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거수경례를 받을 수 있을까
경찰관이나 군인은 거수경례로 예를 표한다. 거수경례란 오른손을 눈썹 언저리에 올리거나 모자를 썼을 때 챙 옆으로 올려 경의를 표하는 일종의 인사예법이다. 그러면 거수경례는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었을까? 그 유래를 알아보자.
고대로마는 상대에게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으로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 또 중세 기사들은 마상시합(토너먼트)에서 시야 확보를 위해 투구커버를 잠시 올렸다 내렸는데 이 동작을 하급자가 먼저 함으로 예의를 표하였다. 또 군주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투구커버를 들어 올리는 동작에서 거수경례가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미군은 독립전쟁 당시 사병이 장교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였는데 구식 화약 소총을 발사하면서 검어진 손으로 모자를 잡아 더러워지자 모자챙에다 손만 갖다 대게 했다는데 실제로 1820년 거수경례를 군법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위 내용보다도 더 재미있는 설이 있다. 영국 여왕에게 훈장을 받는 수병들에게 여왕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반하지 않기 위해 오른손으로 눈을 가렸다한다. 또 유럽의 왕이나 귀족들의 사교모임에서 여인에 대하여 남성들이 ‘당신의 얼굴은 눈이 부셔서 똑바로 볼 수 없도록 어여쁘다’고 손을 이마에 대고 해를 막는 시늉을 한데서 비롯되었다하는데 어쨌든 상대에게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일종의 의식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거수경례는 상대에 대한 존경과 찬사의 표시가 분명하다. 그렇지만 사교모임에서처럼 눈이 부셔서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어여쁜 여인에게 남성들이 거수경례를 한다면 아마도 그 대상은 역사 이래 절세미인인 양귀비나 서시, 크레오파트라 같은 여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외모와는 딴판으로 존경받을 만한 미인이 못된다. 요즘 국내에서도 러시아의 미녀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다가 큰 코 다친다는 경고가 아니겠는가. 이렇듯 사람은 결코 외모로 평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존경 받을 만한 미인은 누구며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우연히 위의 절세미인들이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진정한 거수경례를 받을 만한 미인을 언론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그 여인은 2017년 5월 언론에 보도된 건국대학 기부천사 이순덕 할머니다. 건대 후문 앞 4억 원 상당의 건물을 이 대학에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북한에 두고 온 동생들을 위해 남겨둔 2억 원을 또 이 학교에 기부했다. 또 건대 발전기금으로 1억 원을 합쳐 기부한 액수만도 7억 원에 달한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이 할머니는 6·25전쟁 때 두 여동생과 이별한 뒤 건대 인근에 정착했다. 통일되면 고향에 남겨둔 여동생을 만나겠다는 염원을 품고 삯바느질과 허드렛일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나 파킨슨병과 폐렴 등 지병으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이산상봉의 꿈을 접고 애써서 번 돈을 학생들을 위해 쓰기로 한 것이다. 자신의 마지막 재산인 살던 집까지 모두 건국대학교에 기부한 것이다.
건국대학교는 할머니의 이름을 딴 ‘이순덕장학기금’을 운영해 매년 4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산학협동관 3층 강의실을 ‘이순덕 기념 강의실’로 이름 붙였다. 당시 현판식에서 이 할머니는 “학생들 덕분에 돈을 벌었으니 학생들에게 베풀고 가는 게 당연하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전 재산을 기부한 이순덕 할머니가 향년 구십 세 로 별세한 것이다.
대부분의 기부천사들은 자신의 선행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일 뿐”이라며 겸손히 말한다. 하지만 “베풀고 가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면서 기부한 할머니처럼 선뜻 남을 위해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드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물질문명이 가장 발달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정서는 메마르고 물질만능으로 인해 삶은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시대를 사는 것이다. 들려오는 소식마다 범죄 아니면 경제 불황에 따른 암울한 소식들뿐이다. 이렇게 사랑과 감동이 메마른 때에 아낌없이 전 재산을 기부한 할머니의 보배로운 선행은 가장 눈부시고 아름다운 존경의 뜻이 담긴 거수경례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 속담과 같이 자신의 이름 석 자가 후세에 회자되기를 염원한다. 허지만 내 이름을 몰라줘도 좋다. 그냥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그런 인생을 살면 되는 것이다. 선행은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일처럼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탈무드의 일화이다. 어느 사나이가 자기의 작은 보트에 페인트칠해달라고 업자에게 맡겼다. 다시 여름이 되자 그의 두 아들이 보트를 타겠다고 졸라서 승낙했다. 아이들이 보트를 가지고 나간 지 두 시간쯤 지난 후에야 보트에 구멍 뚫린 것이 생각났다. 혼비백산해서 호수로 달려가던 그는 무사히 돌아오는 두 아들을 보고 안심했다. 보트를 살펴보니 누군가 꼼꼼하게 구멍을 막은 흔적이 있었다. 그는 페인트 공에게 찾아가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당신이 보트의 구멍을 막아준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목숨을 건졌다.”고 고마워했다.
위 이야기는 작은 선행이 때로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교훈이라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선한 마음으로 무심코 한 일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기쁨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이름 석 자를 후손에게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순덕 할머니처럼 큰 선행은 못해도 남의 것 귀히 여기고 비록 작지만, 나의 소유와 재능으로 이웃에게 베풀 수 있다면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이다. 이런 선행은 결국 거수경례로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