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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와 전쟁
전쟁에 대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태도
2판 서문
이 소책자는 치머발트 대회 직전, 1915년 여름에 씌어졌다. 독자들은 이 소책자가 1915년 8월에 씌어졌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당시 러시아는 여전히 차르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러시아였다.27-28
치머발트 대회는 1915년 9월 5일부터 8일까지 스위스 치머발트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자들의 최초 회의였다. 이 대회는 전쟁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폭로하는 선언을 채택했다.(역자)27
전쟁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태도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국가 간 전쟁을 야만적이고 야수적이라고 비난해왔다. 우리는 계급이 없어지고 사회주의가 실현되지 않고서는 전쟁도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또한 내란, 즉 억압계급에 대항하여 피억압계급이 수행하는 전쟁, 노예 소유주에 대항하여 노예가 수행하는 전쟁, 지주에 대항하여 농노가 수행하는 전쟁,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임금노동자가 수행하는 전쟁 등을 적법하고 진보적이며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평화주의자와 다르다.29
전쟁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모든 공포, 잔학 행위, 비탄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역사상에는 진보적이었던 전쟁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의 전쟁에 대해서도 그 역사 특수성(역사적으로 종별적인 특징들)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29-30
공격전쟁과 방어전쟁의 차이
사회주의자들이 ‘방어적’ 전쟁을 말할 때는 언제나 이러한 의미의 ‘정의전(正義戰)’을 뜻했다.‘오직’ 이런 의미에서만 사회주의자들은 ‘조국 방위’ 전쟁이나 ‘방어적’ 전쟁을 적법하며 진보적이고 정당하다고 간주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간주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피억압 국가, 종속 국가, 불평등한 관계에 있는 국가가 억압 국가, 노예 소유주 국가, 약탈 국가 등의 ‘대’국에게 승리하는 것에 동조할 것이다.32
100명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노예주가 200명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노예주에 대항하여 보다 ‘정당한’ 노예재분배를 내걸고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바로 이런 식으로 오늘날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는 현재의 전쟁, 즉 노예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노예주들 간의 이 전쟁에서 ‘민족’이데올로기와 ‘조국 방위’라는 용어를 가지고 인민을 기만하고 있다.32
현재의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다
제국주의는 20세기에 비로소 도달한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단계다. 자본주의는 지금 낡은 민족국가−이 민족국가의 형성 없이는 자본주의가 봉건제를 전복시킬 수 없었다−가 너무 갑갑해 하고 있다.32
자본주의는 산업 전 분야를 신디케이트와 트러스트와 자본가 백만장자 연합이 장악하기에 이를 정도로 자본 집적을 발전시켰으며, 식민지의 형태로나 수천 갈래의 금융적 착취로 타국을 얽어매는 것을 통해 거의 세계 전체를 ‘자본의 영주들’간에 완전히 분할해놓았다. 자유무역과 경쟁은 독점을 향한 쟁투로, 자본 투자와 원료 획득 등을 위한 영토 쟁탈전으로 대체되었다.32
인류가 사회주의로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식민지와 독점과 특권을 통해, 그리고 모든 종류의 민족 억압을 통해 자본주의의 인위적 보존을 꾀하는 ‘강대’국들 간의 수년, 심지어 수십 년간의 무장투쟁의 고통을 겪을 것인가 하는 선택에 직면할 정도로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발전시켜놓았다.33
노예제의 유지·강화를 위한 최대 노예주들 간의 전쟁
이 전쟁이 세 가지 점에서 노예제 강화를 목표로 하는 노예주들 간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폭로해야 한다. 첫째, 이 전쟁은 식민지에 대한 ‘보다 공평한’ 분할과 그에 이어지는 보다 일사분란한 착취를 통해 예속화를 강화시키기 위한 전쟁이다. 둘째, ‘강대’국 내 소수 민족들에 대한 억압을 강화시키기 위한 전쟁이다. 셋째, 임금노예제를 확대하고 연장하기 위한 전쟁이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으로 분열되어 있고 탄압당하고 있는 반면, 자본가들은 전쟁으로 부를 모으고, 민족적 편견에 불을 붙여 반동을 강화시킴으로써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35-37
“전쟁은 다른(폭력적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다.”
이 유명한 경구는 전쟁 문제에 관한 가장 심오한 저술가 중 한 사람인 클라우제비츠(Clausewitz)가 한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언제나 이 테제를 모든 전쟁의 의미와 관련하여 자기 견해를 세우는 이론적 기초로 여겨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항상 바로 이러한 관점으로 다양한 전쟁을 고찰했다.37
현 전쟁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정치다. 그리고 오직 이 정치일 뿐이다. 특히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양자의 정치는 전시뿐만 아니라 평화 시에도 민족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속화하는 정치다. 반대로 중국, 페르시아, 인도와 다른 종속국들에서 우리는 수천만, 수억의 인민들에게 민족적 생명을 불러일으키고 반동적인 ‘강대’국의 억압으로부터 이 민족들을 해방시키는 정치를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아왔다. 그러한 역사적 지반 위에서 수행되는 전쟁은 오늘날에도 부르주아 진보적·민족해방적인 전쟁일 수 있다.37-38
러시아는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는가?
차리즘은 갈리치아를 강탈하고 이로써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유를 짓밟기 위해, 그리고 아르메니아, 콘스탄티노플 등을 강탈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차리즘은 전쟁을 국내의 점증하는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성장하는 혁명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 차리즘은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러시아에 억압받는 민족의 수를 늘리고, 이 억압을 영속화하며, 그럼으로써 다름 아닌 대러시아인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와해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러시아에 관한 한 전쟁은 뿌리 깊이 반동적이고 반(反)해방적인 성격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40-41
사회배외주의란 무엇인가?
사회배외주의란 현 전쟁에서 ‘조국 방위’ 사상을 주창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사상은 논리적으로 볼 때, 전쟁 중에 계급투쟁의 포기로, 전쟁공채에 대한 찬성투표로 이어진다. 실제로 사회배외주의자들은 반프롤레타리아적·부르주아적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이 옹호하고 있는 것은 외국의 억압에 대해 싸운다는 의미에서의 ‘조국 방위’가 아니라, ‘강대’국의 하나로서 식민지를 약탈하고 타민족을 억압할 ‘권리’기 때문이다.41
사회배외주의자들은 전쟁이 민족들의 자유와 생존을 보호하기 위해 수행되고 있다는 부르주아적 기만을 되풀이하며, 그럼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 부르주아지의 편으로 넘어간다. 사회배외주의자는 실제로 ‘자’국의(또는 모든 나라의)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특권과 이익, 약탈과 폭력에 대한 옹호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회주의적 신념들과 바젤 국제사회주의 대회의 결정에 대한 전적인 배반이다.41
바젤 선언
1912년에 바젤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전쟁에 관한 선언은 1914년에 터진 영국과 독일, 그리고 그들의 현 동맹국들 간의 전쟁, 바로 그 전쟁에 대한 것이다. 아무리 인민의 이익을 핑계거리로 내세운다 하더라도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약탈적 정책에 토대를 두고 ‘자본가들의 이익과 왕조의 야망을 위해’ 수행되는 그 같은 전쟁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선언은 천명한다.43
바젤 선언은 바로 현 전쟁과 관련하여 국제적 규모로 노동자들이 그들 정부를 겨냥하여 전개할 혁명적 투쟁의 전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술을 규정한 것이다. 바젤 선언은 전쟁 발발 시에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붕괴를 앞당기기’ 위해 전쟁이 야기하는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이용해야 한다는, 즉 사회주의 혁명을 앞당기기 위해 전쟁으로 인한 정부의 곤란과 대중의 분노를 이용해야 한다는 슈투트가르트 결의의 선언을 재확인하고 있다.43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그릇된 인용
바젤 선언이 강대국 간의 전쟁과 관련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술을 끌어냈던 조건들 중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19세기의 전쟁들에 대한 평가를 현 제국주의 전쟁에 적용하는 것은 사회배외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만술이다.44-45
진보적 부르주아지 시대의 전쟁에 대한 마르크스의 태도를 오늘 인용하면서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마르크스의 선언−다름 아닌 반동적이고 퇴화한 부르주아지 시대, 다름 아닌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에 적용되는 그 선언−을 망각하는 자는 그 누구든 뻔뻔스럽게 마르크스를 왜곡하는 자이며 사회주의적 관점을 부르주아적 관점으로 대체하는 자다.45
사회배외주의는 기회주의의 완결판이다
기회주의가 노동계급 운동 내 부르주아적 정치의 표현이라는 점, 프롤레타리아 대중과 피억압 대중의 이익에 반하는 소부르주아지의 이익의 표현이라는 점, 부르주아화한 소수의 노동자들이 그들 ‘자국’의 부르주아지와 동맹을 맺고 있는 것에 대한 표현이라는 점을 마크르스주의자라면 누구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46
기회주의와 사회배외주의는 동일한 경제적 토대를 갖고 있다. 특권을 갖고 있는 소수의 노동자층과 소부르주아지의 이익이 그러한 토대인데, 이들은 ‘자’국 부르주아지가 타국을 강탈해서 얻는 이윤의 일부 부스러기를 누릴 ‘권리’와 지배 민족으로서의 지위에서 오는 특권을 방어하고 있다.47
기회주의자들과의 연합은 노동자들과 그들 ‘자’국의 부르주아지 간 동맹을 의미하며, 혁명적 국제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기회주의는 ‘성숙하여’ 이제는 노동계급 운동에서 부르주아지의 첩자로서 그 역할을 철저히 수행하고 있다. 오늘날 기회주의자들과의 연합은 노동자계급을 그들 ‘자’국의 부르주아지에 종속시키는 것을 실제로 의미하며, ‘자’국 부르주아지와 동맹하여 타국을 억압하고 강대국의 특권을 위해서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곧 그것은 모든 나라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를 분열시키는 것을 의미한다.49
노동자 당 내 기회주의자들을 숙정하는 과정이 나라마다 아무리 특수하더라도, 이 과정은 불가피하며 생산적인 결실을 맺을 것이다. 개량주의적 사회주의는 사멸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폴 골레(Paul Golay)의 적절한 표현을 빌리자면, 재건되는 사회주의는 ‘혁명적이고 비타협적이며 반란적일 것이다.”49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슬로건은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슬로건
전쟁은 의심할 바 없이 가장 첨예한 위기를 낳았으며, 믿기 힘들 정도로 대중의 고통을 증대시켰다. 이 전쟁의 반동적 성격, 그리고 모든 나라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의 약탈적 목표를 ‘민족’ 이데올로기로써 은폐하기 위해 쏟아낸 파렴치한 거짓말들은 객관적으로 혁명적인 상황의 토대 위에서 필연적으로 대중들 사이에 혁명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중들로 하여금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케 하고, 이 분위기를 심화시키고 구체적 표현으로 정식화시키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이 임무는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라는 슬로건에 의해서만 올바르게 표현된다. 그리고 전쟁 중에 모든 일관되게 수행되는 계급투쟁의 모든 진지하게 행해지는 ‘대중행동’ 전술은 필연적으로 이 슬로건에 이르게 된다. 어느 경우든, 바로 이러한 방향으로 체계적이고 확고한 작업을 하는 것이 우리의 본연의 임무다.52
참호 안에서의 우애가 보여준 실례
참호 안에서 교전국 병사들 간에 형성된 우애의 예들이 모든 교전국 부르주아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기회주의가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최상층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을 때조차, 그리고 사회배외주의가 전체 사회민주주의 언론과 제2인터내셔널의 모든 공식 기구들의 지지를 받을 때조차 그 같은 우애관계가 가능했다는 사실은 교전국에서 최소한 좌익 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라도 이러한 방향으로 체계적인 작업이 행해질 경우, 현재의 범죄적이며 반동적인 노예주들의 전쟁을 단축시키고 혁명적 국제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53-54
비합법 조직의 중요성
어떤 상황, 어떤 조건에서도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대중을 조직하고 사회주의를 선전하기 위한 모든 합법적인 가능성들을−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라도−활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야 하지만, 합법성에 대한 굴종과는 단절해야 한다.부르주아지들이 모든 나라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에서조차 합법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 혁명적 투쟁 방법을 주창하고 토론, 평가하고 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합법 조직이 건설되지 않으면 대중을 혁명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점을 위기는 보여주고 있다.55
비합법 선전 방법을 거부하고, 합법적으로 출판되는 간행물을 통해 이 비합법 선전 방법을 조롱하는 것이 사회민주당의 당원에게 어울리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배반이다.55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에 대하여
혁명적 계급은 반동적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랄 수밖에 없으며, 정부의 군사적 패배는 반드시 정부의 타도를 용이하게 하리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모든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들이 품고 있는 평소의 생각과 일치하고,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를 위한 우리의 활동과 합치한다.55-56
사회주의자들은 대중에게 ‘자’국 정부를 혁명으로 타도하지 않고서는 어떤 다른 구원의 길도 없다는 것을 설명해야 하며, 현 전쟁에서 이들 정부가 처해 있는 난관을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이용해야 한다.56
평화주의와 평화 슬로건
평화를 바라는 대중의 감정은 종종 전쟁의 반동적 성격에 대한 초보적 항의와 분노로 표현된다. 이러한 감정을 활용하는 것이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의무다. 혁명적 운동이 부재한 상태에서 병합 없는 평화가, 민족들에 대한 억압 없는 평화가, 약탈 없는 평화가, 현 정부들과 지배계급들 사이에 새로운 전쟁의 조짐 없는 평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용인함으로써 인민을 기만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56
그런 식의 인민 기만은 교전국 정부들의 비밀외교에 놀아나는 것일 뿐이며, 그들의 반혁명적 계획을 용이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항구적이고 민주적인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부와 부르주아지에 맞선 내란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57
민족자결권
사회주의자들은 민족들에 대한 모든 억압에 맞선 투쟁 없이는 자신들의 위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들은 억압국들의(특히 이른바 ‘강대’국들의) 사회민주주의당들이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다름 아닌 그 말의 정치적 의미에서−즉 정치적 분리의 권리를 인정하고 옹호할 것을 단호하게 요구해야 한다. 이 권리를 옹호하지 않는 지배국이나 식민지 보유국의 사회주의자는 배외주의자다.57
한편, 피억압 민족의 사회주의자들은 피억압 민족과 억압민족 노동자의 완전한 단결(조직적 단결을 포함하여)을 위해 단호히 투쟁해야 한다. 한 민족으로부터 다른 한 민족의 법적 분리(바우어와 레너가 주창하는 이른바 ‘문화적·민족적 자치’)라는 관념은 반동적이다.57-58
제국주의는 세계의 민족들에 대한 한 줌의 ‘강대’국들의 억압이 부단히 증대하는 시대다. 그러므로 민족자결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제국주의에 맞선 국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민족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마르크스·엥겔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타민족에 대한 ‘자’민족의 폭력을 용인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일 수 없다.58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두마 의원단과 전쟁
노동자 계급은 어떤 종류의 의회 활동을 필요로 하는가? 한쪽에는 정부의 호감을 얻기 위해, 또는 기껏해야 모든 것으로부터 손을 씻기 위해 의회 무대를 활용하는 자들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끝까지 혁명가로 남기 위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주의자로서, 국제주의자로서 자신들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의회 활동을 활용하는 자들이 있다. 전자의 의회 활동은 그들을 정부 관료직에 앉히며, 후자의 의회 활동은 그들을 투옥과 유형, 징역형으로 이끈다. 전자는 부르주아지에게 봉사하고, 후자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봉사한다. 전자는 사회제국주의자들이다. 후자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69
인터내셔널의 재건
인터내셔널은 어떻게 재건되어야 하는가? 그러나 먼저, 인터내셔널이 어떻게 재건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잠깐 얘기해보자.
사회배외주의자들과 ‘중앙’파의 방법
카우츠키에 따르면, 인터내셔널은 단지 ‘평화 시의 도구’이며, 당연히 이 도구가 전시에 걸맞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나라의 사회배외주의자들은 발생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매우 단순한 탈출구를 발견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오직 필요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조국을 방어하고 ‘자’국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 전쟁이 끝날 때 서로 ‘사면’하고 모두가 옳았다는 승인을 하면 된다. 평화 시에 우리는 형제처럼 지내고, 전시에 우리는 독일 노동자들에게 그들과 같은 프랑스 형제들을 절멸시킬 것을 촉구하고, 거꾸로 프랑스 노동자들에게는 독일 형제들을 절멸시킬 것을 촉구한다.70-71
반대파의 상황
오늘날 사회주의 운동의 분열은 독일 사회민주주의 내에서 가장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뚜렷하게 세 가지 경향을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기회주의적 배외주의자들, 두 번째는 카우츠키주의 ‘중앙’파로서, 이들은 앞의 기회주의자들의 시녀 역할 외에는 어떤 다른 역할도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입증해 보였다. 세 번째는 좌파로서, 독일에서 유일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이다.75
우리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독일 좌파의 상황이다. 그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동지들을 보며, 모든 국제주의 분자들의 희망을 본다. 그 누구든 지금 불일치를 흐리는 자는, 그 누구든 지금 마르크스주의로 위장하고서 노동자들에게 카우츠키주의의 설교를 전파하는 자는 노동자들을 속이는 자다. 문제를 툭 던져놓고 노동자들에게 쟁점을 이해해보라고 강요하는 쥐데쿰·하이네 일파보다도 더 해악적인 자다.75-76
인터내셔널 일반에서 동요분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다. 이들 분자들−주로 평화주의적 색조의 사회주의자들−은 중립국과 일부 교전국 모두에서 발견된다(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독립노동당). 이들 분자들은 우리의 동반자일 수 있다. 사회배외주의자들에 대한 반대 투쟁에서 이들 분자들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동반자일 뿐이라는 것, 인터내셔널의 재건과 관련하여 주요 근본문제에서 그들은 우리와 함께 가지 않고, 우리에게 반대하여 카우츠키, 샤이데만, 반데르벨데, 셈바와 함께 갈 것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77-78
현 시점에서 사회민주주의적 반대파의 주된 임무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깃발을 드는 것, 그리고 우리가 제국주의 전쟁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노동자들에게 단호하고 분명하게 밝혀주고, 대중의 혁명적 행동 슬로건을 내오는 것, 즉 제국주의 전쟁 시대를 내란 시대의 시작으로 전화시키는 것이다.78-79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에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인자들이 존재한다. 처음에 그 숫자가 아무리 작더라도 이들 마르크스주의 인자들을 모아내서 그들의 이름으로 지금 망각된 진정한 사회주의의 약속들을 되살리고 만국의 노동자들에게 배외주의자들과 단절하여 마르크스주의의 기치 아래 서도록 요구하는 것, 이것이 시대의 과업이다.79-80
이른바 ‘행동’ 강령을 내건 대회들은 지금까지 단순한 평화주의 강령을 선언하는 데 그쳐왔다. 물론 가장 신속한 전쟁 종결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평화’ 요구는 혁명적 투쟁을 동반할 때에만 프롤레타리아적 의미를 획득한다. 일련의 혁명 없이는 이른바 민주주의적 평화란 속물적 유토피아다. 진정한 행동 강령이라면 오직 마르크수주의적 강령에 의해서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80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완전하고 명확한 설명을 대중에게 제시하는, 제국주의는 무엇이고 그것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를 초래한 것은 다름 아닌 기회주의임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기회주의자들을 배제하고 기회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마르크스주의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공공연하게 요구하는, 그러한 마르크스주의 강령 말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우리가 기회주의에 대항하는 생사를 건 투쟁을 선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오직 그러한 강령만이 조만간 우리가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동조를 얻게 해줄 것이다.81
러시아에서 사회민주주의이 분열의 역사와 현 상태
이데올로기적 조류로서 사회민주주의는 1883년에 등장했는데, 90년대 초에 운동의 상승과 함께 노동자들 사이에서 소요와 파업운동이 상승함에 따라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경제투쟁과 정치투쟁 둘 다)과 뗄 수 없이 연결된 활동적인 정치세력으로 탈바꿈했다. 사회민주주의가 ‘경제주의자들’과 ‘이스크라(Iskra)파’로 분열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85-86
‘경제주의자들’과 구 (이스크라): 1894~1903년
‘경제주의’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내 기회주의적 조류였다. 그 조류의 정치적 본질은 “노동자들은 경제투쟁을, 자유주의자들은 정치투쟁을”이라는 강령으로 요약되었다.86
멘셰비즘과 볼셰비즘: 1903~8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시대는 사회민주주의 내 조류들 간의 새로운 투쟁을 낳았다. 이 투쟁은 앞선 투쟁과 직접적인 연속선상에 있었다. ‘경제주의’는 ‘멘셰비즘’으로 전환했다. 구 <이스크라>의 혁명적 전술을 옹호하는 ‘볼셰비즘’이 탄생했다.87
1905~7년의 격동의 시기에 멘셰비즘은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의 후원을 받는 기회주의 조류로서 노동계급 운동에 자유주의 부르주아적 경향들을 유입시켰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자유주의에 순응시키는 것, 그것이 멘셰비즘의 본질이었다. 반대로 볼셰비즘은 자유주의의 동요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들에게 민주주의 농민층을 혁명적 투쟁으로 분기시키는 임무를 배치했다. 멘셰비키 자신들이 여러 번 인정했듯이 노동자 대중도 혁명 중에 중요한 모든 대중행동들에서 볼셰비키와 함께 행진했다.87-88
1905년 혁명은 러시아에서 비타협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전술을 시험했고, 강화하고 심화시켰으며 단련시켰다. 각 계급과 당들의 공개적인 행동으로 사회민주주의적 기회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연관이 거듭 폭로되었다.88
마르크스주의와 청산주의: 1908~14년
반혁명의 시대는 또다시 사회민주주의의 기회주의적 전술과 혁명적 전술의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궤도에 올려놓았다. 멘셰비즘의 주류는 멘셰비즘 최량의 대표자들 다수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청산주의 조류를 탄생시켰다. 새로운 혁명을 위한 투쟁의 포기, 비밀 조직 및 비밀 활동의 포기, ‘비합법에 대한 경멸과 조롱, 공화제 슬로건에 대한 조롱 등이 러시아에서 청산주의 조류의 특징이다.88
프라우다파는 당의 혁명적 원칙에 충실했고 노동계급 운동의 부활 기운(특히 1911년 봄 이후)을 북돋았으며 비합법 조직 활동과 공개 조직 활동을 결합시키고 신문과 선동을 결합시킴으로써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들의 압도적인 다수를 자기 주위에 결집시켰다. 반면 청산파는 자유주의 부르주아 분자들의 지지에 전면적으로 의존했다.89-90
양 진영의 신문에 노동자 집단들이 공개적으로 금전 기부를 한 것을 보면, 프라우다파(마르크스주의자들)의 영향력의 원천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있었던 반면, 청산파의 영향력의 원천은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었음이 명확하게 확인된다.90-91
마르크스주의와 사회배외주의: 1914~5년
청산파의 실제 강령과 그들 조류의 실제 의미는 기회주의 일반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대러시아인 지주들과 부르주아지의 제국주의적 특권 및 이권의 옹호로 나타난다. 청산주의는 민족적 자유주의 노동자 정치를 취하는 조류다. 청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대항하여 급진 소부르주아지의 일부와 한 줌의 특권적 노동자층이 ‘자’국 부르주아지와 동맹을 이룬 것이다.92-93
우리 당의 임무
러시아의 노동자계급은 온갖 종류의 기회주의에 맞선 30년간의 단호한 투쟁이 없었다면 자신의 당을 건설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전쟁은 유럽 기회주의의 수치스런 붕괴를 가져왔고 우리나라의 민족적 자유주의자들과 사회배외주의적 청산주의 간의 동맹을 강화시켰다. 이러한 세계 전쟁의 경험은 계속해서 우리 당이 지금까지와 같은 일관된 혁명적 길을 따라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우리의 확신을 한층 더 강화시켜준다.98
┃발췌 원문: V.I.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양효식 옮김, 아고라 2017.
전쟁 산업과 패권주의
(냉전 이후 줄곧) 미국은 자신의 전 지구적 패권을 위해 평화를 희생시켜 왔다. 평화는 군수산업의 수십억 달러 이익을 위해 희생돼 왔다. 평화가 유지됐다면 사람에게 투자되었을 소중한 자원이 (국민과 반대세력에 대한) 통제 체계에 투입됐다. 평화가 계속됐다면 우리는 기후 위기에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평화, 평화를 외치지만, 평화는 도래하지 않는다. 각 국가들은 미친 듯이 군비를 강화하고 있으며 서로 핵전쟁을 위협하고 있다. 각 나라들이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면 할수록 실제로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크리스 헤지스)
에이브람스는 그가 선임 연구원으로 있는 미국외교협회(CFR)에 "군사력을 대체할 것은 없으며, 우리는 아직 군사력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다"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제 GDP 중 더 많은 비율이 국방에 쓰여야 한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우리는 군함과 전투기 등 더 많은 재래식 군사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중국과 대결을 위해 보다 첨단 군사기술이 필요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냉전 기간 동안 그랬듯이 우리 군대가 유럽에 수천 명 단위로 주둔해야 한다면 탱크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현재 유럽에 영구적으로 배치된 미국 탱크의 수는 0이다). 우리의 핵무기 저장고를 줄이려는 지속적인 노력 혹은 그것의 현대화를 방해하는 것은 언제나 나쁜 생각이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그들의 핵무기를 현대화하고 새로운 한계를 설정하는 데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지금, 그런 제약은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 우리 핵무기 저장고는 확장되고 현대화 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해야 우리는 푸틴과 같은 위협에 다시는 직면하지 않을 것이다."(크리스 헤지스)
┃인용원문: 우크라이나의 '전쟁 산업'…죽음의 상인들과 함께 하는 '왈츠'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우리의 태도
전쟁을 야기한 근본 원인이 제국주의세력 간의 갈등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이 전쟁의 근본책임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 제국주의세력의 팽창정책에 반대해야 한다. 이들은 러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 시장으로의 진출과 이곳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약화를 추진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친서방화를 지지, 지원해왔다. 이들의 팽창정책이 지속되는 한 갈등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이번 전쟁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언제고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황정규)
우크라이나 내의 지배계급과 극우 민족주의세력의 실상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는 러시아 침공 반대, 우크라이나 지지는 자칫 우크라이나 지배계급과 극우 민족주의세력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진보적 역량이 강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우크라이나 지배계급과 극우 민족주의세력에 대한 비판, 경계가 필요하다.(황정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그것이 제국주의세력 간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제국주의세력 간의 충돌은 비단 유럽 동부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고 평화를 보장받는 길은, 전세계적으로 민중의 진보적, 반제반전 투쟁이 강화되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진보적 역량이 커지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한 사회주의자들의 노력이 요청되는 때이다.(황정규)
┃인용원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어떻게 봐야 하는가?
자국으로부터
전쟁을 멈추는 길은 자국의 지배 권력의 성격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여긴다. 그 말은 국가권력에서부터 일상권력까지 권력의 성격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자들 사이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은 反자본주의, 反제국주의, 反反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에 의해 사회경제적 불평등, 차별과 배제와 혐오의 사회질서를 평등과 존중의 사회질서로 전환시켜가는 것일 테다. 그리하여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만국의 지배 권력의 성격을 바꾸어 가는 것일 테다.(영진)
첫댓글 자료 공유 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