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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요한계시록 1장 12절에서 16절.
16절까지 읽고, 15절까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12-16)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는 띠고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아멘.
수수께끼 같은 단어들이 많이 나오죠?
마지막에 제가 설교 말미에 다시 한 번 읽을 거예요. 그때는 이 구절들을 명확하게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밧모섬에서, 성령에 감동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 요한에 대해서 공부를 했죠? 그래서 성령에 감동해서 요한이, 그 환란과 핍박의 장소인 밧모섬에서, 거기에서 광산에서 부역을 했으니깐요.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처럼, 성령 안에 있는 우리도 역시, 이 객관적인, 환란의 현실 속에서, 예수를 볼 수 있는 자라는 것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그 자리에서 예수를 볼 수 있고, 그로 인해 기뻐하는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 한다고, 제가 결론을 내려 드렸습니다.
제가 수요일에는, 에베소서를 강해하고 있는데, 마침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요즘 공부하는 부분이, 죄(罪)에 대한 부분이에요. 그죠? 그래서 우리는 얼마만큼 죄인이었는가에 대해서, 제가 아주 강하게 지적을 합니다. 제가 너무 강하게 지적을 했죠? 왜 다소 지나치리만큼 인간과 죄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히 다뤘는가 하면, 구원은 바로 죄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를 인식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십자가가 감사하며, 기쁘게 우리에게 받아드려 지겠습니까? 여러분!
복음은 바로 우리가 떨어졌어야 할 지옥에서 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우리가 어떻게 건져졌는가? 여러분!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의 제자들! 그 제자들이 분명히 복음을 전하러 나갔어요. 그죠? 복음서에 보면은, 열두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권능을 주고, 능력을 주고, ‘나가라!’ 그렇게 보내잖아요? 나가서 무슨 말했을까요? 그때까지 십자가에 대한 의미도 정확히 알지 못했고,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잘 알지 못했는데, 나가서 무슨 말 했을까요? 그들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너희들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인지 깨달아 알아라! 그리고 너희들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거, 너희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라!’ 이 얘기 하고 다녔다고요.
이 시대의 교회 강대상에서는 ‘회개(悔改)’라는 말이 인제 없어졌어요. 그죠? 사람들이 너무 불편해 하니까, ‘회개해라! 여러분이 죄인입니다.’라는 말이 인제 없어졌어요. 복음은 거기서 시작되는 거예요. 회개라는 것은, 내가 얼마만큼 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 나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하구나!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구나!’를 깨닫는 것이, 회개하는 거예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이 이만큼 죄인이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 게, 부담이 가면 안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여러분을 구원해 내셨습니까?’ 거기까지 가셔서 너무 감격스러워 하셔야 되는데, 왜 그게 부담이 되시냐고요? 그리고 주일에는, 제가 요한계시록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의 환란(患亂)에 대해서 많이 설명하고 있어요.
요즘요, 지난주에는 어떤 분이 저에게, ‘목사님!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제 삶에는 그런 환란이 없어요. 저는 가짜인가요?’ 그러더라고요. 환란이 없는 것도 우리 교회에서는 굉장히 불안한가 봐요.
여러분! 환란과 핍박에 대해서 잘 정리를 하고 계셔야 돼요. 물론 환란과 핍박이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그런 통증으로, 우리에게 오기도 해요. 그런 모습으로 오기도 하지만, 진짜 무서운 환란과 핍박은 뭔 줄 아세요? 여러분! 진짜 무서운 고통(苦痛)은, 예수를 믿는데, 예전에 그 죄에 대한 습성이나 경향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나의 욕심과 욕망을 따라서, 나의 몸의 쾌락을 쫓아서, 예전처럼 그걸 버리지 못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게, 환란과 핍박이에요.
나중에, 신앙적인 성숙이 이뤄지고 난 다음에, 그 시절을 돌아보면, 너무 부끄럽고 괴로워서, ‘하나님! 그 시간은 좀 나에게서 지워져 버리면 안 될까요?’ 이런 생각이 든다고요. 그게 여러분! 진짜 환란과 핍박이에요. 무서운 거예요. 진짜 지금 당장 우리의 사업이 망하고, 우리의 건강이 나빠지고 한 것보다, 정말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고요. 그게 우리의 삶의 환란과 핍박이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환란과 핍박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낼 수 없습니다.’가 결론이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제가, ‘환란과 핍박이 여러분의 삶에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떤 종류의 환란과 핍박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수 없다.’가 환란과 핍박의 당위성, 필연성에 대한 결론 아니었습니까? ‘끝까지 끌고 가셔서, 거기에서 승리를 이루어 내실 것입니다.’까지 설명해 드렸잖아요? 그런데 환란과 핍박에 대한 설교가, 왜 여러분들에게 부담스러워야 돼요?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의 목적과 목표가 어디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세요.
여러분이 지금 ‘나는 하나님으로 부터 얻어내는 어떤 것에 만족을 하겠다.’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 계시면, 여러분이 당한 처지가 괴로울 거예요. 그러나 나의 목적과 나의 계획은, 저 하늘나라이며, 하나님이라는 것이, 확고히 서 있으면, 다르죠. 여러분! 정말 무서운 환란은, 보이지 않게 우리의 삶을 타락시키는, ‘폭풍 속의 고요’인 거예요. 정말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평안을 가장한 핍박이에요.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수 없다! 만일 여러분이 그 하늘나라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면, 분명 여러분은 감격과 기쁨으로 갈 거예요.
자, 오늘은 12절부터 15절까지를 공부할 텐데요. 12절부터는, 요한이 자기가 본 예수님을, 자기가 알고 있는, 구약의 표현을 인용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바라봐야할 그 예수님에 대해서 공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요한은 9가지로 그분을 묘사하고 있어요.
맨 먼저, 우리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셨다.’ 그래요. 당시에는 사람들이 입는 옷이, 그 사람의 신분을 이야기해줬습니다. 지금 요한이 예수님의 옷을 묘사하면서, 그분의 신분을 이야기하려고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어요. 발에 끌리는 옷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사장의 옷’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발에 끌리는’이라는 ‘포데레’라는 이 헬라어는, 신약성경에 여기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아요.
그런데 엘엑스엑스(LXX) 70인역, 셉투아진트에는 일곱 번이 나와요. 셉투아진트, 70인역이 뭐죠? 헬라의 알렉산더 왕이 죽고, 이 헬라가 네 왕국으로 나뉘죠? 셀루코스! 톨레미! 리스마커스! 카산더! 이렇게 나누잖아요? 그때 팔레스타인을 처음 먹은 나라가, 톨레미 왕조예요. 그런데 이 나라는, 너무 너무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이었어요. 그래서 이 알렉산드리아 지방!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지방에 있는, 헬라어를 능통하게 하는, 그러나 히브리어를 다 잃어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이 갖고 있는 성경을 읽게 해주기 위해서, 이집트 왕이 번역을 해준 거예요.
그러니까 이 LXX 70인역은,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이에요. 거기에는 일곱 번이 나온다고요. ‘포데레’라는 말이! 그런데 전부 일곱 번이, 제사장의 옷을 묘사하는 데 쓰였어요. 제사장들은 제사를 드리러 성막이나 성전에 들어갈 때, 온 몸을 다 가리고 들어갔어야 돼요. 머리에는 관을 쓰고, 발에는 끌리는 옷을 입어서, 발까지 덮어야 돼요.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의 이 몸은, 죄를 상징하는 거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들어갈 때는 다 가리는 거예요. 그래서 발까지 덮은 거예요. 모든 것을, 아주 철저하게 가렸다고요.
출애굽기 28장에 보면, 아주 자세하게, 그 제사장에 옷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 집에 가서 28장을 꼭 한 번 다 읽어보세요. 제가 다 읽어 드렸으면 좋겠는데…, 너무 길어서, 한 절만 한 번 같이 볼게요. 출애굽기 28장 4절. 이럴 때는, 어디 저 시골에 가서, 한 열 명, 스무 명 이렇게 앉혀 놓고 한두 시간 동안 읽을 거 다 읽으면서, 이렇게 설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이렇게 시간에 쫓기면서 해야 되는 게, 안타깝습니다.
(출애굽기 28:4)
4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지며
잘 그려보세요. 제사장들의 옷이 어떤지? 출애굽기 29장 5절
(출애굽기 29:5)
5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띠우고 레위기 16장 4절 보십시오.
(레위기 16:4)
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그러죠? 제사장의 옷은요, 속옷, 겉옷, 에봇! 이 에봇에는 흉패가 박혀 있어요. 그 흉패에는, 열두 개의 보석이 박혀 있어요. 그 열두 개의 보석은 어디에 나오는 보석이냐? 요한계시록에 예루살렘 성전을 설명하면서, 보석이 나오죠? 홍보석, 녹보석 …. 그 보석이 여기 흉패에 박혀 있어요. 하나님나라를 상징하는 거죠?
그러면 이 모습을 어디서 보셨어요? 여러분! 이 흉패는 정사각형이에요. 어떤 부족한 것, 어떤 모자란 것도 없다는, 그런 의미거든요. 이 모습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막에 있잖아요? 그죠? 성막! 딱 들어가면, 세마포로 다 만들어요. 성막은요! 겹겹이! 그리고 들어가면, 성소가 있어요. 그리고 지성소가 정사각형으로 있죠? 거기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하나님나라를 상징하는 거예요.
거기다가 이 성막에 쓰이는, 이 실하고, 제사장의 옷을 짜는 실하고, 색상도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제사장은 뭘 입고 있는 거예요? ‘성막(聖幕)’을 입고 있는 거예요. 성막은 뭐라고요? 하나님나라! 지금까지 제가 여러분들에게 십 개월 동안 설교한 것을 다 머릿속에 갖고 계셔야, 지금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거예요. 듣고 잊어버리신 분은,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긴가 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열심히 차곡차곡 쌓아 가신 분하고, 그렇지 못한 분하고는, 앞으로 계속 격차가 날 거예요. 하나도 못 알아들을 거예요. 인제! 제사장은 지금 성막을 입고 있어요. 하나님나라를 입고 있는 거예요.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세요. 제사장이 하나님나라를 상징하는 성막을 입고 있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고요. 14절.
(요한복음 1:14)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그러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 말이, ‘스케노우’라는 말이에요. 헬라어로, ‘장막을 치다, 텐트를 치다’라는 의미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우리를 텐트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장막으로 덮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성막으로 우리를 덮으셨다는 의미예요. 계시록 7장 15절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7:15-17)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성막을 치시는 거예요. 여기에 지금 새 하늘과 새 땅에요. 거기에서, ‘예수님이 장막을 치신다.’ 그래요.)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막을, 성막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딱 치니까, 그들이 어떻게 해요?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아멘.
빨리 가고 싶죠? 여기에! 계시록 21장 2절이요.
(요한계시록 21:2-3)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하는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 예루살렘이 인제 쫙 내려오고 있어요. 새 하늘과 새 땅이!)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그죠? 또 나오죠? 텐트(tent)! ‘스케노우’가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그러죠? 자세히 보시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쳐주시는 장막 아래, 성막 아래에서, 보호를 받는 자들’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제, 이 정도에 연관성을 이해하셔야 하는데, 제사장의 옷은, 성막입니다. 그죠? 성막은, 하나님나라의 모형이죠? 하나님나라는? 성전이에요. 그죠?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자, 유니온 크라이스트(Union Christ) 뭐 다? 떠올리셔야 돼요. 지금!
그러면 지금 제사장이 성막을 입고 있다는 건, 뭘 가리키는 거예요? 앞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리움을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자,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 보세요.
(갈라디아서 3:27)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게 되는 것을, 우리는 제사장의 옷을 입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읽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시죠? 허리에 안 띠고 가슴에 띠를 띠고 계세요. 깍두기들도 아니고, 왜 가슴에다가 허리띠를 띠셨을까? 그 당시에는, 이 가슴에 띠를 띠는 분들은 다 왕이었어요. 고대시대 때는! 허리에 띠를 띠지 않고! 가슴에는 카르디아(cardia)! 심장이 있는 곳이었거든요. 거기에 금띠를 두른 건 왕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 표현을 통해서, 그들은 금방 알아들었겠죠? 우리는 인제 배경을 잘 모르니까! 그런 배경을 알고 지금 이 구절을 읽으면 뭡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이시며, 왕이시다.’라는 걸 금방 알은 거예요. 그죠?
그 왕이요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나팔 같은 목소리로 뭔가를 소리쳐 외쳤죠? 뭐예요? 왕이며 제사장이신 분이, 하늘의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거! 그들을 누구라고 해요? 우리는? ‘선지자’라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라는 거예요. 초림 때는 누더기 옷을 입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셔서, 수난을 받고 죽어서 우리를 구원해 내셨지만, 이제 영광에 복귀하신 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영광스러운 제사장이며, 왕이며, 선지자인 모습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앞으로 오실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예수님이 어디 사이에 있었다. 그랬어요? ‘일곱 촛대 사이에 서 계시다.’ 그러잖아요? 일곱 촛대는 20절에서 뭐라 그랬죠? 교회다! 그랬잖아요? 그 예수님이 지금 교회에 계시단 말이에요. 초림 때는 구원을 이루려 오셨지만, 이제 그분은 심판자로 오실 겁니다. 바로 다음 구절 한 번 보세요. 14절.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
징그럽죠? 진짜 이런 모습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진짜 이걸 그렸더라고요. 이런 모습을 갖고! 그러니까 그 예수님이 말하는데, 입에서 칼이 막 나와요. 이렇게! 좌우에 날선 검이 막 나와! 그런 걸 성화(聖畫)라고 그려놨더라고요. 어떤 웬수가! 이건 다 상징이죠? 이건 다니엘서에서 인용된 거예요. 다니엘서 7장 9절 보십시오.
(다니엘서 7:9-10)
9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하나님이죠?)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여기에서 인용한 거예요.)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하나님께서 지금 심판을 하시는 장면이죠? 자, 분명 이 다니엘서는,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어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데, 요한이 그 하나님을 묘사하는 단어를 끌어다가, 예수님을 설명하는데 쓰고 있다고요. 뭔 얘기예요? 바로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는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어요. ‘아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데,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그 예수가, 하나님이란 말이야?’ 요한은 ‘맞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분은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를 구원해 내신 제사장!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영광과 위엄을 가지신 심판자이시라는 것을, 요한이 지금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성경에는 백발이라는 것이, 영광과 위엄과, 영광의 면류관을 상징하는 거였어요. 레위기 19장 32절 보세요.
(레위기 19:32)
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센 머리라는 것은 백발이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죠? 영광과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거예요. 흰 머리는! 잠언 16장 31절 보십시오.
(잠언 16:31)
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요한은 그러한 구약의 상징을 이용해서, 이제 하늘의 영광을 회복하신, 영광과 위엄을 소유하신, 예수님께서, 심판자로 오실 것을, 강조하는 거예요. 다니엘서의 그 단어를 써가지고 말이죠?
그리고 그분은 불꽃 같은 눈을 갖고 계세요 그죠? 14절 한 번 보십시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러죠? 불꽃 같은 눈도 역시 상징이죠? 눈이 불이 막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 대표기도하시는 분들께서 가끔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신다.’ 이렇게 이야기하시 는 분들 계시죠? 그 말이 무슨 뜻일까요?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신다.’ 무슨 상징이 있을 텐데…. 다니엘서 10장 5절 보십시오.
(다니엘서 10:5-6)
5 그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6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개 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여기에서 끌어다 쓴 거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를 무리의 소리와 같도다
오늘 본문하고 아주 비슷한 묘사예요. 그죠? 제가 주보에 나눠드린 것 있죠? 여러분! 그거 집에 가서 잘 읽어 보세요. 그런 거 하나 만드는데, 제가 시간이 무지 오래 걸려요. 그러니까 버리지 말고, 꼭 가져가세요.
거기서 ‘불꽃 같은 눈’을 인용해다 쓴 것인데, 그 ‘불꽃 같은 눈’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 것일까? 계시록 19장 11절 한 번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19:11-16)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여 싸우더라
12 그 눈이 불꽃 같고 (잘 보세요. 그 불꽃 같은 눈을 갖고 계신 분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앞에서는 제사장에 옷을 입었는데, 그 제사장의 옷이 지금, 피 뿌린 옷이라는 거예요.)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예수님이죠?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런데 앞서서 지금 가시는 장수는, 옷에 피를 다 튀겨서, 홍의를 입고 계신데, 뒤에 있는, 쫓아가는 군사들은,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 가는 거예요. 희고 깨끗한 옷!)
15 그에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이(利)한 검이라는 것은, 날카로운 검이라는 것이죠? 말씀이에요.) 그 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에 주라 하였더라
불꽃 같은 눈도 역시 보시다시피, 심판을 상징하고 있어요. 진노의 포도주! 포도주 틀을, 포도주 틀을 밟 … 어, 저는 이게 술 얘기만 하면, 발음이 안돼요. 타고난 거 같아요. 목사로! 포도주 틀을 밟는 거! 심판이란 말이에요. 그분 앞에서는 감추어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불꽃 같은 눈으로, 그분이 우리의 모든 행위를 지켜보시고, 나중에 우리의 행위대로, 포도주 틀에 넣고 밟아 버리겠다는 거예요.
자, 마태복음 10장 26절 보세요.
26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큰일 났죠? 하나도 감추어 질 게, 없다는 거예요. 그 눈앞에서는! 그러면 이 불꽃 같은 눈이 심판만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그러면 우리가 주여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봐주시고 그거는 하나님 빨리 우리를 심판해주십시오. 그러는 거예요. 아니겠죠? 이 ‘불꽃 같은 눈’이라는 말은, 예수를 믿지 않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심판의 말! 심판의 말이에요. 포도주 틀에 넣고 밟아 버리겠다는 심판의 말이지만,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의 말씀입니다. 자, 보자구요. 이 심판의 말씀들이,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축복의 말씀인지!
자, 방금 읽었던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면, 그 불꽃 같은 눈을 하신 심판의 예수님께서, 발에 끌리는 제사장 옷을 입고 계신데, 그 옷에 피가 뿌려져 있어요. 그런데 그 뒤를 따르는 무리는,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왜 그런 모습일까요?
이 모습을 머리에 잘 그려보세요. 한번! 이 부분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49장 11절로 먼저 가야 됩니다. 창세기 49장 8절부터 읽어볼게요.
(창세기 49:8-11)
8 유다야 너는 내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에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에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찟고 올라갔도다 그에 엎드리고 웅크림이 숫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실로라는 것은 메시아에요.)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러죠? 이 말은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지금 유언을 하는 장면인데, 유다에게 유언하는 장면이에요. 이 이야기는 누구의 꿈이죠? 요셉의 꿈이에요! 요셉은 이 유다의 꿈을 대신 꿔주고, 직싸게 고생만 하는 거예요. 무슨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그런데 미혹되지 마세요. 여러분!
유다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오실 것을 지금 예언하고 있는데, 유언으로 예언하고 있는데, 그 메시아는, 서퍼링 오브 크라이스트(suffering of Christ), 수난(受難)의 예수로 오실 거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암나귀 새끼를 탈 것이고, 포도주 틀에, 여기 원어를 보면은, ‘포도의 피에,’ 이런 뜻이에요. ‘인더 블러드 오브 그레입스(in the blood of grapes)’라고 나와 있죠? 영어에도! 포도의 피, 그 포도주 틀에, 이 옷을 빨 것이다. 그분의 옷을 빨 것이라고 이야기한다고요.
자, 그게 무슨 뜻일까? 예수님은, 메시아는, 정작 밟혀 죽어야 할 그 포도들의 저주를 대신해서, 짊어지고 가신다는 거예요. 그 옷에 피가 튄다는 것은, 이사야서 63장. 잘 따라오세요. 조시면 안돼요. 서머나교회에 와서 조는 것은 반칙입니다. 1절 한 번 보겠습니다.
(이사야 63:1-6)
1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피가 튄 옷이에요. 홍의(紅衣)! 붉은 옷이란 뜻이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자니라 2 어찌하여 내 의복이 붉으며 내 옷이 포도주 틀을 밟는 자 같으뇨 (지금 자문자답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3 만민 중에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주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5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그리고 7절부터는 갑자기, 구원받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나온다고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에요? 너희들은, 이 죄인들은 전부, 하나님의 진노의 발에 밟혀야 되는 인간들인데, 그 포도주의 피가 예수님의 옷에 튀어서, ‘임퓨테이션(imputation), 전가(轉嫁)’가 되어서, 이 포도들이 살아나는 거예요. 우리는 모두 그렇게 밟혀 죽어야 할 자들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옷에 피가 튀어서, 그 옷이 홍의(紅衣)가 되고, 우리는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되고, 그 뒤를 쫓아가는 복음이에요.
여러분! 제사장이 아무리, 금실 은실로 짠 그런 좋은 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에, 제사장의 옷은, 온통 피 범벅이 되어 있었다고요. 왜요? 제사를 드려야 되는데, 제물을 죽여야 돼요. 닭 머리 자르는 거 한 번 보셨어요? 그런데 소나 양 같은 거 잡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잡아서 피를 또 뿌려요. 그러니까 온몸에 피가 묻게 되어 있단 말이에요.
왜 제사장이 그런 옷차림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 바로 이 모습! 예수님의 옷에 피가 튀어서, 그 제물의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되고, 그들이 살아나는 거!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제사장에 옷차림은, 그런 거예요.
이렇게 불꽃 같은 눈, 발에 끌리는 옷, 금띠를 띤 예수님은,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상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약성경에 능통했던 유대인들이, 이 말, 단어만 딱 듣고도, ‘야!’ 하고 마음을 쫙 놓을 수 있었던 거예요. 여러분들도 마음이 쫙 놓이십니까?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두 눈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 중에서 교회를 건져내세요. 그런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 속에서, 교회답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잘못 가고 있는 교회를 책망하세요. 그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 교회는, 그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해 내실 그 불꽃 같은 눈이, 우리의 이 엉터리 같은 삶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계시록 2장 18절 보세요.
(요한계시록 2:18)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
책망할 일이 있다. 그 불꽃 같은 눈은 계속 우리를 지켜보시면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 계속 우리를 책망하고 계시다고요. 시편 139편 7편 보세요. 우리가 어디로 도망갈 수 있는가?
(시편 139:7-9)
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리이다
9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혹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아무 데도 도망갈 수 없다는 거예요. 아무 데도 아무리 숨어서 일을 해도,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다 지켜보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책망하신다는 거예요. 우리의 삶에, 때로 징계가 올 때, 여러분 그 불꽃 같은 눈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잊지 마셔야 돼요.
그리고 그 예수님의 발은, ‘빛난 주석 같았다.’고 요한은 묘사하고 있죠? 빛난 주석! ‘주석’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칼콜리바논’이라는 말이에요. 이 ‘칼콜리바논’은 놋쇠, ‘칼코스’라는 말고 유향! 향나무 이야기하는 거예요. ‘리바노스’라는 단어가 복합되어서 생긴 단어예요. 칼콜리바논! 이 놋쇠는 능력과 권위와 주권을 상징하는 단어죠? 구약에서 발도 그 권세를 나타내요.
그런데 그 발이 주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엄청난 이 권세와 권위를 상징하는 거예요. 계시록 10장 1절 보세요.
(요한계시록 10:1)
1 내가 또 보니 힘쎈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2 그 손에 펴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오른발로 바다를 밟고, 왼발로 땅을 밟고 계신 그 발! 그분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라는 말이에요. 발은 이렇게, 권세와, 권위를 나타내는 거예요. 시편 110편 1절 보세요.
(시편 110:1)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
발등상이라는 것은, 발을 이렇게 올려놓는, 발판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짓밟아 버리겠다는 거죠. 마귀를!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의 발등상이 된다는 것은, 밟아버리겠다는 거예요. 발은 이렇게 권세와 권위를 나타내는 거예요.
예수님의 발이 주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이기시고,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거예요. 주석은, 놋쇠와 뭐의 합성어라 그랬어요? 유향! 향나무 그죠? 향나무는 뭐예요? 유향은 뭐 할 때 쓰이는 거죠? 제사 지낼 때! 제사 지낼 때 태우는 게, 향나무 아니에요? 유향! 그죠? 에베소서 5장 2절에서 한 번 확인하고 가자구요.
(에베소서 5:2)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나오죠?)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자 이 주석이라는 단어에, 어떤 의미가, 그럼 내포된 거예요? 보세요. 능력의 왕으로서, 모든 것을 통치하는 왕으로서, 예수님이 가지신 그 권위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냐? 제사로 이루어진 거란 말이에요. 제사로! 영단번에 드려진 그 십자가라는 제사로, 이 권위가 주어졌다는 거예요. 유니온 크라이스트(Union Christ)!
왕노릇을 할 여러분들도 역시, 그 권위와 권세를 받기 위해선, 이 필연적으로 환란과, 핍박과, 곤고와, 적신과, 위험과, 칼을 통과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또 결론이 이리로 나네요. 지금도 여러분! 부담스러우십니까? 이 얘기를 들으시면!
주석이라는 단어 하나가 갖고 있는 의미가, 그렇게 심오하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그 주석이 어떤 주석이에요? 풀무에 푹 달구어낸 주석이라 그러죠? 계시록 3장 18절 보세요.
(요한계시록 3:18)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
그러죠? ‘너희들이 정말 부요하고 싶으냐? 정말 하늘의 풍요(豐饒)를 경험하고 싶고, 그것을 너희 것으로 만들고 싶으냐? 그러면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그래요. 예수님이! 정말 하늘의 부요를 경험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불로 연단한 금! 고난(苦難)을 통과한다는 말이에요. 고난의 당위성! 필연성! 왜 그런 줄 아세요? 자꾸 하늘을 보게 만든다고요. ‘아휴, 지긋지긋한 세상! 그래, 내가 저 하늘 소망마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꼬?’ 하고 자꾸 하늘을 보게 한다는 거예요.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자기 교회 교인들에게, 이런 설교를 하셨어요. ‘저는 여러분들을 위해 하나님께 매일 매일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아무개 성도는 그 건강을 좀 치셔서, 더욱 더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시고, 아무개 성도는, 비즈니스가 망해서, 더욱 더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그건 맞아 죽을 일이죠?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도 똑같은 설교를 했어요. 그래서 쫓겨났죠? 결국은! 교회에서! 그 천재를 쫓아냈어요. ‘야, 씨, 너 때문에 내가 되는 일도 안 된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십니까? 여러분! 저한테 대해서 그런 억하심정 갖고 계신 거 아니에요? 흐흐흐.
계시록 2장 9절 보세요.
(요한계시록 2:9)
9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환란과 궁핍을 당하는 자야!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말도 안 되죠?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도대체 동의할 수 없는 말이에요. 그죠? 환란과 핍박을 당하고 있는 자에게,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가 진짜 부요한 자야!’ 그러시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부요하고 싶으십니까? 하늘의 부요를 맛보고 싶으세요? 성경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한 것이, 참 부요라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자꾸 환란과 핍박하니까, 뭐 사업이 망하고, 자식이 속을 썩이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이렇게만 생각하시는데, 환란과 핍박은, 그게 아니에요. 물론 그런 모습으로도 올 수 있죠.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은, 환란과 핍박이 없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우리는 너무나 인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습성에 젖어있어서, 내가 당하는 환란과 궁핍과 핍박이, 제일 어렵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우리 교회 성도 중에, 사흘 동안 진짜, 온 식구가 밥을 한 끼도 못 먹은 사람이 있었다는 거 아세요? 여러분! 우리교회 성도 중에, 말기 암이 걸려서, 이제 곧 하나님나라로 가야 할 분이 계시다는 거 아세요? 여러분이 당하고 계신 그 환란과 핍박이, 그 분들만큼 큽니까? 여러분! 잘 모르시죠? 내 손톱 밑에 있는 가시가 더 아픈 거예요.
제가 그 집사님을 위해서, 저희 집사람하고 장을 보면서, 생각을 했어요. 고기를 사고, 생선을 사고, 쌀을 사고, 배추를 사면서, 하나 집을 때마다 어떻게 그런데 그분이 이렇게 예배당에 앉아서, 생글생글, 목사를 보면서, ‘아멘! 아멘!’ 하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을까? 부요함을 아는 자예요. 하나님! 어떻게 그 말기암 환자인 집사님이, 저를 보면서, ‘목사님! 이제 저는 곧 하나님나라에 올라가서, 더 좋은 곳에 가서, 우리 하나님 만나게 되는데, 목사님 제가 죽음이 왜 두려워요?’ 부요를 아시는 분이에요.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목사님! 제가 옛날처럼 그 뛰어난 미모를 계속 갖고 있고, 옛날처럼 그렇게 어마어마한 부를 소유하고 있고, 그 엄청난 학식을 소유하고 있고, 누구나 나를 부러워했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어요. 만약에 계속 지금까지 그랬다면, 제가 이렇게 24시간 눈만 뜨면 우리 하나님만 생각하고, 눈만 뜨면 내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거 생각하고, 눈만 뜨면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 절대 버리시면 안돼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오히려 이분에게 부요를 갖다 준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눈이 어디를 지금 향하고 있는가를 확인하세요. 만약에 이게, 여러분의 목표지점에 가 있다면, 여러분은 그들처럼 똑같은 고백을 하셨어야 돼요. ‘하나님! 제가 이런 불에 연단한 금을 산 것이, 이렇게 저에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 유익을 가져다주었군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거, 오히려 여러분보다 더 큰 환란을 통과하고 있다는 거, 잊지 마셔야 돼요.
여러분! 정말 돈이 많으면, 그 사람에게 환란과 핍박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우리 신장로님이 성경을 가르치시면서,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환란과 고난과 핍박을 반드시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분이 그분 앞에서, 이렇게 질문하는 거, 제가 들었어요. ‘장로님은, 가난한 게 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소리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돈이 많으면, 정말 환란과 고난과 핍박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 45일 동안 잠 못 자 보셨어요? 그분은 최근에, 45일 동안 잠을 꼬박 못 잤어요. 데모하다가 끌려가서, 제일 심하게 받는 고문이 뭔지 아세요? 잠 안 재우는 거예요. 3일만 잠 못 자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다 불어요. 얼마나 힘든지! 그런데 45일을 잠 못 잔다고 생각해 보세요. ‘죽고 싶어요!’ 그러면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목사님! 이 일을 통과해서, 나는 또 몇 가지를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걸핏하면 코피가 터져서, 걸핏하면 911에 실려 가야 돼요. 이게 멈추지를 않아서! 그런 고통 당해보셨어요? 2년 동안 온 몸에 관절이 다 오그라들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온 몸을 면도칼로 긁는 거 같은 고통 속에 있었어요. 여러분! 그런 고통 겪어 보셨어요? 그분이 환란과 핍박을 모르신다고요? 누구한테 대놓고, ‘당신은 돈이 있으니까, 환란이니, 궁핍이 뭔지 모르고, 우리에게 그런 것을 통과해야 된다고 말한다.’ 뭐가 더 힘들까요? 여러분? 뭐가 더 힘들까요? 착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제일 어려운 어려움이 아니에요.
여러분! 저는 어려움이 없는 거 같으세요? 안 그래요. 우리 박성필 집사님이 어려움이 없으신 거 같죠? 집사님은 아침마다 오셔서 우세요. 왜 울까요? 왜 새벽마다 기도회 오셔서 우실까요? 사랑하는 남편이 아직 예수를 안 믿어요. 이런 큰 환란과 핍박이 어디 있어요? 누구나 다 그런 걸 갖고 있어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내지 못한다.’ 이게 결론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감격해야죠. 어떻게 그냥, ‘목사님! 어떻게 교회만 오면, 환란 얘기하고, 죄 얘기해서, 마음이 부담스럽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시냐구요?
그리고 ‘그분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자, 이 구절은, 에스겔서에서 인용을 한 거예요. 에스겔서 43장 2절.
(에스겔 43:2)
2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 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갖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그러죠? 자, 에스겔서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고 하는데, 요한은 역시, 계속해서, 구약에서 하나님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택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성경에 기록된, ‘많은 물소리’라는 이 단어는, 절대적이며, 쉬지 않고 힘차게 나타나는, ‘권위의 음성’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러한 목소리로, 예수님은 교회에 말씀을 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에요.
일곱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 서두에, 모두 ‘타데 레게이, 가라사대’라고 시작한다고요. ‘예수님이 가라사대’ 마지막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성령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해를 시켜주시는 거! 이 시간에 갑자기 천장이 확 열리더니, 하나님이 얼굴을 쑥 내미시면서, ‘얘들아! 내가 진짜 있어! 너희들 예수 안 믿으면 큰일 난다!’ 이렇게 딱 2초만 나타나시면, 제가 얼마나 일하기가 쉽겠어요? 왜 안 그러실까요?
죄인들은, 하나님이 이 뚜껑을 열고 나타나서, 하루를 우리와 같이 보낸다 할지라도, 성령이 눈을 뜨게 해주지 않으면, 절대 안 믿는다는 거예요. 고거만 지나면, ‘내가 어디 헛것을 봤나?’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 일을 안 하시는 거예요. 오직 성령으로만, 성경을 통해서 성령으로만,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거예요. 말씀하시는 분이에요. 많은 물소리로!
엉뚱한 거 쫓아다니지 마세요. 여러분! 기적 같은 거 쫓아다니지 마세요. 왜 사람들이 기적을 원하죠? 안 믿어지니까! 성령으로 인해서 우리 안에 믿음이 들어온 사람들은, 믿어지기 때문에, 기적이 필요 없어요. 그게 왜 필요해요? 저는 너무 웃겨! 그게 왜 필요해요?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믿어지는데, 예수님이 믿어지는데, 왜 기적이 필요해요? 서커스만도 못 해졌어요. 기독교가!
자, 여러분! 지금까지 제가 설교한 내용이, 여러분에게 기쁨이 됩니까? 아니면, 불편하십니까? 저는 지금 애써서, 기쁜 소식! 굿 뉴스(Good News)! 복음(福音)을 전하고 있어요. 그런데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불편한 마음이 들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시면서, 정말 예수로만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예수로 인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으로, 만족을 하십니까? 심판과 저주의 재림 때에, 그 저주에서 건져 내어졌다는 그 사실로, 여러분은 만족하세요? 아니면, 지금 내 욕심을 채워주는, 그 하나님에 만족하시냐구요? 뭐가 기독교에요? 여러분! 뭐가 기독교입니까?
제 설교를 매주, 제 사랑하는 가족들이 듣고 있어요. 저 잠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안자요. 설교 준비만 해요. 심방도 안 가요. 그렇게 공부해서, 몇 번씩 확인하고 확인해서, 그리고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올라와서, 말씀 드리는 거예요. 제 설교로 말미암아,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옥을 가면 안 되죠? 그러니까 저는 몇 번씩 확인해요. 그런데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기쁘지가 않으면, 잘못 된 거 아닙니까?
제가 여러분을 괴롭히려고 설교하는 거 아니에요. 저는 복음을 전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저에게, 다른 더 기쁘고 좋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그러면, 제가 어떡합니까? 그럼 떠날 거예요. 저 시골로! 20명 듣는 데! 흐흐 저는 여러분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해주러 이 자리에 서 있는 거 아니에요. 적어도 한 남자가, 자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택했을 때는, 이것이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하니까, 택했을 거 아닙니까?
여러분! 평생 예수 믿고 지옥 가는 사람이 있어요. 두고 보세요. 천국에 가면, 거기에 없을 사람 많아요. 바르게 믿으십시오. ‘그러나’가 있잖아요? 그러나! 그러나! 우리는 갈 곳이 있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신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거예요. 거기까지 가시면 왜 기쁨이 여러분에게 안 오겠습니까? 왜 거기까지 안가시고, 왜 자꾸 이 땅에서 멈추시냐구요? 그러니까 괴롭죠?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을 읽어 보시자구요. 이제 여러분들에게 이해가 되었는지, 쭉 읽으시면서 이해가 안가면, 제가 설교를 잘못한 거예요. 그죠? 예수만 찾아내세요. 예수만! 12절부터
(요한계시록 1:12-16)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는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클리어 하십니까? 그럼 된 거예요. 여러분! 성경에서 예수만 찾아내세요. 여기에 어디 예수 믿으면, 잘 먹고 잘살게 된다는 얘기가 어디 있어요? 한 단어도 없어요. 성경에는요! 예수를 찾아내세요. 그리고 그 안으로 숨으세요. 그래야 여러분에게는 소망이 있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