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欲知島), 이름부터 '묘한 끌림'이 있는 섬
*통영서 뱃길로 한 시간이면 욕지도에 닿는다. 일주도로 해안에서 만나는 삼여도. 왼쪽 산등성 뒤로 욕지도의 동쪽 끝 망대봉 산자락이 보인다. 통영=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욕지(欲知)라는 섬은 이름부터 사람을 궁금케 한다. 굳이 토를 달자면 ‘알고자 하거든…’인데. 섬 이름에 뜬금없이 선문답에나 등장할 법한 접속사를 쓴 이유. 그것이 내내 궁금했는데 드디어 지난주 그 섬에 발을 디뎠다. 섬은 이름 그대로 ‘욕지’를 설(設)했다.
무엇이든 알고자 하거든 본성을 꿰뚫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무엇이든 정수를 관통해야 하는 법. 묘한 끌림이 있는 이 섬을 찾지 않고서야 어찌 그 섬을 알겠느냐는 평범한 진리를 섬은 가르쳐 주었다.》
오전 10시 통영(산양면)의 삼덕항. 차량 29대와 승객 182명을 태운 카페리 욕지금룡호(대표 정규상)가 출항했다. 목적지는 욕지도의 동항. 평일 오전이라 배는 한산했다. 조타실에서 만난 배 주인인 정 씨. 욕지도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20여 년째 통영과 욕지도를 오가는 배만 몰고 있다. 처음에는 여객선, 그 다음은 화물선, 지금은 카페리. 올 4월에는 이보다 훨씬 크고 좋은 배로 업그레이드 한다.
삼덕항을 빠져나오자 한려수도 푸른 바다가 열렸다. 정면으로 희끗희끗 보이는 크고 작은 섬 무리. 우도 연화도 상노대도 하노대도…. 그 뒤에 버티고 있는 큰 산, 아니 큰 섬이 욕지도다. 연화열도라 불리는 이 섬 집단에서 가장 크다. 통영에서 뱃길로 불과 55분 거리. 뱃길의 풍광은 여심(旅心)을 절로 불러일으킬 만큼 서정적이다.
화창한 겨울 아침의 따사로운 햇볕. 욕지의 수도인 동항은 환히 빛났다. 욕지도는 한려수도의 끝자락에 흩어진 39개의 섬을 아우르는 욕지면의 본섬이다. 통영항에서 직선거리로 27㎞, 뱃길로는 32㎞쯤 떨어진 망망대해에서 연화도· 상 노대도· 하노대도· 두미도· 초도 등과 함께 연화열도(蓮花列島)를 이루고 있다. 면적이 14.5㎢에 해안선의 길이가 31km나 되고, 연화열도에서도 가장 큰 섬인데 도 외지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렇다 할만 한 관광지도 별로 없거니와 같은 통영시에 속해 있는 한산도·비진도· 매물도 등의 유명세에 눌려 있는 탓이다.
이름처럼 욕지도는 조용하게 가슴으로 느껴야 제 맛이다. 통영이 안고 있는 그 많은 이름난 섬들과는 달리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 호젓하다. 시끌벅적한 여행보다 조용한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여행지다. 순간 에게해(지중해의 일부) 크루즈여행길에 정박했던 그리스의 섬 로도스가 생각났다. 산 아래 동그랗게 둘러싸인 항구와 거기 정박한 수많은 고깃배, 그리고 항구 주변 산과 언덕자락을 하얗게 채색한 작은 집. 그 이미지가 동항의 아침풍경과 거의 일치했다.
주민 2400명이 한 개의 면을 이루고 사는 욕지도. 한때는 남해의 어업전진기지로 파시가 섰을 만큼 큰 어항이었다. 지금도 1200가구 가운데 500가구는 전업어민이고 반농반어민도 200가구나 된다.
“삼천포 남해 통영 사람들 모두 이 욕지바다로 먹고 사는 것 아닙니까.” 면사무소의 관광담당직원 김흥국 씨의 말. 이 지역 고기잡이가 두루 욕지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통영 최남단 섬 욕지도는 큰 바다가 시작되는 곳.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고 다양한 종류의 고기가 산란을 위해 회유해 일 년 사시사철 고기가 난다.
섬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동항. 그래봐야 식당 가게 몇 곳뿐인데 거기서 1970년대 체취가 느껴졌다. 골목 어귀의 ‘다방’ 간판이 그것. 육지고기와 바닷고기를 함께 내는 식당 역시 육지에서는 보기 힘들다.
욕지도에는 봄의 보리밭과 더불어 여름에는 고구마가 많이 나기로도 이름 높다. 건조하고 염분이 많은 토질 덕에 이곳 고구마는 맛이 뛰어나다. 통영에서 <욕지고구매>라고 팔리는 고구마가 바로 욕지도에서 난 것이다. 특산물인 욕지고구마를 사려고 물었더니 대뜸 “고매(고구마)는 부식가게(슈퍼마켓)에 있다”고 답한다. 뱃길로 한 시간 거리지만 섬은 역시 섬답게 옛것이 올곧이 남아 있다. 그것이 섬의 매력임을 뭍사람은 안다.
그러나 면사무소에서 얻은 욕지도 관광지도만큼은 뭍 것에 못지않다. 지도와 정보가 조목조목 잘 정리돼 있다. 지도를 들고 섬 일주에 나섰다. 욕지도에 차를 가져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일주도로 투어 때문이다. 31km 해안을 7할쯤 커버하는 21km의 일주도로. 내가 달려본 국내 섬 일주도로 가운데 울릉도를 빼고 최고라 평가할 만 했다.
욕지도에는 392m 천황산이 섬 중앙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산이 형성한 구릉과 해안을 따라 도는 일주도로(불무개. 동구지 쪽을 제외한 총 연장은 약 16Km)가 형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길들이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으나 간혹 비포장인 구간도 여럿 있다.
바위산이 상단만 남긴 채 물에 잠긴 듯한 섬 욕지도. 아니 이 섬을 비롯한 한려수도의 섬들이 모두 이렇게 형성됐다. 들고 남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 게서 온 것임은 주지의 사실. 그런 섬의 산허리를 돌았으니 그 일주도로가 구절양장의 꼬부랑길임은 불문가지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비경 선경이 잇따르니 점입가경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욕지도 해안은 여느 섬 못지않게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푸른 숲이 어우러진 기암절벽과 저마다 개성미를 자랑하는 갯바위, 섬 둘레에 점점이 떠있는 새끼 섬들, 그리고 티 없이 파란 바다가 마치 지중해의 어느 해변인 듯한 정취를 자아낸다. ‘푸른작살’(고유지명)이라는 청사 언덕에서 조망하는 펜션 배경의 해안. 에게해의 그리스 섬 풍광을 꼭 닮았다. 솔 끝에서 본 하노대도와 모도 등 작은 섬의 무리 진 풍경은 ‘바다의 정원’이라는 팔라우(괌섬 남쪽)를 쏙 빼닮았다. 이런 이국적인 바다 풍경. 국내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섬 북단을 돌아 서쪽 해안으로 접어들자 섬과 바다 풍경은 토속으로 회귀한다. 몽돌밭 해변의 도동은 울릉도 도동항과 엇비슷했다. 옴폭 파인 계곡 지형의 만 깊숙이 자리 잡은 포구, 그 포구로 잦아드는 산기슭의 감귤 밭이 인상적이다. 노란 감귤은 아직도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 귤이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작품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968년의 일이다. 제주 것에 비해 산도와 과즙이 훨씬 진하다.
이어 한두 굽이 더 돌면 덕동. 여기에도 3백m 가량의 까만 몽돌밭이 펼쳐진다. 특히 이곳의 몽돌은 밤톨만하고 유난히 동글동글할 뿐 아니라 모래한 점 없을 정도로 촘촘히 몽돌이 깔려있어 아름답다. 좀 더 가면 깎아지른 절벽의 돌출지형인 고래머리다. 뜻밖에도 ‘해수사우나’가 있었다. 청정바닷물을 끌어올려 쓰는데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풍치 좋은 목욕탕이 아닐까 싶다. 삼면으로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는 숙소(고래머리 관광농원)도 있다.
서산리 유동마을에 이르면 섬 남쪽에 다다른 것. 여기서 바다로 돌출한 지형 ‘양판구미’를 만난다. 멋진 풍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하다. 여기서 길은 동쪽으로 고개를 오른다. 욕지도 최고의 비경 삼여도와 해맞이 전망대인 새천년공원은 이 길가에 있다. 삼여도는 송곳처럼 수면을 뚫고 불쑥 솟은 바위 두 개가 해안 쪽의 작은 바위를 감싼 형국. 공원을 지나면 도로는 개미허리처럼 잘록 들어간 개미목을 경유해 섬 동단의 망대봉 산악을 끼고 북쪽 해안을 달린다.
욕지도는 맑은 공기에 날이 따뜻해 겨울에도 풀이 자라난다. 그래서인지 산행 내내 흑염소가 나다니는 걸 볼 수 있다. 욕지도 흑염소는 섬 지역 특성상 순종의 혈통을 유지하고 있다. 염소중탕이 유명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