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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 21.
뉴노멀 : 위험일까 기회일까?
출애굽기 14:29-31 I.
똑같은 햇빛이지만 초콜릿은 녹고 진흙은 더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죽은 나무는 더욱 바싹 마르고 살아있는 나무는 싱싱하게 자라납니다.
흔한 말로 위기는 위험이 되기도 하고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더 큰 위험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팬데믹 패러독스라고 하는 게 있는데요.
바이러스 팬데믹이 지나고 나면 지난 역사 속에서 팬데믹 이후 몰락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역사의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고 가정도 한 개인도 마찬 가지입니다.
코로나 3년째에 접어들면서 여러분에게 뉴노멀이 위험입니까 아니면 기회입니까?
조그 마한 어려움 속에 주저앉아 넘어져 있고 수렁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안계십니까?
오늘 말씀의 제목이 “뉴노멀 : 위험일까 기회일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살던 어느 날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열 가지 기적을 동원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출해 냅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바로 왕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온갖 살림을 챙기고 양떼를 몰고 가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당당히 행진을 시작합니다.
앞에서는 구름기둥 불기둥이 광야 여정 을 인도합니다.
얼마나 근사한 광경입니까?
그런데 아뿔사! 이게 웬일입니까?
앞에 는 홍해가 넘실거리고 가는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좌우에는 높은 산으로 도망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입니다.
뒤에서는 요란하게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오늘 본문이 이 상황을 통하여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상황이 네가 만난 상황이라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출발한 구원의 여정이, 기쁨과 승리의 길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 커다란 어려움의 길이라면 그대는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대처하겠느냐?
위험과 도전, 시험과 실패, 험산 계곡이 가로막고 나선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느냐?
이 길, 모세가 선택한 길이었습니까?
백성들이 원했던 길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신 길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은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실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을 구름 비행기에 태워서 가나안 땅에 뚝 떨어뜨릴 수 있는 분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구원해 놓고 왜 사면초가, 진퇴양난, 막다른 골목으로 인도하신 것일까요?
출애굽 이스라엘의 이 상황이 바로 당신의 상황이 되어버린 경험은 없으신지요?
예수 믿고 오직 주님 뜻대로 살리기로 했네 결단했습니다.
술잔을 엎어버렸습니다.
담뱃갑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습니다.
금방 신학교에 갈 모양입니다.
혼자 열심을 냅니다. 순교자라도 될 성싶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업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가정에 커다란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자녀들이 방황합니 다.
가정에 위기가 왔습니다.
비난의 화살이 날아옵니다.
멀쩡하던 친구관계, 인간관 계가 산산이 깨져 버렸습니다.
예수 믿고 만사형통이 아니라 위기의 홍해가 내 앞길 을 가로막습니다.
하나님만 찬양하기로 결단하고 헌신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중병이랍니다.
기도하고 겨우 벗어나는가 싶더니 또 다른 부위로 전이 되었답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고백하며 울며 노래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소 진영 찬양사는 아닌 아닐터인데... 순결하게 살기로 결단했는데 자식이 풀썩 쓰러집 니다. 모든 것이 은혜 은혜로다. 눈물로 노래 부르게 합니다.
너도나도 지선 찬양사 가 될 수는 없을 터인데 말입니다.
나가세 나가세 힘차게 출발했던 이스라엘은 홍해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합니까?
묻을 곳이 없어서, 공동묘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왔느냐?
노예든 뭐든 애 굽사람 밑에서 목구멍 풀칠하고 살도록 내버려 두지 왜 이곳으로 끌고 나왔느냐?
이 불평, 원망이 열 가지 재앙을 오롯이 경험한 백성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 이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가 세상사에서 위기를 만납니다.
조그만 어려움이 찾 아오면 우리가 토해내던 말과 어쩌면 그렇게 흡사합니까?
어리석은 사람의 무기가 있습니다.
나 교회에 안 나가. 나 사역 안 할래. 교사, 찬양대 그리고 목자 그만 두겠어. 예배가, 기도가 내게 뭘 갖다 준 게 있어?
이런 사 람들 잘 살펴보면 누구보다도 큰 은혜를 입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빌 게이츠가 금년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 모두에게 한 권씩 선물 한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습니다.
한스 로슬링이 쓴 팩트풀리스 (FACT FUL NESS) 책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모든 인간에게 두 가지 본성이 생겼다는 겁니다.
첫 번째 부정 본능입니다.
내 앞에 긍정할 수 있는 상황도 있고 부정 적인 상황도 펼쳐져 있으면 인간은 너도나도 너나 할 것 없이 부정적인 상황 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서도 크게 내게 다가오게 되는데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비난의 본능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의 모든 원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고 환경 속에서 찾 아내서 불평합니다. 비난합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능, 본성이라고 이 책 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살펴보면 전염병 팬데믹은 바로 홍해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과 흡사했습니다.
바이러스라는 홍해 앞에 몰락하느냐?
홍해를 가르고 약속의 땅으로 진격하느냐? 언제나 갈림길이 있어서 망하는 사람이 있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뉴노멀이 위험거리가 되느냐 기회가 되느냐? 갈림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상황이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17세기 런던과 파리를 강타한 페스트 바이러스가 있었습니다.
설상가상 이때 런던 대화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는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고 페스트 바이러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을 아까워하지 않고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페스트 이후에 영국은 큰부흥을 경험했고 영국교회는 세계를 섬기는 선교국가가 되었 습니다.
그것이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 산업혁명입니다.
파리 또한 페스 트 이후에 세계문화의 중심지로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에 한국 사회, 한국 교회는 어떤 길을 걸어갈 수가 있을까요?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자녀들은, 여러분이 시작한 조그마한 사업은 어느 길로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백년 전 1917년, 1918년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시달리고 있을 때, 스페인 바이러스 팬데믹이 찾아왔습니다.
스페인 독감(Spanish influenza)은 사실 미국에서 발생된 것인데 이것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중립국인 스페인으로 가서 확산일로에 있 었고 또 알폰소 국왕까지 독감으로 죽는 극에 달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이 독감은 스페인 독감으로 불려지게 된 것입니다.
백신이 있었겠습니까? 처방약이 있었겠습니까?
소금물로 입을 헹구고 거리두기하고 집회를 중단했습니다.
전 세계인의 60%가 감염된 후에 집단방역이 되어 사라진 독 감이었습니다.
이 당시 미국은 개신교인이 90%가 넘는 부흥의 기간을 보내고 있었 습니다.
스페인 독감을 잘못 관리한 이 일로 미국 교회는 침체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때 우리나라는 나라 잃은 서러움에다가 설상가상으로 바이러스 독감에 시달 리고 있었습니다. 일제는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료혜택도 돌봄도 주지 않고 있을 때에 교회가 선교사님들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우리 국민을 도왔습니다.
이것이 3.1운동의 간접적인 계기가 되었는가 하면, 선교사님들과 한국 교회의 몸부림으 로 영적인 물줄기가 한국교회로, 일제강점기 나라잃은, 주권을 잃어버린, 말을 잃어버린, 모든 양식을 빼앗기는 위기상황속에서 놀라운 영적인 기회를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부족한 종이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대표회장에 취임하던 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돌아가서 거창하게 취임식을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양 화진 선교사 묘지공원을 찾았습니다. 왜요?
거대한 잔치로 출발할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던, 일제강점기 바이러스 시대에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죽어갔던 그분들 곁으로 찾아간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고 믿 었기 때문입니다.
1년동안 부족한 종의 행보가 바로 그들의 뒤를 따르는 십자가의 길임을 저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군 정신으로 힘을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정신으로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바로 이 시대 리더들이 걸어가야 될 길 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에스더서는 하나님 안에서 펼쳐지는 역전의 드라마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는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에스더서 전체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경논쟁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과연 성경으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더서 읽어보면 “하나님”이란 단어, “하나님의 영”“성령”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역사의 배후에서, 힘있게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능력 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유다 민족을 몰살시키기 위한 하만 장군의 치밀한 작전 이 펼쳐집니다.
유다인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한 사형대가 준비되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이, 하만의 치밀했던 작전보다도 힘이 있었습니다.
장대에 매달리 는 사람은 모르드개가 아니라 하만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위기 앞에 서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네가 당하는 위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너희 가정과 한국 교회가 당하는 어려움이 무엇이든지 간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위기 뒤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승리, 하 나님의 능력을 보라는 것입니다.
위기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백성들을 향한 지도자 모세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다.
오늘 본문 13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 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이어지는 14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14:14)
오늘 본문 출애굽기 14장에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 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경외”도 역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뜻으로 똑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위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위기만 보입니다.
문제를 두려워하는 자는 문제만 보입니다.
어려움이 무서운 자는 어려움만 보이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문제가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 을 경외하는 자는 세상이 무섭지 않은 법입니다.
선택하라.
너는 문제의 위기를 두려워할 것이냐?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이냐?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냐?
문제를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문제가 보이지 아니할 것이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 원을 보라”(출14:13)
여기 “가만히 서서”라는 말은 퍽 재미있는 말입니다.
“서다”라 는 말은 히브리 원어 “야챠브”라고 기록되어지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 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서서” 는 침묵 가운데 하나님 편에, 내 인생에 주사위를 던지라.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
어느 길로 갈 것이냐?
무슨 일을 할 것이냐?
뭘 믿을 것이냐?
내 인생의 주사위를 하나님 편에 던지겠다. 이게 “서서”라는 단어입니다.
인생의 광야는 분명 위험과 고난이 찾아오는 자리입니다.
또 한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크게 들리는 자리입니다.
히브리어로 “광야”를 “미드바르”라고 합니다. “말씀하신다”는 말은 “다바르”라고 합니다.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광야라는 말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말의 어원이 같다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히브리 사상입니까? “미드바르”는 “다바르”하는 것이다.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다.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이 크게 들리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가까이 나아가는 자리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자리입니 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자리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 은혜로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이게 미드바르, 광야라고 하는 것 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코로나 이후에 세상
즉 뉴노멀의 세상은 여러분 앞에 위험입니까 기회입니까?
뉴 노멀은 팬데믹 이후에 펼쳐지는 다른 표준, 다른 기준,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하고는 달라진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들려오는 뉴노멀의 소식은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것들뿐입니다.
희망적인 긍정적인 소식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미래를 예견하는 소식들이 더욱 부정 적입니다.
교회 영향력은 떨어질 것이고, 교회에 대한 사회적인 우호적인 시각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희망을 보아야 합니다. 희망을 말해야 됩니다. 희망을 선포 해야 됩니다. 희망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만들어주는 알사탕이 아닙니다.
공중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감홍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내가 만들 때에 내 가정이 희망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희망을 만들 때에, 우리 교회가 희망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희망을 만들 때에, 이 사회가 희망의 세상으로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의 위기 앞에서 백성들은 넘실대는 홍해를 보았습니다.
뒤에서 요란하게 추격 해 오는 애굽의 말발굽 소리를 들었습니다.
좌우에 솟아 있는 산들을 보았습니다.
막다른 골목이구나!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불평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오늘도 어리석은 불신앙인들은 문제를 보고 어려움만 봅니다.
환경이 어렵기 때문 에 실패한 것이라고 핑계합니다.
부정적인 낯선 상황을 보고 세상을 원망하고 비난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믿음의 지도자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열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었습니다. 영
광의 구름 쉐키나가 모세를 뒤덮고 있었던 것입니다.
설상가상 앞서가던 구름기 둥이 갑자기 백성들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구름기둥은 백성들뒤로 가서 추격해 오는 애굽군대를 대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흑암 혼란 속에 빠뜨리고 멸 망으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라진 홍해길을 마른 땅처럼 건너가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앞에 펼쳐지는 2022년!
믿음으로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선한 걸음을 내디디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계획해 보지 못한 놀라운 계획들하시고 달 려가시길 바랍니다.
구름기둥은 이스라엘 백성들 등 뒤로 가서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를 어둠 속에 빠 뜨렸습니다. 어렴풋하게 길인 줄 알고 들어섰다가 홍해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물리치시고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하나님이 무찔러 주 실 줄로 믿습니다.
홍해가 애굽 사람들에게는 시험의 길, 멸망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는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뉴노멀 또한 믿음에 사람들에게는 은혜의 길입니다. 구원의 길입니다. 새로운 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가는 길은 승리의 길입니다.
여러분 홍해가 언제 갈라졌을까요?
1번 모세가 기도할 때 갈라졌다.
2번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 때 갈라졌다.
3번 믿음으로 첫 걸음을 홍해 속에 들여다 놓았을 때 갈라 졌다.
정답은 언제나 뒤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도록 변화를 시켰습니다.
언제 바 뀌어 졌을까요?
1번 종들이 물을 퍼 올릴 때 바뀌어졌다.
2번 길어서 이고 올 때 바뀌어졌다.
3번 항아리에 부을 때 바뀌어졌다.
4번 순종하여 퍼다 줄때 바뀌어졌 다.
정답은 뒤에 있습니다.
기적은 언제나 끝까지 믿는 자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 도 믿음만을 가지고 나아가면 길이 열리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적은 언제나 끝까지 순종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오늘 과학물질문 명 이 시대에 기적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순수하게 믿는 믿음이 사라 진 것입니다.
끝까지 순종하는 순종이 사라진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오 늘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갈라진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걸은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를 돌아봅니다.
쫓아 오던 애굽 백성들이 시체가 되어 둥실둥실 홍해에 떠오릅니다.
두둥실 두둥실 떠내 려갑니다.
지금까지 자기를 지배하던 악한 백성들이 물 위에 시체가 되어 떠오를 때 얼마나 커다란 자유가 있었을까요.
얼마나 놀라운 해방감이 있었을까요.
지금까 지 나를 지배하던 악한 마귀가 내 곁에서 물러가는 자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이것을 세례받은 것이다.
세례받고 이전의 내가 죽은 것이다.
저기 떠오르는 애굽 백성들이 바로 내가 죽어야 될 자리에 저들이 죽은 것이다.
나는 구원받았다.
이것이 구원의 세례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2년 뉴노멀 한국 교회 성도들의 갈 길이 여기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고난과 시련과 바이러스 전염병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약속 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읍시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될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부정, 불평, 불만, 나약함, 부정적인 시각, 못난 모습 모두 다 물 위에 둥실둥실 떠올라 떠내려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천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때 우리가 무슨역할을 했습니끼? 무슨 도움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외아들인 독생자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때 우리가 무슨 역할을 했습니까?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며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뭘 했습니까?
그분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우리가 뭘 했습니까?
오직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영적인 역사는 오직 하 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00%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창세기가 말하는 하나님은 엘샤다이 전능자 하나님입니다.
엘샤다이라는 말은 퍽 재미있는 말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끝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전지전능한 손길을 내미는 것 이게 엘샤다이입니다.
부족한 종이 해야 할 일이 태산이지만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난 겁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행하셔야 만이, 우리가 순종하고 갈 수 있 는 길이 뉴노멀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뉴노멀 결코 여러분에게 위험이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 새로운 기회, 새로운 길이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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