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銀海寺)>
사찰의 웅장한 모습이 은빛 바다가 춤추는 것 같다 하여 은해사, 안개가 끼었을 때의 모습이 은빛 바다같다고 하여 은해사다. 오늘은 안개가 없이 화창하기가 그지없어 한국의 아름다운 하늘이 사찰을 감싸안은 날이다. 푸른 하늘이 사찰을 덮어 사찰까지 바다로 만들었다. 오늘은 은해사가 아니라 푸른바다 청해사가 되었다.
은해사든 청해사든 창대한 바다, 편안한 바다로 가슴에 닿는다. 커다란 규모에 비해 편안하기 이를 데 없는 사찰이다. 아름다운 사찰을 푸른 하늘 덕분에 제대로 담을 수 있어서 고맙기 그지없다.
소재지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치일리 479)
방문일 : 2020.10.7.
사찰소개
팔공산(八公山) 기슭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혜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로 경북의 대표적 사찰이다. 교구 본사 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현존하는 암자만도 여덟개, 말사가 50여 개에 이른다. 후학을 양성하는 "종립 은해사 승가 대학원"이 있다.
809년(헌덕왕 1)에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해안사(海眼寺)라고 하였다. 이후 여러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는데, 1545년(인종 1)에는 천교(天敎)가 지금의 장소로 옮겨 새로 절을 지으면서 인종의 태실(胎室)을 봉하고 은해사로 개칭하였다.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도 한다.
1847년(헌종 13)에는 은해사 창건 이래 가장 큰 불이 나서 1,000여 칸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같은해부터 1878년까지 지속적으로 수많은 불당이 중수되었다. 1900년대에도 계속 중건이 이루어져 1920년에도 중요 건물이 보수와 건립이 이루어졌다.
이 절은 말사 39개 소, 포교당 5개 소, 부속암자 8개 소를 관장하고 있는 대본사이다. 1943년까지만 해도 이 절은 논 46만4000여 평, 밭 2만8000여 평, 임야 920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2,484평에 세워진 건물은 35동 245칸에 이르렀다. 이 절은 동화사(桐華寺)와 더불어 팔공산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지장전·산령각(山靈閣)·설선당·심검당·단서각·종루·보화루·승당·요사채·객실 등이 있으며, 1999년 성보박물관이 완공되었다. 1943년까지만 하더라도 은해사에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 내에는 19개 건물만이 남아 있다. 대웅전과 보화루의 현판은 추사(秋史)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보물 제 1270호인 은해사 괘불 탱화가 있다.
이 절과 부속 암자에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3점의 문화재와 기타 60여 점의 사중 보물, 24동의 건물이 있다. 지정문화재로는 중국식 건축양식을 본뜬 국보 제14호의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따로 탑재함), 보물 제486호인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須彌壇), 보물 제514호인 영천 은해사 운부암 금동보살좌상 등이 있고, 산내 암자로는 운부암·거조암·기기암·백흥암·묘봉암·중암암·백련암·서운암 등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한민국구석구석 참고)
일주문 편액. 팔공산 은해사
사천왕상
금포정. 일주문에서 보화루까지의 숲길. 대부분 소나무로 조성되어 있다. 엄청나게 넓은 지역에 아름답고 당당한 소나무가 가득 서서 사찰을 지키고, 사람을 지킨다. 수령이 300년이 더 되는 소나무가 많다고 하니, 숲의 위세가 이해가 된다.
한국은 소나무의 나라이다. 한국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이다. 소나무는 어디 가나 볼 수 있지만 사찰 진입로는 대부분 소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불교가 한국인의 삶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절에 오면 누구나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다.
시간이 없으면 이 숲만 보고 가도 헛걸음은 아닌 거 같다. 좋은 절, 좋은 숲이다.
하마비.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모두 말에서 내려야 한다. 부처님 앞에서는 모두 같다.
보화루. 현판을 추사가 썼다. 대웅전 편액을 성보박물관으로 옮겨놨는데, 이 편액은 그대로 진본을 걸어두었다. 추사는 은해사와 인연이 많다. '은해사' 편액도 썼다. 은해사의 백흥암 주련 6폭도 추사의 글씨다. 은해사는 추사의 글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1847년의 화재로 소실된 은해사를 중건하면서 혼허 스님은 추사에게 현판 글씨를 부탁했다. ‘은해사 중건기’(1862)에 주지 혼허 스님이 “대웅전, 보화루, 불광 세 편액은 모두 추사 김상공(金相公)의 묵묘(墨妙)”라고 밝혀 놓았으며, ‘은해사연혁변’(1879)에서 당시 영천군수 이학래는 “문의 편액인 은해사, 불당의 대웅전, 종각의 보화루가 모두 추사 김시랑(金侍郞)의 글씨이며 노전의 일로향각(一爐香閣)이란 글씨 또한 추사의 예서”라고 했다.
추사의 글씨가 새겨진 현판을 이고 있는 전각의 내력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추사의 글씨가 이곳에서 복각되어 도처에 나눠진 것을 보면 그 원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영남일보 2020.12.20) 은해사는 가히 추사의 야외박물관인 셈이다.
추사의 더 글씨를 보고 싶으면 2013년에 개관한 과천의 '추사박물관'에 가볼 것을 권한다. 이곳은 추사의 실내박물관인 셈이다.
보화루 안에서 바라본 대웅전 영역
극락보전.
원래 '대웅전'의 편액은 추사가 썼으나, 이것은 성보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현재의 편액은 고풍스런 건물과 어울리지 않게 도식적인 느낌에 새 것 기운이 강하다. 2009년에 새로 써서 붙이면서 아미타불을 모신 전이어서 '극락보전'이라고 바꾸어 달았기 때문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을 말한다. 은해사는 아미타불을 에 본존불로 모시는 사찰로 유명하다.
극락보전 불당 내부.
은해사는 괘불탱이 유명하다. 괘불탱은 법회나 의식이 열릴 때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의 존상화를 말한다. 10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괘불탱을 전시하는 특별전에 전시되었다. 은해사 괘불탱은 석가모니불 한분만 등장하는 존상화인데, 아미타불이라는 설도 있다.
괘불탱에는 임금의 어진에 사용하는 고급비단 '초'를 사용하였는데, 괘불탱 바탕천으로는 유일한 경우라는 것이 2020년 초 연구결과에서 밝혀졌다.
여기서는 괘불탱 사진을 소개하지 못한다. 아래 그 내용만 소개한다.
은해사괘불탱(銀海寺掛佛幀)
보물 제1270호. 1750년(영조 26)에 보총(普摠)과 처일(處一) 두 화원(畵員)이 그렸다. 정면 불입상이 큰 화폭에 표현된 그림이다.
하단부의 연못에는 연봉오리와 황금색의 꽃술이 탐스러운 연꽃, 중단부는 모란과 연꽃 다발이 산화(散花)하는 모습, 상단부에는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이 화려한 보개(寶蓋) 주위로 모란 혹은 연꽃을 문 여섯 마리의 봉황새 등 배경이 설명적이다.
붉은 테를 두른 화면 밖의 외연은 살색 바탕에 호분(湖粉: 흰 가루)으로 연당초 문양을 찍어낸 듯한 목판화의 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연속 문양 기법은 법의에도 사용되었다. 이 외연대 밖에도 좌·우에 각 33개의 원과 상(上)에 15개의 붉은 원 안에 범자(梵字)를 굵은 황색으로 한 자씩 써넣었다. 이 괘불탱에서 본격적인 범자 문양대가 나타나는데, 18세기에는 범자문 장식이 매우 성행하였다.
괘불탱으로는 드물게 비단을 바탕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삼베 바탕보다는 적과 녹색 등이 더 선명하고 우아하게 발색되었다. 연꽃이 만발한 연못에 서 있는 불상 주위로 극락새가 날고 꽃비가 내리는 신비한 불토(佛土)를 나타낸 배경 묘사는 독존 입상이 성행하는 18세기 괘불탱에 유행하였던 요소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지장전
극락보전(대웅전), 다시 본다.
범종각
10월 25일 은해사 창건1211주년 개산대재를 개최하였다. 개산대재의 일환으로 경내 부도전과 조사전에서 개산조 혜철국사와 역대조사의 다례재를 진행했다.
영천시는 2020년 8월 은해사 등 지역 관광명소 9곳을 ‘2021 영천9경(景)’에 선정했다.
영천9경은 ▲은해사 ▲임고서원 ▲보현산천문대 ▲치산관광지 ▲보현산댐짚와이어 ▲운주산승마 자연휴양림 ▲영천댐 벚꽃 백리길 ▲영천 한의마을 ▲별별미술마을 등이다.
여유가 있다면 은해사와 거조암을 먼저 보고 다른 곳에도 가볼 일이다.
#팔공산 은해사 #영천가볼만한곳 #영천 은해사 #영천9경 #추사글씨
첫댓글 윤동재 시인의 "은해사 추사 글씨"가 바로 여기에 있군요. 시를 읽고나서 은해사를 들르면 감회가 새롭겠지요. 은해사는 윤동재 시인의 시가 있어 더욱 빛날 것입니다.
추사 글씨가 이곳에 많은 줄 저도 가보고 알았습니다. 여행이 공부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방문이었습니다. 경상도에는 좋은 사찰이 참 많습니다. 이 은해사는 왠지 사찰 중에서도 좀 교과서같은 사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든지 평균적이고, 확실하다는 느낌, 사찰의 표준이라는 느낌, 사찰 전공하시는 분들이 뭔가 이런 데 동의하는 규준을 제시해줄 거 같기도 한데요. 사찰 앞의 소나무 숲을 보고 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 소나무 숲도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추사와 만나는 것도 사찰이 갖는 환경 수용성을 보게 하는 일면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씨가 추사 글씨가 아닐까요? 한국인의 생활과 정서에 녹아들어 있는 전형을 보여주는 사찰이 이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 다시 해봅니다. 윤동재 시인의 시로 이런 생각이 더 듭니다.
영천 은해사 추사 글씨
-윤동재
팔공산 동쪽 산자락에 있는데도 절집 모습
은빛 바다가 춤추는 것 같다 하여 은해사로 불리는 절
은해사 대웅전 앞 약속이나 한 듯
오늘 그 이름도 뜨르르한 한중 서예가들이 다 모였네
근래 여러 해 동안 달아놓았던
극락보전이란 현판을 떼어내고
은해사에서도 큰맘 먹고 오늘 하루만은
한중 서예가들을 위해 대웅전 현판을 다시 달았네
중국의 왕희지가 서성답게 앞으로 나서더니
대웅전 세 글자를 가리키며
이전의 추사 글씨는 단순한 기예技藝를 보여주고 있다면
이 세 글자는 기예氣藝를 보여주고 있다 했네
이어 모두 보화루로 자리를 옮기자
보화루 세 글자도 추사 글씨인데
달리 말이 더 필요 없는지
아무도 나서서 설명해 주지 않았네
다만 보화루 앞 계곡물 흘러가는 걸 보더니
한국의 한석봉이 우스개 삼아
추사가 글씨 쓸 때 이 물로 먹을 갈아 썼기 때문에
글씨가 좋다고 했네
내로라하는 한중 서예가들 모두 이구동성
아무렴 글씨를 잘 쓰려면 물이 좋아야지 하며 파안대소했네
그 말에 나도 귀가 번쩍 뜨여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활짝 웃었네
한국신명나라 윤동재 몽유기행시 2020.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