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현충원이든 어디든 벼슬 한자리 하는 사람이 헌화할 땐 특권인양 흰 위생장갑을 끼는데 이는 글로벌적 기준에서 완전 넌센스
지난 12월 3일 임현규 신임 용산경찰서장이 정복을 입고 이태원역 출구에 있는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을 찾았다.
흰 위생장갑을 끼고, 흰 국화꽃 한 송이 들고, 가슴엔 검정 리본을 달고 추모하는 사진이 언론 매체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익숙한 풍경인지라 세인들이 그런가보다 무심코 지나쳤지만, 글로벌적 시각으로 보면 어색하고 불편해서 눈에 거슬리는 게 한두 가지 아니다.
우선 거의 모든 장례나 추모행사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최측에서 마련한 듯한 국화꽃! 여느 장례식장에서와 같이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의례적인 헌화이다. 스스로 마련한 꽃을 바쳤어야 했다.
게다가 150여명이 희생당했는데 달랑 한 송이? 인색하고 무성의해 보인다. 크게 한 다발 묶음을 바쳤어야 했다. 그리고 반드시 국화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아무 꽃이나 흰색이면 된다. 이태원 희생자들 대부분이 청년들이다. 국화꽃보다는 가시 제거한 흰 장미꽃이 더 어울린다.
다음, 모자를 쓰고 묵념하는 것이 어색하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군인이든 경찰이든 소방관이든 모두가 모자를 쓴 채로 고개를 숙였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매너다. 정복에 반드시 모자를 씌우는 것은 지휘관으로서 평소에 허리 굽히거나 고개 숙이지 못하게 함이다. 따라서 모자를 벗어들고 바른 자세에서 고개만 살짝 숙였어야 했다. 모자를 벗기 싫으면 그냥 거수경례로 대신해도 괜찮다.
다음, 관을 들거나 집총을 하는 것도 아닌데 흰색 위생장갑이라니! 누구를 위한 장갑인가? 고인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했나? 꽃이 불결한 물건인가? 헌화하는 사람이 고귀한 분이라서?
한국에서는 현충원이든 어디든 벼슬 한자리 하는 사람이 헌화할 땐 특권인양 흰 위생장갑을 끼는데 이는 글로벌적 기준에서 완전 난센스! 맨손으로 인격적 터치를 하는 것이 진정성 있는 매너이다.
다음, 가슴에 검정 추모 리본은 너무 유치하고 상투적이다. 리본은 예전에 ‘불조심’ ‘식목일’ 등 국민 계몽용으로 달게 했던 것으로 일제의 관습이다.
다음, 꽃을 놓고 곧바로 일어설 것이 아니라 무릎 꿇은 상태에서 모자를 벗고 기도하는 것이 보다 고품격 매너다. 몸을 낮춰 눈높이를 최대한 동등하게 유지한 상태에서 망자들과 충분한 시간(3분 이상) 동안 침묵의 대화를 나누며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런 다음 일어나 모자를 쓰고 거수경례로 추모를 마쳤으면 좋았겠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나 경찰서장이라면 지하철 입구 보도가 아니라 금줄 너머 골목 안으로 들어가 참사현장 한복판에서 홀로 헌화 묵념했으면 그 진정성이 보다 진하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떼지어 우르르 몰려드는 고질병도 고쳐야 한다. 주요 인사가 묵념할 땐 주변 들러리들과 기자들은 카메라 앵글 밖으로 벗어나 정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 공적인 행사에서는 사진을 통해 보게 될 제3의 불특정 다수 시민들의 시선을 항상 염두에 두고 처신해야 한다.
아무려면 모자 벗고 묵념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매뉴얼이 없어 못하는가? 하인이나 노예는 스스로 자신의 태도를 바꿀 권한도 책임도 없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주인이다.
많이 늦었지만 ‘처음처럼’이 아니라 ‘처음부터’,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 2022.11.15, 신성대의 의전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