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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적 하나님이라는 말이 맞는 말인가?
1. 교회에서 사용하는 인격적 하나님이라는 의미
새국어대사전(한국도서출판중앙회 1997년간) 에선 인격을 네 가지로 구분해 정의하고 있다. 첫째, 사람의 품격, 자격, 둘째, 법률적 행위의 주체, 셋째, 개인으로서 독립할 수 있는 자격, 넷째, 자각이 있고 도덕상의 책임을 질 만한 자격이 있는 개체라는 것이다. 또 일반적으로 인격적이라고 말할 때는 품성, 기질, 매너 등이 도덕적이며 이성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본능에 의존하지 않으며, 비이성적이거나 반윤리적이 아니며, 사회적 규범을 잘 따르기에 동물과 대비해 인간다운 기본 품격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오늘날 교회가 “인격적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배경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하나님은 우상들과는 달리, 자신의 거룩하신 뜻을 결정하시고 섭리하시며 이루어 나가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인격이 있듯이 하나님에게도 인격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인격체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인격적으로 대하신다는 표현을 많이 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랑이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에게 돌아오라고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이다.
교회가 인격적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바를 신학적으로 정리한 용어이지, 성경에서 인격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이 아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표현하기 위해 도입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인격적인 하나님이라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① 우상이 아닌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말하지도 못하는 우상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대화를 하고,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우상은 신적 존재가 아닌 물건이나 무형적인 것에 불과하다. 인간들이 우상에게 신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상과 대비하는 차원에서 사용한 인격적 하나님은 그야말로 인간 중심의 사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가치를 뛰어 넘는 분이시다. 이사야 55장 8-9절에서『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②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존재이므로, 인간의 인격성을 유추해 볼 때, 하나님도 인격적일 것이라는 생각
창세기 1장 26-27절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교회가 말하는 바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되었으며,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품성과 속성 등에서 닮게 창조되었다는 것이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형상은 하나님에게 지정의가 있듯이 인간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인격이란 지정의뿐만 아니라 영혼도 포함되어 한 개별 인간의 총괄적 특성이 된다고 말한다. 인격적이란 동물과 다른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면 당연히 선하고 의롭게 행하게 되고 또 인격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러나 선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즉, 성경적으로 인격적인 여러 모습 중의 하나일 뿐이다 라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거룩한 품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품성이 아니라, 영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은 최초의 사람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도『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한복음 14장 9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담은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했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아담은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원래 하나였는데, 그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그리스도를 떠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만들어 그들이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라고 그들을 흙속에 가두어 인간이 되게 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은 모든 악한 영들에게 육체라는 몸을 나누어주게 된다. 그래서 아담으로부터 하와가 분리되어 나온 것 처럼, 영들이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태어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18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본래 하나인데, 나뉘어져서 한 부분이 되는 것이『혼자 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태어났는데,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가? 교회 사람들은『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는 말씀으로 인하여 사람을 오늘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동일한 존재로 오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첫사람은 아담(그리스도의 표상)이다. 그는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기 전의 사람이다. 즉 남자와 여자로 태어난 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신 영이 죽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2장 24절에서『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여기서 부모는 하나님을 의미하며, 남자는 남자가 된 아담(그리스도의 표상) 여자는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이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사람이 된다는 말씀이다. 즉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하나님의 형상은 영을 의미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영은 죽어있다는 것이다. 영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말해주신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첫사람 아담은 육의 몸으로 모든 영들을 세상에 데려와 각자의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죄로 인하여, 죄인들이 되었으며, 마지막 아담은 영의 몸으로 택한 자의 영들을 데려가 의인들이 되게 하셨다. 첫사람 아담(죄인)과 마지막 사람 아담(의인) 사이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육체적 죽음이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 아담의 죽음은 육체적 죽음과 동시에 죄의 죽음이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의 죽음에 연합되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도 죄의 죽음이 발생한다.
죄인들이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죄의 죽음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첫사람 아담이 데려와서 (죄가 죽고), 마지막 아담이 모든 영들을 데려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죄가 죽어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의 죽음을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그들도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죽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있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이런 차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인격적인 품성으로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영이다.
교회는 신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영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 육은 무익하니라』오늘날 교회는 인간의 정체성을 영과 혼과 육의 전인적인 것으로 애매모호하게 설명한다. 육이 포함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영이 육체 속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원죄를 말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육에 주신 영이 태어나자 말자 더렵혀진 존재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이 완전하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이 인간들에 의해 훼손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영이며, 영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흙인 육에 갇혀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영을 살리고 싶어하신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에서 발생한 이야기의 모형인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하여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성령의 인치심으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약속을 부여받는 것이다. 성령 체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났다거나, 천국을 가보았다거나 하는 말들을 하기도 한다. 이 땅에 살면서 죄인들이 해야 할 일은 십자가에서 날마다 죽노라를 부여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③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격성을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14장 8절에서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라고 예수님께 말했는데, 예수님은 14장 9절에서『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격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드러난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음, 곧 감정이심을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불의한 인생들에 대한 예수님의 거룩한 의분, 또 불쌍한 인생들에 대한 한량없으신 긍휼하심은 바로 인생을 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감정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 모든 감정은 사랑에서 기인된 것임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사랑하시되 독생자까지 보내 주셨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둘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완전한 지성을 보여 주셨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지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마음속에 스쳐 가는 생각까지 즉각적으로 아시던 주님의 통찰력은 모든 인간들의 지혜를 초월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지성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를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인격적 존재라는 의미는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존재라는 뜻이며,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의 의지, 그 자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 세상에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인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지만, 잘못된 표현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시며, 또한 자신이 스스로 아들이라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교회는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삼위로 역사하신다고 말한다. 삼위는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그런데, 각각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한분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세분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이렇게 헷갈리게 말해도 되는 것인가?
요한복음 14장 8-9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아버지와 아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0-11절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역을 앞두고 기도하러 감람산에 올라가셨다. 요한복음 17장 10-11절에서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니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이다.
교회의 말대로 높으신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 허물과 죄로 뒤덮힌 인간과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킨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가 되는 길이 구원의 길이 된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라는 혼을 부인해야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떠난 영들과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한 핵심인 것이다.
④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전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이루셨다. 하나님 앞에서 죽어야 할 존재인 인간이 스스로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었음을 믿을 때 하나님이 사랑으로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이다.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음에 이르게 해 달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옛사람이 죽지도 않으면서, 날마다 죄만 용서해 달라고 빌고 있는 것이다. 공의의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무참하게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죄인이 바로 저 예수가 바로 나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죄인의 죄를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한다.
2. 인격적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인가?
위의 네가지의 경우를 통해서 살펴보면 인격적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용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격을 넘어서는 신격의 하나님이다. 인간들에게 자신을 나타낼 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게 표현되어 질뿐, 인간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인간은 흙으로 된 육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영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오직 육의 몸을 벗고, 영의 몸을 입을 때 가능한 일이다. 육의 몸을 벗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격적이라는 용어는 육적인 몸을 가진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교회는 육과 혼과 영의 전인적인 인간으로서 영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면 교회 사람들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마지못해 하나님과의 은밀하고도 개인적인 체험이므로 특별히 성령님의 간섭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고, 제 삼자가 아무리 신령하더라도 사람이 도와준다고 해서 이뤄질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남에 있어 어떤 매뉴얼이 있어 그대로 따르면 만나질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을 얻는 체험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물론 크게 보아 성경공부, 기적적인 간섭으로, 전도를 통해,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로 등 몇 가지로 분류는 되지만 개인으로선 자기만의 고유의 체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애매모호한 방법으로 말하면서 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났는가를 물어보는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전제로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생각한다. 즉 하나님은 인간들이 죄인일지라도 인격적으로 대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먼저 죽어서 돌아오라는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의 죽게 하셨으며,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죽은 자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은혜를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덕분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영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육의 몸을 벗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를 바라며,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를 바라는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인간 중심으로 낮추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될 수 없는 신과 인간이라는 관계를 고정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격적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성경에 비추어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육의 몸이 죽었음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영의 몸을 입혀주시는 것이다. 성경은 죄인들에게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되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만 구하고, 그래서 신비한 체험을 했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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