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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행복한 책읽기. 원문보기 글쓴이: 익은콩(서옥순)
행복한 책 읽기 8월 모임
일시: 2013. 8. 10. 토요일.
장소: 화정4동 도서관 (10시) - 담양 명옥헌 운림 - 들풀 빔(13시 점심) - 풍암동 카페 (보니테)
좋은 시들을 한 편씩 골라서 준비해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고은미 회원님)
만 남
용혜원
순수한 만남은
마음을 열어 놓으면
얼굴이 밝아오고
웃으며 오가는 말이
이해가 되어
따스한 정을 느낍니다.
욕심을 갖고 있으면
마음의 편함을 잃고
주위 사람은
괴로워하며
하나, 둘 떠나버립니다.
한 세상 살아가는 일은
만난 사람 사귀고자 하는 건데
서로 감춘 이야기를 나누며
" 이해가 됩니다."
"마음이 아프군요."
" 함께 하고 싶습니다."
몇 마디의 말이 가슴에 다가와서는
순수한 정을 가져다주고
뿌듯한 행복을 줍니다.
(류재옥 회원님)
번짐 (스밈)
장 석 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 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 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하지
산 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남점순 회원님)
목백일홍
도 종 환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 달 열흘을 피어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 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 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윤정숙 회원님 )
단추를 채우면서
천 양 희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잘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노선이 회원님 )
누가 바람을 보았으리
C 로세티
누가 바람을 보았으리?
나도 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바람은 나뭇잎 사이를 스쳐간다.
누가 바람을 보았으리?
나도 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무들이 머리를 숙일 때
바람은 스쳐간다.
( 서옥순 회원님 )
길
윤 동 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신전숙 회원님 )
구월이 오면
안 도 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 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 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 그대에게 가고 싶다 중에서... )
( 강진아 회원님)
내가 본 아내 손금
서 정 홍
자아아, 손금 봐 줄 테니 손을 앞으로 내밀어 봐요.
남자도 여자를 잘 만나야 하지만
여자도 남자를 잘 만나야지요.
손바닥 가운데 여기 굵은 선이 남자선인데
남편이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인데다
고집은 여간 아니겠어요.
그리고 한평생 사람 좋아하고 돈을 멀리할 팔자니
혼인하고 여태까지 참 고생 많이 하고 살았겠소.
엄지손가락에서 가장 가까운 선이 재물선인데
그 선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짧군요.
'공짜 복'이 거의 없어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살아야만 행복이 들어온다는 게지요.
재물선 옆이 바로 목숨선이오.
육식하지 않고, 수입 농산물 함부로 먹지 않고,
천천히 씹어만 먹어도
남편하고 오순도순 백 살까지는 탈 없이 살겠소.
자아, 이제 마지막으로 손바닥 오른쪽을 봐요.
아주 굵고 짧은 선이 네 개 있지요.
사십 대 팔자를 보여 주는 거요.
자세히 보니
그 선 아래 다랑논처럼 작은 칸들이 많은 걸 보아
아무래도 산골 마을로 들어가
사람을 살리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야
모든 꿈을 다 이룰 수 있겠소.
그런데 잔잔한 손금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걸 보아
어딜 가나 귀찮을 만큼 사람이 많이 따를 게요.
그러나 참 다행스런 일은
찾아오는 손님 가운데 그대를 괴롭히거나
해를 끼치는 손님은 없을 터이니 안심해도 되겠소.
찾아오는 손님을 따뜻이 맞이하는 것이
그대 팔자고 그게 복을 짓는 길이라오.
손금을 다 훑어보니
그대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며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니
아무 걱정 하지 마시구료.
허어, 아무리 내가 돌팔이 손금쟁이지만
이쯤하면 복채를 두둑이 내놓아야 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