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3] 전남대학교 개교 60년을 돌아본다 (2) 숫자로 본 60년
학생․교직원 수 등 10배 이상 성장… 명문 우뚝!
(전남대학교는 지난 60년동안 내외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 지역거점 명문대학으로 우뚝 섰다.
사진 위는 1956년 3월에 열린 제4회 졸업식 광경. 사진 아래는 모교 용봉탑)
2만원하던 등록금 200만 원대… 200명 교직원 3천명으로
최초 발전기금은 고 박인천 회장, 조복남 동문은 홍일점 장학생
60년. 세속의 표현을 따르면 강과 산이 여섯 번이나 변할 시간이다. 한 사람의 삶에서도 지난 60년의 시간을 회고하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의 역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은 남은 기록과 그 기록을 복원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온전히 역사적 사실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기록물들을 통해서 지난 60년의 시간 동안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남아 있는 공식 기록물들은 거의 없다. 따라서 1954년 6월 1일 창간하여 대학의 초창기 모습부터 꾸준히 담아 온 <전대신문>을 토대로 하여 재구성하고자 한다.
대학의 규모를 파악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인적 구성이다. 개교 초기에 본부에는 총장 1명, 교학처장 1명, 사무국장 1명, 직원 15명이 근무하였다. 교수진은 교수 22명, 부교수 16명, 조교수 23명, 전임강사 62명, 조교 40명으로 모두 163명이었고, 직원은 사무직원 72명, 노무직원 68명으로 모두 140명이었다(<전대신문> 1955년 1월 1일). 교수와 교직원을 합하면 근무자가 303명이다. 2012년 2월을 기준으로 하면 교수와 교직원은 모두 3,111명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교원은 교수 1,154명을 포함하여 모두 2,480명이며, 직원은 광주캠퍼스 480명, 여수캠퍼스 151명을 합하여 631명이다.
학생수는 대학원이 63명이고, 학부는 공과대학 4개 학과 439명, 농과대학 3개 학과 518명, 문리과대학 9개 학과 891명, 법과대학 2개 학과 224명, 상과대학 3개 학과 757명, 의과대학 256명으로 모두 22개 학과에 3,085명이다. 여기에 중등교원양성소 학생 92명, 간호고등학교 학생 130명을 합하면 3,307명이다. 현재는 17개 단과대학, 1개 직할학부에 89개 학과(부)로 광주캠퍼스 23,651명, 여수캠퍼스 5,088명으로 28,789명이 재학하고 있다.
대학원도 일반대학원, 5개의 전문대학원, 5개의 특수대학원이 있으며 광주캠퍼스에 5,364명, 여수캠퍼스에 324명으로 5,688명이 다니고 있다.
1955년에 1,136명의 신입생을 입학(입학식은 4월 8일) 허가했다는 기사(<전대신문> 1955년 4월 1일)로 볼 때 신입생 정원이 1,000명을 조금 넘었다. 2013학년도 입학 정원은 광주캠퍼스 3,652명, 여수캠퍼스 951명으로 모두 4,603명이다.
등록금도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척도 중의 하나이다. 1955년 후학기 등록금은 인문계열이 2만 7,800원이고, 자연계열은 실험실습비 3,000원을 더한 30,800원이다. 등록금 내역은 지금과는 달리 수업료(1,500원), 후원회비(2,500원), 인쇄비(1,300원), 체련비(1,000원), 교사신축비(20,000원), 실험실습비(3,000원), 호국단비(1,500원)로 구성되어 있다(<전대신문> 1955년 9월 15일). 2012학년도 등록금은 한 학기에 인문사회계열 1,746,000원, 자연계열 2,077,000원, 공학계열 2,247,000원, 예능계열 2,313,000원이다.
개교 초창기의 총예산(국비)은 5억 1,633만 8,100원(1961.1.20일자)이다. 1960년 예산은 3억 8796만 1,300원보다 1억 2,837만 800원이 증액된 예산이라는 것이다. 예산 내역은 인건비가 2억 3,297만원, 시설비가 1억 700만원, 수용비가 1억 7,636만 3,300원이다. 2011년 결산액에 따르면 국비에 해당되는 일반회계가 1,469억 5,655만 8,000원으로 약 300배 증가했다. 항목별로는 인건비가 1,086억 7,524만 7,000원, 시설확충비가 230억 7,108만 8,000원, 기본사업비가 105억 931만 6,000원 등이다.
<전대신문>에 보도(1954년 12월 1일)된 기사 가운데 최초의 발전기금 소식은 고 박인천 금호그룹 회장이 건평 462평에 4백 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2층 건물의 중앙도서관 건물(구 금호관, 현 사회과학대학)을 사재로 기증한다는 내용이다. 함께 문리과대학 교수들이 매월 봉급에서 일정액을 거출하여 매학기 성적이 우수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11명에게 장학금을 전달(같은 날짜)하기도 했다. 2012년 1월 31일 현재 발전기금 조성액은 864억여 원이다. 개교 60주년을 앞두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용봉․청경 인재육성기금은 10억여 원이 모금됐다.
우등생 표창 교무규정에 따라 성적이 우수한 각 대학의 특대생 명단을 발표(<전대신문> 1954년 12월 1일)했다. 문과대학 5명, 법과대학 3명, 상과대학 3명, 의과대학 2명, 농과대학 5명, 공과대학 3명으로 모두 21명이다. 당시 문리과대학 국문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복남 동문은 여학생 수가 극히 적은 시대에 홍일점의 장학생이었다. 현재는 2010년 등록금 총액(1,074억여 원)의 38%인 410억여 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했고, 전체 재학생 대비 장학금 수혜인원은 67%에 달한다.
발전기금 장학금, 한국장학재단 등 정부 산하기관의 장학금, 동원장학금 등 각종 특수목적 장학금 등 외부 장학금 유치도 활발해져 매년 장학금 규모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이 1,000명이 넘어섬에 따라 우수한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연구장학금도 별도로 마련하고 있는데 2011년 1학기 현재 8,800만원이 조성되어 있다.
박세종(신문방송․84, 모교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