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체험담>
(6/30)http://www.seikyoonline.com/
뇌종양(배아세포종양)과 싸우다
“타고 넘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그 마음을 길렀다!”
<아이치현(阜県)·아이사이시(市)>
오늘 30일, 대학부는 결성 60주년의 가절을 맞이했다. 다나카 타케시(23세, 사오리서부지부, 총현(県) 대학부 부서기장) 씨. ‘개척하는 긍지’에 불타는 학생부 벗이 ‘새로운 시대의 건설’에 매진한다.
15세에 뇌종양을 앓은 이후에도 다양한 고난과 마주해온 다나카 씨. 결코 고난에 굴복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선고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원인 불명의 구토가 덮쳐오기 시작했다.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물건이 이중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소아과와 안과에서 진찰받으니 “당장 큰 병원으로 가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9년 7월 종합병원의 진찰실. CT화상에는 뇌하수체 부위에 하얀 덩어리가 분명히 찍혀 있었다. “뇌종양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의사는 말했다.
뇌하수체에서는 성장 호르몬이 분비된다. 5㎝를 넘는 종양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갑자기 키가 자라지 않게 된 것도 그 영향이었다.
어머니 쿠미코(51세, 지구부인부장) 씨는 “종양이 있다.”라고 아들에게 솔직히 말했다. 진실을 얘기해주고 함께 싸우고 싶었다.
아버지 고이치(50세, 지부장) 씨도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아직 아들은 15살. 가능하면 대신 아프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로비에서 아들의 손을 꽉 쥐었다. 흐느끼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병을 알게 된 다나카 씨의 머릿속은 하얘졌다. “왜 하필 나지. 앞으로 어떻게 되지?” 그것 이외의 것은 생각나지 않은 채 고뇌에 빠졌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본존께 기원했다.
‘우리 아이를 살리고 싶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 그런 마음이 강해져 갈수록 아들에게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신심밖에 없단다. 아픈 것도 반드시 의미가 있다. 그렇게 믿고 함께 제목을 부르자.”
어머니는 몇 번이나 어서의 구절을 들어 말해주었다.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하게 말하느니라.”(어서 1132쪽).
“어떤 불가능한 일이라도 가능하게 만들어 갈수 있는 것이 이 신심!” 확신에 찬 격려가 다나카 씨의 마음에 꽂혔다.
병실 침대 위. 작은 소리로 제목을 불렀다. 아픈 것에 대한 의문과 불안감으로 꽉 차있던 마음이 ‘병에 지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전언을 힘으로
항암제 치료를 받기 전, 이케다 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 중학생에게 선생님은 제목을 보내주고 계셨습니다.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놀라움과 감사로 가득해 눈물이 넘쳤다. 어머니와 약속했다.
“광포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자.”
내시경으로 더 자세히 검사한 결과 ‘배아세포종양’으로 판명됐다. 종양의 크기를 축소하기 위해 3쿠르의 항암제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부작용 때문에 하루 종일 피로에 시달렸다. 방사선치료 후에는 머리카락이 빠졌다. 하지만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푸념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이케다 선생님의 전언을 부둥켜안고 제목을 불렀다.
“병을 이기고 이케다 선생님께 ‘건강해졌습니다’라고 보고하고 싶다.” 오로지 그 마음 하나뿐이었다.
약 반년 간의 치료 결과 종양은 소실됐다. 의사는 “증상이 없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나의 큰 산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의 투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때에 투병하고 있었기에 지망하던 학교는 불가능했고 진학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또 신경이 쓰이는 것은 몸의 성장이 멈추어 버린 것이었다.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호르몬요법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거의 키가 자라지 않아 145cm 정도였다. 사춘기가 됐음에도 변성기를 겪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매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호르몬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키는 1년에 1cm가 더 자란 정도였다. 이대로 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대학에 진학을 할 때는 “장래에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정했다.
중학교 때부터 가족이나 친구,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온 인생. “조금이라도 누군가를 위해서 진력할 수 있는 인생을 걷고 싶다.” 그것이 다나카 씨의 맹세였다.
누군가를 위해
2013년 4월. 벚꽃이 춤추는 캠퍼스에 그 첫발을 내디뎠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부의 일원으로 활동에도 참가하게 됐다. 또래의 동지와 함께 기원하고 광선유포의 낭만을 이야기하는 나날들.
“모두가 다나카 군의 성장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동생처럼 귀여워해주는 선배. 따뜻한 대학부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마음을 닦았다.
한편 키가 자라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다나카 씨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이 고난을 극복하겠다.”라는 맹세를 가슴에 품고 도전은 계속되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비슷하게 뇌종양을 경험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오른쪽 반신마비와 싸우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병을 마주해 온 괴로움은 고통으로 나타났다.
이 신심의 훌륭함을 전하고 싶다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병이 있었지만 자신답게 도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신심 덕분”이라고 확신을 담아 이야기했다.
“건강해진다는 걸 믿어 볼께.” 친구는 그렇게 말하고 창가학회에 입회했다.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다. 병을 앓았던 자신의 말이었기 때문에 진심이 전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예전에 부모님이 해주신 “아픈 것도 반드시 의미가 있다.”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기쁨이 넘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무렵부터 급격히 키가 크기 시작했다. 불과 2년 만에 22cm. 변성기도 시작되었다. 의사도 그 성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몸도 마음도 크게 성장한 대학 4년간 많은 추억을 가슴에 품고 올 3월 졸업했다.
※
올 봄, 사회인이 된 다나카 씨. 병을 앓았을 때는 일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처음 출근하는 날.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며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현관문을 힘차게 열었다. 어머니는 어느새 커진 아들의 등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현재 노인시설에서 간호·생활상담원으로 일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도와주는 일로 분투하는 매일. “고맙네!” 환자가 건네주는 한마디에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다나카 씨의 사명의 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대단한 체험 이네요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