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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신비한 샘물 박경희(1974~)
“할머니! 나도 학원 보내줘! 태권도랑 미술이랑 배우고 싶어!”
돌이도 친구들처럼 태권도랑 피아노랑 미술학원에 가고 싶습니다. 떼를 써
보지만 할머니는 굽은 등을 획 돌려 못 들은 척 야채를 다듬곤 합니다. 돈 많이
벌어 온다던 엄마는 한 달에 두 번 아니면 세 번 정도 오십니다.
“엄마! 가지 말고 같이 살아!”
돌이가 채근하면 할머니처럼 등을 획 돌리곤 이불을 끌어 덮습니다. 이불은
바람도 불지 않는데 작게 흔들흔들 움직입니다. 돌이는 이불깃을 가만가만 손
으로 잡습니다. 엄마의 냄새가 묻어납니다. 코를 킁킁거리다 아침에 일어나면
여지없이 돌이는 혼자입니다. 꿈속에서 엄마를 만난 것 같아 자꾸만 가슴이 무
겁고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엄마가 집에 오는 날이면 돌이의 눈을 한참을 봅니
다. 어느 날 돌이는 왜 그렇게 눈을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돌이야!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지? 그런데 너는 거짓말을
하면 눈이 춤을 추고 있어.”
돌이는 엄마의 말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학교 가기 싫어서
할머니한테 다리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한나절을 이불 속에서 뒹굴다가
오후에는 산으로 놀러 간 적도 있고, 친구의 색연필이 너무 갖고 싶어서 감춘
적도 있고, 스케치북 석 장을 몰래 찢은 적도 있습니다. 친구의 검정구두가 너
무 부러워 슬쩍 쓰레기통 옆에 감춰서 선생님과 반 아이들 모두가 구두를 찾느
라 법석을 떨었던 적도 있습니다. 범이네 과수원에서 배와 사과를 몰래 따 먹
은 적도 있습니다. 순이네 밭에서 참외와 오이를 따 먹기도 했는데, 혼자 간직
한 이 모든 비밀을 엄마가 정말 알까? 돌이는 할머니 방에서 작은 경대를 꺼내
눈을 보았습니다. 가만 보니까 까만 눈동자가 홀짝홀짝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돌이의 작은 가슴에 방망이가 들어와 콩닥콩닥 방망이질을 합니다. 다
음에 엄마가 오시면 사실대로 말해야지 몇 번이나 다짐을 합니다.
할머니는 점점 ㄱ자로 된 등이 자꾸 고부라져 머리가 땅으로 숙여지고 등은
망가진 화살 모습이 됩니다. 치마와 윗옷의 길이가 나란히 겨루기를 하는 듯
땅에 질질 끌려서 장에 가셨다가 비가 오면 옷 전체가 빗물로 처덕처덕거립니
다. 야채 대신 광주리에 생선이랑 과자가 담겨 있지만 돌이는 그런 할머니를
보면 괜한 심술이 나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산으로 달려갑니다. 언제부턴가 산
에 오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친구가 없어도 좋고 학원을 가지 않아도 좋습니
다. 새와 나무와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들, 바람 소리가 꼭 사람이 곁에서 말을
건네는 것 같아 돌이는 두런두런 혼잣말을 하며 산을 올라갑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 돌이를 보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아이라고 볼 것입니다. 다람쥐나 청
설모 어느 날은 징그러운 뱀도 만나고 운이 좋으면 사슴이나 토끼도 만납니다.
뱀만 빼고 다른 동물을 만나 가만히 바라보면 까만 눈이 산머루 같고 보석 같
아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서로 흠칫 놀랍니다. 눈 깜작할 순간에 까만 머루 눈
빛은 숲으로 사라집니다.
“엄마! 정말 거짓말하면 눈이 춤을 춰?”
“그럼! 거짓말하거나 기쁜 일이 있어도 눈은 춤을 춘단다.”돌이는 얼른 할머
니의 화장대 거울을 봅니다. 지난날처럼 돌이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얼른 엄마한테 거짓말했던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엄마! 저 거짓말했는데요.”
“그래! 엄마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언제 말해줄까 생각했는데 이제 말해
주는구나. 돌아! 고마워!”
엄마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말해줘서 고맙다고 합
니다. 거짓말을 했는데도 고맙다니 참 이상하기도 합니다.
“돌아! 그런데 사람들의 발자국을 봐도 감춰진 마음을 알 수 있단다.”
“엥? 발자국을 봐도 알아요? 어떻게요?”
돌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발자국만 봐도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지
엄마의 눈이 이상한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돌아! 발자국을 가만히 살펴보면 힘과 색깔이 있거든.”
엄마는 빙긋 웃으시며 또 이상한 말씀을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우리
엄마는 요술 눈을 가졌거나 마술을 배웠나 보다고 생각합니다.
“엄마, 마술 배웠어요?”
“아니야! 마술은 무슨 마술!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는데 보려고 들지 않아서
그래. 참, 돌아 너도 볼 수 있어!”
“앵! 나도 볼 수 있어요? 발자국을 남긴 사람의 마음까지 알 수 있어요?”
야, 세상에! 돌이가 발자국을 보고 그 사람 마음까지 알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신기하고 멋진 일은 아마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이는 갑자기 사람의 마음
을 보고 싶습니다.
“엄마! 그런데 사람의 마음만 알 수 있어요? 동물들이나 곤충의 마음은요?”
“사람의 마음도 또 동물이나 곤충의 마음도 알 수 있단다. 복잡한 생각을 하
지 말고 집중해서 바라보면 된단다.”
돌이는 엄마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발자국으로 마음을 알 수 있다니 참
신기하고 멋진 일입니다.
그날부터 돌이는 사람의 뒤만 졸졸 따라서 걷고 땅만 바라보고 한참을 동물
이나 곤충을 바라보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돌이의 이름은 아예 땅거지
로 바뀌었습니다. 사람의 발자국을 살피는 돌이에게‘어이! 땅거지!’하고 놀려
도 발자국에서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땅만 보고 걸어도 좋겠
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어서 뒤에서 걸어가며 발자국을
살핍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돌돌이의 눈을 노려보듯 봅니다. 돌돌이는 집에서
기르는 개의 이름입니다.
“야, 돌돌아! 너 말해 봐. 오늘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정말, 절대 비밀로 할
게, 말해 봐? 한마디만 해봐라. 응?”
아무리 말을 걸어도 돌돌이는 꼬리만 빙글빙글 돌리며 돌이를 향해 껑충껑
충 뛰어오릅니다. 돌돌이의 눈도 까만 머루 같습니다. 그 까만 머루가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는 것 같습니다.
일요일 날입니다. 돌돌이와 같이 산에 오릅니다. 깊지는 않지만 숲이 우거지
고 다람쥐, 토끼, 꿩, 뱀, 가끔씩 노루도 마주칩니다. 계곡물이 흐르다 사라지
고 또다시 흐르는 숲길은 언제나 기분을 좋게 해줍니다. 갑자기 돌돌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길이 없는 나무숲을 갑니다. 돌이를 돌아보며 어서 오라는 듯 멈추
다가 또 갑니다. 돌돌이가 멈춘 곳에 아주 귀여운 아기노루가 쓰러져 다리를
버둥버둥거리며 돌이를 봅니다. 돌이는 심장이 멈춘 듯 숨을 쉴 수가 없습니
다. 왜냐하면 돌이의 귓속으로 나 좀 살려줘요! 너무 아파요! 라는 소리가 아기
노루가 돌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들려오는 것입니다. 돌이는 아기노루의 눈
을 보면서 속삭였습니다.
“아기노루야! 네가 말한 것 맞니?”
“응, 맞아. 너무 다리가 아파! 살려줘!”
아기노루의 눈에서는 황금빛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집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돌이는 너무 신기해서 자신의 뺨을 세게 꼬집어봅니
다. 꿈이 아닙니다. 엄마의 말씀이 거짓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이 짐승을 잡
으려고 설치한 덫에 걸려 다리가 부러진 것 같은 아기노루를 어떻게 구해야 할
지 방법을 알 수 없어 아기노루의 눈만 바라봅니다.
“저쪽 찔레나무 뒤에 내 친구가 있어. 그 친구가 가르쳐 줄 거야.”
돌이는 자신의 눈을 한참 비비적거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일
이니까요. 황금빛 눈물을 세상에 처음 보았거든요. 주춤하고 있는 돌이를 돌돌
이가 옷을 살짝 물고 당깁니다. 찔레나무 뒤에는 또 다른 귀여운 아기노루가
있습니다. 돌이의 눈을 바라보는 까만 머루 같은 눈이 살짝 웃음을 보이더니
빨리 따라오라고 말을 합니다. 땀을 줄줄 흘리며 도착한 곳은 아주 깊은 숲 속
입니다. 돌이의 팔을 다섯 번 돌려야 할 만큼 큰 나무들이 있고 알 수 없는 꽃
들과 풀들이 향기를 가득 날립니다. 벌과 나비들이 사는 요술세상이라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아기노루가 도착한 곳에는 훌라후프만 한 크기의 웅덩이에 맑
은 물이 퐁퐁퐁 넘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호르랑호로롱 소리가 노랫
가락처럼 들리는 이상한 옹달샘입니다. 저만치에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토끼
한 마리가 힘겹게 옵니다. 옹달샘에 도착하더니 풍덩 빠져버립니다. 3초도 되
지 않아 토끼가 껑충 뛰어오릅니다. 분명 절룩거렸던 다리였는데 옹달샘에 뛰
어든 순간 나았는지 폴짝폴짝 춤을 춥니다.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옹달샘이 있다니! 진작 알았더라면 할머니의 굽어진
등도 고칠 수 있고 아빠도 돌아가시지 않았을텐데……. 돌이는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은 생각에 눈물이 흐릅니다. 아기노루가 이 물을 얼른 가져가야 된다고
재촉하지 않았다면 한참을 울었을 겁니다. 돌이는 산에서 마시려고 준비한 물
통의 물을 버리고 옹달샘의 물을 가득 담았습니다. 돌돌이와 아기노루와 달리
기 경쟁을 하듯 힘껏 달렸습니다. 숨이 헉헉거리고 땀이 줄줄 흐릅니다. 쓰러
져 있는 아기노루의 숨소리가 아주 약하게 들립니다. 돌이는 떠온 옹달샘물을
아기 노루 입에 조심스럽게 넣어줍니다. 꼬르륵꼬르륵 물을 다 마시고도 그냥
쓰러져 있습니다. 조금 후에 기적처럼 아기노루가 일어납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런데 옹달샘 얘기는 비밀로 해줘! 혼자만 알고 절대
비밀로 해줘!”
“응, 알았어, 비밀로 할게!”
아기노루 두 마리는 돌이와 약속을 한 후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아기노루가
흘린 황금 눈물이 떨어진 곳에는 달콤하고 은은한 향기가 퍼지고 있었습니다.
아기노루를 만난 이후로 돌이한테 아주 큰 사건이 생겼습니다. 모든 동물과
곤충의 말을 마음만 먹으면 다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말을 동물과
곤충은 오래전부터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
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속담이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아
기노루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산비둘기가 전해 주었습니다.
돌이는 이제 친구가 많아졌습니다. 새들과 곤충과 동물과 말을 할 수 있으니
전혀 심심하지 않습니다. 밤에는 마루 밑에 숨어 사는 쥐하고도 얘기를 했으니
까요. 말을 나눌 수 있으니까 전혀 무섭지도 않습니다. 뱀이 제일 무서웠는데
뱀도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겨울잠을 잘 때도 사람들한테 들키면 마구
잡아간다고 하니 겨울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다고 합니다. 꼭꼭 숨어도 귀신같
이 찾아와 잡아간다고 합니다. 또 다람쥐는 한탄을 합니다. 겨울을 지내려고
열심히 모아둔 도토리나 알밤을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들고 헤집고 찾아내어
다 가져가니 굶어 죽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고 합니다. 새들도 그 작은 눈을 깜
박이며 하소연을 합니다. 아기들을 키우려고 힘들게 지어놓은 집을 사람이 보
기만 하면 매우 좋아하며 들고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시 집을 짓기까지는
많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돌이는 새의 얘기를 듣다가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습
니다. 왜냐하면 돌이도 새집을 보기만 하면 환호성을 지르며 집에 들고 왔으니
까요. 왜 엄마가 새집을 들고 올 때면 꾸중을 심하게 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습
니다. 돌이는 산에 가는 일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산에 가면 어떤 곳이든 알고
싶은 소식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할머니가 많이 아픈지 목에서 숨을 쉴 때마다 걸그럭걸그럭거리며 쇳소리를
냅니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에구, 에구, 소리를 계속 냅니다.
“할머니! 어디 아파?”
할머니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쇠가 부딪히는 소리를 더 자주 냅니다. 엄마가
오시려면 며칠을 더 있어야 하는데 걱정하다가 문득 아기노루가 생각이 났습
니다. 아, 맞다 그 옹달샘! 돌이는 커다란 물병을 허리에 차고 돌돌이를 데리고
산을 오릅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 옹달샘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할머니
한테 옹달샘 물을 드리면 금방 병이 나을 것 같은데 옹달샘이 보이지 않으니
애를 태우면서 산을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얼마나 헤맸는지 해는 점점 서쪽으로
향합니다.
“아기노루야! 아기노루야!”
목이 터져라 불러봅니다. 아기노루야! 돌이의 음성이 앞산으로 달려가다 메
아리가 되어 들려옵니다. 에이씨! 괜히 마음이 상해서 발등으로 작은 돌맹이를
홱 걷어찹니다. 바로 그때 바스락 소리가 들리며 아주 멋진 노루 두 마리의 모
습이 보였습니다. 그 노루는 돌이를 향하여 바람같이 달려옵니다.
“돌아! 우리 찾았어?”
돌이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그 옹달샘물을 한 병만 가져가려고
왔는데 도대체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 마리의
노루는 돌이에게 그 옹달샘은 깊숙이 숨겨져 있어 잘 찾을 수 없다며 돌이를
안내 합니다. 없던 길이 보이고 바람이 불어오자 호르롱호르랑 노랫소리가 들
려옵니다. 돌이는 물 병 두 개에 옹달샘물을 가득 채웁니다. 노루들이 토특토
특 웃으며 이 옹달샘물을 옮기면 하루가 지나자마자 보통 옹달샘과 똑같다고
설명해 줍니다. 돌이에게 노루가 따라오라고 합니다. 몇 발자국을 갔더니 이상
한 열매를 가리키며 가져가서 할머니한테 드리라고 합니다. 토특토특! 노루의
웃음소리가 참 재미있게 들립니다. 토특토특! 돌이는 속으로 흉내를 냅니다.
노루가 까만 머루알 같은 눈을 살짝 흘깁니다. 토특토특 토특토특 웃는 소리가
엄마가 들려주던 자장가처럼 좋습니다.
집에 돌아온 돌이는 옹달샘물을 할머니께 드립니다. 세상에 무슨 물이 이렇
게 달콤하고 새큼하고 톡톡 쏘며 맛이 있느냐며 단숨에 반병이나 마셨습니다.
열매를 드렸더니 이리저리 살펴보시며 어디서 따왔느냐며 다그칩니다. 절대로
말하면 큰일 납니다. 노루하고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요. 그 다음날 할머니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습니다. 어! 가만 보니 ㄱ 자의 등이
조금 펴진 듯 보입니다.
“돌아! 그 옹달샘물 어디 있니? 찾아갈 수 있어?”
장터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먼 동네 아저씨들이 옹달샘 있는 곳을 알
려달라며 돌이를 자꾸 찾아옵니다. 그러나 돌이는 한 번 약속은 절대로 지키는
의리가 있는 멋진 소년입니다. 노루와의 약속을 절대로 지켜야 하고 그 아저씨
들이 알면 그 옹달샘은 아마도 숲 속에서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숲의 모든 동물들이 약국이나 병원 대신 찾아가서 상처를 치료하는 곳이라
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돌이는 협박을 받기도 했지만 절대로 비밀을 지켜
냈습니다. 산비둘기가 찾아와 노루와 다른 동물들이 고마워한다는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돌이의 효성이 갸륵해서 하늘이 돌이에게 좋은 샘물을
주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결국 먼 동네 아저씨들도 돌이를 찾아오는 일이 없어
졌습니다.
장마철입니다. 할머니는 비를 맞은 후 부쩍 잔기침이 많아졌습니다. 옹달샘
에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린 탓으로 계곡물이 많이
불었기 때문에 돌이는 걱정이 많습니다.
‘에휴! 내가 갈 때가 되었어. 우리 돌이가 장가갈 때까지 살고 싶은데 욕심이
지!’
할머니의 한숨 섞인 소리가 얼핏 들려옵니다. 돌이는 아무래도 옹달샘을 다
녀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집에 오시려면 사나흘 기다려야 합니다. 할
머니는 돌이가 멋진 사람으로 성공할 때까지 사셔야 합니다. 돌이는 커다란 비
닐을 찾아 비옷처럼 뒤집어쓰고 문을 나섭니다. 낮인데도 비구름이 내려와 어
둑어둑합니다. 돌돌이가 낑낑대며 자기도 함께 가자고 합니다. 돌돌이한테 할
머니를 잘 지키라고 말하고 산을 오릅니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을 정
도로 비가 내리는 숲은 온통 물세상입니다. 돌이는 노루를 다시 부릅니다. 그
러나 빗소리가 돌이의 목소리를 먹어버립니다. 계곡물이 점점 불어납니다. 이
대로 있다가는 돌이가 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돌이는 그냥 산
을 내려옵니다. 어디서 돌돌이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빗소리와 바람 소리
로 숲은 웅웅웅 우는 소리를 자꾸 들려줍니다.
“돌아! 돌아!”
분명 돌돌이의 소리입니다. 돌이는 집으로 달려갑니다. 돌돌이가 할머니 방
문 앞에서 훌쩍훌쩍 웁니다. 할머니는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방안에 눈을 반쯤
감고 누워 계십니다.
“할머니! 할머니!”
돌이가 아무리 불러도 기척이 없습니다. 돌아가셨나? 하는 마음에 할머니의
코에 가만히 얼굴을 대봅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너무 무서워 눈물도
나오지 않고 몸도 딱 얼어버렸습니다. 그때 문밖에서 돌아! 돌아!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문을 열다 말고 돌이는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문밖에는
노루와 산비둘기가 와 있습니다. 노루의 목에는 대나무 통이 걸려 있고 입에는
상처가 살짝 났습니다. 돌이의 이야기를 산비둘기가 노루에게 전해주었고 노
루는 물통 대신 대나무를 잘라서 그 안에 옹달샘물을 담아온 것입니다. 돌이는
할머니 입으로 옹달샘물을 넣어 드렸습니다. 옹달샘물을 마신 할머니는 푸우!
한숨을 쉬시더니 깨어나십니다.
“돌아! 사람은 딱 한 번만 마실 수 있어! 그런데 네가 우리를 도왔기 때문에
네 할머니께 두 번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야!”
“돌아! 내가 너무 오래 잤는가 보다. 너 배 많이 고프제?”별일 없다는 듯 할
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십니다. 굽은 등이 조금 더 편안해 보이고 노루와 산비
둘기는 벌써 숲 속 집으로 갔습니다. 부엌에서 맛있는 된장국 냄새와 장작 타
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리며 앞니가 몽땅 빠져버린 할머니가 정확하지 않은 목
소리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마루에 올라앉은 돌돌이가 사람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 잠을 잡니다. 바람이 슬쩍 돌돌이를 흔들다 사라져갑니
다. 돌이는 노루가 살고 있는 숲을 봅니다. 까만 점 하나가 하늘을 오르내립니
다. 그 작은 점은 분명 산비둘기인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노랫소리는 아마도
해거름까지 계속될 것 같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할머니는 종일토록 흥얼흥얼
노래를 하시니까요. 돌이는 숲 속의 샘물은 아마도 동물들에게 꼭 필요한 약국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약국이 사람에게는 알려지지 말고 언제까지
나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돌이도 그 신비한 샘물의 이야기는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꾹꾹 가슴에 새겨둡니다.
“우리 친구 돌아! 비밀을 지켜줘서 고맙고 사랑해!”숲 속에서 들려오는 친구
들의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옵니다. 돌이의 가슴에 불끈불끈 힘이 솟아납니
다. 아마도 행복한 씨앗 하나가 가슴속에 터를 잡았나 봅니다.
박경희
서울 출생.『 월간문학』수필 부문, 월간『문학세계』시 부문 등단.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대표에세이문학회, 과천문인협회,
과천수필 수수회 회원. 금융기관, 숙명몬테소리 어린이집 운영역임.
내손도서관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