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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스토퍼의 러브 스토리
글 KURT KRUEGER( -CLIMBING 74호에서-)
번역 정광식(엑셀시오 7호, 1977년)
어느 날 저는 젊고 로맨틱하여 마음이 넓은 즉 ‘이상적인’ 한 백인 대학생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의 신발은 별로 특이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조그만 스탠스를 딛고 올라서느라 안쪽이 약간 둥글게 닳아 있어서 그가 몇 번인가 바위를 한 사람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아차, 제 소개를 먼저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저는 취나드가 만든 5호 스토퍼입니다. 요사이 나온 조그만 크기의 5호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취나드가 스토퍼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의 5호를 말하는 것으로 여태 만들어진 어떤 크기의 스토퍼보다 쓰이는 곳이 많은 알맞은 크기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왜 이본 취나드가 모든 스토퍼의 번호를 다시 매겼는지 통 알수가 없습니다. 그는 도무지 전통을 지킬 생각일랑은 안 하는 것 같아요. 저의 크기와 같은 스토퍼는 이제 더 이상 안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5호는 여러 장비들 중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우리의 실패율은 어느 스토퍼나 헥센트릭 너트보다 낮은 0.0237%밖에 되지 않죠.
저는 취나드 6호 헥스(헥센트릭)인 하이디, 그리고 6번 스토퍼인 샐리와 함께 주인의 집으로 왔습니다. 그 외에 5mm 슬링인 한 남자애가 있었고 몇 명의 푸른색 개폐구의 보나티 카라비너도 있었습니다. 저는 수줍음을 잘 타는 소년이어서 처음 둥그런 슬링(그것이 기어슬링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에 걸릴 때 몸을 비비꼬며 겨우 샐리와 한 카라비너로 엮어졌습니다.
제가 처음 톱을 설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물론 그러시겠죠. 저의 주인은 처음 6개월 동안은 근교에서 위에 자일을 고정시킨 채로 연습바위만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이디, 샐리와 저는 몇 명의 새로 들어온 애들과 함께 기어슬링에 한데 엮어졌습니다. 이상하게 보이는 와이어 달린 너트 몇 명, 큰 스토퍼와 헥스 몇 명까지 합쳐 우리들은 모두 8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우리들을 배낭 안으로 던져 넣었는데, 그 안에는 그가 얼마 전 20달러 주고 산 중고 자일이 먼저 와 앉아 있었습니다. 곧이어 항상 그래왔듯이 배낭의 뚜껑은 덮히고 깜깜해졌습니다. 저는 우리들이 데볼 호수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차가 어느 지점에서 회전하고 어느 지점에서 정지하는 것을 보고 알았지요. 산길을 한참 걸어 오르다가 이윽고 우리의 배낭이 열려졌을 때 우리는 클레오의 바늘이라는 바위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도 바보같은 우리 주인은 자일을 끌르며 클라이밍 준비를 했습니다. 축축한 크랙에 쳐박혀 세컨드가 올라와 우리들의 몸을 끄집어 낼 때가지 기다리는 것보다 더 지독한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것은 마치 악몽과도 같았지요.
우리 너트들은 똑같은 상상을 하곤 합니다. 멀리 떨어진 산의 추운바위 속에서 혼자 남겨지는 것 말이죠. 너트마다 주위의 상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의 몸은 조금씩 썩어들어가다가 어느 날 저 혼자 툭 빠져 땅으로 떨어져 비참한 최후를 맞는 슬픈 상상을 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첫 번째 톱 치는 일에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쉬운 몇 피치를 오른 후 처음으로 시작되는 어려운 부분의 확보는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주 좋은 상태의 크랙에 든든한 확보 자세로 박혀 있었습니다.
“확보 잘 봐.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끝장이야!”라고 위에서 박혀있는 채로 소리치는 샐리에게 “한번 떨어져 봐, 문제없이 잡아 챌테니까!”라고 대답은 했지만 저는 여전히 걱정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너트들은 가끔 농담을 잘합니다. 그것은 위험한 순간의 경직된 감정을 풀어주곤 하니까요.
다행히도 우리 주인은 어려운 부분을 넘어섰고 그의 파트너가 저를 움켜잡았을 때 저는 신이 나서 크랙에서 훌쩍 뛰면서 빠져나왔습니다. 샐리는 세컨드에 의해 크랙에서 뽑혀져 저와 같이 카라비너에 매달릴 때 눈을 반짝거리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우리들은 같이 노래하고 웃으며 꼭대기까지 흔들거리며 올라갔습니다. 우리 너트들은 모두 흥에 겨워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장비 꾸러미 속에 묶여져 있는 하이디를 보는 순간 저는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주인이 그녀가 추락에 잘 견디지 못할거라고 생각해서 쓰지 않았다고 울 듯이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습니다. 샐리와 저는 그녀를 위로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앞으로도 수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고 오늘은 추락이 없었으므로 우리도 사실 별로 한 일은 없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추락도 그녀를 마치 가벼운 깃털을 들어 올리듯이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하며 그녀를 부추겼습니다.
우리도 참, 그때는 어렸고 순진했었지요. 추락에 대해 농담도 하고 세상에 추락을 잡아대는 것처럼 쉬운 일도 없을 거라고 떠들기도 했으니까요. 그때가 좋았죠. 날씨는 거의 항상 좋았고 또 항상 적당한 크기의 크랙에 잘 틀어 박히곤 했으니까요. 신참자들은 우리를 항상 존경하였고 우리는 아주 하찮은 일에도 기겁을 하는 그들을 단지 몇 마디 위안의 말로 진정시킬 줄도 알았습니다.
하이디, 그녀는 참으로 멋진 너트였습니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이죠. 1966년 아니 67년 여름이었죠. 아마 미국 역사상 그렇게 큰 추락을 잡아낸 너트는 그녀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물론 실제 등반에서였죠. 우리 주인이 그의 파트너와 함께 록키 마운틴 국립공원에서 큰 벽등반을 할 때였죠. 그 파트너가 하이디의 오른쪽으로 10m나 떨어졌습니다. 도합 약 20m를 추락한 셈입니다. 그는 크게 부당을 당했습니다. 허리였겠죠. 아마 저는 그때 그녀의 아래로 세 번째 너트로 있으면서 모든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녀는 훌륭하게 잡아냈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신음 소리 하나 안 냈지만 저는 그녀의 눈을 통해 그녀의 고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상당한 하이디를 그대로 놔두고 자일만 빼내 그냥 하강하기 시작했습니다. 샐리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주인의 허리에 묶인 채 끌려 내려가며 늦어도 내일은 다시 오겠다고 소리쳤습니다. 끝까지 하이디는 훌륭했습니다. 다른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래 걱정마. 기다리고 있을께!” 라는 말 외에는….
그녀는 아마 아직도 거기에 있을 겁니다. 거의 틀림없이 죽었겠지요. 얼어서요. 너트들은 추운 산에서 보통 5년정도 밖에 살수 없으니까요.
그날은 정말로 끔찍한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세 명의 카라비너, 다섯 명의 슬링, 그리고 하이디를 포함해서 세 명의 너트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러고도 한참을 하강하여 우리들은 땅에 내려설 수 없었습니다. 땅에 내려서자마자 샐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울면서 모두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은 처음 올 때부터 우리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어. 하이디와 남겨진 애들은 아마 지금쯤 서로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르며 있을거야. 하이디 걔는 주인이 늙어 더 이상 클라이밍을 못하기 때문에 벽장속에서 늙어 죽느니 차라리 산에서 죽겠다고 입 버릇처럼 말했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가 제일 앞에 섰을 때 두려워 했을거야. 하지만 그녀는 훌륭히 잡아내고야 말았어. 그 추락은 잡기 쉬운 것이 아니었고 게다가 그녀는 제일 앞에 서 있다는 두려움과도 싸워야 했었잖아.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그만한 추락을 잡아 낸 적도 없고 그 고통이 어떻다는 것 조차도 모르고 있잖아. 우리는 이제 알게 되겠지. 하이디가 우리에게 그 방법을 우리들이 어떻게 우리의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야. 그녀는 우리들의 얼어 죽을 영웅이란 말이야.” 그러면서 그녀는 ‘클라이밍 너트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 우리의 앞에 크랙이 보이걸랑 어서 틀어 박히리라. 눈에 덮인 크랙을 우리의 주인이 오를 수 있도록 그것이 의무라면 우리는 기꺼이 영원히 박혀 있으리 더 이상의 자유라곤 없는 얼어 죽을 영웅의 최후-여. 우리의 등반이 더럽게도 잘 되었다고 엄마와 아빠에게 말 전해 주렴.”
우리 모두는 그녀의 울부짖음에 조금 당황하였지만 점점 한명씩 따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눈이 조금씩 젖어 들어옴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처절한 산행을 하였지만 대부분은 살아서 돌아왔고 다시 클라이밍을 할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신출내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보다 나이 많은 선배 장비들도 우리가 지나갈 때 존경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고, 후배 장비들은 주위에 몰려들어 떠들어댔습니다.
우리 주인 파트너의 기어슬링이 오더니 우리에게 얼마만한 피해가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팀의 리더로서 저는 피해 상황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하이디가 잡아낸 그 무시무시한 추락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는 그녀를 알고 있었고 그녀는 믿을만한 너트였다고, 첫 번째의 희생은 언제나 제일 처절한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들은 우리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고 이야기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로나 찬사의 말이 무슨 소용입니까! 저희들은 여전히 쓰라린 희생만을 가슴에 안고 있으니까요.
그 후 우리는 희생된 친구들 대신에 신참자들을 맞아들여서 더욱 굳건한 팀으로 성장해갔고, 한층 어려운 루트들과 많은 초등반을 이룩해 나갔습니다.
신참자들은 우리 팀의 전통을 하나씩 들어가며 등반 기술을 배워 나갔습니다. 저는 요세미티를 포함한 미국의 여러 어려운 암장에서 난코스들을 확보하며 성장해갔습니다. 제일 앞에 서서 머리 끝이 쭈뼛거리며 제발 추락하지 말기를 빌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후배 장비들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리더였습니다. 그것은 외로운 자리이죠.
저의 위험한 순간은 몇 년 안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 추락은 집근처의 암장에서였고 결코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곳은 브리톤크랙이라는 곳이었는데 12번도 넘게 오르락 내리락 거렸으므로 저와 주인의 사이에는 별다른 확보도 없었습니다.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칠면조독수리를 무심히 쳐다보고 있을 때 무엇인가 제 옆을 휙하고 날아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저의 주인이었습니다. 그의 갑작스런 충격이 제 몸에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과 제가 엉겹결에 몸을 추슬러 확보자세를 잡은 것은 거의 동시였습니다.
“턱.”
그 충격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고 저는 슬링이 제 몸을 반으로 찢어버리는 것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제 눈에는 불이 번쩍 뜨였습니다.
주인도 그가 추락한 것을 믿을 수 없었던지 흔들거리며 매달린 채로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저는 주인의 그 빌어먹을 몸무게를 제발 치워달라고 신음하듯이 겨우 말하였습니다.
“도대체 내가 뭐란 말인가, 단순히 도구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야!” 저는 이 정도의 욕밖에 할 수 없었을 따름입니다. 저는 이렇게 시련을 이겨내는 명실상부한 리더였습니다.
저의 주인이 다시 톱을 서서 그 루트를 끝냈을 때 그는 저를 끌어올려 가볍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제이(저의 슬링)가 보통때보다 조용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거의 끊어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주인이 할수 있는 일이라곤 그를 그 비참한 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것뿐이었습니다. 슬링도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이지요. 그는 주머니칼을 꺼내 제이를 잘랐습니다. 저는 도저히 쳐다볼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이의 생명이 마지막으로 끊어질 때 와르르 떠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의 다음번 슬링은 괜찮은 놈이었습니다. 별로 특이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의 역할을 훌륭히 해 냈습니다. 저는 다음 주말 기어슬링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동료들은 제가 추락을 잘 잡아냈다고 축하해주며 지금은 죽은 저의 옛 슬링이 참으로 안 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몇몇 계집애들이 제가 어울리지 않게 새 슬링과 한패가 되었다고 놀려댔으나 저는 그냥 씩 웃었습니다.
저의 일생에 있어서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은 샐리를 잃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엘도라도 캐년에서였습니다. 그 때 우리는 첫 번째의 떼죽음 이래로 세 명의 너트를 더 잃었을 뿐 우리의 수는 5배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한 젊은 세컨드가 크랙에서 샐리를 빼내는데 어려움이 있었나봅니다. 저는 올라가면서 샐리가 설치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주 일상적인 쉬운 설치였습니다. 쉽게 들어가면 쉽게 나온다는 것을 아는 저는 샐리에게 정상에서 다시 보자고 하며 평범한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세컨드는 그녀를 그냥 놔두고 올라와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피치가 끝날 때까지 우리 주인에게 이야기조차 하지 않은채로 말입니다. 저는 물론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그녀를 향해 소리쳤으나 그 망할 놈의 시냇물 소리가 너무도 시끄러웠습니다. 주인이 그날 저를 더이상 쓰지 않은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저는 한사람의 체중조차도 견디기가 힘들었으니까요. 동료들은 제가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보려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하이디를 잃고 나서 샐리가 말한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은 처음 올 때부터 우리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어….”하고.
그 이후로 클라이밍은 예전과 같이 그렇게 즐겁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처음 바위를 시작할 때부터 같이 있던 두명의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포함해서 너무 많은 죽음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5년 뒤 저는 주인의 기어슬링에서 떠났습니다. 다른 5호 스토퍼로 대체되었냐구요? 아닙니다. 취나드는 옛날 5호 크기의 스토퍼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과 파트너가 같이 클라이밍을 시작한지 바로 얼마되지 않았던 어느 눈 오던 날, 파트너의 부인이 애기를 낳았습니다. 예쁘고 튼튼하게 생긴 딸(우리 주인과 반대인 사람)이었습니다. 손가락이 긴게 인상적이었죠. 그 애기가 자라서 이제 8살이 되었고 클라이밍을 시작했습니다. 주인은 자기가 마치 아저씨가 되는 양 그녀의 장비꾸러미를 만들어주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어린 소녀는 좋은 장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죠. 그녀의 아버지가 5호 스토퍼(요사이 5호가 아니라 옛날 5호 스토퍼)의 가치를 이야기해 주어서인지 주인이 저를 장비꾸러미에서 들어올렸을 때 지나(그 소녀의 이름)의 눈은 호박만큼이나 커졌습니다. 주인은 전에 제가 그녀의 것이 되어서 그녀를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저는 아직 제 동료들에게조차도 이야기하지 않았었습니다. 이별이 이렇게 빨리 올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는 저를 그 소녀에게 내주며 주인을 말했습니다.
“너한테 선물을 주마. 이 너트는 너의 아빠와 내가 클라이밍을 시작한 이래로 계속 함께 있었단다. 그동안 결코 우리를 실망시킨 적도 없고 너 또한 실망을 시키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단다. 네가 만약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든든한 앵커가 필요하다면 이 너트가 바로 그것이란다. ”
제 나이에 처음보는 다른 장비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하나의 도전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요즈음 새로 나온 장비들은 아주 우스운 꼴을 하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취나드 스토퍼와 헥스, 그리고 때때로 하켄이 전부였으나그녀의 기어슬링에는 뭐 “후랜드”라나 그런 이상하게 생긴 것과 ‘록스’나 ‘컴벌너트’같이 듣도보도 못한 애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상한 꼴을 숨기려는지 짐짓 큰 소리로 저보고 ‘싸움터에서 늙은 말’이라고 떠들어댔습니다. 그러나 저는 곧 걔네들도 나쁜 아이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결국에는 서로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친구들은 거의 아무 크랙에나 잘 틀어 박힐 수 있기 때문에 확보 지점의 부족으로 크게 추락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10m의 추락을 잡아낸 일도 있다고 하니까 그들은 경악스러운 비명을 질러댈 정도였으니까요.
지나는 아주 훌륭한 클라이머이자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났습니다. 항상 남자들이 그 주위에서 몰려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할 줄을 알았으므로 그녀에게 나쁜 남자들과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충고를 하곤 하였습니다. 그녀가 테톤(그랜드 테톤) 근처의 냇가에서 발가벗고 수영하는 남자를 만나 서로 사랑하기 시작하였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는 약간 건달기가 있기는 하였지만은 정말 좋은 사나이같아 보였습니다. 게다가 그 또한 클라이머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그녀에게 축복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들이 처음 클라이밍을 같이 하러 갔을 때 여주인의 배낭속에서 조바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의 장비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말입니다.
“확보 잘 봐.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끝장이야.”
엉? 아니 이게 누구야? 그것은 그 남자의 색에서 나오면서 저를 발견한 샐리가 기쁨에 겨워 지르는 소리였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그녀를 두고 떠난지 이틀 후 그곳을 등반하던 그 남자에게 발견되어 크랙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같이 클라이밍에 뽑혀서 등반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 헤어지고 난 이래로 일어났던 일에 대해 내내 이야기했습니다.
샐리는 하이디가 죽은 그 루트에도 다시 갔었습니다. 그녀는 하이디가 마침내 크랙에서 힘이 빠져 떨어지면서 바위에 낸 자국도 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등반 중에도, 확보 장소에서 다시 만날 때마다 그리고 내려올 때도 계속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날은 오랜만에 참으로 즐거운 하루였었습니다. 샐리와 저는 더 이상 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위해 그들 두 남녀는 결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다행히도 아주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구태여 우리가 나서서 그들의 결혼을 서두를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결혼식 전날 저의 여주인은 그녀의 아버지와 그의 파트너 즉, 저의 옛주인과 함께 ‘브리튼 크랙’을 등반하였고 우리들은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너트라는 것과 아직도 살아있다는 일은 정말 얼마나 멋진 일이란 말인가!
저는 아주 멋진 일생을 보냈습니다. 많은 친구를 가졌고요. 그리고 저는 벽장속에서 천명을 다하고 늙어서 죽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크랙속에 박혀있습니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샐리는 한 피치 밑에 있었습니다. 더 밑으로 또 다른 애들이 박혀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우리 여주인에게 그날은 클라이밍을 하지 말라고 말렸으나 그녀는 임신 중에도 한달에 한번만이라도 바위를 하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등반도중 갑자기 날씨가 나빠져 중간에 급히 하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주인의 남편은 저를 움켜쥐더니 하강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주인은 ‘그것말고….’하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으나 저는 괜찮다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들이 내려갈 때까지 샐리와 저는 서로 한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다음 테라스에서 샐리가 남겠다고 자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윽고 샐리가 그들을 잡아주고 있는 동안 그들은 내려갔습니다. 저는 샐리가 30m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니 외로움이 훨씬 덜어졌습니다. 이윽고 땅위에 내려선 그들이 사라지는게 보였습니다. 그때 컴벨너트 6호가 이야기하는게 들려왔습니다.
“우리들은 처음 올 때부터 우리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어. 하이디, 5호스토퍼, 그리고 또 다른 남겨진 애들은 지금쯤 서로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을거야. 샐리, 걔는 주인이 늙어 더 이상 클라이밍을 못하기 때문에 벽장속에서 늙어 죽느니 차라리 산에서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었어. 우리가 크게 노래하면 걔네들도 분명히 들을 수 있을거야”
“ 오- 우리의 앞에 크랙이 보이걸랑 어서 틀어박히리라. 눈에 덮힌 크랙을 우리의 주인이 오를 수 있도록.”
그들의 노래소리는 점점 멀어지면서 바람결에 들려왔고 곧이어 샐리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크게 잘가라고 소리쳤으나 제 눈은 다시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아마 우리들은 이 루트를 다시 오르는 다른 클라이머에 의해 크랙속에서 빼내리라는 기대를 품고 계시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 기대를 깼습니다. 그후 바로 얼마되지 않아서 그 암장에서 등반은 그 지역의 멸종되어가는 한 희귀식물 때문에 금지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운명은 여기서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별로 마음 상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늙었고 아주 멋진 일생을 살았으며 더구나 평생을 사랑하던 샐 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 어린 여주인의 다음 세대 클라이머들이 옛날 5호 스토퍼가 얼마나 좋았는가를 모른다는 게 조금은 안타깝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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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