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현의 느낌표가 있는 간이역(11) 나주 노안역
눈 감아도 떠오르는 고향역
나주 노안역
최원현
nulsaem@hanmail.net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힌 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나훈아의 <고향역>이란 노래 중 내용들이다.
내 고향은 전라남도 나주이다. 정확히는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어야 하니 목포가 되겠지만 6.25 피난기에 나주 외가로 피난 온 어머니가 거기서 나를 낳았으니 내게는 출생지요 고향이 되어버린 셈이다. 자금은 내 피붙이로는 아무도 안 계셔서 고향이랄 수도 없는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나를 키워주신 외조부모님의 산소가 있으니 그나마 내겐 고향으로 향하는 끄나풀을 하나 갖고 있는 셈이다. 강진으로 강의를 가느라 나주에서 내리는데 노안역이라는 표지를 얼핏 본 것 같다. 해서 오는 길에 그곳을 찾아보았다. 어린 날 지날 때마다 내 고향 나주의 한 역이라는 생각에 동네 역처럼 생각되었던 곳이다.
하지만 옛날의 흔적만 지닌 채 역할도 잃고 있는 역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노안역(老安驛)은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에 있는 호남선의 철도역이다. 호남선 복선화 공사와 동시에 한 번 위치를 옮겼는데 그게 동네와 인접해 있던 전과 달리 허허벌판에 위치하다 보니 이용객이 크게 줄어 급기야 2011년 10월 5일부터 여객취급이 중지되고 말았다.
호남선 나주역과 광주 송정역 사이에 있는 철도역으로 1939년 5월 역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으나 1944년 페역이 되는 수난을 겪다가 역사 신설로 영업을 재개하여 1949년 에는 역원 배치 간이역으로 승격되었고, 1960년 2월에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는데 2001년 7월 10일 호남선 복선화 공사가 완료되면서 다시 이곳에 역사(驛舍)를 지어 이전하였다. 하지만 2009년 10월 화물취급이 중지되고 다음 해엔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가 다음해엔 여객 취급 중지로 폐역이 도이었다.
나주시 노안면은 백제때엔 고마산현(복룡, 배룡), 통일신라시대엔 용산으로 무주(현 광주)의 영현이었다. 고려에선 복룡현으로 나주에 예속되었으나 조선초에 나주목 소속의 면이 되었다. 복암(伏岩), 이노(伊老), 금안(金安) 3개면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3개면을 폐합 노안면으로 하여 13개 리를 관할한다.
특히 나주는 고령 신씨인 조선시대 여섯 임금을 섬긴 최장수 영의정이었으며 대학자인 신숙주가 노안면 금안리 출신으로 유명하다.
노안면은 나주시청에서 동북쪽으로 10km의 지점에 위치하고 동남으로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인접하고 있으며, 호남선철도의 중간기착지이며 국도 13호선과 지방도 831호선이 관통하고 있는 교통요충지로 비약적인 개발 잠재력이 있는 기회의 땅이다.<제공=나주시청>
코레일 광주본부 소속으로 전남 나주시 노안면 장동리 78-1에 있다.
최원현 nulsaem@hanmail.net
수필가·문학평론가.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사)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수필작가회장·강남문인협회 회장(역임).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등 17권. 《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문학평론집 2권. 중학교 교과서《국어1》《도덕2》 고등학교 《국어1》《문학 상》 등 여러 교재에 수필 작품이 실려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