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61 ㅡ 안녕? 선경아! (사소)
친구는 엄마를 잃었다. 나는 지금 친구를 만나러 기차를 탔다. 아홉 남매 중에 여덟째인 선경이. 위로 줄줄이 딸을 낳고 낳아서 선경이 동생, 막내는 드디어 아들이었다. 봉선동에서 NO.8 옷집을 하는 선경이는 큰 딸도 아니고 빼어나게 예쁘거나 애교쟁이도 아니고 더구나 아들도 막내도 아닌, 귀하디 귀한 아드님 바로 위, 까탈스럽고 예민하기만한 여린 딸이었다.
강진에서 장판집을 하시면서 아홉 남매를 낳아 기르셨던 부모님은 나이가 드신 후에는 미혼인 선경이와 독신인 큰언니의 부양을 받으셨다. 큰언니는 간호사로 오래 전 정년퇴임을 하셨는데 선경이와는 나이 차가 엄청난 이모 같았다. 기동력이나 섬세한 조율은 선경이 몫이었다. 서울서 교육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좋아하는 옷이라도 실컷 입어보겠다고 광주에다 옷집을 열었다는 선경이. 나주에 아파트를 얻어 부모님과 위 아래로 살면서 구순을 훌쩍 넘기신 엄마 아빠를 아침저녁으로 돌봐왔다. 노환으로 아프신 엄마는 4년이나 넘게 병간호를 해왔다. 수술을 하셔서 입맛이 까다로운 아버지를 위해 냄비를 들고 병원을 오가며 병구완을 하고 있었다.
여고때는 등치가 커 보였는데, 이제는 어깨가 작아져 버린 선경이는 십 년여 년 만에 연락된 친구에게 알리자니 바쁠 것이 뻔했고, 말을 안 하면 서운해할 거라 늦게나마 알렸을 것이다. 다들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 사람은, 더군다나 같이 살지 않은 사람은, 누군가 보내고 나면, 슬프다가도 서서히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잊어간다. 하지만, 같이 아침저녁으로 함께했던 선경이는 문득 문득 혼자 오래 그 슬픔을 껴안고 갈 것 같다.
엣지있고 센스쟁이 멋쟁이 선경이를 만나서 엄마 보내드리느라 수고했다고 하고싶다. 밥도 같이 먹고 싶지만, 그동안 어딜가볼 시간도 없었을 선경이랑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꽃구경도 하고 수목원도 데리고 가고 싶다. 선경이에게 하루를 다 비웠다고 했다. 차를 몰고 내려갈까 하다가 운전해 줄 튼튼한 친구도 섭외해서 선경이를 의전 할 거라 하니 그녀가 웃는다. 원 없이 엄마한테 했으니 그렇게 많이 슬프지 않다고 괜찮다고 한다. 많이 바쁠 텐데 정말 와도 되는 것이냐 외려 걱정이다.
선경이는 카톡에 나주 휴양림이니 박물관이니 가고 싶은 곳, 세 곳을 올리며 좋아하는 이모티콘을 붙여 놓는다.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안 돼서 지금은 잘 모를 것이다. 그런데 어느덧 갑자기 훅, 뭐가 들어오는 날이 올 것이다. 분간 없이 어느 순간 숭숭 구멍으로 바람이 드나들겠지. 그러다가 또 훅 허망해지고 사는게 뭐냐 싶겠지. 선경이에게 뭘 해줄 수 있다는 게 가당치도 않겠지만, 그 순간이 올 수 있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점점 괜찮아진다고 푸른 이파리 하나 걸어두고 와야겠다.
첫댓글 최선을 다한 간병 끝의 죽음은 확실히 회한이 적은 것 같습니다…
지난 번에 말씀했던 그 친구 분이시군요. 두 분의 진한 우정이 느껴집니다.
친구분은 참 좋을 것 같네요.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하고 생각해주는 사소님이 있어서요. 친구분께서 많이 슬프시겠지만 또 잘 이겨내시길 ..