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웰빙, 힐링의 트렌드 코드
1. 행복, 웰빙, 힐링
홀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여러 차례 횡단한 마이클 플랜트(Michael Plant)라는 세계적인 베테랑 요트 경주자가 있었다. 그는 새로운 항해 기록을 위해서 1992년에 코요테(The
Coyote)라는 멋진 요트를 만들어 자동 무선 레이더와 위치 인식시스템(GPS) 등 최첨단 항해 장비를 설치하였다. 버튼만 누르면 10초 안에 인공위성에 요트 위치가 포착되면서 동시에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요트를 지상의 구조 센터에 좌표로 표시되게 하는 최첨단 장비를 설치한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대서양을 단독 횡단하여 유럽으로 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항해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항해를 시작한지 11일 만에 그의 최첨단 요트는 연락이 끊기고 실종되고 말았다. 여러 날을 수색한 끝에 포르투갈에서 남쪽으로 720Km 떨어진 바다 가운데 그의 요트인 코요테가 뒤집힌 채 떠다니는 것을 발견하였다. 조사 결과 그가 타고 있었던 요트 밑에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밸러스트(Ballast)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플랜트는 배를 만들 때에 수면 위에 보이는 부분은 굉장히 신경을 썼지만 항해 중 큰 파도로 요트가 기울어 위험에 처하였을 때 복원해주는 밸러스트를 간과한 것이다. 밸러스트가 없는 요트는 풍랑이 없는 잔잔한 바다에서는 최상의 스피드를 내지만 큰 파도와 바람이 불면 힘없이 뒤집어지고 만다. 이렇듯 지금 우리사회는 밸러스트 장치 없이 스피드만을 추구하는 마이클 플랜트와 같은 삶을 추구하다가 삶의 풍랑 앞에서 중심을 잃고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와 정보화를 동시에 이룬 지구촌 유일한 국가로서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 결과 객관적 삶의 질은 세계 각국과 비교해 볼 때 중상위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주관적 삶의 질과 행복지수는 OECD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삶은 고단하기만 하고,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에 이어 이혼율과 음주율 그리고 저출산율은 우리 삶의 현실이 넉넉하지 못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은 외환위기 이후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는 우리에게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게 하였고, 성과주의와 무한 경쟁이라는 경제적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람을 능력과 수단으로 평가하게 되었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자기계발에 따른 스트레스는 여러가지 심리적 질병을 가중시키게 되었다. 우리가 지향한 산업 고도화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여유와 안정을 앗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이어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2003년경부터 웰빙(Well-being)에 대한 열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본래 웰빙은 1980년대 중반 유럽에서 시작된 슬로푸드(slow food)
운동과 1990년대 초에 느리게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슬로비족(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 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추구하는 보보스(bobos) 등의 형태였다. 그러나 2000년 이후부터의 웰빙은‘복지·행복·안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면서 몸과 마음, 일과 휴식, 가정과 사회, 자신과 공동체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게 되었다.
2003년부터 우리사회에 거세게 불던 웰빙의 열풍은 2010년을 기점으로 힐링(Healing)이라는 트렌드 코드(Trend
Code)로 바뀌게 되었다. 웰빙이 신체적 건강과 삶의 만족도 제고(提高)를 추구한다면, 힐링은 마음과 정신의 상처 치유를 강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힐링에 대한 열풍이 불게 된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와 더불어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취업난 등 생존 경쟁에 내몰린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공감, 위로, 치유에 대한 욕구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웰빙은 경제적·사회적 안정기에 중산층을 중심으로 신체적 건강과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기본 의식주 중심의 친환경 주택, 유기농, 에코상품 등에 관심을 가졌다. 반면에 힐링은 경제적·사회적 침체기에 마음과 정신의 상처 치유를 위해서 전 소비층을 대상으로 의료, 문화까지 확장되어 심리치료, 멘토링, 종교 행사 등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이런 힐링 트렌드를 반영해 멘탈케어, 요가, 명상, 스파 등의 힐링 비즈니스 또한 활발해지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한국 힐링 열풍의 원인에 대해서 삼성경제연구소 이승철연구원(2013)은“경제위기 후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1인 가구 확산과 고령화 진전 등으로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일상적 배려와 위로가 적어졌으며, 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비관론이 확산되고, 정신과 신체의 실질적 치유 효과가 있는 힐링 상품에 대한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최근 몇 년 사이 힐링이라는 담론(談論)으로 한국사회에서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일상 곳곳에 확산되어 있는 힐링은 힐링푸드, 힐링투어 및 캠프, 힐링콘서트, 힐링뮤직, 힐링무비, 힐링피트니스, 힐링서적, 힐링관련 언론보도(칼럼/논단), 힐링 TV 프로그램(SBS 힐링캠프) 등 다양한 힐링 콘텐츠가 구성,운영되고 있다. 브랜드 개념을 힐링으로 삼은 상품이 계속 출시되고 있으며, 정신과 치료에 예방·대체의학 등을 연계한 서비스에 대한 욕구 또한 증대되고 있음을 본다.
이렇듯 오늘날 시대적 상황과 트렌드에 따라 웰빙과 힐링의 열풍이 불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욕구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적 상황속에서 웰빙과 힐링에 이어서 어떤 또 다른 시대적 트렌드 코드가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이성과 과학의 힘이 동원될수록 더욱 편리한 세상이 도래하겠지만 죄성을 지닌 인간의 내면세계는 더욱 황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위한 갈망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서 인간의 행복에 대한 욕구를 이용한 상업주의는 더욱 다양성의 옷을 입고 마케팅 전략에 나서게 될 것이다.
2. 시대적 트렌드 코드가 되고 있는 힐링
우리나라에서 힐링에 대한 신드롬은 2010년 이후 확산되기 시작하였지만, 일본은 우리보다 앞선 1990년 중후반에 힐링에 대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힐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우리보다 일본에서 먼저 고조된 것은 장기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먼저 겪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85-1990년간 누적된 자산버블이 90년대초 붕괴되어 저성장이 장기화 되면서 경제·정신적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따라서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위로하고 안식을 제공하는 개념으로 힐링의 열풍이 확산된 것이다.
한국에서 힐링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게 된 동기를 보면, 1인당 국민소득(GNI)은 2만 달러를 달성하였으나 금융위기로 저성장 우려가 확산되면서 사회도 각박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잘 먹고 잘 사는 웰빙 이전에 공감, 위로, 치유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게 되어 힐링이 확산된 것이다.
오늘날 힐링의 트렌드는 힐링 관련 상품과 힐링 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우리보다 힐링 열풍이 빨리 불었던 일본은 릴랙세이션(Relaxation)
산업으로 스파와 휴양관광 등이 매우 활성화되어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힐링 산업은 멘탈케어, 명상/요가, 스파, 휴양관광으로부터 의료(정신약학, 정신질환 치료제 등), 소비재(힐링푸드, 힐링패션, 아로마화장품, 캠핑용품 등), 서비스(예술치료, 멘토링, 심리치료, 여행, 라이프컨설팅) 문화(힐링음악회, 힐링시네마, 힐링강연) 등 광범위한 힐링 상품이 출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음수선공
상담심리학박사/교육학박사/ 상담심리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