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방문일 : 2019.7.31.
와보니 오늘은 수요일, 입장이 무료이다. 그래선지 아침에 호우경보가 내렸던 비 소식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몰렸다. 이 미술관에 자주 왔지만 오랜만에 사람들로 흥성흥성한 모습을 보게 되어 기분이 좋다.
일본 미술관은 어디나 만원이다. 조금만 특별하다 싶은 전시면 줄이 한없이 늘어져 입장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이곳은 사람이 많아도 줄 설 만큼은 아니다. 적당히 외롭지 않은 분위기에서 관람할 만큼만 많다.
주요 전시는 곽인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다. 작품에 대한 해설도 동영상으로 돌아간다. 일본인 평론가들이 몇 사람 나와서 작품 해설을 하는 방식이다. 자세히 들어보면 구체적인 작품 분석이나 작품 전체 경향성, 작품의 성과 등에 대한 견해는 없다. 작품 분석은 먼저 그런 소재를 사용하고, 먼저 그런 수법을 사용했다는 것 정도, 나같은 화맹을 안내해주는 전문가적 논의는 기대하기 힘들다.
곽인식 류의 작품은 이해하기 참 어렵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이런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비구상 작품들, 작품인지 아닌지의 구분도 힘드는 '작품', 무엇을 그렸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기 어렵다. 작가의 의도를 알기 어려우면 독자가 관객이 왕이니 내 맘대로 해야 하는데 길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소득이 있다면 초기 몇 구상 작품들이다. <인물(남)>, <모던걸>, <긴머리 소녀> 등이다. 이 외에는 정말 나의 가지 영역 밖에 있는 '작품'들이다.
백남준 비디오아트, 당시는 참 획기적인 작품으로 기억되지만 세월과 함께 퇴색한 작품이다. 예술 작품은 세월과 함께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더 세월의 자산을 새기는 것이어야 할 텐데, 왠지 아쉬운 작품이다. 더구나 각 화면마다 제 목소리를 내고 있어야 마땅한 작품인데 멈춰 있어, 그냥 무력한 사물들의 모임으로 물러나 버린 것 같다. 다른 작품, 보다 생기 있거나 세월의 힘을 발휘할 작품으로 대체하면 어떨까. 올 때마다 입구에 버티고 있는 이 작품을 마주하기가 힘들다.
<작품> 1955
<긴머리 소녀>1946년
<모던걸> 1939
<인물(남) 1937~38
눈에 띄는 작품들 몇 편을 찍어 보았다. 감각적으로는 다가오는 작품이다. 질감이나 색감이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으나 이해도 표현도 너무 주관적, 관객과 화가를 막고 있는 이 장애는 누구의 책임인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기행 #곽인식작품전 #현대미술 # 김지영전
<젊은 모색 2019>전. 7,8명 작가가 참여하는 가운데 눈이 번쩍 뜨이는 참신한 작가가 있었다.
아래 양초 녹아내린 오브제들은 <이 짙은 어둠을 보라>2019, 벽에 전시된 파란색 그림은 현대 참사들을 그린 회화작품
노르웨이 베르겐에 가서 보았던 달의 작품이 떠오른다. 들과 나무가 힘을 가진 모습, 자연의 위엄이 피어나던 그의 그림은 사실 이상의 작품이었다. 그 위엄은 인간을 압도하지 않고 말을 거는 힘이었다.
김지영의 작품은 참사를 그리고 있지만 그 절망과 분노에서 끝나지 않는다. 촛불로 표현되는 대중의 분노와 그 속에 담긴 인간의 힘, 극복의지가 구현된다. 회화 작품의 파랑이 갖는 희망 메시지도 간과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기대이다.
회화는 회화대로 조작은 조각대로 작은 서너평 전시 공간에서 하나로 힘을 합치며 공감을 자아낸다.
참 좋은 작가이다. 선전을 빈다. 덕분에 오늘 발걸음이 허전하지 않다. 이런 작가를 발굴하여 전시해준 미술관도 고맙다. 대한민국의 잠재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김지영'의 나라인가보다.
현대미술관이 새롭게 소장하게 된 작품들 전시이다. 전시회장에 들어가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국작가의 작품만 잔뜩 사다 놓았을까 불안하였다. 외국 화가의 작품은 소수,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한국 작가가 대부분이라 안도. 첫눈에 다가오고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 다수 있었다. 작품을 전시하는 모양새 자체도 작품이었다. 좋은 소장, 좋은 전시다.
이흥덕 <지하철 지옥도> 2010
반월룡 <스케치> 1953, 1954
이중섭, <정릉 풍경> 1956
문신, <고기잡이> 1948
아래는 구내식당 <라운지>에서 먹은 음식들이다. 한식이 없어 조금 섭섭했지만 깔끔한 이태리 단품 요리들이 미술관하고도 잘 어울려서 좋았다.
스파게티와 리조또를 주문했다. 먹을 때마다 드는 생각, 왜 탄수화물만의 단품인가. 양식의 이름으로 이국적 정서를 즐길 수 있지만 곡물만인 건 이해가 필요하다.
이태리는 메디치가와 프랑스 왕실 혼인을 통하여 엄청난 요리의 문화를 프랑스에 전해주었다. 프랑스는 그 자산을 발전시켜 음식의 나라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태리는 그때 힘이 다 빠져버린 걸까. 그 뒤로 이태리는 사실 별로 힘을 갖지 못하고 고기나 생선 요리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투박한 향토 요리, 곡물 중심의 요리로 일상화된 것이 사실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그런 음식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다. 파스타, 리조또 등으로 말이다. 피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리조또는 이태리 말로 라이스, 밥이란 뜻이다. 밥이라는. 보통명사가 음식 이름이 되었다. 밥을 먹는데 리조또를 먹는다고 하면 밥 이상을 먹는 건가.
그래도 이 '리조또'는 내가 보기에는 이름값하는 최고의 음식이다. 맛있고, 그리 비싸지 않아 미술관에서 먹기에는 그만이다.
우리 미술관은 일본 동경 미술관 식당하고는 다르다. 우아한 여성 손님 중심의 미술관 식당에서 어쩌다 빨간 옷 입고 간 나만 촌스럽고 가볍게 튀어 보였다.
일본 미술관의 관람 문화의 한 줄기를 보았다. 무채색 옷들, 그것도 채도가 매우 낮은, 음전한 옷을 입은 부인들,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우아하게 대화하는 부인들이 먹고 있는 음식은 양식, 폼은 나지만 별로 맛은 없는 음식들이었다. 중년여성으로 점령된 식당은 전시실 밖에서 미술관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 미술관은 어디서나 사진 촬영 금지다. 마실 것도 금지, 이야기하는 것도 금지다. 금지에 익숙한 낮은 몸짓이 레스토랑을 메웠다.
우리 식당은 후딱 먹고 일어서서 미술품을 보는 손들을 위한 식당이다. 하지만 투쟁하듯 빨리 먹을 필요는 없다. 커피도 생각보다 맛있어서 작품 감상을 동행과 공유할 만큼의 여유는 가질 수 있다. 이것으로도 부족하면 밖에 나무 그늘 밑의 공간을 이용할 수도 있다. 소음도, 땡볕도 없다. 그늘에 시내마저 있다.
프랑스 루브르는 전투하듯 먹고 일어서야 한다. 도떼기시장같은 루브르식당, 프랑스 음식도 인스턴트같은 식당, 비싸지는 않지만 여유는 가질 수 없는 식당이다. 관광객 위주의 관람객에다 감당 불가의 많은 작품을 봐야 하는 방문객의 입장이 음식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 중심, 기품보다 생기와 동력을 배려한 식당이다. 그속에서 가능한 여유를 찾을 수도 있다. 맛도 분위기도 부담스럽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 좋은 곳이다. 이름값을 하는 우리 미술관이다. 식당에서도 읽힌다.
수유실도 있다. 인간에 대한 배려가 점차 섬세해지는 한국, 좋은 나라, 좋은 사람들이다.
입구 기념품점, 쓸만한 아이템이 꽤 저렴한 값으로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 밖도 사람들의 공간이다. 비가 안 오면 밖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맛은 하루 소풍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텐데, 오늘은 주인공은 못 되어도 그곳을 감상하는 객체가 되는 맛만은 제대로 누렸다.
강요배 <불안> 2017
첫댓글 이번 여름이 가기 전, 들릴 생각입니다. 미술 작품에 식당 음식, 야외 경치까지 모아놓으니, 볼거리가 넘쳐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체가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변했습니다.
의외로 미술관식당이 관람객의 성향을 잘 보여줍니다. 얼마전 다녀온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식당은 미슐랭 식당으로서 아주 고급화한 한국 떡볶이를 팝니다. 우아한 식당, 열려 있는 메뉴가 전시관의 전시의도와도 맞물린다는 생각입니다. 과천현대미술관은 넓은 야외공간까지 어떤 미술관에도 뒤지지 않는 전시공간입니다. 공감하기 어려운 외국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좋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많이 구입한 것도 좋은 운영방안이라는 생각입니다. 좋은 전시장은 마련되어 있으니 좋은 전시품으로 그 값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나들이로 아주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