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2014년 12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해 감청영장 집행과 사생활 보호 등에 대해 진술을 하고 있다.
이석우(李碩祐) 다음카카오 전 대표
지금은 중앙일보 디지털총괄 겸 조인스 공동대표로 있는 이석우(李碩祐· 51세) 대표는 다음카카오 대표로 있을 때인 2014년 10월 기자회견을 열고 관행처럼 해오던 검찰의 감청영장 집행 거부를 선언하면서 “감청영장에 응하지 않는 것이 실정법 위반이라면 대표인 제가 최종결정을 한 만큼 그 벌은 달게 받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국회 법사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과거에 법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감청영장 효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협조했지만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그동안 이용자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민이 적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스스로 감청장치를 설치해 실시간 감청에 응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고도 그는 2015년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2014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임원 보수를 공개할 때 2014년 ICT 업계 '연봉왕'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2014년 한해 지급되는 42억 5천만 원의 보수를 받아 2위인 LG유플러스 이상철 대표이사보다 배에 달하는 봉급으로 월급쟁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시의 정치 상황 아래서 참으로 어려운 결단을 내린 간단(間斷) 없는 용기와 뱃심은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생각하면서 나는 그가 선친의 성품을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버지 고 이수정(李秀正· 1940~2000) 장관은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明臺)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4·19 선언문을 기초했으며, 한국일보 기자, MBC 전무, 청와대 대변인, 문화부 장관 등을 지냈다.
“良心(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永遠(영원)한 民主主義(민주주의)의 死守派(사수파)는 榮光(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現實(현실)의 뒷골목에서 勇氣(용기) 없는 自虐(자학)을 되씹는 者(자)까지 우리의 隊列(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自由(자유)의 秘密(비밀)은 勇氣(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隊列(대열)은 理性(이성)과 良心(양심)과 平和(평화), 그리고 自由(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隊列(대열)이다. 모든 法(법)은 우리를 保障(보장)한다.”
이 대표의 선친인 이수정 장관이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 3학년 때 4.19혁명이 일어났고, 당시 그가 작성한 4·19 선언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시대적 상황이 전혀 다르기는 하나 그의 용기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니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사는 집터 인접한 토지가 바로 이 대표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다. 호화리 호방 마을은 이 대표의 조부께서 사신 마을로 선대가 우리 마을에서 대농(大農)을 이루며 살았음인지 지금도 마을의 여러 집터와 적지 않은 토지가 이 대표 형제의 소유로 되어있다.
이 대표는 1966년 2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광성고등학교를 나와 1984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 입학했으며 1988년 졸업했다. 그리고 1991년 미국 하와이주립대학교에서 중국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1994년까지 사회부, 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1994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97년 루이스 앤드 클라크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약 2년 동안 세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1999년 한국IBM으로 자리를 옮겨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정보통신업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2004년 NHN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법무 담당 이사를 맡았고 2009년까지 NHN 경영정책담당 이사로 일하다 2010년 NHN 미국법인 대표에 선임됐다.
2011년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권유로 자리를 옮겨 2014년까지 카카오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4년 카카오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이 합병함에 따라 최세훈 대표와 함께 다음카카오의 대표를 맡았다가 물러났다.
이후 2015년 12월부터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겨 조인스 공동대표와 중앙일보 디지털 전략제작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아울러 2016년 3월 NHN 사외이사에 신규로도 선임됐다.
이 대표는 매너가 깔끔하고 상대방과 능숙하게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주영 대사관 공보관, 주네덜란드 공보관을 역임한 선친을 따라 해외 생활을 경험한 덕분이다.
또 수평적 조직구조를 좋아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개인 사무실도 없이 일반 직원들 옆에서 같은 책상을 두고 업무를 본다. 영어 이름을 사용하며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낸다. 출장이나 외부 강연을 나갈 때 혼자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이 대표가 카카오게임을 통해 회사를 적자에서 흑자로 돌려놨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카카오 대표로 취임한 이후 카카오게임을 출시했는데 큰 인기를 끌었다. 카카오의 애니팡은 출시 이후 석 달 만에 국내 누적 가입자 2,000만 명, 동시 접속자 수 3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대표의 아우 이석준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밴더빌트대학교 로스쿨을 나온 미국 변호사로 영국 로펌인 클리퍼드 챈스 홍콩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남편인 이원조 변호사와 친분이 깊다. 이원조 변호사는 이 대표가 로스쿨에 진학할 때 추천서를 써줬다. 이 변호사는 세계적 로펌인 ‘디엘에이파이퍼’의 한국총괄대표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이석우 대표와 관련한 신문기사와 각종 자료를 정리하면서 내내 이미 고인이 되어 향리인 온막리 뒷산 선영 아래 묻힌 이수정 장관이 자식 농사는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다.
http://blog.naver.com/kjyoun24/221048374868
첫댓글 아, 이석우 다음 카카오 전대표가 고 이수정 장관의 아드님이었네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께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수정 님이 엠비시 전무일 때 고향분들을 초청 하셨던가 봐요.
아버지 육성을 그대로 옮기자면,
"수저이가 엠비시를 구갱시켜 줬는데, 맛있는 것도 대접받고 대단했다."
청도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세세하게 조사해서 알려주시는 김진태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 모든 청도 사람들이 선생님의 공덕을 감사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고. 이수정장관께서 살아 생전에 고향 호방에 대한 애착으로 물심양면 많은 도움을 주셨죠.....
많은 일이 있지만 호방마을에 TV 수신이 잘안된다해서
길명 앞 합산에 대형 수,송신기를 설치하여 주신것도 기억이 나네요
장관 퇴임 후 호방 마을을 찾아오신 기억도 새삼 떠 오르네요...
그 땐 정말 대단하셨죠...
이석우(영문명 Vino) 대표도 먼 발취에서 뵌 적이 있고요...
그런 일도 있었군요.
노태우 대통령때 청와대 대변인으로 tv에 종종 본적이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