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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갈 6:6
제목: 좋은 스승과 제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
5월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을 생각하며 좋은 스승과 제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면서 은혜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스승’을 ‘자기를 가르쳐 주는 사람. 선생’이라 민중국어 사전에 정의 되어 있습니다.
‘선생(先生)’을 한자풀이 하면, 먼저 선(先)에 날 생(生)입니다.
먼저 태어나 인생을 살면서 배우며, 깨닫고 얻은 지식과 지혜를 자기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분을 우리는 선생(스승)이라 합니다.
스승의 날 유래는 1963년 5월 26일에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5월26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고 사은행사를 했습니다.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변경하여 각 급 학교 및 교직단체가 주관이 되어 행사를 실시해왔습니다. 1973년에는 정부의 서정쇄신방침에 따라 사은행사를 규제하게 되어 ‘스승의 날’이 폐지되었으나, 1982년 스승을 공경하는 풍토조성을 위하여 다시 부활됐습니다. 스승의 날이 제정 된지 52년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좋은 스승과 제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면서 은혜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아담을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일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제일먼저 교육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인간은 교육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교육에 의하여 인간이 되어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여 임신을 하면 바로 태교를 하지 않습니까?
다른 동물들에게도 교육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은 교육보다 본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큽니다. 물론 사람에게도 본능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사람은 본능보다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훨씬 더 큽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동물은 보통 몇 달만 지나면 자기 나름대로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몇 십 년을 교육을 시키고 훈련을 시켜야만 자기 나름대로의 역할을 합니다. 동물, 우리에게 친근한 송아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걷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최소한 일 년이 있어야 걸을 수 있습니다.
돌이 되기 전에 걷기 시작하면 빨리 걷는다고 좋아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웃기는 일이죠.
웬만한 동물은 일 년이 되면 거의 성년이 다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10년 20년 교육을 받아가면서도 인간은 무서운 존재로 변모해 가는 모습을 봅니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면 과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만약 사람에게 교육이 없다면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인간에게는 교육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가 받는 교육의 내용과 수준에 의하여 평가되며 그 평가는 거의 틀림없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받은 교육의 수준과 내용이 높은데 삶의 수준이 낮은 사람이 될 수 없고 그가 받은 교육의 수준이 낮은데 높은 수준의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운 대로 나온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생입니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느냐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느냐가 중요합니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선생(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좋은 선생이란 어떤 선생일까요? 사람들은 보통 좋은 선생은 실력이 있는 선생이라 합니다. 그러나 실력이 있다고 누구나 다 좋은 선생은 아닙니다.
실력만큼이나 아니 실력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인성인 인격입니다.
왜냐하면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선생과 학생 사이의 좋은 인간관계인데 인격에 문제가 있다면 학생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선생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실력과 훌륭한 인격을 갖춘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정말 축복입니다. 존경하는 스승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잘못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선생님과 학생의 좋은 관계가 이루어지게 하는데 선생님의 책임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학생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는 선생이 되기 위하여 훌륭한 실력과 인격을 갖추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이 훌륭한 실력과 인격을 갖추지 아니하고서는 학생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 있습니다.
영락교회의 은퇴하신 장로님으로 대광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을 역임하셨던 분이 계십니다. 그 장로님은 학생들에게 아주 엄하여 한 때는 호랑이 선생님으로도 불렸던 분이신데 어느 날 고등학교 1학년 영어 시간에 들어가셔서 한 학생에게 영어 교과서를 읽게 하셨답니다. 그 학생이 영어 교과서를 아주 잘 읽자 지나가는 말처럼 '너 참 발음 좋다'라고 칭찬을 하였답니다.
그 호랑이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은 그 학생은 훗날 대학교의 영어교수가 되었습니다. 교수가 된 후 그 장로님을 찾아와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 '너 발음 좋다'는 칭찬의 말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어 영어에 더욱 취미를 갖게 되었고 결국 영어 교수까지 되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의 칭찬의 그 말 한마디가 그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선생님과의 좋은 관계가 그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영어 과목을 좋아하게 되었고 결국은 교육을 잘 받아 성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훌륭한 스승, 최고의 스승 한분!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시죠.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처셨나요.
요13:13-15을 읽어봅시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그 유명한 세족식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본보여 주신 일이 발 씻어준 것 뿐 일까요? 그래서 우리는 발을 씻어주는 일만 행하면 되나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본보여 주신 일은 많죠.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본보여 주셨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으시고 한없이 나누어 주셨던 주님의 그 사랑,
우리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물질을 쌓아 두셨나요? 아니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셨던 주님!
지극히 작은 자들과 소외 받는 자들에게 다가가셨고, 외롭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주셨으며, 아파하는 사람들의 곁에 있어 주시며, 심지어 가족의 죽음 앞에 슬퍼하며 고통하는 저들에게 죽은 자를 살려 한없는 그들을 위로하며 기쁨을 주셨던 주님!
이런 주님의 모습과 그 행하신 것을 본받아 살면서 가르치는 선생, 정말 훌륭한 선생 스승입니다. “너희에게 행하게 하려 하여 분을 보였노라.”
이 말씀을 우리는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 사이의 좋은 관계가 교사의 실력과 인격만으로 되어지는 것은 또 아닙니다. 선생과 학생 사이의 좋은 관계가 되지 않는 중요한 책임이 학생에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구에게나 원죄적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 원죄적인 본능이 발전하여 사람은 마음에 부모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 어른 섬기기를 싫어하는 마음, 스승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어른과 스승을 거부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기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며, 공부하기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마음에 스승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공부를 열심히 그리고 잘하는 학생들은 대개가 스승과의 관계가 좋으며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대개가 스승과의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고 좋은 인격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스승을 존경하고 섬기는 법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녀들이 스승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어 그 관계를 통하여 교육이 아주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어른들이 말씀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게 아이들을 가르친 것은 얼마나 지혜로운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권리를 앞세워 인권은 주장하면서도 의무와 책임은 등하신시 하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교권이 무너진 오늘의 현실, 누구에게 책임이 있습니까? 부모와 이 사회가 좀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부모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그와 같은 것을 잘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생님들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앞에서 함부로 선생님들의 흉을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꽤 오래되었습니다. 텔레비전 방송에 부산의 어느 초등학교가 교사들이 촌지를 받지 않는 좋은 학교라고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부모 한 사람이 나와서 자기 학교는 소풍을 갈 때에도 선생님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선생님들이 직접 자기 도시락을 싸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라면 내 아이를 저와 같은 학교에는 보내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소풍을 가는 날에도 선생님 도시락 하나 쌀 줄 모르는 학교에 내 아이를 보낸다면 내 자식을 망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보세요? 하나님은 성경을 통헤서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
‘제자와 스승.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집니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선생님 촌지 문제는 해결해야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소풍 가는 날 선생님 도시락 정도는 쌀 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스승 날이 되면 꽃 한 송이라도 카드와 함께 정성껏 보낼 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에게 선생님에게 인사 하도록 가르쳐야만 합니다.
선생님을 위하여 선생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하여 선생님을 높여드리고 귀히 여겨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선생님들을 매도하고 우습게 여겨 놓으면 우리 아이들은 도대체 누구에게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스승을 존경할 줄 알도록 교육을 하여 선생님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 성공적인 교육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를 잘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도 똑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을 배우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말씀대로 살기 싫어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님에 대해서 때로는 거부하려고 하는 무의식적인
본능이 있습니다.
물론 목사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데도 무조건 따르고 순종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다가는 자칫하면 목사를 하나님처럼 우상화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문제는 지적하고 그것을 시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을 할 때 조심하여야 할 일은 목회자와의 관계 나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장 쉽게 범하는 오류 중에 하나는 문제만 생각하다가 목회자와의 관계를 놓쳐서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탄이 가장 잘 쓰는 작전 중에 하나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목회자와의 바른 관계입니다.
목회자와의 관계가 좋아야만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잘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선생님과 좋은 관계를 형성한 아이는 자연스럽게 공부를 잘하게 됩니다.
선생님과의 관계가 나빠진 아이는 자연스럽게 공부를 잘 하지 못하게 됩니다.
목회자와의 관계를 소홀히 하여 함부로 다투고 싸운 후에 설교 시간에 눈을 감고 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에 대한 상당한 책임이 물론 목사에게 있지만 상당한 부분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은 혹 서로 나눌 수 있을는지 모르나 신앙적인 손해까지 함께 나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늘 조심하고 노력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과 인생에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미국의 부자 록펠러를 아시지요?
그가 그렇게 훌륭한 신앙과 그로 말미암은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록펠러의 어머니가 유언을 남기기를......
첫 번째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라는 말씀이었고
두 번째는 목사님과의 관계를 잘하도록 힘쓰라는 내용의 말씀이었습니다.
록펠러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일러준 두 번째 말씀의 원래 내용이 무엇인줄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오늘 이 대에는 이러한 표현은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록펠러의 어머니가 자기 자녀들에게 그와 같은 말을 하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록펠러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미국의 유명한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는 단지 돈을 많이 번 재벌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돈을 잘 쓴 재벌로 유명합니다. 그가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 된 것과 그 어머니의 가르침과는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교육이 그의 자녀를 그토록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록펠러 어머니가 자녀에게 남긴 유언을 살펴보겠습니다.
1)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친아버지가 아들에게 생계를 공급하듯,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복을 받는 첩경이라는 말입니다.
3)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해야 하며 본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십일조를 우선적으로 구별해 놓고, 나머지를 가지고 생활하라는 말입니다.
5)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함께 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알게 모르게 계속적으로 짓는 죄를 가능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 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하루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그러나 절대로 발표하지 말라.
왜냐하면 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10) 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아라.
은혜를 받기 위해서 말씀 듣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시고 지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것을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도 가르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스승과 제자의 축복을 받으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자녀가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