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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김씨 (靈光金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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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조 : 김심언[金審言] | |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 |
영광(靈光)은 전남 북서부의 지명으로 백제 때의 무호이군을 통일신라때에 무령군으로 영광김씨(靈光金氏)는 경순왕의 네째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손 김심언(金審言)을 시조로 한다. 그후 심언의 아들 윤보(允輔)가 판소부시사를 역임했고, 현손 극검(克儉)은 태자소사(종2품)를, 그러나 영광 김씨는 1170년 정중부와 이의방등이 난(亂)을 일으켜 많은 문신들이 화를 당할 때 그로 인하여 영광 김씨는 중간계대가 실전되어 시조 심언의 맏아들 윤보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각파별 대표적인 인맥을 살펴보면, 경파인 정부(正父)가 고려 충렬왕때 금오위별장을 역임했고, 태용(台用)을 파조로 하는 장흥파(長興派)는 그의 증손 찬(瓚)과 필이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연(衍)을 파조로 하는 영광파(靈光派)는 호남의 영광군과 정주군 지방에 집중세거하며, 무장파조(茂長派祖) 효민(孝敏)은 고려에서 서경 유수를 역임하였고, 그의 16세손 성헌(聖獻)은 양사파(良士派)의 광찬(光纘)은 고려조에서 좌찬성을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호는 용강파(龍岡派)에서는 파조 중보(重寶)가 호조참판을 지냈고, 아들 효흥(孝興)은 통정대부에 삼화파(三和派)의 무수(懋修)는 황해도 해주에 살다가 평안도삼화로 이거하여 삼화파를 1987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영광김씨(靈光金氏)는 남한에 총 6,689가구, | |
3> 집성촌 | |
전남 장흥군 장흥읍, 용산면 일원 | 충남 태안군 남면 원청리 |
전남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 | 경남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범서면 척과리 |
전남 영광군 영광읍 월평리 |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석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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