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라는 이름의 번지없는 주막에 오늘은 지번을 매겨보기로 합시다. 그런데 번지를 붙이려니까 문제가 많네요. 어디 판자촌 문제가 하나 둘이겠습니까.
먼저 엿장수 가위 맘대로 번지를 붙였군요. 같은 지번에 서너개씩 다른 번지가 붙여지기도 했습니다. 민화에서 보면 똑같은 그림이 장수 송축 그림, 무덤그림, 혹은 상여그림이 되거든요.
또 번지가 애매해서 도대체 어디를 찾아가라는지 알수가 없더라 이거예요. 말하자면 굴뚝 앞집, 대문 뒷집 그런 식이예요. 예를 들어 산수도라는 것이 있어요. 호랑이가 그려져 있어도 산수도, 옛 성현이 소요하는 그림도 산수도라는 식이지요.
또 하나 문제가 있다면 도대체 무슨 동 몇 번지라고 붙여놓기는 했는데 찾아가 보니 글쎄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개집이라거나 집도 절도 없는 골짜기라는 식이지요. 이를테면 시화 즉 시를 곁들인 그림을 걸어놓고 윤리화라고 부른다면 그 얼마나 황당할 뿐만 아니라 썰렁하기까지 하겠어요?
에이, 설마 민화라는 이름 아래 분류된 것만 해도 몇십년이 되는데 그러랴... 하시죠. 그림을 한번 봅시다. 과연 제대로 지번이 붙어 있는지, 그래도 되는 것인지, 우편물이 배달이 될 수 있을지 말이죠.
1. 수성노인도
이 그림은 어떻게 분류가 될까요? 명화 (冥畵)라 부르는 경우가 있군요. 분묘벽화 고구려 고분벽화, 상여그림들을 명화라 했습니다. 수성노인이 들으면 내가 염라대왕인줄 아느냐고 기겁을 할 이야기입니다.
이 그림은 수성노인도입니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합니다. 남극성 남극노인성이라고도 하지요. 송나라 철종때 머리 크기가 몸크기만한 노인이 나타납니다. 술만 취하면 내가 수성인데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라고 지꺼리고 다녔다구요. 보통 손에 선도 복숭아나 불로초를 들고 지팡이 끝에는 사람의 수명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걸고 있다고 했어요. 이 그림에서는 선도복숭아를 동자들에게 들려서 어딘가로 가고 있읍니다. 어디로 갈까요? 아마 오늘 회갑연을 맞은 노인네에게 오래 오래 사십사 하고 빌러 가는 모양같군요. 그런데 이 나무는 왜 이렇게 꼬였지? 무슨 글자 같지 않아요? 아하, 나무가 목숨 수 (壽)자 형상으로 꼬였군요. 그러니까 이 그림은 상여그림이나 분묘그림과는 다르겠지요?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이 수성노인에게 잘 보여서 오래 오래 살게 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걸 무덤그림이라 부르게 되면 장수라는 번지에는 어떤 분류를 해주죠? 하나의 지번에는 하나의 번지가 붙여져야하지 않을까요?
2. 소상팔경도
이건요? 교양상징화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군요. 교양상징이라 아마 이곳에 문화재라도 있어서 책이라도 하나 끼고 구경가는 곳인가 부죠. 아니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처럼 이런 그림을 하나 압구정동 아파트에 걸어 놓으면 무식한 졸부라는 손가락질을 면하게 해주는 그림인가봐요. 그런 그림도 있어요?
烟寺暮鐘
山市淸嵐
자 교양상징화라고 분류한 그림을 봅시다. 이 그림은 소상팔경도입니다. 중국 호남성에 있는 동정호와 아울러 소강 상강이 합쳐지는 곳에 있는 여덟개의 경승을 말하는데요. 경승이란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 경우에는 명승지라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명승지란 이름이 알려진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글자가 있습니다. 읽어볼까요? 이건 연사모종이고, 저건 산시청람이군요. 연사모종은 원사모종이라고도 합니다. 먼 절 혹은 저녁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는 먼절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지명이 없죠? 산시청람은 산골 마을에 삽상한 바람이 분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도 역시 지명이 없어요. 그러니까 경승이지요. 관동팔경이나 금강산일만이천봉은 명승이구요.
그런데 왜 이 그림이 교양상징화가 되었을까? 그림의 떡이라고 가볼 수 없는 중국의 풍광이되 내가 이름은 알고 있느니 하는 것을 뽐내기 위한 그림일까요? 이 그림은 명나라 송적 (宋迪) 의 시를 그림으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명종의 명에 의해 화원인 이광필 (李匡弼)이 처음 그렸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교양상징화라... 왕이 그리라 했으니 교양있는 그림인가요? 이 그림은 기방, 즉 기생방에 많이 걸려 있다 했습니다. 아마 기생이 교양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뽐내기 위한 그림인가요? 아무래도 번지가 잘못 붙여진 것 같죠? 교양상징화라는 분류항목에서 목이 쉐도록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군요. 다음 그림도 마찬가지일까요?
3. 송하문동자도
아하, 이 그림은 윤리화라 되어 있군요. 노인에게 아이가 먼산을 가리키는 걸 보니 노인에게 꾸짖음을 당한 아이가 뭘 변명하나봐요. 그런가요? 시가 있군요. 읽어볼까요. 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라. 어려운 글자는 없죠?
이 그림은 「소나무 아래 동자에 묻는다」 라는 당나라 시인 가도의 시에서 따온 그림입니다. “ 솔 아래 동자에 물으니 스승은 약초 캐러 가셨단다. 이 산중에 있다고 하나 구름이 깊어 어딘지 모른다. ” 라는 시입니다. 운치가 있고 맛이 있지요? 세속에 찌들어 있다가 이런 시를 하나 읽으면 마치 솔바람을 이마에 쐬는 것같은 청량감을 맛보게 됩니다. 어느날 불현듯 정든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지팡이를 짚고 홀연히 집을 나섭니다. 동구밖 소나무 아래서 시동을 만나지요? 동자가 가리키는대로 구름낀 산을 봅니다. 저 구름안에 신선처럼 세속을 등진 친구가 어쩌면 안주하려고 더덕이나 도라지를 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올지 알구요.
그런데 이 그림이 글쎄 윤리화랍니다. 윤리라... 네 선생이 어디 있느냐 하면 공손히 손을 들어 ‘ 저 산속에 있는디 어딘지는 모르겠구만이라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 윤리인가? 예고도 없이 불쑥 친구 집을 찾아 가면 개밥에 도토리 신세를 면하지 못하느니라 하는 경고라도 담고 있나요?
글쎄 이런 식이라면 판자촌을 양성화한다고 칩시다. 우편물이 제대로 배달이 되나, 전기 수도 공사를 할 수 있나, 아니 불이 나도 불자동차 하나 들어갈 수 있겠어요? 그래서 생각합니다. 아예 철거해버리고 나무를 심어 원래의 무주공산으로 돌려버려? 그건 학생들 데모 꺼리를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렇다고 아예 살다가 지치면 다른 데 가서 살아 하고 내팽개쳐? 그건 국민소득 1만불 시대에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재개발입니다. 도시계획에 따라 길도 내고 편이시설, 복지시설을 갖춘 주거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자, 도시개발계획서 가져오세요. 도장 찍어 드리지...
원방각 그림
다시 보여드린 그림을 생각해봅시다. 첫번째는 사람의 목숨을 관장하는 별의 이야기입니다. 하늘의 이야기지요. 두번째는 땅위에 있는 경승을 노래합니다. 땅 이야기지요. 세번째는 자연에 합일해서 산다는 가치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뭔가 반짝 하는 것이 없습니까? 천지인 ( 天地人) 즉 하늘 땅 인간의 이야기로 나누어 분류한다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천지인을 담고 있는 그림의 이름은요? 여기서 판자촌 철거후 건설할 신도시 이름 하나 지어 봅시다. 여러 사람들이 여러 이름을 지었지요. 겨례그림이라 지은 사람이 있군요. 우리말이라니 듣기는 좋은데 도화원 화원이 그린 원화는 그럼 다른 민족의 그림인가요? 천화 (天畵)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그림이라.. 뜻은 좋은데 하늘을 새파랗게 칠한 그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그래서 천인화(天印畵)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하늘 천 도장 인, 그러니까 하늘의 도장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의 형상과 뜻을 문자로서 담아낸 것이 천인이라면 그것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은 천인화라 하면 되겠군요? 그런데 왜 천인인가요?
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이 환인의 명을 받들어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 때 가져온 천부인이 삼재 (三才)를 표현한다 했습니다. 바로 천지인이였지요. 원 방 각(圓 方 角) 으로 상형합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고 사람 혹은 사람사는 세상은 각지다 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천인화라는 이름 아래 천 지 인의 분류에 의해 민화라는 판자촌을 재개발할 수 있겠군요. 그럴 듯 하지요?
그러나 천인화라는 말을 민화 대신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도는 없습니다. 한 번 대중의 머리속에 세뇌된 이름은 고치기 어렵거든요. 이 프로그램에서는 혼돈을 주지 않기 위해 민화라 부르지요. 그러나 천 지 인으로 분류 해설합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이 끝날 때 왜 이 그림이 하늘의 뜻을 도장찍듯 그려낸 그림이 되는지 아시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자 명명기념으로 도장하나 찍어드리고 숙제 하나 드리지요. 아이가 볼에 손가락을 대고 꼭꼭 누릅니다. 곤지곤지라 합니다. 뜻이 뭐지요? 다음 시간에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