일몰과 그 일몰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할 수 없어 아쉬웠다. 더구나 불덩이처럼 바다와 갯벌 대지를 벌겋게 물들이는 일몰도 찾아볼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향일암은 바다의 염 기운이 도량에 올라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침 해돋이는 관세음보살께서 방광하시는 모습이다. 달빛이 저녁 바다 위에 내리면 그대로가 극락세계의 황금연못으로 변하여 화엄경의 연화장세계가 펼쳐지는 곳이 향일암이라고 한 보살은 귀띔해준다.
대웅전에서 바라다본 남해의 검푸른 바다는 잔잔하다. 저 멀리 쪽빛 바다에서 건너온 시원한 바람은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심신을 위로하듯 스쳐 가며 답답했던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대웅전은 사찰의 중심이 되는 전각으로 부처님 스스로 깨달음을 깨달아 얻어 다른 사람도 깨닫게 하는 곳이다.
관음 성지에서는 번뇌에서 시달리고 지친 중생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닦으면 보살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로 인도해 주신다고 한다.
또한, 해수 관세음보살은 관음전 우측 남해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남해를 오가는 수많은 배의 안녕과 중생의 생명을 보호해주는 상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석상이다.
관음전 뒤편 우측 낭떠러지 산등성이에 두부 모양으로 생긴 흔들리는 큰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를 불경 바위라고 부르는데 이 바위를 한 번 흔들면 경전 한 권을 읽은 공덕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허리에 올라 암자 주변의 자연경관을 바라다보니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새 암자에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이른 새벽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초의 햇살과도 마주 대할 수 있으련만 촉박한 일정은 갈 길을 재촉한다.
오랜만에 가져 본 먼 나들이다. 숨 막힐 듯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져본 소중한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기회가 다시오면 어디론가 떠나가 보련다.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