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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알프스 원정등반 보고서]Mont Blanc 3 Monts & Gouter route - 몽블랑 트레버스 (전종주/화학과89)| 산행보고
몽블랑 트레버스 전종주 (화학89) 드디어 몽블랑 등반이 확정되었다. 7월 30일부터 1박2일의 등반을 마치고 샤모니 계곡으로 돌아온 후 체력과 날씨 등 제반 여건을 따져가며 논의를 나눴었다. 최종 등반대원은 정규형, 상곤, 채현, 아쯔시, 그리고 나를 포함한 5명. 등반력과 고소순응 정도도 중요했지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날씨였다. 스마트폰에 나오는 샤모니 지역의 일기예보는 매일 30% 이상의 강우를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산악지역의 날씨를 전문적으로 예보하는 mountain-forecast.com에 의하면 - 이것도 어차피 확률이긴 하지만 - 몽블랑 정상 부분의 날씨는 밤에 약간의 눈이 내리지만 어느정도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당시까 지의 실제 날씨가 대체로 일기예보보다 좋은 데이터를 보였기 때문에 등반실행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등반 출발일은 지난 3일간의 등반의 여파를 고려해 다음 날인 수요일에 하루 휴식을 취하고 이틀 뒤인 8월 2일 목요일로 의견이 모아졌다. 종현에게 코스믹 산장 예약을 부탁했다. 8월 1일 수요일 아침, 가벼운 차림으로 롯지를 나섰다. 앙데스 Index 지역에서 릿지등반 및 트레킹을 하기위해 프레제르 La Fregere 케이블카 역으로 향했다. 재학생들은 갑수형 등과 릿지등반에 나섰고, 정규형, 상곤 그리고 나는 여러 선배님들과 함께 락블랑 Lac Blanc 트레킹에 나섰다. 샤모니 계곡 건너 몽블랑 산군을 바라보며 싱그런 초원을 가로질러 걷자니 그간 피로가 풀리며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드문드문 뒤를 돌아보며 몽블랑 일대를 관찰했지만, 대부분 구름에 싸여 있었다. ‘내일부턴 저 구름이 걷히기’를 기원을 하며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8월 2일 목요일은 여유 속 긴장감으로 시작했다. 오전 시간은 숙소 옆 정원에 마련된 긴 테이블에 각자 장비와 식량을 늘어놓고 하나하나 따져가며 선택했다.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다름아닌 의류였다. 그래도 고산의 기후는 가늠할 수 없으니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야 했다. 나는 등반의류로 얇은 내복 상하, 후드 셔츠, 소프트셸 자켓과 하의, 고어텍스 자켓과 하의, 경량 다운자켓, 두께별 장갑 3종, 여벌 양말, 버프, 바라클라바, 스키고글 등을 챙겼다. 그리고 기본적인 개인등반장비 외에 22센티미터 아이스스크류와 아바라코프 설치를 위한 후크와 슬링을 추가로 챙겼다. 자일은 이번 원정을 위해 구입한 50미터 8mm 로프 한동과 태용형이 내어준 30미터 8mm로프 한동을 사용하기로 했다. 한 차례 장비에 대한 고민과 결정이 끝난 후 재학생들이 챙긴 장비와 의류를 점검했다. 스노우볼 방지판이 없는 구형 아이젠을 사용했던 채현은 몽블랑 등반을 위해 종현에게 제대로 된 아이젠을 빌렸다. 무게를 줄일 셈으로 트레킹 폴은 하나만 챙겼다. 그리고, 만일을 위해 숙소 열쇠를 정원 돌담에 감춘 후 정오께 배낭을 메고 나섰다. 샤모니 시내에 모인 10명의 등반대원들은 중국음식점에서 정규형이 유창한 중국어로 주문한 볶음밥, 마파두부, 닭고기요리 등으로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에귀뒤미디 케이블카 역으로 향하는 도중 슈퍼마켓에서 1.5리터 생수를 구입해 각자 한병씩 손에 들었다. 역에 도착해 토리노 산장으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형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안전 등반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오후 2시가 다 되어가는 케이블카 역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번호표를 받고 한시간 여를 기다려야했다. 클라이머들이 많았던 이른 아침과는 달리 대부분 관광객들이었다. 드문드문 한국어도 들렸다. 플랑드레귀 Plan de l’Aiguille 중간역에서는 세련된 차림의 한국분들이 우리들의 행색과 목적지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며칠간의 등반으로 옷에서 쿰쿰한 치즈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물론 ‘에라 모르겠다'라며 곧 체념을 했지만 말이다. 반바지, 반팔셔츠 차림의 사람이 꽤 보였다. 아무리 성하의 알프스라고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더워 당황스러웠다. 에귀뒤미디에 도착해 장비를 착용하고 등반을 나섰을 때 얼음동굴에는 낙수가 심했다. 안자일렌을 하고 출발하려는 순간, 3일 전 만났던 대구팀들이 철수하고 있었다. 전날 몽블랑을 등정했다고, 몽모디 급사면에서 사고가 있어 정체가 심해 예상보다 시간이 늦어졌다고 했다. 코스믹산장 아래 설원에서 야영을 해서인지 짐이 상당히 많아 일인당 두어번씩 왕복하고 있었다. 등정축하와 안전등반기원을 교환하며 헤어졌다. 이젠 제법 익숙해졌는지 큰 어려움없이 발레블랑셰로 내려서 코스믹산장으로 향했다. 뒤에는 우리말을 쓰는 커플이 가볍게 따라오고 있었다. 코스믹산장 입구 아래 계단에 도착하니 그 전에 느꼈던 오물냄새가 더 심하게 났다. 산장의 오물처리 방식이 의심스러웠다. 아이젠을 벗고 자일을 사려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장비보관실에서 빙벽화를 벗어 정리하고 있는데 손정준씨 부부가 들어왔다. 우리를 따라오던 커플이 바로 그들이었다. 다음 날 자정께 몽블랑을 오른 후 구테쪽으로 하산하여 마터호른으로 향할 것이라고 했다. 1994년 학교 대운동장에 인공암벽을 세웠을 때 자주 방문해 루트세팅, 등반기술 등을 도와줬던 분이라 반가웠다. 산장은 꽤 붐볐다. 아마도 우리와 목적이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방을 배정받고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내려가니 빈 테이블이 없어 독일인 2사람과 합석해야 했다. 사보이 와인 한병을 주문해 성공적인 등반을 기원했다. 저녁 식사의 메인디쉬로 연어요리가 나왔다. 괜찮았다. 달콤한 디저트까지 꾸역꾸역 집어넣은 후 방으로 돌아와 누었다. 와인 덕분인지 금세 잠들었던 것 같다. 8월 3일 금요일, 0시 30분에 일어났다. 손정준 씨 부부는 이미 출발하고 없었다. 내복 하의를 챙겨입고 장비보관실로 내려가 장비를 착용하고 식당 앞에 줄을 섰는데 안전벨트와 빙벽화는 식당내 불허라는 안내판이 붙어 벗어놓고 다시 줄을 섰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장비를 챙겨 산장 밖으로 나섰다. 전혀 춥지 않아, 아니 너무 따뜻해 놀랐다. 맨손으로 아이젠을 착용하고 자일을 정리하는 데 손이 전혀 시리지 않았다. 새벽 2시. 정규형이 채현과 짝을 이루고, 상곤과 나, 그리고 아쯔시가 함께 줄을 묶었다. 꼴뒤미디 Col du Midi 설원에 내려서니 따퀼 Mont Blanc du Tacul 북사면에는 이미 등반대의 헤드램프 불빛이 줄지어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가이드 페이스'라는 주문을 외며 천천히 나아갔다. 눈상태가 생각보다 딱딱하지 않아 우려를 하며 앞장 서서 가는 순간 허리 밑까지 쑥 크레바스에 빠졌다. 아찔했다. 기어서 빠져나와 조심스레 오른쪽으로 가로질러 다른 길로 들어섰다. 따퀼 북면 기슭에 도착하자 상곤이 물 한병을 데포했다. 정규형과 채현은 이미 설사면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컨디션을 조절하며 천천히 올랐다. 주변이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어느새 몸이 후끈 달아올라 자켓 지퍼를 반쯤 내렸다. 오른쪽(북서쪽) 저 아래로 샤모니의 야경이 보였고, 위를 올려다보니 불빛들이 보였다 사라졌다. 아마도 타퀼 북면이 끝나는 지점이려니 생각했다. 어느덧 사다리가 놓여있는 대형 베르그슈른트에 도착했다. 잠시 한숨을 돌린 후 한사람씩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고도는 해발 4천미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경사가 급해졌다. 그만큼 숨도 가빠졌다. 뒤에 따라붙은 등반대는 조용히 우리 옆으로 질러갔다. 길은 오른쪽(서쪽)을 향했다. 타귈 북서릉을 타고 넘으니 경사가 줄어들었다. 곧 꼴모디 Col Maudit (4,035m)에 이르렀다. 간식으로 사과 반쪽씩 먹고 잠시 쉬었다. 보송빙하까지 이어진 서쪽의 완만한 설사면은 어둠 속으로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아 무서웠다. 상곤이가 선두로 다시 길을 나섰다. 몽모디 Mont Maudit 북면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올라갔다. 주위는 서서히 밝아졌다. 무시무시한 세락들이 여명 속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꽝'하며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입에서 ‘오, 주여…’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앞 선 상곤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베르그슈른트와 크레바스를 교묘히 돌아올라 마침내 정체구간에 도착했다. 이미 빙설벽에 붙어있는 사람들 외에 10여명의 사람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이곳에서 부상자가 발생해 2시간을 기다렸다는 대구팀의 푸념이 떠올랐다. 날은 이미 밝았다. 사람들이 대기하는 베르그슈른트 가장자리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에일리언의 아가리 같았다. 위에서 떨어지는 얼음조각에 아쯔시가 맞았다. 놀랐지만 다치진 않았다.
한시간 가까이 기다리다가 앞에 있던 정규형이 앞팀을 추월해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고정로프에 카라비너를 통과한 채 뒤를 따랐다. 재학생들도 차분하게 피켈을 타격하고 프런트포인팅을 하며 올라갔다. 방향을 꺾어 몽모디 능선으로 붙는 구간은 경사가 급해졌지만 드러난 얼음이 딱딱하지 않았고 이미 딛을 곳이 많이 파여있어 어렵진 않았다. 다만, 위에서 떨어지는 얼음조각들과 정체시 아파오는 종아리가 문제였다. 아침 7시 30분경, 내가 마지막으로 설빙벽구간을 통과해 몽모디 능선에 올랐다.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바로 좁은 설릉을 따라 등반을 계속 했다. 몽모디 서면을 가로지르고 남릉 기슭을 따라 내려오는데 타퀼 쪽에서 다시 ‘꽝’하는 굉음이 나더니 곧 ‘와장창'하며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공연히 발걸음이 빨라졌고, 7시 50분에 사방이 트인 꼴드라브렌바 Col de la Brenva (4,303m)에 도착했다. 비로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몽블랑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가 있는 곳의 동쪽은 이태리이고, 서쪽은 프랑스였다. 햇빛이 좋아 잠시 앉아 간식을 먹으며 상곤에게 “올라온 쪽으로 내려가는 게 힘들것 같다"라고 넌즈시 의견을 전했다. 본디 오전 10시엔 위치에 상관없이 무조건 돌아서서 하산할 계획이었다. 이미 8시가 지났고, 두시간 내로 정상에 가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에귀뒤미디 쪽에서 발생한 두번의 굉음과 계속 이어지는 헬리콥터 소리에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능선 위주의 구테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안전하겠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려면 정상을 올라가야 했다. 상곤의 기합으로 등반을 재개했다. “자, 아자아자, 화이팅!!” 정상은 앞에 빤히 보였다. 길은 오른쪽(서쪽) 전위봉(4,450m)을 넘어 이어졌다. 벌써 등정을 마치고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도를 올릴수록 우리의 진행속도는 점점 떨어졌다.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는 주기가 짧아졌다. 전위봉을 거의 다 올라가니 코스믹산장에서 보았던 일본팀이 내려오고 있었다. 부러웠다. 한발 한발 올려 딛어 전위봉을 넘어섰다. 이제 저 앞, 표고차 400미터의 설사면만 오르면 된다. 몽블랑 정상에는 설연이 날리고 있었다. 잠시 쉬며 팀을 정비했다. 정규형과 내가 자리를 바꿨다. 나와 줄을 묶은 채현은 다친 발뒷굼치가 아프다면서도 잘 따라 올라왔다. ‘저 스카이라인만 넘어가면 정상이겠지’라는 희망은 두어번 무참히 깨졌다. 정상에 가까와질수록 바람이 거세졌다. 이윽고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체감속도도 빨라졌다. 오전 10시 40분경, 몽블랑 정상(4,810m)은 생각보다 넓었다.
10분 뒤 상곤의 빨간색 자켓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정규형, 상곤, 아쯔시도 정상에 올랐다. 좋은 날씨가 선사한 몽블랑 정상에서의 장쾌한 조망은 탁월했다. 채현이 꺼낸 회기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사진을 누구에게 부탁하나 망설이던 차에, 배낭에 태극기를 부착한 한국분이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나섰다. 기념촬영을 하고 감사인사를 전하니 내려갈 때 같이 갈 수 없겠냐며 부탁을 해왔다. 본디 하이커인데 몽블랑을 오르고 싶어 샤모니에서 장비를 대여해 혼자 힘들게 올라왔으나, 막상 내려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더라는 설명이었다. 외면할 수 없었다. 나와 채현 사이에 중간매듭을 하고 그 분을 연결해 구테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발로대피소까지 떨어지는 설릉을 내려다 보자니 하이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채현을 먼저 내려보내고 나는 하이커의 바로 뒤에 바짝 붙었고, 앞사람이 이태리쪽(왼쪽)으로 떨어지면 나는 프랑스쪽(오른쪽)으로 뛰어내려야겠다고 긴장하며 내려갔다. 그 시간에 몽블랑 정상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대부분 가이드 등반팀인 것 같았다. 마주치면 서로 비켜가는 게 일이었다. 드디어 발로 무인산장 Refuge Vallot에 도착했다. 하이커는 감사 인사와 함께 산장에서 잠시 쉬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미 니데글 Nid d’Aigle 역에서 내려가는 막차 시간을 맞추긴 힘들어졌다. 시간이 오래걸려도 걸어서 내려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문제는 구테 산장 아래의 바위구간과 낙석지대였다. 결정을 유보한 채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길은 꼴뒤돔 Col du Dome을 가로질러 돔뒤구테 Dome du Gouter를 오른쪽으로 돌아 세락과 히든크레바스가 즐비한 설사면으로 내려갔다. 멀리 구테산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피로감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금속외관에 3분의 1은 절벽 밖으로 나와있는 구테산장은 마치 우주기지를 연상케 했다. 출입구 밖 평지에 배낭을 벗어놓고 채현과 함께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프론트데스크로 올라갔다. 다행스럽게도 빈 자리가 있었다. 우리가 전날 코스믹산장에서 자고 몽블랑을 거쳐 넘어왔다고 했더니, 직원은 원래는 미예약 가격을 내야하는 데 예약가격으로 할인해 주겠다며 생색(?)을 냈다. 최악의 경우 산장 처마 밑에서 비박을 할 각오까지 하며 배낭에 들어있는 비상용 은박담요를 떠올리고 있던 차여서 반가웠다. 구테산장의 방은 침상이 아닌 개인침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장비를 정리하고 방을 확인한 후 식당으로 내려와 500cc 캔맥주 5개와 1.5L 생수 2통을 샀다. 정호가 엘에이에서 공수하고 상곤이 배낭 속에 넣어온 일명 ‘마약육포'를 안주삼아 건배했다. 빈 속에 맥주가 들어가니 금세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전화상태가 좋지 않아 200mb에 5유로를 주고산 비밀번호를 이용해 산장 와이파이에 접속했다. 단체카카오톡 메세지를 확인하던 중 태용형 사고소식을 접했다. 분위기는 일순 가라앉았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오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했다. 간단히 몽블랑 등반팀의 소식을 남겼다. 상곤과 담배를 피우러 잠시 밖으로 나왔다가 산장 밑에서 절벽 위로 뻗어나간 파이프로 오물이 콸콸 쏟아져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식당에도 오물냄새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결국 따뜻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이 없는 저녁식사를 하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산장의 아침식사 시간이 하산 일정과 맞지 않아 자정께 일어나 아침을 먹고 다시 잠을 잤다가 4시반에 다시 일어났다. 짐을 챙겨 새벽 5시에 하산을 재개하여 옛 구테산장 밑으로 난 암릉구간을 조심하며 내려갔다. 같이 내려가던 영국 가이드가 안자일렌 로프로 낙석을 유발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다. 귀찮아서 “I won’t”이라고 짧게 답했다. 한 시간 이상 암릉 구간을 내려오자 길은 잔설이 있는 꿀르와르를 가로질러 나 있었다. 먼저 앞서서 횡단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있던 상곤이 빠르게 지나가며 “여기가 낙석 구간인 것 같다"라며 말했다. 서둘러 꿀르와르를 빠져나가 안전지대에 접어들었다. 정규형과 채현이 막 진입하려는 순간, ‘투툭'하며 꿀르와르 위에서 돌이 떨어졌다.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 정규형과 채현이 신속하게 건너왔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와르르하며 낙석사태가 발생했다. 우리는 정규형에게 빨리 내려오라고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낙석은 잠시 잠잠해졌다가 다시 더 큰 규모로 발생했다. 커다란 바위들이 굉음과 함께 꿀르와르의 양쪽 면을 부딪히며 아래 빙하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만약의 순간을 떠올리니 오금이 저려왔다.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떼떼산장으로 내려갔다. (2차 낙석사태 동영상 https://youtu.be/NATuXbfRK_4) 떼떼산장 앞 마당에 이르러 비로소 안전벨트를 벗고 자일을 사려 배낭에 넣었다. 다시 지저분한 암릉과 돌밭길을 따라 한 시간 여를 내려가니 드문드문 풀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록색이 반갑고 고마웠다. 양지바른 곳에서 자켓과 내복을 벗고 잠시 쉬는데, 채현이 등산화 창이 벌어졌다고 보여줬다. 태용형에게 빌려온 라스포르티바 가죽 빙벽화의 비브람창 앞부분이 절반 정도 벌어져 있었다. 구테 산장까지는 아이젠을 차고 있었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지니고 있던 고무줄로 응급조치를 했다. 길은 다시 푸석푸석한 돌길로 이어졌다. 첫 기차가 도착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하나 가득 등짐을 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야생화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곧 니데글 산악기차역에 도착했다. 오전 9시 50분이었다. 채현의 등산화창은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산악기차와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레우쉬 Les Houches로 내려오니 8월 4일 오전 11시30분이었다. 그 날 저녁 제네바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야했던 정규형이 동익형과 연락이 닿아 차량픽업을 부탁드렸다. 우여곡절로 일정이 계속 늦어졌지만 내색없이 후배들과 끝까지 등반을 함께 해 준 형이 고마웠다. 상곤이 길 건너 베이커리에서 맥주 5병을 사왔다. 우리는 케이블카 역 옆 골목에 늘어앉아 몽블랑 등정과 하산을 축하했다. 데낄라가 섞여 있는 맥주의 이름은 ‘악당들’이라는 뜻인 Desperados. 병을 비울 즈음 동익형 차가 도착했다. 건섭형이 홀로 숙소를 지키고 계셨다. 귀국을 해야하는 정규형이 바쁘게 짐을 꾸리는 동안, 나와 재학생들은 냉장고에 있던 돼지고기를 꺼내 굽고 태용형이 알려주신 레시피로 토마토 라면을 끓였다. 건섭형이 박스 로제와인을 꺼냈다. 상곤은 홍어회무침에 골뱅이를 넣고 비볐다. 모두 허겁지겁 먹고 마셨다.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고 정규형은 셔틀을 타고 떠났다. 재학생들은 휴식을 취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불콰한 상태로 건섭형, 상곤과 함께 브레방 Le Brevent 전망대에 올랐다. 가는 도중 상곤이와 다음 날 발무에 가자, 패러글라이딩을 해보자, 아니면 셰르꿀르와르를 하자는 등 마지막 일정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브레방 전망대에는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불면서 간간이 빗발이 흩어졌다. 내려다 보이는 계곡이 아주 오래 전에는 빙하로 가득 차 있었다는 안내판을 보았다. 시선을 돌리니 계곡 건너편에 다이내믹한 구름을 이고 있는 몽블랑 산군이 한 눈에 들어왔다. 세월과 함께 짧아지고 있는 보송빙하도. 에귀뒤플랑에서부터 에귀뒤미디 (그 뒤의 코스믹릿지), 몽블랑뒤타퀼, 몽모디, 몽블랑, 돔뒤구테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우리의 궤적을 그려보았다. 지난 4일의 등반으로 -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 꼴뒤플랑에서 니데글까지 몽블랑을 중심으로 트레버스를 한 셈이 되었다. 여러모로 감사한 원정이었다. 하지만, 짧은 일정과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등으로 아쉬움도 남았다. 저녁식사를 위해 내려갔다. 그리운 사람들을 그리며 취했다. 그리고 다음날 이른 아침, 건섭형 등과 차를 몰고 긴 몽블랑 터널을 지나 이태리 아오스타로 향했다. 신세계였다. 사진: 정호진, 이건섭, 김정규, 전종주, 주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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