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종 고마워~~~! 바쁠텐데 이런 수고까지 하게 해서 미안하다. 사진 올리는거 간단할거 같은데 빨리 좀 배워야겠다. 현성, 상민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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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사람, 옛날에는 날아갈듯한 몸매를 자랑했는데
이제는 애칭 Monshell(몽실)이라 불리움 받고 있다.
푸르내와 우리 옛 교인 김태흥, 여기서 미술 공부
지금은 인사동 "인사갤러리"운영.
정성수의 친구이기도 하지
경주 한평희의 "거구장" 앞에서 평희의 아내와 함께
음식맛 참 좋더라. "계수님 고마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
나는 늦둥이 하나를 보았습니다.
딸만 둘이라 아들 하나 갖고 싶은 욕심으로
뒤늦게 하나를 더 보았는데 또 딸이었습니다.
이름은 “푸르내”- “푸른 냇물”이란 뜻입니다.
산을 좋아하시고 물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께서
큰 아이에게는 “푸르메” -푸른산,
둘째에게는 “아르메” -아름다운 산으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셋째에게는 냇물시리즈로 가셔서
“푸르내”라 주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생전에 말씀이,
“경희야, 하나 더 나아서 ‘아르내’라 하자꾸나” 하셨었지만
그런 용기까지는 못 가졌었습니다.
푸르내는 둘째와 나이 차이가 열 한 살이 됩니다.
89 차 정환이 보다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지요.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가에 대해서는
차 정환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그 아이 때문에
산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해
뒤늦게 영어이름을 “Joyce" 로 바꾸어줄까 생각까지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언제 크나, 언제 크나 했는데
금년 4월 대학교 1학년을 마쳤습니다.
미쉬간 대학교인데 그 학교는 그렇게 학년이 일찍 끝나더군요.
마침 시카고 목사 부부합창단의 한국연주 때문에
우리 부부가 함께 가는데 막내도 데리고 갔습니다.
대견스러운 것은 연주회 내내 불평 한마디 없이
잘 따라다니며 모든 궂은일을 잘 해 주었습니다.
공식일정을 마친 뒤
집사람과 집사람의 형제 네 명, 그리고 장모님이
일본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빼 놓고요.
일제시대에 일본유학이 꿈이셨다는 장모님의 그 소원을
늦게나마 여행으로 풀어드리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나는 우리 막내에게 한국 지리공부와
역사공부를 시켜주려 경주 여행을 계획 했습니다.
그 빠르다는 KTX 를 탔습니다.
정말 좋더라구요.
시카고를 비롯한 미국중부에는 산이 없습니다.
서울 남산의 반만큼 되는 산도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로 하루 종일을 달려도
산 구경을 할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기차 창문으로 계속 접혀져 들어오고
밀려 나가는 산과 골짜기, 언덕과 들판,
강과 평원---”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나의 기분과 느낌이 그런데
우리 푸르내에게는 어떠했겠습니까?
계속 "Beautiful! Wonderful! " 을 연발하면서
카메라 셧터를 누르기에 바쁩니다.
저는 우리 막내와 이러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 되는지 몰랐습니다.
옛날에는 대구까지도 대여섯시간 걸린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1시간 50분만에 동대구역에 도착 했습니다.
그랬더니 경주에 있는 “한 평희”가 동대구역으로
차와 사람을 내 보냈더라구요.
“아빠 누구야?”
“응, 아빠 옛날 제자가 보낸 사람이야”
경주에 도착해서 졸업 후 처음으로 평희를 만났습니다.
재학시절에는 합창반으로 매일 점심시간에 만나던
반가운 친구입니다.
그 때에는 몸이 가늘고 말수가 적었지만
아주 열심히 합창활동을 했는데
중년이된 평희는 이제 키도 아주 크고
적당히 살도 찐것이 풍채가 좋았습니다.
평희를 따라 평희가 운영하고 있는 “거구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깨끗하고 우아하게 차려놓은 멋있는 식당이었습니다.
그 옆으로는 “아리원” 이라는 웨딩홀도 있구요.
식사를 잘 하고 나니 Hilton 호텔에 짐을 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한 평희가 직접 차를 몰면서 경주시내,
토함산, 석굴암, 불국사, 천마총 등등 종일
신나는 구경을 시켜 주었습니다.
저희 막내는 가는곳 마다, 보는것 마다
“Oh! my goodness! 와! 아빠 참 좋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운거 기분 좋다”
하면서 함성이었습니다.
그날 밤,
저희 막내가 하는 말
“아빠, 오늘 구경 시켜준 그 아저씨 누구야?”
“응, 아빠 옛날 제자”
“제자면 아빠가 선생님이셨을 때 학생?”
“그래, 맞아”
“그런데 아빠, 옛날이면 몇 년 전이야?”
“한 35년 전쯤 되겠다”
“뭐라구요? 35년 전? 그런데 그 아저씨가
어떻게 아직까지 아빠를 기억해?
그리고 왜 아빠한데 그렇게 잘 해?
혹시 아빠가 옛날 그 아저씨한데
특별하게 잘 해 준거 있어?”
여기 부터는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글쎄, 배재라는 학교가 그런 학교란다.
내가 그 때 그 아저씨한데 특별하게 잘 해 준것
전혀 없지만 원래 배재란 학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사이가 각별해서
서로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는 학교란다”
그랬더니 저희 막내,
“No, no, I can not understand” 를 연발하면서
“아빠, 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앞으로 35년 후에
나를 가르친 선생님을 만나도 나는 기억할 수가
없을거야, 정말 나는 그 때 까지 고등학교 선생님
기억 못해. 그런데 멀리에 까지 데리러 오구
호텔까지 잡아주구 하루 종일 직접 구경 시켜 주구
맛있는 밥도 매번 사 주구 난 이해할 수 없어”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태어나고 생활하며 공부한 푸르내에게
배재인들이 갖고 있는 그 끈끈한 정은
결코 이해 할 수가 없는 우리만의 문화이고
우리 배재인들 만이 갖는 특별한 정서라 하겠습니다.
나는 그저 가슴 뜨겁게 밀려오는 아우들의 사랑에
가슴만 징---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푸르내에게
“푸르내야, 고등학교 때 친구들하구 선생님들
얼마나 좋으냐, 너도 잘 기억해 두면서
그렇게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랬더니,
“아빠, 나는 그런 마음이 안 생기는데.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볼께요”
다음날 아침 9시.
전화가 옵니다.
포항에 있는 “한 동신” 이었습니다.
호텔 식당에서 동신이와 평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신이는 옛날 밴드부에 있을 때는 자그마 했는데
이제는 덩치도 좋고 풍채도 아주 좋았습니다.
포항에 있는 “세명 기독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합니다.
평희와 작별을 한 후
동신이차를 타고 포항을 향합니다.
막내가 귓속말로 묻습니다.
“아빠, 누구?”
“아빠 제자”
“What? another 제자?”
우리막내 말을 못합니다.
포항에 도착 해서는 평희가 미리 시간을 잡아논듯
말로만 듯던 “포항제철” 구경을 하였습니다.
땅덩어리는 비록 작지만 이 작은 나라가
세계를 상대로 당당하게 큰 일을 주도해 나간다는 것이
새삼 뿌듯하게 느껴졌습니다.
포항제철 둘러보는 동안 내내 바쁜 가운데서도
88 박 재하가 함께 하면서 이것저것 아주 따뜻하게 도와줍니다.
한 동신이 마련한 점심자리에는 포항제철에 있는 90 이 종섭,
91 변선민 등이 자리를 함께 해 주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는 바쁜 동신이가 포항 구경을 시켜 주고
또 자기 집에까지 데리고 가서
산자락에 지어진 그림 같은 자기 집 구경도 시켜주며
아름다운 아내 소개도 해 주었습니다.
그 날 오후 서울로 돌아오는 KTX 안에서
푸르내가 다시 질문을 합니다.
“아빠, 배재라는 학교는 어떤 학교야?”
나는 배재의 역사를 간추려 설명해 주었습니다.
푸르내가 하는 말,
“아빠, I'm proud of you,
아빠가 그런 학교를 나왔다는 것,
아빠가 그 학교에서 가르쳤다는 것,
그리고 그런 멋진, 좋은 제자가 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다”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시
89 모임으로 달려갔습니다.
바쁜 가운데도 함께 모여 준 10여명 89 친구들
푸르내가 귓속말로 묻습니다.
“아빠, 이 아저씨들은 누구야? 또 제자?”
“그래, 맞다”
“경주에 그 아저씨들 하구 친구들이야?”
“아니, 그 아저씨들 보다 일년 아래”
“Oh! my--, 그러면 아빠 제자는 모두
몇 명이나 되는거야?
“글쎄, 몇천명 잘 되겠지?
내일 저녁에는 여기 아저씨들 보다 2년 아래인
91회 제자들과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단다”
“와, 아빠는 참 행복하겠다”
89의 모임이 끝나고는 이강우를 따라 강우집 구경을 하였습니다.
딸을 시카고 Northwestern 대학교에 보낸 강우 부부는
그 귀여운 딸아이가 많이 보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 깊어가는 고향의 밤
강우의 차를 타고 수원까지 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의 문화와 정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우리 막내 푸르내에게는 더 없이 귀한,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시카고에 돌아온 며칠 후
나는 고등학교때 자기 앨범을 꺼내 보는
막내를 보았습니다.
“푸르내 뭐해?”
“응, 나 고등학교때 선생님 찾아보는 중이야,
앞으로 35년 후에도 내 선생님 기억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중이야”
여러분의 행복한 친구 이 경희
말로만 듣던 화인치과에서 이를 고치고 나서
마침 도상민이 거기에 와 있더라구
그래서 건종과 상민 함께
경주 불국사에서
우리 푸르내를 매료시킨 한국의 지붕
푸르내가 응용미술을 공부하기땜에
한국의 고적을 많이 즐기더라구
경주 힐튼 호텔 앞에서 평희와 동신 함께
사실 그 호텔은 여기서도 많이 비싼 편이라
내 수준은 아니거던. 그래 이거 어떡하나 하구
내심 걱정을 했는데 평희가 다 해결을 했더라구
"평희 고마워~~~"
포항제철 구경을 마치고 식당에서
식당에는 동신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고
포항제절 내내 함께하며 안내해 준 88 박 재하
그리고 포항제철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90 이종섭 91 변선민이 함께 해 주어 더욱 고마웠지.
포항 구경 후 동신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에서.
동신 아내의 아름다운 취향이 물씬 풍겨지더라구.
언제나 한결같은 "두사람의 다정한 포즈" 보이지?
우리 함께 배워가자구!
"계수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동신이 살 좀 빼 주세요~~~"
한국 방문했던 시카고 부부합창단
서울 명성교회에서 찬양하는 모습
지휘는 우리교회 성가대 지휘자 전성진목사님
건종 고마워~~~! 바쁠텐데 이런 수고까지 하게 해서 미안하다. 사진 올리는거 간단할거 같은데 빨리 좀 배워야겠다. 현성, 상민 반가워!
솔봉이도 ~ ^&^
목사님 다녀가신 사진 뵈오니 감회롭습니다. 평희, 동신 목사님 모시느라 애썼네(웬 주제?)
목사님 좋은 여행을 하셨군요.푸르내에겐 더 없이 좋은 여행이 되었겠네요.늘 건강하십시오.
"아르내"라 ...... 제가 한번 ~~ ^&^
형님 목사님, 선생님!! 제목이 뭡니까?.ㅋ. 바쁠땐 못보고 지날뻔 했지요... 좌우간 현성까지 대번 나타나는걸 보니 역쉬~~ 워리 패쵀학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