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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사랑’의 어원
은탁의 세 번째 소원은 세 번째 이름과 그 맥이 닿아 있다. 남친은 사랑의 상징이다.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은 모든 대인관계의 제1원리이다. 나아가 사랑은 모든 종교의 목적이다. 사랑은 나의 존재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곧 사랑은 모든 존재의 수단이면서 또한 목적이기도 하다. 결국 도깨비 드라마는 흔한 사랑의 테마를 다루고 있지만, 다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한 번 더 질문하고 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얼잇기(짝짓기)이다. 모든 대인관계는 얼잇기의 원리로 작동된다. 얼이란 무엇인가? 마음이다. 마음은 무엇인가? 신(神)이다. 신(神)이 육화(肉化)된 것이 만물이다. 물(物)에 마음이 깃든 것이 도깨비이듯, 모든 만물이 도깨비이다. 물(物)이 중심(中心)되는 것이 도깨비이고, 신(神)이 중심(重心)되는 것이 사람이다. 곧 마음이 몸과 하나된 것이 만물이고, 만물 중에 마음이 가장 진보한 존재가 우리들 사람이다. 얼잇기는 서로의 신(神)을 나누는 것이다. ‘나누다’는 ‘낳다’와 같은 어원이듯, 나누는 것은 결국 잉태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사랑은 서로의 신(神)을 나누며 신(神)을 잉태하는 일이다.
한말 사랑의 어원을 사량(思量)에서 찾고 있지만, 반대로 우리말 ‘ᄉᆞ랑’을 음차(音借)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말 ‘ᄉᆞ랑’은 사(思)와 총(寵)의 뜻이다. 우리말 ‘사르다/사ᄅᆞ다/사리다’등은 같은 어원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사르다/사ᄅᆞ다/사리다 + 얼/어리다’의 준말이다. ᄉᆞ랑ᄒᆞᆯ/사(思)는 ‘마음 밭에서[전(田)] 마음을[심(心)] 사르다/사ᄅᆞ다/사리다[사]’의 얼개이고, ᄉᆞ랑ᄒᆞᆯ/툥(寵)은 ‘용(龍)이 집에서[면(宀)] 틔워 도둔 얼[툥]’의 얼개이다. 용(龍)의 형상은 남근(男根)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남근사상이 낳은 상상의 동물이다. 그러면 집은 자궁의 상징이다. 그래서 자궁에서 아기씨를 뿌려 잉태시키는 현상이 또한 사랑의 뜻이다. 따라서 마음밭에서 얼을 잉태시키는[사르다/사ᄅᆞ다/사리다] 것이 사(思)이고, 몸밭[자궁]에서 얼을 잉태시키는[사르다/사ᄅᆞ다/사리다] 것이 총(寵)이다. ‘툥 > 총’의 변화는 자궁에서 남근이 총총거리는 현상에 따라 보다 구체적인 공감각으로 표현된 까닭이다.
사랑의 근본은 한마디로 ‘얼잇기’이다. 신(神)을 잇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서로 얼을 이으며[수단] 궁극적으로는 나의 참나 그 각자 소명의 신(神)을 잉태시키는 것이[목적] 우리의 존재이유이다. 따라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은 또한 ‘신(神)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이기도 하다.
도깨비 드라마에서 신(神)의 모습은 나비 형상의 절대(絶對)신과 삼신할매 그리고 저승사자와 도깨비로 나타난다. 네 가지 형상으로 단순화 시켰다. 나비의 절대신은 장자의 호접몽과 오버랩 된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며 사람인지도 잊고 즐겼다는 일화(逸話)에서 유래된 말이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나타낸다. 호접몽의 나비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절대신은 마음이고, 마음이 몸을 바꾸어 나타나는 존재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물질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이고, 그 집착에서 해탈한 존재이다. "신을 본 적이 있어?" "나는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겼어?" "그냥 나비였어." "늘 그런 식이지. 지나가는 나비 한 마리도 함부로 못하게." 이 세상은 절대신이 모든 만물에 깃들어 있는 곳이다. 신(神)이 물화(物化)된 세상이다.
절대신 나비는 유덕화와 지은탁의 꼬마 친구에게 깃들며 나타난다. 유덕화는 공깨비 가신의 손자이다. 곧 재물의 상징이다. "내 카드. 그게 내 목숨보다 중요해" 그리고 유덕화 이름이 지어진 일화(逸話)는 재물의 존재가치에 대한 암시이다. 유덕화는 홍콩 배우의 이름이다. 그 배우가 상한가를 칠 때 태어나면서 그 이름이 주어졌듯, 재물은 그 주인의 가치에 따라 좌우되는 존재이다. 재물신이 바로 도깨비이다. 공깨비가 유덕화의 삼촌이 되는 까닭이다.
재물은 생물이 아닌 물건이다. 생명이 없는 물건도 애정을 가지고 간직하면 생명이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이 도깨비 신앙이다. 혼을 담아 작품을 만들듯, 창조물이 예술품이 되고 명작이 될 때 그 작가의 혼이 깃들듯, 물건 또한 오래도록 애정을 담으면 생명의 불꽃 그 혼이 깃든 정령 곧 도깨비가 된다는 것이 도깨비 신앙이다. 유덕화는 공깨비의 조카이듯, 도깨비에 가까운 존재이다. 더불어 나비가 깃들면 절대신이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재물에 절대신이 깃들면 절대신이 되듯, 그 절대신이 머무는 어느 것이든 절대신이 되듯, 마음이 깃드는 것이 절대신이듯, 마음만이 절대신이라는 역설(逆說)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작품을 만들 듯, 마음을 가꾸며 절대신이 되기 위해 사는 것이 그 존재이유라는 역설(力說)이다. 유덕화에 나비가 깃드는 에피소드의 복선이다.
지은탁의 꼬마친구는 장풍(掌風)을 쏠 수 있다고 믿는 백지 같은 마음의 어린아이이다. 백지 위에 그리는 마음이 또한 절대신이 되는 까닭의 방증이다. 김선이 나비가 깃든 은탁의 꼬마친구에게 넋두리하는 에피소드는 ‘절대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다. 김선의 입을 통해 신에 대한 넋두리는 스스로의 자각을 상징한다. 곧 선(善)의 입을 통한 넋두리는 선(善)의 자유의지가 신(神)이란 뜻이다. 내 자신의 신을 자각하면 다시 말해 절대적 신에서 스스로 독립하면 밖의 신은 존재이유가 사라진다. "네, 알겠어요"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떠나가는 것이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부모의 슬하를 떠나 독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 자신의 신을 자각하면 절대적인 신에서 떠나 독립하는 것과 같다. "너의 삶은 너의 선택만이 답이다." "그대 삶은 그대 스스로가 바꾼 것이다."
써니(sunny)는 은탁의 세 번째 이름 은탁(听晫)과 일맥상통하는 이름이다. 선(善)의 목적이다. "백마 탄 왕자님?" "연한 싫어. 이왕이면 백마 탄 임금님이면 좋겠다" 선(善)은 차곡차곡 쌓으며 나아가 된사람[임금]으로 되는 것이다. 김선이 연하의 왕자는 싫어하고, 왕여를 사랑하는 이유이며, 써니가 저승사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저승사자는 천국 그 절대신[된사람]으로 인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善)의 존재이유이다.
저승사자는 천국의 계단을 통하는 문과 지옥으로 떨어지는 문을 안내하는 찻집을 운영하는 존재이다. 달리 자유의지의 다른 이름이다. 부부는 일심동체이듯, 김선과 왕여는 동체이다. 선악에 번뇌하는 우리들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의 간절함은 못 여는 문이 없구나. 안 보이는 신도 믿으면서, 보이는 인간의 간절함은 왜 못 믿어. 그게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다. 스스로 운명을 바꾸는 힘." 보이지 않는 신(神)은 믿으면서 보이는 우리의 마음은 왜 믿지 못하는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저승사자와 기억을 잊지 못하는 도깨비. 기억을 하지 못해 괴로운 저승사자와 기억을 잊지 못해 괴로운 도깨비 그 둘 또한 우리들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은탁이 '한 패'냐고 묻는 이유이다. 그리고 저승사자는 전생(과거)을 볼 수 있고, 도깨비는 앞날(후생)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앞날을 볼 수 있는 도깨비의 능력은 무슨 의미인가? 재물의 운명은 분명히 알 수 있지만 마음의 앞날은 알 수가 없다는 역설이다. 지은탁의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저승사자의 손을 잡으면 전생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명부와 연관이 있는 복선이다. 즉, 염라대왕의 거울처럼, 흰 두루마기를 빠는 것처럼, 그의 삶의 행적이 모두 기록되기 때문이다. “저승은 유-턴”인 이유이기도 하다. 윤회의 삶을 뜻하고, '뿌린 대로 거두리라' '하늘에서 이루어진 대로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곧 이승에서 이룬 대로 저승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남의 전생을 볼 수 있고, 입맞춤으로 남의 전생이 기억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자신의 전생은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는 마음을 스스로 죽인 역설(逆說)이다. 다시 말해 절대신 바로 우리 마음의 존재이유에 대한 역설(逆說)이다. 따라서 과거/전생의 마음이 저승사자의 상징이고, 현재/금생의 마음이 도깨비의 상징이며, 미래/후생의 마음이 절대신의 상징이다.
삼신할머니는 태어나는 존재를 점지해 주는 신(神)이다. 우리말 ‘할’은 ‘하나의 얼’이고, ‘하늘’의 준말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존재의 근원 그 하나인 어머니이고, 하늘에 계시고 곧 하늘에 돌아가실 어머니의 뜻이다. 삼신(三神)은 천지인의 신이고, 삼(태반)의 신이다. 즉, 천지인이 하나 되어 태어나게 점지해 주는 신의 뜻이다. 장자가 말했다. “하늘과 땅은 나와 같이 생기고, 만물은 나와 함께 하나가 되어 있다.”고. 전자는 바로 삼신할매가 점지하여 내가 태어나는 의미와, 후자는 나비 절대신의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즉, 삼신할매는 내 존재이유의 처음이고, 절대신은 내 존재이유의 마지막이다.
삼신할매는 배추와 시금치를 파는 노점상의 노파(老婆)로 나타나고, 반지 같은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상의 처자(處子)로 나타난다. 파는 행위는 나무가 가지를 치듯 씨앗을 뿌리는 행위 곧 존재를 점지하는 행위의 상징이다. 노파는 얼이 잉태되어 영글린 존재의 암시이고, 처녀는 사랑의 짝을 찾아 얼을 잉태시켜야 할 존재의 암시이다. 노점상은 흙수저의 상징이고, 길을 가는 장삼이사(張三李四) 갑남을녀(甲男乙女) 모든 사람의 상징이다. 절대신이 나비에 깃든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액세서리는 어떤 의미의 상징이듯, 어떤 존재이유를 이어주는 것이다. 반지는 사랑을 이어주는 상징이다. 써니와 저승사자의 사랑을 이어준 반지의 의미이다. 육교 위 노점상의 복선이기도 하다.
배추는 '배게 추스르는' 뜻으로, 속이 꽉 차는 마음이 여물기를 바라는 상징이고, 시금치는 콩나물처럼 배게 기르며 솎아 내게 치는 뜻으로<‘시금치 어원’ 참조>, 무럭무럭 알차게 자라기를 바라는 상징이다. 나아가 배추는 배움을 시금치는 가르침을 상징한다. 은탁에게 배추와 시금치를 선물한 까닭이다. 아울러 "아가, 더 나은 스승일 수는 없었니? 더 빛나는 스승일 수는 없었어?" 은탁의 선생에게 꾸짖는 까닭이다. 배움과 가르침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즉, 삼신할매의 점지는 각자의 천성대로 배추와 시금치처럼 자라 절대신이 되기를 염원하는 행위와 진배없다.
존재의 점지는 잉태와 배움의 다른 이름이고, 잉태의 여물림은 출산과 가르침의 다른 이름이다. 처음이 마지막이고, 마지막이 처음이다. 삼신할매와 유덕화에 깃든 나비의 절대신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의 복선이다. 잉태가 곧 사랑이고, 출산이 곧 신(神)이다. 사랑과 신은 결코 서로 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동전의 양면처럼 다를 뿐이다. 처음과 마지막의 차이이다.
우리는 삼신할매의 점지로 존재이유를 부여받고 태어나 선악의 기로에서 저승사자의 인도(引導)와 도깨비의 도움으로 각자의 절대신이 되어가는 존재이다. 사랑으로 사랑을 이루어 가는 존재이다. 4분법 구도의 의미이다. 우리는 일부 종교적 멘토(Mentor)들을 신격화시키면서 우리 안의 신을 죽였다. 일반화 오류의 역설인 신격화의 오류이다. 신격화 된 신(神)이 곧 우상이기 때문이다. 즉, 신격화의 오류는 우상화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도깨비 드라마는 도깨비 신을 소환하면서 정령신앙도 함께 소환되기를 요청하고 있다. 내 안의 신(神)에 대해 자각하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삼신할매가 우리를 점지할 때 기쁘지 않은 존재가 없듯. “너를 점지할 때 기뻤거든”
신(神)은 신(申) 글말의 형성자이고, 금문부터 나타난다. 신(神) 본래의 뜻이 신(申)이라는 방증이다. 신(申)의 갑골문은 을(乙) 좌우의 위아래에 ∨과 ∧이 첨부된 글자이다. 즉 ‘안에 들어있는[입(入)] 신명이[신] 나누어 갈라지며[을(乙)] 드러나는[∨]’얼개이다. 사랑으로 잉태된 신명이 여물리어 출산시키는 의미이다. 주로 ‘펴다’는 뜻과 아홉째 지지(地支)의 뜻으로 가차되어 쓰이자, 금문시대부터 따로 시(示)를 덧붙여 신(神)으로 구분했다는 뜻이다. 출산은 또한 ‘펼쳐내는’행위와 다름없다. 신(申)이 ‘펴다’는 뜻도 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소전의 자형은 십(ㅣ)의 좌우에 손 또는 손톱[조(爪)]의 변형체가 덧붙여진 얼개로 변한 까닭이다. 얼을[십(ㅣ)] 좌우로 벌려[좌우의 손(爪)] 신명나는[신] 의미이다. 나아가 해서의 자형은 일(日)과 곤(丨)으로 변했다. 하늘 알의[일(日)] 신명이[신] 뚫고 나온[곤(丨)] 의미이다.
신명을 드러내는 존재의 신(神)은 또 다른 신명을 일으키는 존재의 신(信)과 서로 동전의 양면이고, 음양의 차이이다. 즉, 신(神)은 신명을 들이고 드러난 달리 잉태되고 태어난 존재이고, 신(信)은 태어난 얼[언(言)]의 신명을 일으키며 여물려 다시 잉태시키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신(神)은 존재 자체의 목적을 나타내고, (信)은 존재 행위의 수단을 나타낸다. 도깨비 김신 그 신(信)의 분신인 유덕화에 나비가 깃들면 절대신 그 신(神)이 되는 이유이다. 그래서 신명은 또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참고적으로 영어 love는 ‘즐겁게 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lubet에서 유래했고, 독일어 Liebe도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즐겁게 하다’는 ‘신나게 하다’ 달리 신이 나게 하는 것이고, 신명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프랑스어 amour는 라틴어 amor에서 유래했고, amor는 그리스어 eros의 라틴어 표현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에로스의 대상은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 등 매우 폭넓은 의미였다. 우리말 사(思)와 총(寵)의 뜻인‘ᄉᆞ랑’과 결코 다른 의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