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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글의 연속입니다. 다니엘 70 이레는 앞의 9번과 10번 글을 먼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퍼나르기는 자유이며, 활용에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희년 주기로 본 다니엘의 70 이레(2)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 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단 9:25)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단 9:27)
다니엘 9장 25절 이하의 ‘70 이레’는 예루살렘 중건령에서 시작하여 ①7 이레 ②62 이레 ③마지막 1 이레의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단 9:24~27). 예루살렘 중건령도 고레스왕 원년인 주전 538년(스 1:1)부터 다리오왕 2년인 520년(완성 주전 516년)(학 1:1), 아닥사스다왕 7년인 458년(스 7:7), 아닥사스다왕 20년인 445년(느 2:5) 등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70 이레에 대한 기간 구분(시작과 종료)은 판단이 어렵습니다.
앞글에서 본 바와 같이 어려운 기간 구분이지만 그래도 확실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70 이레의 ㄱ. 주인공은 예수님, ㄴ. 기간은 안식일, 안식년, 희년이 들어있는 7의 주기, 그리고 ㄷ. 이 7의 주기를 깨끗하게 성취시킨 주후 26년 희년 선포입니다. 70 이레는 확실한 세 가지를 원칙으로 하여 25절~27절 ①7 이레 ②62 이레 ③마지막 1 이레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곧 70 이레를 같은 490년 기간이며, 고유한 시간인 10회 희년 주기와 안식년 주기를 기준점(중심축)으로 삼아서 관련 연도를 추정하여 보겠습니다.
20회 희년인 주전 465년 – 70 이레 시작전 7 이레(7년) -
20회 희년은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한 주전 26년부터 490년 전의 기간이 되는 주전 465년입니다. 스룹바벨 성전 완공이 주전 516년입니다(스 6:15). 스룹바벨 성전 후 처음 맞은 희년이 514년 19회 희년입니다. 그다음 희년이 20회로써 주전 465년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시대도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성막)을 먼저 짓고 첫 희년을 맞으며, 솔로몬 성전도 958년 성전 낙성식을 마치고 955년에 10회 희년을 맞습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전을 청소부터 하고 나사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원래 희년 선포는 성막 또는 성전에서 속죄의식을 먼저 행하고, 희년 선포가 되면 토지 무르기가 있게 됩니다.
(1) 하나님은 20회 희년인 주전 465년에 에스라를 불러세우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는 하는 자가 있으니라...(스 7:1)
해당 연도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에스라 7장 1절입니다. 본문은 “바사 아닥사스다왕 때”라고만 하여서 이때를 에스라를 불러 세운 연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닥스사다왕이 즉위할 때가 주전 465/464년 경입니다. 하나님은 7년 후 458년에 내릴 2차 포로 귀환령과 남은 성전 업무의 완성을 위하여 아닥사스다왕을 미리 불러 세운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학사 에스라도 불러 성전에서 해야 할 제사 업무와 율법을 가르치는 일들을 준비하게 했을 것입니다. 제사와 율법에 능통한 학사가 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떠날 채비도 미리 하여왔기에 왕의 조서가 내리자 바로 정월 초하룻날 바벨론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스 7:9). 에스라는 516년 완공한 성전 건축도 58년 후에 있을 아닥사스다왕의 조서를 좇아서 필역을 했다는 성경 기록을 유의해야 합니니다(스 6:14,15).
(2) 20회 희년은 주전 465년은 고레스 칙령 후 맞은 19회 희년부터 7 이레 기간(49년)이 지났고, 아닥사스다왕 2차 귀환령이 난 458년보다 1 이레(7년) 전입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기간 차이 1 이레가 다니엘의 70 이레에서 7 이레, 62 이레 후 마지막 1 이레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희년을 선포한 시기인 주후 26년과 그 이후의 마지막 한 이레의 기간과의 차이도 7년이라는 뜻입니다. 희년 주기와 70 이레,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희년 선포 시기와 그 이후의 기간은 상호 일치하거나 1 이레(7년) 차이로 맞물리고 있습니다. 희년 주기와 70 이레의 시작시점과 종료시점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고 정확합니다.
(3) 주전 586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후 70년 기간은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된 516년입니다. 주전 514년은 성전 완공 후 첫 번째 희년이며, 주전 465년은 성전 완공 후 두 번째 희년입니다. 느브갓네살에 의한 1차 포로기 주전 605년에서 시작하여 70년이 지나면 주전 535년입니다. 이때는 스룹바벨 성전 건축에서 기초석을 놓은 해이며, 이때 공사에 임했던 백성들이 모두 감격하여 즐겁게 찬양도 하고, 노인들은 솔로몬 성전을 회상하며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습니다(스 3:10~12). 이 해로부터 다시 70년을 지나면 20회 희년인 주전 465년입니다. 그러므로 포로기 70년과 희년 주기 49년, 그리고 성전의 완공과 업무 진행도 서로 밀접한 시기적 관련성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20회 희년 주전 465년 = 1차 포로 시작 주전 605년 - 귀환 70년 - 귀환 70년)
** ①7 이레, ②62 이레, ③마지막 1 이레에 대한 연도별 구분은 아래의 도표 참조.
70 이레의 시작연도가 되는 주전 458년 – 아닥사스다왕 7년 -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스 7:11~13)
(1) 70 이레 시작연도로 잡은 458년은 20회 희년 후 1 이레(7년)가 지났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30회 희년(주후 26년)과는 69 이레 기간 전입니다. 69 이레는 연수로 483년(483년 = 7×69)이며, 70 이레 기간에서 7년이 부족합니다.
(2) 458년 아닥사스다왕의 2차 귀환령은 주전 538년 내린 고레스 칙령의 업무적 연속입니다. 538년 고레스 칙령은 1차 포로 귀환령으로 성전 건축을 허용한 최초의 조서이며, 주전 520년 다리오왕의 조서는 사마리아인의 방해로 15년간 중단된 성전 건축을 재개하라는 조서입니다. 그리고 548년 아닥스사다왕의 조서는 516년 완공된 성전에서 성전의 업무를 정상화시키는 조서입니다. 이런 칙령과 조서들은 장기적 시간이 요구되는 성전 건축에서 기간별 공정 진척을 위해서, 또 건축하는 도중에 장애요소나 변동 사항이 있으면 당연히 있어야 할 후속 조치들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516년 완공된 성전을 58년 후에 내려질 아닥스사스다왕의 조서를 좇았다고 시간을 앞당겨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스 6:14). 주전 516 완공된 성전이 그 이후에도 성전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아닥사스다왕과 에스라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가 더 필요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3) 성전은 건물의 외형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전은 외형(하드웨어) 준공이 끝이 아니고, 무엇보다 내적(소프트웨어) 조건이 완비, 곧 제사와 말씀이 있어야 그 성전이 완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며,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해야 성전입니다. 곧 성전은 건물이 아니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있어야 합니다. 신약시대는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성전이며(고전 3:16,17), 궁극적으로 예수님만이 참 성전이십니다. 구약시대에도 제사에는 예물이 필요하고,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전이 갖추어야 할 제사와 신앙, 율법과 생활은 교육이 필요합니다. 458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는 516년에 지은 성전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에스라는 제사를 회복하고 율법을 가르쳐 종교개혁 단행했습니다.
(5) 성전 건축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성전 바깥에서도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성전을 보호할 성벽이 있어야 합니다. 성전의 역할은 성전 밖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도 포함합니다. 이런 역할을 담당한 지도자가 느헤미야였습니다. 느혜미야는 아닥사스다왕 20년인 주전 445년, 3차 포로 귀환령에 따라 성벽 재건을 임무를 맡고 귀환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주도한 성벽 재건은 백성들의 전심 협력으로 52일 만에 완성합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삶에 필요한 사회 및 경제개혁을 단행합니다. 이 경제개혁은 희년법과 안식년에 해야 하는 종의 속량, 부채 탕감, 토지의 안식, 토지 무르기 등 많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느 5장 전체, 느 10:30,31). 느헤미야는 스룹바벨 성전이 갖추어야 할 성전 건축의 마지막 작업을 에스라와 함께 했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으로 주로 제사와 종교개혁을 맡았고, 느헤미야는 총독과 행정가로서 왕이나 정치가 해야 할 사회 경제개혁을 담당했습니다.
나라의 멸망과 성전 없는 포로 생활을 적어도 70년 이상 하여 온 백성들은 제사(예배)를 어떻게 드리는지 여호와의 계명과 율법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힘들고 부끄러웠던 포로 생활을 다시 하지 않으려면, 말씀을 준행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포로로 돌아온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런 사역을 전심전력으로 감당했습니다.
성전은 이렇게 ㄱ. 공간인 건축물로 시작하여 ㄴ. 성전의 내적 요건인 제사와 말씀(율법)이 살아 있고, 삶의 개혁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성전의 제사와 말씀은 성전 안에만 머물지 않고, 성전 밖에까지 미쳐서 순종의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 삶이 바뀌는 것은 윤리와 도덕, 정신과 종교를 뛰어넘어 희년법과 안식법까지 지켜야만 비로소 성전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주전 538년 내려진 고레스 칙령, 곧 다니엘서 9장 25절이 말하는 성전 중건령은 이렇게 93~94년의 긴 기간을 지나서야 비로소 건축이 종결된 셈입니다. 그래도 부족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온전한 성숙의 때에 완성되게 됩니다.
7 이레, 62 이레, 1 이레의 구분에 대한 의문과 기간
고레스 칙령, 곧 주전 538년 내려진 성전 중건령은 다리오왕의 조서, 아닥스스다왕의 두 번에 걸쳐서 내린 조서는 모두 스룹바벨 성전 건축과 관련된 것이며, 크게 보면 하나의 성전 건축령을 시간 흐름에서 그 집행이 나누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70 이레를 ①7 이레, ②62 이레, ③마지막 1 이레로 기간을 나눈 이유가 무엇일까요? 70 이레를 이렇게 세 기간으로 나눈 것은 분명히 그 기간들이 구별해야 할 의미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기간과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난제입니다. 여기서 난제란 이 기간 구분과 적용을 두고 학설과 주장이 갈려 있다는 뜻입니다. 이 중에 ②62 이레와 ③마지막 1 이레는 예수님이 성취시킨 희년과 그 이후의 사역, 사건들로 나누어져서 구분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①7 이레와 ②62 이레의 구분이 아직은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9번 글에서 검토했지만, 대체로 이런 주장들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 주석들을 보면 7 이레는 고레스 칙령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된 때까지, 62 이레는 성전 완공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까지 기간을 말하고 있습니다(톰슨성경, 1,250쪽). 또 어떤 성경 주석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한 조서에서부터 기름 부은 메시아의 도래 때까지 69 이레, 곧 483년이 될 것인데 이 483년의 기간이 언제부터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굳데이성경, 1,250쪽). 두 주석이 모두 기간이 가진 의미나 시기를 추정만 할 뿐 구체적인 연도를 명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주석들은 다니엘서 9장 25절에서 “메시아가 오기까지 7 이레와 62 이레가 지나서 성전이 건축되고 광장과 거리가 세워진다”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둘째, 천문학 자료를 이용하여 이 기간을 명확하게 구분한 유진 폴스티히(Eugene W.Faulstich)의 주장이 있습니다. 이 주장은 고레스 칙령이 내려진 연도를 538년이 아닌 551년으로 보았고, 기름 부은 메시아는 느헤미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①7 이레, ②62 이레, ③마지막 1 이레는 주전 61년에 모두 끝이 났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앞글(9번 글)에서 본대로 성경의 연대와 기간 차이가 너무 크고, 기름 부은 자를 느헤미야로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지극히 거룩한 자(단 9:24)”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제칠일예수재림교(안식교)는 7 이레와 62 이레의 기간을 주전 458년 아닥사스다왕 조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까지 기간을 제시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1 이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에 대하여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재림교는 1984년 빗나간 예수 재림을 예언하였다가 사회적 물의와 망신을 당하고서도 아직 그런 양상을 그대로 보이고 있습니다.
넷째, 이 외에도 마지막 1 이레에 대하여 세대주의와 전천년설 주창자들의 주장이 있고, ①7 이레, ②62 이레, ③마지막 1 이레에 적용의 시차를 두는 간격설과 이를 별개로 보는 상징설 등이 있습니다. 전자는 미래에 있을 재림에 집착하는 듯 보이고, 후자는 기간에서 모호한 태도를 보입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가 이 70 이레와 관련되는 희년을 선포하고, 성취시킨 것에 대해서는 말이 없습니다. 이것이 두드러진 공통점이라고 하겠습니다.
희년 주기로 보는 ①7 이레, ②62 이레, ③1 이레의 구분
①7 이레, ②62 이레, ③마지막 1 이레에 대한 구분은 기존의 학설과 주장에서도 확실하지 않고 모호하며,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다니엘의 70 이레와 같은 시간 주기를 가진 안식년과 희년 주기로 70 이레의 기간을 살펴보는 방법이 고려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 다니엘서 9장 24절을 희년 주기와 70 이레를 관련시켜 검토를 했습니다
앞글에서 검토를 한 바와 같이 희년 주기는 49년이며, 안식년 주기는 7년입니다. 70 이레는 490년입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의 70 이레에서 예언한 그 기간을 따라 30회 희년을 선포하고, 희년을 성취시키셨습니다. 그 기간은 역산하여 추정하면 70 이레의 시작연도는 주전 458년(아닥스사다왕 7년), 에스라가 성전과 제사를 회복시키려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때입니다(이 글 앞 부분과 10번 글 참조).
그래서 희년 주기로 보는 70 이레에서 예수님이 선포하신 희년 주기를 따라 주전 458년을 맞추어 보면 ①7 이레, ②62 이레는 이렇게 구분되고 있습니다. 처음 ①7 이레는 희년 주기인 49년입니다. ②62 이레는 안식년 주기 7년을 62회 반복한 기간을 말합니다. 이렇게 ①7 이레 49년과 ②62 이레를 포함하면 30회 희년 주기가 되며, 예수님이 그 30회 희년을 직접 선포하십니다. ③마지막 1 이레는 예수님 희년 선포 이후 1이레로 7년입니다. 이 7년은 다시 공생애 기간인 전(前) 3년, 후(後) 3년으로 나누어져 미래로 이어집니다. ①7 이레가 도래한 주전 409년부터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한 주후 26년까지는 62 이레, 곧 62 안식년 주기인 434년 간입니다.
①7 이레 종료 시점, 주전 409년은 선지자의 예언이 종결되는 시기입니다.
처음 ①7 이레는 주전 458년부터 49년이 지난 주전 409년입니다. 혹자는 이때를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되었다고 보기도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이때는 완성된 성전에서 제사가 회복되고 백성들에게 율법의 전수가 이루어져 성전의 내적 요건이 충족된 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주전 409년은 선자자 활동이 끝인 난 시기로 보입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이 희년법을 파기하고 나봇의 포도원 강탈 사건이 벌어질 때 하나님은 직접 엘리야를 불러 선지자로 세웁니다. 그때부터 말라기 선지자까지 계속된 에언 활동은 7 이레 마지막인 주전 409년에 종료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은 신약시대 와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는 마지막 선지자로 이어졌습니다. 말라기는 구약시대에 예언 활동을 마지막으로 한 선지자이며, 세례 요한은 신약시대에 예언 활동을 처음 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409년은 선지자의 활동이 끝이나고, 이로부터 62 이레 후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세례 요한이 엘라야의 모습올 등장합니다(말 4:5,6, 마3:1). 7 이레 후 62 이레 기간은 신구약 중간사 400년이며, 이 기간을 "침묵의 시대" 또는 "암흑기"라고 합니다. 다니엘은 7장과 11장을 통하여 이 기간에 있을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 등의 미래를 예언하였고, 이 예언은 모두 때를 따라 성취가 되었습니다.
②62 이레는 신구약 중간사 기간과 예수님 나이 30년 기간입니다.
62 이레는 1 이레 말기 409년 이후부터 주후 26년입니다. 주후 26년에서 예수님 나이를 30세를 차감하면 출생연도는 주전 5년입니다. 신구약 중간사는 62 이레 기간인 434년에서 예수님 나이 30세를 차감하면 404년이 됩니다. 중간사 기간을 보통 400년이라고 합니다. 7 이레 이후를 62 이레 시작기를 중간사의 시작으로 보면 신구약 중간사는 약 403/404년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말라기의 마지막 예언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를 먼저 보내겠다는 약속입니다(말 4:5.6). 그 약속이 400여년 후에 세레 요한의 출생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출생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 중간사 403/404년 기간에서 공생애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 30세를 더하면 그 기간은 62 이레에 해당하는 434년이 됩니다.
중간사 기간에는 헬라 제국의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의 폭정과 성전에 우상숭배가 행해졌고, 이로 인해 주전 165년경 마카비혁명이 일어나서 수전절(하누카)이 탄생합니다.
이러한 신구약 중간사를 희년 주기와 다니엘의 70 이레에 맞추어 풀어보면 이러합니다.
7이레(49년) : 주전 458년~주후 409년
62이레(434년) : 주전 409년~주후 26년 예수님 희년 선포
주전 409년 = 62이레 434년 기간 - 25(희년 선포)
기간 403년 = 434년 - 31세(세레 요한), 말라기 예언 종결(말 4:5)에서 세례 요한의 출생(마 1:57)
** 신구약 중간사 400년은 말라기 4:5부터 누가 1:57까지의 403/404년 기간입니다.
(BC와AD 사이는 0연도 없음)
이와 같이 성경과 희년 주기, 그리고 7 이레와 62 이레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 기간은 정확합니다
주전 409년은 그 외에 특별한 의미나 정치적 사건은 니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의미가 없으므로 7 이레는 49년마다 돌아오는 희년 주기를 알려주고, 성전이 그 요건을 갖춘 해로 보게 됩니다. 주전 409년은 희년 주기와 연결시켜 보면 주전 465년 20회 희년에 에스라를 불러 세웠고, 21회 희년인 주전 416년을 보낸 후 7년째 맞은 안식년 주기입니다. 그래서 에스라에게 맡겨진 성전 중심의 종교개혁과 느헤미야가 행한 성전 밖의 사회 종교개혁 등이 제대로 정착되고 작동을 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주전 409년은 이를 검검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곧 느헤미야 5장에서 보듯이 느헤미야는 땅도 사지 않으면서 부르짖은 안식년과 희년법의 준수 여부를 같은 49 안식년 주기를 보내면서(또는 마치면서) 살피는 때입니다. 왕조시대에 유대의 지도자(왕과 제사장)들은 안식년과 희년법에 관심이 없거나 준수 여부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따라 백성들도 희년법을 중수하지 않으므로 70년 포로기를 맞았던 것입니다.
70 이레에 대한 연도별, 기간별 구분
① 7 이레 : 에스라 귀환 시기에서 7과 희년 주기로 49년 경과한 주전 409년까지
(에스라의 제사 회복과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49년 경과한 기간)
② 62 이레 : 7 이레 이후 7과 안식년 주기로 62회 434년 경과한 주후 26년까지
(ㄱ. 7 안식년 및 희년 주기인 7 이레(49년)가 지난 해부터 62 이레 지난 기간, ㄴ. 선지자 말라기의 활동 종료시점에서 세레 요한의 등장 시기까지, ㄷ. 신구약 중간사 기간(암흑기 또는 침묵의 시대)
** 62 이레(434년)에서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 나이를 빼면 신구약 중간사 403/404년 기간이 됨.
69이레 483년 = ①7 이레 49년 + ② 62 이레 434년
69이레 483년 : 에스라 귀환으로 스룹바벨 성전의 기능을 회복하고,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한 주후 26년까지
③ 마지막 1 이레 : 예수님 희년 선포 이후 공생에 기간 3.5년 + 그 이후의 나머지 미래 기간
①7 이레 49년과 ②62 이레 ③마지막 1 이레를 희년 주기에 따라 다시 맞추어서 연도와 기간을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성전 완성의 사명을 부여받은 에스라 귀환령이 내린 주전 458년부터 희년 주기 49년에 해당하는 ①7 이레를 지나고 다시 7 안식년 주기 62회에 해당하는 434년이 지나면 69 이레가 도래하여 주후 26년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해, 곧 희년 선포일 7월 10일(속하는 날)에 나사렛 회당에서 30회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때가 성전 역사로는 헤롯 성전을 착공한 지 46년째 되는 해입니다(요 2:20).
희년 주기로 보는 70 이레의 연도와 기간(도표)
마지막 1 이레의 기간과 그 이후 추정되는 사건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 (단 9:27)
③마지막 1 이레는 예수님이 30회 희년을 선포하신 주후 26년 이후에 있을 1 이레의 기간에 해당하는 사역 및 사건들입니다. 이 기간은 이레가 중간에 둘로 나누어집니다. 중간에 나누어진 기간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과 그다음에 있는 마지막 기간들입니다. 이 기간은 종말이라고 번역했지만, 실제는 어떤 사역이나 사건의 종료 시점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3년(2년 반 ~ 3년 반) 또는 3년 반으로 보면 희면 이 선포된 주 후 26년은 헤롯 성전을 46년째 짓고 있습니다(요 19:20). 예수님이 그 성전에 들어가서 강도의 소굴을 청소하여 깨끗하게 하고, 이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성전이 건물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 성전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3년 후 십자가에 희생되어 3일 만에 부활하시므로 말씀하신 그대로 성전을 다시 지으셨습니다.
이때가 30회 희년을 선포한 주후 26년 이후 3년 경과하여 주후 29/30년입니다. 헤롯 성전의 건축도 희년 주기인 7 이레 기간으로 보면 49년째 짓는 중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46년 간 지은 헤롯 성전에 3년을 더 채운 7이레(49년) 기간, 3일 만에 부활하여 참 성전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건축도 7(49년)의 주기를 사용했습니다. 사람이 지은 헤롯 성전은 주후 63년 또는 67년 최종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때가 다니엘서 9장 25절이 말하는 성전으로 건축이 완료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주전 445년 경 느헤미야가 주도한 성벽 건설에서도 광장과 거리는 건축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 성전은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헤롯 가문이 주도했고, 거기에 이에 동조하는 유대 지도자들의 협력으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과 삶을 함께 하는 이동식 성막은 지었지만, 거대한 규모와 양식으로 고정된 장소의 건물 성전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헤롯 성전을 보고 우시기도 했고,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고 강하게 꾸짖기도 하십니다(눅 19:41,45).
주후 63~67년 완공된 헤롯 성전은 3~7년 후인 주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디도, Titus)에 의해 붕괴되고 맙니다. 성전(성벽?)의 벽돌은 유대인들이 기부한 벽돌로 쌓았는데 금은보석이 들어있다는 소문으로 보석을 찾기 위해 로마 군인들이 샅샅이 뒤지고 부수어버렸다고 합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는 헤롯 성전입니다(막 13:1,2). 그러나 가난한 자들이 쌓은 서벽은 기념물로 남겨서 오늘날까지 “통곡의 벽”으로 남아 있습니다.
③ 마지막 1 이레는 여기까지의 기간(3년~3년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 절반은 다시 미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 이레는 다니엘의 70 이레 기간 안에 속하기도 하지만, 그 범주를 벗어나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전(前) 3년 반', '후(後) 3년 반'을 말합니다. 특히 '후(後) 3년 반'은 지금도 미래를 기약하며 남겨져 있고, 지금도 그 시간의 흐르고 있는데 그 졸료의 때와 기한은 불명확한 상태입니다. 성경은 1일이 1년도 되고, 1일이 천년이 되기도 합니다(베후 3:8~10).
③ 마지막 1 이레는 희년 주기가 들어있는 구약시대와 미래의 신약시대가 7년 주기로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30회 희년 주기를 지키신 예수님이 주후 26년 도래한 희년 주기를 미래에도 그대로 이어가실지, 새로운 주기로 바꾸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7의 주기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듯이 희년 주기도 바꾸거나 영구 희년으로 확대 계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든 30회 희년 주기를 1,470년 간이나 세어오신 예수님은 희년의 고유한 주기와 의미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으며, 70 이레 기간으로 그 시간의 의미를 모두 계승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희년을 70 이레의 틀로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톱니바퀴가 물리듯이 서로서로 맞물려 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선포하신 희년과 희년 주기는 신약시대에 오히려 더 강화된 의미로 계승되었고, 그 희년은 지금도 우리가 지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후 보내겠다고 약속한 성령도 7의 주기를 따라 초대교회에 임했습니다(요 14:26, 행 1:8, 2:1,2). 여기서 성령님은 모든 재산을 내어놓고 예수님을 섬기는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이후의 우리들은 복음 전하기에 너무 바빠서 재물의 유무상통이나 희년법 토지의 재분배에 대한 주제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덮어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독자분들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 강림은 중간 명절인 오순절에 있었고 초대교회가 행한 재산의 유무상통은 당면한 궁핍의 해소를 위해 값 치르기가 없어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토지 무르기는 초막절 잔치가 있는 7월 절기에 하는 것이며, 한 나라의 국가적인 행사로 모두가 값을 치르는 시장원리와 사유재산제도를 따라서 해야 합니다. 성경 희년법은 생활 구제로 인한 부채는 무료 탕감이 있지만, 그 외 토지와 자본 금융거래, 그리고 무르기는 모두 값을 치르는 사유재산제와 시장원리를 따릅니다. 이 점에서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희년 주기와 다니엘의 70 이레를 마치며
1 이레에 대한 나머지 기간은 '후(後) 3년 반'의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계시록 11장, 12장이 말하는 '42달'은 70 이레와 다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사건들은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여기서 그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70 이레 중 1 이레의 남은 기간은 계시록을 특별하게 다루시는 분들이 주로 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이 분들이 희년과 안식년 경제에 너무 무관심한 상태로 미래를 보는 것이 큰 약점이고, 걱정입니다. 지구상의 영속된 희년은 7의 주기로 돌아오는 토지(자연)의 안식과 49의 주기로 있는 '토지(에레쯔, 지구) 무르기(贖良)'가 끝이나야 돌아옵니다. 죄에 대한 구원은 공짜로 받지만, 서로의 빚을 사하는 희년법 실현은 우리의 순종 여부에 맡겨져 있습니다. 저는 성경이 말하는 시간의 종말(종결, 완성)은 레위기 25장 희년법과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가 알려주는 경제법이 될 것이라고 농담삼아 말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희년 주기로 본 70 이레에 대하여 독자분들이 의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용 중에 무리한 주장이나 오류가 있으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바로 고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