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凍土)에서 온 낯설고, 친근한 사람들을 만나다-야쿠티아에서 온 영화＜신의 말＞(오세현)

[Onyu]

동토(凍土)에서 온 낯설고, 친근한 사람들을 만나다

 -야쿠티아에서 온 영화 <신의 말>

                                                                                                                                                         오세현

       <시네바캉스 영화제 포스터>

매년 여름이 되면 서울 유일의 비영리 시네마테크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연중 가장 큰 행사인 “시네바캉스 서울” 이라는 영화제를 시작한다. 올해도 변함없이 가장 무더운 7월 28일~8월  28일 한 달간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트시네마로 시네 바캉스를 다녀갔다. 물론 ”시네바캉스 서울”은 아트시네마의 여러 프로그램들 중 연초에 시작하는 “아트시네마의 친구들 영화제”와 함께 다른 기획전에 비해 약간 더 규모가 있다뿐이지 사실 기존의 거대한 영화제들과 비교하자면 아주 적은 예산으로 소박하게 치러지는 영화제이기도 하다. 영화를 함께 보고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길 원한다는 아트시네마의 취지대로 이 영화제 역시 다른 호사스런 각종 행사는 없다. 그러나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들에게는 어떤 영화제 이상으로 영화 보는 즐거움을 전해주는 알찬 프로그램이다. 특히 과거에 영화를 접했지만 이제는 영화관을 찾지 않는 중장년층 관객들, 고전 영화를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젊은 관객들, 그리고 함께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가족 관객 등 서울 시민들이 자유롭게 영화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올해 “시네바캉스 서울” 프로그램은 총 31편, 다섯 개의 섹션으로 꾸며졌다. B급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국내외에 수많은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존 카펜터 특별전: 어둠의 제왕’,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명인 ‘구로사와 기요시 특별전’, 그리고 “시네바캉스 서울”의 대표 프로그램인 ‘시네필의 바캉스’ 섹션이 있다. ‘시네필의 바캉스’ 섹션은 마르셀 레르비에의 무성영화 <비인간>(1924),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초기작 <차가운 물>(1994), 청춘에 대한 정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자크 베케르의<7월의 랑데뷰>(1949), 로버트 알드리치의 소름 돋는 심리 스릴러 <허쉬 허쉬 스윗 샬롯>(1964), 여성 총잡이가 주인공인 니콜라스 레이의 대표적인 서부극 <자니 기타>(1954)등을  포함한 12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또한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가장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했던 작품들을 상영하고 감독들과 대화를 나누는 ‘작가를 만나다’ 섹션에서는 <4등>(정지우), <비밀은 없다>(이경미), <탐정 홍길동>(조성희), 확장판 <아가씨>(박찬욱), 그리고 정지우 감독의 2005년작 <사랑니>까지 다섯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리고 올해 섹션 중 가장 생소하고 호기심을 자극했던  또 하나의 섹션이 바로  ‘야쿠티아에서 온 영화들’이다. 

<신의 말> 

  최근에 영화 산업이 발달한 러시아의 자치구인 야쿠티아 공화국의 영화 다섯 편이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여 졌다. 이 낯선 러시아 영화들은 한국 관객에게 낯설면서도 기원을 같이한 형제의 민족을 대면하는 듯한 기묘한 친근감과 낯선 동질감을 전해주며 많은 관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야쿠티아’라는 생소한 명칭, 소개란의 제목에 있는 러시아어와 러시아식 이름을 보고 막연히 동구권 영화인가라는 생각으로 처음 영화를 보게 된 관객들은 묘한 당황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영화 속 언어는 러시아어가 아니고,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한국인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닮아있는 아시아인이다. 실제로 처음 영화를 보고 나온 어떤 관객은 “몽골 영화인가?”라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시네바캉스 서울” 페스티벌에는 잘알려진 감독들의 훌륭한 고전작품과 동시대의 화제작들이 많이 상영되었다. 하지만 이 번글에는 올해 “시네바캉스 서울”의 상영작 중 한편인 세르게이 포타포프 감독의 <신의 말(Дьөһөгөй Айыы / The Deity)>(2015)을 중심으로 야쿠티아의 영화와 사람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소년이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먼 길을 가는 소년은 중간에 쉬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한다. 하지만 한 순간의 낮잠 뒤에 자신의 말은 사라지고 소년은 묵묵히 걸어서 계속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후 작은 도시가 나타나고 소년은 불친절하고 바쁜 사람들에게 야쿠티아족의 가장 큰 여름 축제인 ‘으흐으아흐’가 열리는 곳을 묻는다. 겨우 축제가 열리는 곳에 도착한 소년은 그 곳에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운명처럼 아름다운 한 소녀를 만나고 그녀와 축제를 함께 즐긴다. 소년은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따뜻한 이야기를 속삭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무대에 올라 소녀에게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신의 말>

  그렇게 축제를 보내는 중 어느 새 밤이 다가오고 소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다음 날 아침 슬픔이 가득한 소녀의 시야로 말들의 무리 너머에서 햇빛을 받으며 당당히 걸어오는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신의 말>은 명확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민족의 최대 축제에 참석한 어느 시골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헤어진다 라는 극히 단순한 스토리 라인만 가지고 있으며, 이야기를 묘사하는 방식도 시적이고 추상적이다. 영화는 야쿠티아 민족이 가진 전통적인 신앙과 삶과 사랑, 감정과 죽음에 대한 굉장히 시적인 비유라고 할수 있다.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야쿠티아 민족의 삶과 신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낯선 지역에서 온 시적 은유와 불명확한 이야기로 끝맺는 영화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가진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인 요소 때문이다. 야쿠티아 민족이 살고 있는 곳은 지구상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이다. 겨울이 끝나고 여름이 오는 6월경에 다 같이 모여 신에게 제사지내고 축제를 벌이며 또 다시 한해를 준비하는 의식을 벌이는 가장 큰 연중행사가 바로 ‘으흐으아흐’ 축제이다. 전통적으로 ‘으흐으아흐’ 축제는 들판에 모여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고 멀리 떨어져 사는 이웃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자리였고, 이런 만남과 소통을 장을 통해 젊은 남녀가 만나고 사랑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신의 말>

  영화는 이런 실제 축제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한편의 기록영화처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모두 실제 축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야쿠티아 사람들이다. 제사의식, 콘서트 현장,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 전통 씨름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모두 당시 축제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현장의 모습이다. 주인공 소년만이 유일한 배우인데 그만이 감독이 알려준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따라 축제 현장을 부유하며 즉흥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흔히 일반 극영화는 생활 방식과 문화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통할 수 있게 하기위해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주제로 하거나 대사나 유머코드 등에 있는 지엽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방식을 쓴다. 대표적인 예가  헐리웃의 상업영화들로서 특정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제작한다고 하더라고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문체로 접근한다. 

그 문화만의 고유한 언어습관이나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은 쉽게 제거시켜 버리거나 이해하기 쉬운 쪽으로 왜곡시켜버린다. 심지어 언어도 민족 언어 대신 영어로 대체시켜버리는 경우를 종종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다큐멘터리는 이질적인 다른 문화를 보여줄 때에도 실제의 문화와 삶의 모습을 그대로 찍어서 가감 없이 보여준다. 다큐멘터리가 가진 이런 실제성과 사실적인 면은 신기하게도 그것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접근되어지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신의 말>

  <신의 말>은 특히나 우리에게 생소한 야쿠티아의 신화와 무속의식, 인과 관계없는 단순한 이야기를 시적인 영상으로만 전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적인 실제와 픽션의 통합이라는 방식을 통해 관객에게 기이한 경험을 안겨주며 별다른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게다가 이 두 요소의 결합은 놀라운 시너지 요과를 만들어낸다. ‘으흐으아흐’ 축제가 내포하고 있는 야쿠티아만의 신화와 무속적인 측면, 축제 현장에서 발산되는 무형의 에너지가 소년과 소녀가 보여주는 만남과 사랑, 그들이 보여주는 화학작용을 통해 매우 시적이고 매력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또한 이 소년과 소녀는 야쿠티아인들이 믿는 신과 정령들의 대변자로서 인간세계에 참여하고, 그들의 시선으로 경험하고 느끼는 인간계의 축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가 시작되면 야쿠티아의 신화이야기와 말의 신이  ‘으흐으아흐’ 축제에 참여한다는 내레이션 자막이 뜨기도 한다. 이 상호작용은 다큐멘터리적인 실제와 신화적 허구의 아름다운 하모니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큐멘터리라는 용기에 채운 신화적 로맨스

  <신의 말>을 보고 즉각적으로 떠올렸던 영화가 해스켈 웩슬러 감독의 <미디엄 쿨>(1969) 이다. 헐리웃 최고의 촬영감독이자 다큐멘터리 작가로 유명한 해스캘 웩슬러 감독은 68년 시카고에서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를 배경으로 영화를 한 편 연출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 충격이 가시진 않은 정국, 시카고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열악한 주거환경과 흑인 인종차별문제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베트남전 반대 시위대와 당의 쇄신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시위가 시카고 그랜드파크 전당대회장 밖에서 벌어지고, 기마경찰대는 이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진압을 행사했다. 게다가 치안을 이유로 주정부군 까지 시내로 진입한다. 해스켈 독은 폭력의 광기에 휩싸인 시카고를 배경으로 과부 에일린(버나 블룸)과 카메라 기자인 존 카셀리스(로버트 포스터)의 힘든 사랑이야기를 끼워넣는다. 배우들은 폭력이 행사되는 실제 역사의 현장을 돌아다니며 연기를 한다. 특히 여배우 버나드 블룸은 폭력적인 풍경과 대비되는 노란 옷을 입고 수많은 경찰과 군인들, 시위대를 사이를 누빈다. <미디엄 쿨>은 픽션과 다큐멘터리, 허구와 실제의 영역을 무너뜨리고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사실성과 실제성의 극한을 탐구한다. 해스켈 웩슬러 감독은 이 영화를 “픽션과 시네마 베리떼의 결혼”이라고 칭했다. 

  <미디엄 쿨>은 두 남녀의 위태롭고 힘든 사랑이야기를 역사적 폭력을 증명하는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그려내며 역사상 가장 용감한 상업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신의 말>

  반면에 <신의 말>은 한 민족이 오랫동안 지켜온 문화와 신앙의 축제 현장을 그대로 기록하고 그 생동감 넘치는 실제의 공간을 관념적이고 시적 여운이 가득한 신화적 로맨스가 넘실거리는 곳으로 그려내고 있다. <신의 말>이 <미디엄 쿨>만큼 용감하고 역사적인 걸작으로 남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촬영술과 완성도 역시 미치지 못하지만 훨씬 작은 규모의 예산으로 형식적인 유사성을 지닌 흥미로운 시도를 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소규모 스텝과 작은 예산으로 제작되었지만 이 영리하고 기민한 제작 방식의 선택으로 자칫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영화가 될 수도 있었던 이야기를 흥미롭고 특별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민족문화에 대한 기록 영화로서의 가치도 이 영화가 지닌 뛰어남이다. <신의 말>은 이제 겨우 발전하기 시작한 야쿠티아 민족의 영화산업과 야쿠티아 사람들의 가감 없는 모습을 세계 각지에 소개하는 첨병역할로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신의 말>을 보고 언급할만한 중요한 영화의 사조가 바로 위에 언급된 ‘시네마 베리떼’ 운동이다. 이 영화 운동은 196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직접적인 뜻은 ‘영화 진실’이라는 용어로서 영화의 사실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한 영화운동이다. ‘시네마 베리떼’ 운동은 잘 짜인 이야기 구조나 계산된 연출과 촬영방식을 거부하고 삼각대와 조명장비도 최대한 배제한 즉흥적이고 자발적이며 확실성을 강조한 영화 운동이다. ‘시네마 베리떼’ 운동은 카메라를 들고 찍는 ‘핸드 헬드(hand-held)’기법과 후대 다큐멘터리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런 ‘시네마 베리떼’ 기법과 픽션이 잘 어우러진 대표적인 예들을 우리는 바로 장 뤽 고다르를 위시한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시네마 베리떼’ 운동은 보다 초기 영화사의 위대한 이름인 러시아의 지가 베르토프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고, 최근에 들어 급격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야쿠티아 민족영화들은 인종은 다르지만 모국이기도 한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야쿠티아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신의 말>

  <신의 말>이 흥미로운 것은 지극히 지역적이고 민족주의적 정체성을 담아내는 영화를 만들면서 현대 영화의 중요한 흐름과 방식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잘 이용하고 받아들여서 버무리는 이 낯선 민족의 야심을 확인하는 순간에 있다. 그들 모국의 영화 전통으로부터 이어져 세계 영화사에 큰 영향을 끼친 영화사조로 꽃피운 ‘시네마 베리떼’ 운동과 누벨바그 같은 현대 영화의 빛나는 성취가 다시 러시아 동토의 낯선 민족영화 태동으로 연결되고 있는 어떤 순환의 고리를 목격하는 즐거움, 바로 이런 특별한 순간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많은 시네필들이 아트시네마와 같은 극장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야쿠티아 민족의 유래와 그들의 신앙

  야쿠티아 민족이 살고 있는 곳의 정식 명칭은 사하(Sakha)공화국이다. 러시아 극동 연방지구 북부에 위치해 있고 야쿠티야(Yakutia)공화국이라고도 한다. 거대한 얼음제국이라는 러시아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으로 러시아의 1/5정도  크기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백만 남짓의 사람들이 남한의 30배에 이르는 큰 지역에 살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숲과 수많은 호수와 늪지대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몇 년 전 어느 해외토픽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마을이라고 소개되어진 이 영상은 실내에서 냄비에 물을 끊이고 밖에 가져와서 물을 허공에 뿌리면 그 순간 얼어버리는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바로 영하 65도 이하로 내려가는 것으로 유명한 가장 추운 마을 ‘오미야콘’도 이곳 야쿠티아의 마을이다. 이런 야쿠티아의 자연풍경은 다른 상영작들에서 잘 확인 할 수 있었다. <하얀 날(A White Day)>(2015)은 온통 눈에 뒤덮인 겨울 풍경 속에 고립된 사람들을 그린 영화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야쿠티아의 혹독한 겨울을 느낄 수 있었고, <길 잃은 사람들((Муммуттар/Lost)>(2015)에서는 야쿠티아의 여름풍경을 보는 즐거움이었다. 영화는 광활한 야쿠티아의 자연 속에서 길을 잃었던 두 사람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이다.

<러시아 내 사하 공화국 위치>

    13세기 이전에 이곳에 살던 소수 민족들은 퉁구스 족이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말갈, 거란, 여진이라 부르던 이들이다. 후에 몽골의 징기스칸이 주변의 여러 민족들을 복속시키며 주변을 통합시켜나갔고 그 중 하나가 타타르 족이다. 타타르족도 징기스칸에 의해 통합되었지만 일부 타타르 족은 반감을 품고 몽골의 영향권을 피해 도망쳤다. 그 일부가 북으로 오면서 레나 강 유역을 지나게 되었다. 레나 강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남 야쿠티야는 거대한 평원이다.                         

<신의 말 스텝진>   

     

  이곳에서는 이미 퉁구스 족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하나가 순록과 어렵으로 살아가는 유목민 에벤키 족이었다. 타타르 족과 에벤키 족은 뒤섞여 살게 되면서 서로 동화되었다. 야쿠트 족은 그 결과 생기게 된 새로운 민족이다. 이들은 현재 인종적으로 몽골로이드로 분류되며 시베리아 지역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이다. 언어 계통적으로 야쿠트어는 투르크 어계의 북방 계열에 속한다.

  인종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한국과 뿌리를 같이하다 보니 이 러시아의 한 자치구 사람들은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생활양식과 토속 신앙에서도 우리나라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근대에 이르러 러시아 정교를 받아들이면서 기독교는 야쿠티아 민족에게도 중요한 종교가 되었고 중요한 행사에도 러시아 정교의 신부들은 빠지지 않고 초청된다. 하지만 여전히 토속 신앙은 중요한 믿음의 형태로 남아있고 현재는 기독교, 샤머니즘,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이 혼합, 혼재되어 있다. 

  야쿠티아 사람들은 우주를 크게 세 개의 세계로 나눈다. 신이 살고 있는 천상계, 인간의 거주지인 중간계 그리고 어둠의 세력이 살고 있는 지하세계가 있다. 그리스 신화속의 신들처럼 이 세 개의 세상에 살고 있는 신과 인간, 어둠의 세력들의 생김새와 생활양식은 기본적으로 같다. 그리고 중간계에는 인간들과 함께 수많은 정령들이 존재한다. 집의 정령, 숲의 정령, 강, 호수, 바람의 정령 등. <신의 말>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이런 신화적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축제에 참여하는 신 혹은 신의 대리인, 정령 혹은 무녀를 상징하는 듯한 소녀, 지하세계 세력들에 의한 소년의 죽음.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이 부활한 듯이 살아 돌아오는 희망찬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다른 의미로 겨울이 가고 여름이 오는 대자연의 순환이 신화적 모티브로 재해석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야쿠티아인들의 이런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은 전통적인 한국의 신앙과 매우 유사하다. 세 개의 세계라는 삼원적인 생각은 세 개의 다리를 가진 전통그릇이나 삼박자등 여러 형태로 표현되고 있고 이런 문화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계관이다. 전 세계가 널리 사용하고 있는 샤먼(Shaman)이라는 말도 야쿠티아의 한 지류인 에벤키인들의 샤만(saman)에서 유래한 것으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야쿠티아에서는 오래되고 특별한 나무에 울긋불긋한 천들을 걸어두는데 이 또한 우리나라의 서낭당과 같은 무속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박수무당이라는 말의 박수도 ‘박스’(bachs)라는 야쿠트어에서 기인하고 있고, 족장 혹은 제사장을 뜻하는 ‘트근’(Тыгын)은 우리나라의 ‘단군’과 어원을 같이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의 토템 중 곰을 섬기는 어느  씨족의 신화는 곰이 여자로 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의 말>

  이런 믿음과 신앙의 모습은 <신의 말>을 비롯한 다른 야쿠티아 영화들에서도 일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신의 말>에서는 태양을 맞이하고 신에게 제의를 드리는 무녀들의 모습을, <하얀 날>에서는 주인공을 치료해주는 야쿠티아 전통 무당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길 잃은 사람들>에서는 주인공들이 극한의 상황에서 목격하는 환영들에서 악귀와 어둠의 세력들을 볼 수 있다. <악마들((ХАРА ДЬАЙ / Evil Spirits)>은 특히나 이런 어둠의 세계에 대한 전설과 이야기를 가지고 야쿠티아만의 독특한 공포 영화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이번에 서울아트시네마의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에서 기획된 ‘야쿠티아에서 온 영화들’이라는 섹션을 통해 관객들은 우리와 너무나도 흡사한 사람들, 생소하면서도 닮아 보이는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다. 야쿠티아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신화가 있다. 보석을 두고 세상에 싸움이 끊이질 않자 천사들이 보석들을 모아 하늘로 올라가던 중 야쿠티아 지역을 지나게 되었다. 추위에 손이 언 천사들은 그만 보석들을 떨어뜨렸다. 보석이 얼음 땅 속에 깊이 박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천사들은 안심하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혹은 그 곳이 야쿠티아의 땅인 것을 알고 일부러 떨어뜨렸다고도 한다. 이 신화는 그만큼 야쿠티아인들이 순박하고 선량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야쿠티아 지역은 전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매장지역으로 다이아몬드의 질도 세계 최고로 꼽힌다. 다이아몬드뿐만이 아니라 이곳에는 금과 석탄, 석유, 히토류 같은 고가의 자원들도 풍부하고,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에 나오는 모든 광석이 매장되어 있는 걸로 유명하다. 현재 러시아 정부에 의해 다이아몬드가 채굴되고 있지만 수백 년간 야쿠티아인들은 다이아몬드같은 보석들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다. 현재 야쿠티아 사람들은 러시아내 모든 소수민족들 중에서도 가장 유연하고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근원적인 동질감 때문인지 한류와 같은 문화콘텐츠의 힘인지는 모르지만 야쿠티아인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매우 높다. 22년 전 야쿠티아 공화국의 전적인 지원으로 사하-한국 학교가 생기고 좋은 반응과 성과를 이끌어냈다. 그 후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다른 학교들도 생겼지만 한국 학교를 제외하고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이번 영화제에서도 아트시네마 관계자들의 예상을 벗어나 각 영화의 감독들, 프로듀서, 야쿠티아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야쿠티아 영화인들이 꼭 한국에 방문하고 싶다며 대거 방한했다. 이들은 매 상영 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야쿠티아 영화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러시아의 소수 민족으로 야쿠티아인들은 러시아어와 자신들의 민족어를 모두 사용하지만 한동안 정부에 의해 민족주의적 행사나 언어 사용에 제약을 받아왔다. 근래에 들어 자치권을 보장받고 러시아내 자치 공화국으로 재탄생하게 된 야쿠티아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담론을 풀어내는 매개체로 영화의 활용 방안을 찾아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하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이 영화들이 야쿠티아인들 사이에 흥행하며 계속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산업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제 야쿠티아에는 영화제도 성황리에 개최되고 영화를 만들고 알리는 채널과 시스템도 자리잡아 가고 있다. 외국의 관심도 늘어나 야쿠티아인들의 영화가 전세계 영화제들에 소개되고 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야쿠티아의 영화를 통해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담론의 창구를 넓혀가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기록물로서의 가치도 높아서 앞으로 쏟아질 야쿠티아 영화들에 의한 긍정적인 영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한국에도 야쿠티아 영화를 비롯한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소개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세현

독립영화 감독 겸 촬영감독

<거울>, <37.2 le matin> 등 연출, 촬영

AIRBROS production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