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라고 하는가?
- 5식(안이비설신식 眼耳鼻舌身)
<요가사지론 권1>
1. 본지분(本地分)
1) 오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
5식신(識身)의 자성(自性)ㆍ그것의 소의(所依)ㆍ그것의 소연(所緣)ㆍ그것의 조반(助伴)ㆍ그것의 작업(作業)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총괄하여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라고 한다.
무엇 등을 5식신(識身)이라고 하는가?
소위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이다.
무엇을 안식(眼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
안[眼 : 眼根]을 의지하여 색(色)을 요별(了別; 인식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의 소의(所依)란 구유의(俱有依)는 안근[眼 : 眼根]을 말하고,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을 말하고,
종자의(種子依)는 이것의 일체종자(一切種子)를 집수(執受)하는 소의(所依)로서 이숙(異熟)에 포함되는[所攝] 아뢰야식(阿賴耶識; 8식;잠재의식)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간략히 두 가지 소의(所依)로 설명하면 색(色)과 비색(非色)이다. 안근[眼;眼根]은 색(色)이며 나머지는 비색(非色)이다.
안[眼 : 眼根]은 4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안식이 의지하게 되는[眼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근[意;意根]은 안식(眼識)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無間]의 과거식(過去識)을 말하며,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은 무시시래(無始時來)로 희론(戲論)을 즐겨 집착하여[樂著] 훈습(薰習)한 것이 원인[因]이 되어서 생기는 것[所生]으로서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이숙식(異熟識)을 말한다.
그것의 소연(所緣)이란 색(色)으로서 유견유대(有見有對)를 말한다.
여기에 다시 여러 가지를 간략히 설명하면 현색(顯色)과 형색(形色)과 표색(表色)의 세 가지가 있다. 현색(顯色)이란 푸르고[靑]ㆍ누렇고[黃]ㆍ붉고[赤]ㆍ희고[白]ㆍ빛[光]ㆍ그림자[影]ㆍ밝음[明]ㆍ어두움[闇]ㆍ구름[雲]ㆍ연기[煙]ㆍ티끌[塵]ㆍ안개[霧]ㆍ공일현색(空一顯色)을 말한다.
형색이란 길고[長]ㆍ짧고[短]ㆍ모나고[方]ㆍ둥글고[圓]ㆍ굵고[麤]ㆍ가늘고[細]ㆍ곧고[正]ㆍ곧지 않고[不正]ㆍ높고[高]ㆍ낮은[下] 색(色)을 말한다.
표색(表色)이란 취하고[取]ㆍ버리고[捨]ㆍ굽히고[屈]ㆍ펴고[伸]ㆍ가고[行]ㆍ머무르고[住]ㆍ앉고[坐]ㆍ눕는[臥] 이와 같은 등의 색(色)을 말한다.
또한 현색이란 색이 완전히 드러났을 때에[顯了], 안식의 소행(所行)을 말한다.
형색이란 색이 모아졌을 때에[積集], 길고 짧은 것 등으로 갈라지는[分別] 상(相)을 말한다.
표색이란 이 모아진[積集] 색이 생멸상속(生滅相續)하고, 달라진[變異] 인(因)에 의하여 먼저 생긴 곳[先生處]에서 거듭 생기지 않고, 다른 곳[異處]에 전전하며 생기는 것인데, 무간(無間) 혹은 유간(有間) 혹은 가깝게 또는 멀게 차별이 생기는 것이며, 혹은 이 곳에서 달라져서[變異]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를 표색이라고 한다.
또한 현색(顯色)이란 빛과 밝음 등의 차별(差別)을 말하고, 형색(形色)이란 길고 짧은 것 등으로 모아지는 것[積集]의 차별을 말하고, 표색(表色)이란 업의 작용[業用]을 의지로 하여 구르고 움직이는 것[轉動]의 차별을 말한다.
이와 같은 모든 현색ㆍ형색ㆍ표색은
바로 안근[眼 : 眼根]의 소행이며 안근의 경계이며, 안식(眼識)의 소행(所行)이며 안식의 경계(境界)이며 안식의 소연(所緣)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고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이를 차별이라고 한다.
또한 이 색에는 다시 호현색(好顯色)과 악현색(惡顯色)과 구리현색(俱異顯色)의 세 가지가 있다. 색과 흡사하게 현현(顯現)한다.
그것[眼識]의 조반(助伴)이란 그것과 함께 있으면서[俱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의 심소유법(心所有法), 즉 작의(作意)ㆍ촉(觸)ㆍ수(受)ㆍ상(想; 5변행심소(五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서 경(境)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상(像)을 취하여 받아들이고 언어로 표현하여 대경(對境)을 명명(命名)하는 작용을 한다.) ㆍ사(思; 5변행심소(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서 신(身)ㆍ어(語.口)ㆍ의(意)의 3업(業)의 작용을 하며, 업의 체(體)에 해당한다. 심리학(心理學)에서 말하는 의지(意志)에 상당(相當)한다.)와 그 밖에 안식과 함께 있으면서[具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 심소유법들[心所有法]을 말한다.
또한 이 제 법(法)은 동일한 소연(所緣)이지만 동일한 행상(行相)이 아니며, 함께 있고[俱有] 상응하면서도 하나 하나 전전하며, 또한 그 일체는 각각 자기[自]의 종자(種子)로부터 생겨난다.
그것[眼識]의 작업(作業)이란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오직 자신의 경계[自境]의 소연을 요별(了別)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첫 번째 업[初業]이라고 한다. 오직 자상(自相)만을 요별하고, 오직 현재만을 요별하며, 오직 한 찰나만을 요별한다.
또 두 가지 업이 있다. 의식을 따라 구르며, 선(善)ㆍ염(染)에 따라 구르며, 일으킨 업[發業]에 따라 구른다. 또한 능히 애(愛)와 비애(非愛)의 과(果)를 취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작업[業 : 作業]이다.
무엇을 이식(耳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
이근[耳 : 耳根]에 의지하여 성(聲)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耳識]의 소의는 구유의(俱有依)는 이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
이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이식이 의지하게 되는[耳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란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그것[耳識]의 소연(所緣)은 성(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를 말한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소라고둥 소리ㆍ크고 작은 북 소리ㆍ춤 소리ㆍ노랫소리ㆍ여러 가지 음악 소리ㆍ울부짖는 소리[俳戲叫聲]ㆍ여자 소리ㆍ남자 소리ㆍ바람이 스치는 숲의 소리ㆍ명료한 소리ㆍ명료하지 않은 소리ㆍ뜻이 있는 소리ㆍ뜻이 없는 소리ㆍ상중하(上中下)의 소리ㆍ강하(江河) 등의 소리ㆍ투쟁하면서 떠드는 소리ㆍ수지(受持)하여 연설하는 소리ㆍ논의결택(論議決擇)하는 소리 등 이와 같은 종류의 많은 소리가 있다.
이를 세 가지로 간략히 하면, 즉 집수대종(執受大種)에 의한 소리ㆍ불집수대종(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ㆍ집수불집수대종(執受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이다. 처음 것은 오직 안[內]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며, 다음 것은 밖[外]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며, 마지막 것은 안팎[內外]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다.
여기에도 가의(可意)의 소리ㆍ불가의(不可意)의 소리ㆍ구상위(俱相違)의 소리의 세 가지가 있다. 또한 소리[聲]에는 즉, 울음ㆍ소리ㆍ말ㆍ울부짖음ㆍ드러내는 말 등의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는 이근의 소행(所行)이며 이근의 경계이며, 이식(耳識)의 소연(所緣)이며 이식의 경계이며 이식의 소연이며, 의식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조반(助伴) 및 업은 안식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비식(鼻識)의 자성이라 하는가?
비근[鼻 : 鼻根]에 의지하여 향(香)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鼻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비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을 말한다. 비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 진 것[四大種所造]이며, 비식이 의지하게 되는[鼻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그것[鼻識]의 소연이란 향(香)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를 말한다. 여기에도 즉 호향(好香)ㆍ악향(惡香)ㆍ평등향(平等香)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냄새맡아서 알게 되는 뿌리ㆍ줄기ㆍ꽃ㆍ잎사귀ㆍ과실의 향, 이런 등등의 많은 종류의 여러 가지 향(香)이 있다.
또한 냄새[香]란 이른바 코로 맡는 것[鼻所聞]과 코로 취하는 것[鼻所取]과 코로 냄새맡는 것[鼻所嗅] 등의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것은 비근의 소행이며 비근의 경계이며, 비식(鼻識)의 소행이며 비식의 경계이며 비식의 소연이며, 의식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조반(助伴) 및 업(業)은 앞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설식(舌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
설근[舌 : 舌根]에 의지하여 미(味)를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舌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설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 설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설식이 의지하게 되는[舌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그것[舌識]의 소연(所緣)은 미(味)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를 말한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쓰고[苦]ㆍ시고[酢]ㆍ맵고[辛]ㆍ달고[甘]ㆍ짜고[鹹]ㆍ싱거운 것[淡]이 있고, 가의(可意), 불가의(不可意), 혹은 사(捨)의 처소(處所)가 있으며, 설근이 맛보는 대상[所嘗]이 있다.
또한 미(味)란 이른바 맛보겠다, 삼키겠다, 씹겠다, 마시겠다, 핥겠다, 빨겠다, 수용하겠다는 등의 위와 같은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것은 설근의 소행이며 설근의 경계이며, 설식(舌識)의 소행이고 설식의 경계이고 설식의 소연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조반(助伴) 및 업(業)은 앞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신식(身識)의 자성(自性)이라 하는가?
신근[身 : 身根]에 의지하여 촉(觸)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身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신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 신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신식이 의지하게 되는[身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그것[身識]의 소연이란 촉(觸)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를 말한다. 여기에도 즉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과 가벼운 성질[輕性]ㆍ무거운 성질[重性]ㆍ미끄러운 성질[滑性]ㆍ껄그러운 성질[澁性]ㆍ차가움[冷]ㆍ배고픔[飢]ㆍ목마름[渴]ㆍ배부름[飽]ㆍ힘 있음[力]ㆍ힘 없음[劣]ㆍ느슨함[緩]ㆍ급함[急]ㆍ병듦[病]ㆍ늙음[老]ㆍ죽음[死]ㆍ간지러움[蛘]ㆍ답답함[悶]ㆍ끈끈함[粘]ㆍ고달픔[疲]ㆍ쉼[息]ㆍ연약[軟怯]ㆍ기운[勇]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위와 같은 종류의 여러 가지 촉(觸)이 있다.
여기에도 즉 호촉(好觸)ㆍ악촉(惡觸)ㆍ사(捨)의 처소의 촉[處所觸]73)의 세 가지가 있으며, 신근[身]이 감촉하는 대상[所觸]이 있다.
또한 촉(觸)이란 즉 어루만지고 부딪치고 혹은 단단하고 부드럽고 혹은 움직이고 따뜻한 등의 이와 같은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는 신근[身 : 身根]의 소행(所行)이며 신근의 경계이며, 신식(身識)의 소행이며 신식의 경계이며 신식의 소연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고 의식의 소연이다.
조반(助伴) 및 업(業)은 앞의 경우와 동일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음에 안근[眼 : 眼根]이 무너지지 않고, 색(色)이 앞에 나타나고[現在前], 능생(能生) 작의(作意)가 바로 일어나지 않으면, 소생(所生) 안식(眼識)은 결코 생겨날 수 없다.
반드시 안근이 무너지지 않고 색(色)이 앞에 나타나며[現在前] 능생(能生) 작의(作意)가 곧바로 다시 일어날[現起] 때에 소생[所生]의 안식(眼識)도 비로소 생겨날 수 있다. 안식(眼識)이 생기는 것과 같이, 그 밖의 식신(識身)도 위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다음에 안식(眼識)의 생겨나기 때문에 세 가지 심(心)을 가히 얻을 수 있으니, 그 차례대로 말하면 솔이심(率爾心)과 심구심(尋求心)과 결정심(決定心)이다. 처음 것은 안식(眼識)이며, 두 번째 것은 의식(意識)에 존재하며, 결정심(決定心) 뒤에 마침내 염(染)ㆍ정(淨)이 있고 이 이후에야 등류(等流)의 안식(眼識)이 있어서 선(善)과 불선(不善)이 구르게 된다.
그래서 저것[眼識]이 자기의 분별력에 의지하지 않고 내지 이 의식[意 : 意識]도 나머지 경(境)에 나아가지 않는 이와 같은 때에 이르러야 안식[眼 : 眼識]과 의식의 두 식(識)은 선(善) 혹은 염(染)에 상속하여 구르는 것[轉]이다. 안식(眼識)이 생겨나는 것과 같이, 신식(身識)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다음에 5식(識)의 소의(所依)는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의 탈것과 같으며, 소연(所緣)은 하는 일과 같으며, 조반(助伴)은 동반자[同侶]와 같으며, 작업(作業)은 스스로의 공능(功能)과 같음을 관(觀)해야만 한다. 또한 5식(識)의 소의(所依)는 집에 머무는 자의 집과 같고, 소연(所緣)은 수용하는 대상과 같고, 조반(助伴)은 심부름꾼과 같고, 작업(作業)은 작용(作用)과 같은 차별이 있음을 관찰[觀]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