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대한야구협회 심판원으로 활약중인 심태석 씨의 아들로도 유명한 심수창은 아버지의 직업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야구와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해냈다.
그가 힘든 훈련 탓에 야구를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는 혼도 내기도 하고, 조언도 해주고, 함께 캐치볼도즐기며 옆에서 아들을 잘 다독여줬다. 이렇게 엄한 스승이자 때로는 야구에 함께 종사하는 동료로서, 힘든 야구
의 길을 선택한 아들의 든든한 후원군이었다. 그래서 일까? 아버지의 세심한 배려로 심수창은 아마추어에서부터 빛을 바랜 선수였다.
고교시절부터 에이스로 이름을 날린 심수창은 그의 모교인 배명고를 대통령배 준우승으로 이끌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고등학생답지 않은 눈부신 피칭과 제구력은 메이저리그의 명문구단인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sox)로 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로 손꼽히기도 했다.
한양대학교 진학 후, 동의대학교와의 결승전에서 완봉승을 해낸 심수창은 2003 삿포로 아시아선수권 대표팀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후에 아쉽게 교체됐지만, 유일하게 심수창 혼자 아마추어 신분으로서 대표팀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 자체가 뛰어난 선수임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이후, 2004년 그 당시 대졸 신인최고 계약금(2억 1000만원)을 받고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프로에 들어올 때 자신이 있었어요. 대학교에 다니는4년동안 제가 홈런을 딱 1번 맞았거든요. 그러니 프로도아마추어와 비슷하겠다는 자만이 있었죠. 하지만 프로무대로 와서 첫 선발게임에 홈런을 3개나 얻어맞았어요.
그때 느꼈죠. ‘와 역시 프로의 벽이 높구나. 자만하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며 피는 꽃은 없다.
모든 LG트윈스 팬들은 배명고-한양대의 에이스가 LG트윈스 팀에 입단한 것에 대해 기대를 모았다. 심수창은LG 트윈스 입단 후 2년간은 불펜으로 활약하며 프로수업을 받았다. 프로에서도 2006년 선발로 출장해 팀 내최다승인 10승(9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7년 LG트윈스 사령탑 전격 교체와 그 당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FA로 LG의 유니폼을 입게 된 박명환, 그리고 메이저리그출신의 봉중근에게 선발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불펜으로 돌아가게 된다. 07년 시즌엔 10홀드를 기록해냈지만 화려한 06시즌에 비해선 아쉬움이 많았던 시즌이었다. 그리고 그는 갑작스럽게 선발에서 불펜으로 바뀐 보직변경이 부담을 느꼈다. 결국 심수창은
2군행 통보를 받았다.
2군에서 그는 와신상담하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심수창이 2군에 내려가 있는 동안, 팀은 더욱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LG 트윈스의 희망이었던 박명환의 부상과용병으로 활약을 기대했던 제이미 브라운이 성적부진의이유로 퇴출되었다.
2군에 있던 심수창에게는 다시 한번 재기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그리고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08시즌 첫 선발등판이었던 심수창은 5.2이닝 6안타 1실점을 하며 벼랑 끝에 몰린 팀에게 귀중한 승리를 선물 할 수 있었다. 또 개인적으로는 608일만의 선발 승 이였다. 그는 다시 한 번 LG트윈스의 희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만화 ‘개구리 왕눈이’에서 주인공 ‘왕눈이’도 7번넘어졌다 8번째에 일어났다. 하지만 심수창은 18번이나넘어지고 19번째에 일어설 수 있었다. 심수창에겐 동 트기 전까지의 새벽이 남들보다 더욱 길고 어두웠다. 그가18번 넘어지는 동안에도 수많은 시련이 그를 작게 만들었다. 포수와의 다툼으로 인해 다시 2군으로 가야만했으며, LG 트윈스의 新연봉제 도입으로 작년보다 60%나 삭감된 연봉을 일방적으로 통보 받았다. 또 가장 그를 작게만들었던 건 트레이드였다. LG 트윈스의 대표선수였던심수창이 트레이드 된 것에 모든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마감시한 3시간을 남겨두고 이루어진 트레이드였다. 8년간 줄무늬 유니폼을 입다가 자주색 유니폼을 입은 심수창은 모든 것이 어색했다.
“처음 트레이드 이야기를 구단에게 들었을 때, 믿겨지지도 않았고 섭섭했어요. 그래도 넥센 히어로즈에 와서한양대 2년 선배인 김민우 선수부터 손승락, 김성태 선수 등등 모든 선수들이 팀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줬어
요. 김시진 감독님 또한 제가 부담을 느끼지 않고 편하게공을 던질 수 있게 배려해 주셨고요. 모든 분들께 감사하죠.”
이렇게 8년간 한솥밥을 먹던 친정 팀을 떠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 심수창은 다시 한 번 날아오를 것을 다짐했다. LG 트윈스에서도, 넥센 히어로즈에서도 자신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 첫 승을 하는 날이 온다
는 것을 믿고 있었다.
“저는 항상 마운드에 올라가면 ‘안타나 홈런을 맞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자. 꾸준히 한번 밀어붙여보자.’라고 생각해요.”
786일만의 첫 승을 올린 게임에서도 역시 이러한 굳은다짐을 하고 마운드에 올라갔다. 그의 신조대로 심수창은 1회에 홈런을 맞았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을 되잡았다. 그리고 한 타자 한 타자 숨죽이며 아웃카운트를 늘려나갔다.
“그날 6이닝을 던졌어요. 투수교체를 할 때 정민태 코치님이 올라오셔서 저에게 공을 건네 주셨죠. 오늘은 이길 것 같다고 하시면서 말이죠. 이 공은 정말 제 나름대로도 의미가 깊어요. 연패를 끊은 공이기도 하면서 이적하
고 처음으로 승리를 올린 공이기도 하거든요. 아직도 소중히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날 심수창의 1승을 위해 넥센 히어로즈 선수들은 어느때보다 집중력을 발휘했다. 왜냐하면 상대 팀은 8개 구단 중 가장 강타선을 자랑하는 롯데 자이언츠였기 때문이다. 단 2점차였고 롯데 자이언츠의 방망이를 생각하면
순간의 방심도 할 수 없는 상황 이였다. 심수창에게는 9이닝이 매우 길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불안감이 엄습하듯 9회 초, 넥센 히어로즈의 마무리 손승락 투수가 연속안타를 맞았다.
“노아웃 이였고, 주자 1,2루 다 보니 솔직히 오늘도 안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생각은 잠시였죠. 그렇게 긴박한 상황인데도 마운드에서 손승락 투수가 절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자기를 믿어보라는 눈빛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손승락 선수를 믿었습니다.”
그렇게 손승락 선수는 그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약 2년 만에 ‘승리투수 심수창’이 될 수 있었다. 모두가 그의 첫 승을 축하했고, 심수창은 태어나서처음으로 수많은 축하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야구선수를 할 것 이다.
이렇게 다사다난 수많은 일들을 겪고 투수 심수창은 올해로 서른이 되었다. 서른 살이 되고 야구를 하면서 그가가장 닮고 싶은 선수는 바로 박찬호 선수였다. 한양대학교 선배이며 LG 트윈스 시절 겨울마다 팀을 찾아와 조언
도 해주었던 존경하는 선배이자 롤 모델이다.
“박찬호 선배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노력하시잖아요. 그게 결코 쉽지 않거든요.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요. 저도 박찬호 선배님처럼 언제나 노력하는 선수
로 남고 싶어요.”
그는 그 동안 야구를 하면서 매 순간순간 행복했다고 말했다. 마운드 위에 서서 수많은 팬들의 응원에 힘을 받아공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투수 심수창에게는 가장 행복한 일이다.
“사실 마운드는 가장 외로우면서도 고독한 자리잖아요.근데 그 외로운 자리 위에서 팬들의 수많은 함성소리를들으면 가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요. 정말 팬들의 환호를 들으면 없던 힘까지 생기는걸요. 언
제나 팬 여러분들께 감사 드려요.”
마지막으로 그가 넥센 히어로즈에서 새로 꾸는 꿈은 무엇일까?
“새로 꾸는 꿈보다는 LG시절부터 저는 항상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잘하면 더 좋겠죠? 하지만매 순간 진심을 다해서 꾸준히 노력하는 선수로 남고 싶어요. 그게 제 바람이에요.”
그의 목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로 가득 담긴 목걸이가 항상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팬들과 부모님의 사랑을가득 안고, 투수 심수창은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EDITOR 최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