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내가 경멸하리라>
성경에 천국은 마치 보화를 발견하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보화를 구한다고 말씀을 한다. 중국선교에 천국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주일성수가 그렇게 중요하기에 100미터 올림픽 금메달 유망주가 경기를 포기하고 주일 예배에 드리러 간다.
이런 믿음의 사람을 다시 일으키기를 주님이 원하시는 것 같다.
정상적인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에릭 리들의 주일예배를 드리는 믿음을 묵상하고 이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주일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에릭 리들(Eric Liddell, 1902~1945, 스코틀랜드)은 1902년 중국 천진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중국 선교사의 자제로서 먼 거리를 걷고 달리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육상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면서 스코틀랜드에서 교육을 받았다.
에든버러 신학대학에 입학한 뒤 본격적인 육상선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당시 수년 간에 걸쳐 스코틀랜드는 물론이거니와 전 영국 단거리 육상대회를 모조리 휩쓸었으며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럭비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에릭 리들은 영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그러나 100m 경기 첫 예선일자가 7월 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였다. 그는 그 일정표를 보자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 뜁니다”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다. 그의 그런 결정은 주일성수를 위한 자기 희생적 결정이었으며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에릭 리들의 100m 경기 출전 포기 소식을 들은 영국 언론과 국민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며 신앙심 깊은 척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웨일스의 황태자까지 나서서 그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100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 6일 주일에 스캇츠 커크(Scats Kirk) 장로교회에서 간증 설교를 하였다. 그날 에릭 리들은 경기장에 나가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도 하지 않았고 평소처럼 교회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결국 100m 경기에서는 에릭 리들을 대신해서 출전한 영국의 헤롤드 아브라함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유태인으로 나중에 체육부장관까지 지냈다. 에릭 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헤롤드 아브라함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하나님은 에릭 리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에릭 리들은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200m 경기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m 경기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사실 400m 경기에서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 같은 선수들이 예선전부터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후보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400m 결승의 날이 왔다. 에릭 리들은 빠른 속도로 첫 코너를 돌았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라고 불안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임바흐, 피치 등의 우승 후보를 제치고 ‘47초6’이라는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결승전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 준 쪽지에 적힌 말씀이 응답된 것이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He who gonours me. I will honour.)” 바로 사무엘상 2장 30절의 말씀이다. 그는 400m 경기의 우승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처음 200m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 200m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은 자기를 위한 날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설교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올림픽 경기로 국가적 영웅이 되었지만, 에릭 리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이듬해 영웅으로서의 모든 영광을 내던진 채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24세의 젊은 나이로 중국 선교사로 떠났다. 그는 운동선수의 화려한 명성이 선교지의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에 비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에릭 리들은 12년간 천진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했고, 그 후 7년 동안 산동반도 곳곳을 다니며 농촌 지역에서 전도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몇 년간 1,800명의 기독교인들과 함께 일본군 치하 웨이시엔의 수용소에 갇혀 지내며 타인들을 격려하는 삶을 살다가 그의 나이 44세 되던 해인 1945년에 뇌출혈으로 사망했다.
에릭 리들의 실화는 휴 허드슨 감독의 영화 ‘불의 전차(Chariot of Fire)’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고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불의 전차’는 영국 영화임에도 1981년 제54회 오스카 작품상, 각본상, 음악상, 의상상 등 4개 부문을 석권,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불의 전차’는 가장 올림픽과 관련이 깊은 영화이자 영국의 육상스타를 모델로 한 것이기에 이 영화에 삽입된 OST는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연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의 메달 시상식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유명세를 떨쳤다. 에릭 리들 선교사의 이야기는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선교사 전기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책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사무엘상 2:30 KRV
““Therefore the Lord, the God of Israel, declares: ‘I promised that members of your family would minister before me forever.’ But now the Lord declares: ‘Far be it from me! Those who honor me I will honor, but those who despise me will be disdained.” 1 Samuel 2:30 N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